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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을 바란들.

왜냐면 그렇게 되면 변할지도 모르잖아. 바뀔지도 모르잖아. 나도 이 세상도.

그렇다고 죽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가능성을 찾고 있을 뿐. 어쩌면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아침에 세수하는 걸 잊어버렸다거나. 평소 같으면 반드시 가져오는 손수건을 집에 두고 왔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목도리를 목에 둘러본다거나. 수업 중에 졸음이 달아났다거나. 그런 일을 계기로 세상이 끝날지도.

뭐, 그건 전부 소녀의 이야기지만.

어딘가 먼 나라에서 아침 해를 기다리는 소년의 곁에는 아침 해가 찾아오지 않고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밤이 오지 않듯이. 세상의 끝도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끝나면 변할 거다.

1월 19일. 목요일.

눈, 또는 메모.

어제는 밤이 되어 다시 눈이 내렸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친 상태였다. 그러나 길에는 이미 눈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부모가 깨워서 일어난 그녀는 억지춘향으로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했다.

손, 시려.... 추워....

겨울의 나한테는 집에도 있을 곳이 없는지도 모른다. 뭐, 눈을 치우고 싶지 않을 뿐이지만. 눈아..., 더 이상 내리지 말아다오.

그런 생각을 진심으로 하면서 소녀는 오늘도 책을 펼쳤다.

이 10분간. 교실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진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정도로.

‘응?’ 하고 소녀는 깨달았다.

책갈피의 위치가 어제부터, 아니 며칠 전부터 변함없이 124와 125페이지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을.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10분간 독서 시간인데도 줄곧 생각에 잠겨 있느라고 읽지를 않았다.

오늘은 진지하게 독서하자. 소녀는 책에 눈길을 옮겼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소녀의 등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뒷자리의 남자애가 표정 없는 얼굴로 소녀의 손에 네모난 종이를 쥐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의 뒷자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남학생의 뒷자리에서 여학생이 일부러 요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즐겁게 웃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기운이 팔팔한 재주를 선보여주는 친구에게 반응하지 않고, 소녀는 다시 돌아앉아 깔끔하게 접힌 종이 쪼가리를 펼쳤다.

[들어봐! 내 생일이 아무래도 인기 아이돌 B하고 똑같은 것 같아! 과연 B란 누구게~?!]

‘너야말로 뭐니?’

소녀는 한숨조차도 목구멍 속에 밀어넣고 일단 친구의 메모를 무시하기로 했다.

아유, 참! 쉬는 시간에 말해도 되잖아! 아니, 그런 시시한 얘기는 아예 하지도 말고 묻지도 마. B란 네가 좋아하는 그 녀석이잖아.

소녀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그러고 보니 뒷자리의 친구는 독서를 끔찍이 싫어해서 항상 이 10분이라는 시간을 주체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소녀는 이 10분을 꽤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친구인 그녀의 입장에서는 고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녀 이상으로 그녀의 독서 진도는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딴 짓 말고 책이나 읽어!]

뒤의 바보 같은 친구에게 메모를 보내려고 생각한 순간, 담임교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10분간이 끝나버린 것이다.

책을 읽지도, 생각에 잠기지도 못했다. 소녀는 뭔가 소중한 것을 빼앗겨버린 듯한 기분조차 조금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여전히 장난을 치고 있는 친구를 힘껏 째려보아주었다.

사람들 속에서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녀의 귀중한 아침 10분간은 이후로도 친구의 맹렬한 메모 공격에 침범 당하게 되었다.

1월 20일. 금요일.

맑음. 단, 메모 주의보.

늘 지각하던 지각 소년은 지각을 하지 않아서 반대로 반 아이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었다. 바보다.

소녀는 매일 아침 같은 얼굴로 같은 교실에서 같은 좌석에 앉아 같은 책을 읽었다. 10분 동안.

하지만 소녀는 책을 읽는 것보다도 그 시간에 생각에 잠기는 적이 더 많았다. 세상의 끝과 우주의 귀퉁이에 대해서.

우주는 오늘도 펼쳐져 있다. 이렇게 활자 안에 시선을 묻고 있을 때조차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그런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에엥?”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을 게 뻔하니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혼자의 시간.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 그런데 오늘도 또 등을 쿡쿡 찌르는 손가락이 있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돌아보니 남학생이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소녀의 친구로부터 온 메모를 건네주었다.

펼쳐보고 깜짝 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