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이공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어 능력은 필수적입니다. 정확히는 영어 능력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제2외국어 능력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됩니다. 라틴어, 불어 혹은 독일어를 안다면 근대 수학사 관련 문헌을 읽을 때 도움이 되고, 일본어나 중국어를 안다면 해당 언어로 쓰여진 일부 교과서/문헌을 참고하기 좋겠죠. 하지만 현대 수학 공부 및 연구를 위해서라면, 영어 능력이 가장 우선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이 현상에 대해 가끔씩 생각을 합니다.
먼저, 언어 장벽은 실존합니다. 드물지만 독일어나 러시아어 혹은 다른 언어로 쓰여진 문헌을 읽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논문을 읽을 때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듭니다. (어느 착한 번역가가 초록이라도 영어로 번역해 놨다면 감지덕지입니다. 정말로요! 한국어로 번역된 초록은 지금까지는 못 봤네요...) 사실은 제가 배운 일본어나 불어, 심지어는 영어로 된 논문을 읽을 때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국어로 학문을 공부하는 것과 외국어로 공부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문헌 저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저자의 모국어로 이루어질 때 가장 자연스럽고, 모두가 저를 위해 한국어로 논문을 써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물론 독자가 모든 저자의 모국어를 공부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 간극에 대한 타협으로, 모두들 영어라는 공통 언어로 쓰고 읽는 관습이 자리잡았습니다. 저는 여기에 살짝 다른 조건을 추가하고 싶은데요, 모든 학자는 원한다면 자가기 선호하는 언어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그 사이를 잇는 견고하고 안정적인 번역 시스템이 도입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이건 연구자가 영어 공부를 안 해도 된다거나, 영어를 쓰면 안 된다는 주장과는 결이 다릅니다). 좀 생소한 아이디어인데,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첫번째로, 모두가 멀티플레이어여야 하는 시스템은 피로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영어를 익혀 연구 결과를 영어로 생산한다면, 그 사람은 학문 생산뿐만 아니라 번역 시스템에도 자동으로 기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학계 입장에서는 환영해야 할 감사한 기여입니다만, 이런 형태를 모든 각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강점과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문과 지식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지식을 발굴해 내고 싶어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지식을 소화하기 쉽게 해설하거나, 더 널리 퍼지도록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고 싶어합니다. 두 역할을 모두가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영역에서 원활한 "영어" 능력이 필수인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적절한 분업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물론 분업은 시스템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할까요? 현재 시스템에서 이공계 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성과지만, 동시에 소속 기관이나 사회에 기여도 해야 합니다. 이는 전자를 부각하지만, 동시에 전자에만 집중할 수도 없게 만듭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방향은, 다양한 능력들을 일단 연구에 최적화한 다음(예를 들어 소통 및 작문을 위한 최소한의 영어 능력 장착 등), 연구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제외한 수학의 나머지 측면은, 일단 연구로 살아남은 다음에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 개인에게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물론 저는 연구자로서의 삶을 수련하고 또 저에게 맞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아직 저는 그 길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딜레마도 느낍니다. 대학원생은 연구 역량을 키우는 것이 1순위이기에, 제가 좋아하는 다른 측면 - 언어 능력을 활용해 수학 안팎의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 에는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연구 능력에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방식으로 도움될 능력마저 버려질 수 있다는 점이 마음 편하지는 않습니다.
두번째로, 절대적인 언어란 없습니다. 그리스 고전 철학이 중세 유럽에 바로 전달되지 않고, 이슬람 문화권을 통해 전달되었다는 고릿적 예시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18세기에 유럽에서 수학을 한다면 모국어뿐만 아니라 라틴어도 배워야 했을 겁니다. 19세기~20세기 초였다면 불어나 독일어로 옮겨갔겠군요. 물론 20세기 중반부터는 영어가 지배했습니다. 다시 말해, 영어가 수학을 하는 데 최적이기 때문에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맥락에 따라 쓰게 되었으니 쓰는 것일 뿐입니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또 지켜봐야 합니다. 그에 비해, 통계적으로 각 학자가 익힐 수 있는 언어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수학에서의 예시를 살펴보면, 요즘은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불어/독어 교과서가 아닌 영어 교과서가 사용되고 있죠. 이는 미국 학파에서 가교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학생들에게 불어/독어 교과서로 수업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굳이 용어와 표현을 다듬어 가며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길 거부한 사람들도 있긴 한데...)
세번째 이유는 두번째에서 나온 예시와 관련이 있네요. 라틴어에서 현지 언어로 학문의 중심이 옮겨 간 배경에는 계층의 이동 및 대중의 지식 수요가 있습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라틴어 성서와 독일어 성서의 차이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모두가 라틴어를 공부하는 것보다, 현지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죠. 현대에도 생각해 볼 만한 거리입니다. 현대 수학은 대중과 다소 유리되어 있습니다. 물론 현대 수학이 어렵다는 것도 한몫합니다(적어도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그와 별개로, 이 유리에는 언어 장벽이 심각하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제 전공인 위상수학은 대중적인 이미지와 전공 학문 사이 거리가 상당합니다. 이는 위상수학이 추상적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위상수학의 모티브는 구체적이고 상상 가능한 대상 및 현상에 있습니다. 이 모티브를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하는 컨텐츠가 많아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상수학을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영어권에는 그런 책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물론 수학자가 생각하는 난이도는 일반인 기준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M. A. Armstrong의 Basic topology, J. Roe의 Winding around, F. Bonahon의 Low-dimensional geometry, W. Thurston의 3-dimensional geometry and topology, ... 와 같은 느낌의 한국어 책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책들은, 전공자를 위한 수학 교육에 응급한 것은 아니나 수학이 다른 학문 혹은 일반 사회와 소통하는 데는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결론짓자면, 특히 한국어권 수학 문화에는 중간 전달자가 필요합니다. 어떤 수학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모국어로 쓰인 친절하고 깊이 있는 자료들이 등장하고, 그걸로 공부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학문을 쌓은 뒤 안팎으로 퍼뜨리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기존 헤게모니에서 나온 자료를 그 언어로 공부하고, 후속 세대에 가르칠 때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두번째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음을 압니다. 이것은 모든 이들이 헤게모니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을 가정합니다. 그게 가능하지 않기에, 몇몇 전공자만이 그 지식을 소비하게 됩니다. 이 경우, 만약 헤게모니에 변화가 생긴다면 일부 학자들이 다 감당해야 할 겁니다. 당장 우리 세대가 수학을 할 때 라틴어나 불어, 혹은 독어를 쓰는 빈도를 생각하면 그 변화가 얼마나 급격할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는, 안에서 학문이 이어지지 못하고 새 언어로 다시 수입해와야 하는 거죠. 이건 실제 사례도 있네요.
그에 비해, 번역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또 일반인과 전공자 사이에 부드러운 학문 스펙트럼이 형성되면, 헤게모니 언어가 변하더라도 거기에 적응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학문의 저변이 넓으면 넓을수록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과연 우리는 50년 뒤에 어떤 학계 문화를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이 화두를 계속 가져가면서, 매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제 만화, 번역, 혹은 작문은 그러한 작은 발버둥이라 생각해 주세요.
(*) 미래에는 번역기가 다 해 줄 거라는 의견도 있죠. 나쁠 거 없습니다. 번역기를 써서 빠르게 제대로 된 책을 내면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참고할 만한 문헌: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comm.2020.00031/full (한국어 레퍼런스가 아니란 점에서 제 글을 스스로 공격하는 셈이네요. 여유가 생긴다면 번역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