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았어*
당신은 모든 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
당신은 죽어가고 있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
연명한다기보다 잔존하고 있다고 해야지
그 둘은 분명히 다르니까
목숨과 존재의 차이를 잊지 마
8월의 어둠, 당신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어
당신은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해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고
그때 어떤 이야기를 했고
그때 창밖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었는지
봄이었던가? 상관없어
창밖의 나무에 꽃이 아니라 불이 붙었다고
그 불이 세계의 지붕 위로 순식간에 번져갔다고 기억하자
우리는 둘 다 시인이니까
우리는 이미지의 왕과 여왕이니까
저기 좀 봐, 시커멓게 그을린 건물의 벽을 봐
불길이 잡히자 뻥 뚫린 천장으로 달빛이 쏟아졌어
충격적이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었지
집주인의 퇴거 명령에 분노한 세입자들이 방화를 했어
그들은 매춘업자였어, 그들이 쫓겨난 자리에
지금은 마약거래상이 들어왔어
정말 놀라운 이야기 아니야?
당신은 아이처럼 웃고 있어
중요한 것은 당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
웃음은 존재의 암흑 속에서도 반딧불들이 날아다닌다는 증거야
8월의 어둠, 당신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어
당신은 언제나 그렇듯 딸 이야기로 수다를 떨지
시안Xian, 조상의 고향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 했지
당신은 모녀 사이의 묵계에 대해 말하고 있어
어머니의 딸이 성인이 될 때 까지
딸의 어머니는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고
그래, 그 묵계의 단단한 매듭이 풀릴 때까지 더 기다리자
시안은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도 낳지 않았으니까
당신 가슴 속의 그 더러운 암세포 따위는
반딧불들의 신비로운 짝짓기를 결코 훼방 놓지 못할 거야
당신은 모든 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
심지어 죽은 이들의 머리까지 쓰다듬지
당신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초상화를 그렸지
거리 시위에 들고 나가기 위해
권력가들의 면전에 흑백의 진실을 들이밀기 위해
당신은 이제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잔소리나 하는 할머니 취급을 받기 일쑤지만
당신은 여전히 죽은 이들의 초상화를 그리지
그 사각의 ‘절대 슬픔’을 젊은이들의 손에 쥐여주고
그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으며 당신은 말하지
얘들아, 이제 나가렴, 이것을 들고 나가 끝까지 싸워야 해
8월의 어둠, 당신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어
지금부터 당신은 빈 회의실에 혼자 남아 노트에 쓰기 시작할 거야
우리는 과거로부터 온 흐름 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역할은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누구는 용기를 가졌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이 될 필요가 없고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조짐, 희미한 움직임이다
바통을 주고받는 이름 없는 주자들이다
그 바통 위에는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이 시는 내 친구이자 시인인 페이 치앵Fay Chiang과의 대화와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의 영향 아래서 씌어졌다.
심보선『오늘은 잘 모르겠어』(문학과지성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