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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금방 끝낼 테니까”

속삭이고, 아스나는 벌떡 일어났다. 우아한 동작으로 허리에서 세검을 뽑아 걸어나간다.

그 방향에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려는 크라딜이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실루엣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뜬다.

“아, 아스나님....어, 어떻게 이곳에.... 아, 아니, 이건, 훈련, 그래, 훈련 도중에 사고가....”

태엽장치가 달린 것처럼 뻣뻣하게 일어나 뒤집힌 목소리로 주워섬겨대는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스나의 오른손이 번뜩이고, 검의 끝이 크라딜의 입을 찣어발겼기 때문이다. 상대의 커서가 이미 오렌지색이었으므로 아스나에게 범죄 플래그가 세워지진 않는다.

“으악!!”

한손으로 입을 움켜쥔다. 순간 동작을 멈춘 후, 휘청하고 돌아온 그의 얼굴에는 눈에 익은 증오의 빛이 떠올랐다.

“이 계집이....기어오르고 앉아서는....케, 마침 잘됐다, 어차피 너도 금방 죽여버리려고....”

그러나 그 말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아스나가 세검을 고쳐쥐고는 맹렬한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엇....크어엇....!”

양손검을 휘둘러 필사로 응전하지만, 그것은 싸움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아스나의 검은 허공에 무수한 빛의 띠를 그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차례차례 크라딜의 몸을 갈라놓고 꿰뚫었다. 아스나보다도 몇 레벨이나 높은 내 눈에도 그 궤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춤추듯 검을 휘두르는 하얀 천사의 모습을 나는 그저 넋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웠다. 밤색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분노의 불꽃을 온몸에 두른 채 무표정하게 적을 몰아붙이는 아스나의 모습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누오옷! 크아아악!!”

반은 공황에 빠져, 무턱대고 휘둘러대는 크라딜의 검은 스치지도 않는다. HP바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노란색에서 붉은 위험영역에 돌입했을 때, 드디어 크라딜은 검을 내던지고 두 손을 치켜들며 울부짖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잘못했어!!”

그대로 지면에 엎드린다.

“이, 이제 길드는 그만둘게! 너희들 앞에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어!! 그러니까-”

째지는 외침을 아스나는 묵묵히 들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세검을 치켜들고, 손 안에서 철컥 소리와 함께 역수로 고쳐 쥐었다. 나긋나긋한 오른팔이 긴장으로 굳어지고, 다시 몇 센티미터 올라간 후 바닥에 엎드린 크라딜의 등 한복판에 단숨에 내리꽂히려 했다. 순간 살인자가 한층 더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히이이익! 죽고, 죽고 싶지 않아-!!”

흠칫.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힌 것처럼 칼끝이 멈췄다. 가느다란 몸이 부들부들 격렬하게 떨렸다.

아스나의 갈등, 분노와 공포를, 나는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한 아직 이 세계에서 플레이어의 목숨을 빼앗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 상대는 현실세계에서 진짜로 죽는다. PK라는 이름의 온라인 게임 용어로 포장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엄연히 살인행위인 것이다.

-그래, 관둬, 아스나, 네가 그래선 안 돼.

속으로 그렇게 외친 것과 동시에 나는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안 돼. 주저하지 마. 놈은 그걸 노리고 있어.

내 예측은, 콤마 1초 후에 현실이 되었다.

“히야아아아아아!!”

바닥에 엎드려 있던 크라딜이 어느새 고쳐 쥔 대검을 갑자기 괴성과 함께 쳐올렸다.

채앵, 하는 금속음과 함께 아스나의 오른손에서 레이피어가 튕겨져나갔다.

“앗....!?”

짧은 피명을 지르며, 자세를 무너뜨린 아스나의 머리 위에서 금속이 번뜩 빛났다.

“물-러 터졌다고 부단장니이이이이임!!”

광기가 베어나오는 절규와 검붉은 라이트이펙트를 흩뿌리며, 크라딜은 대검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내리쳤다.

“우...오오오오오오!!”

외친 건 나다. 겨우 마비에서 풀려난 오른발로 지면을 박차고, 순식간에 수 미터를 날아든 나는 오른손으로 아스나를 밀쳐내며 왼손으로 크라딜의 검을 받아냈다.

푹. 기분나쁜 소리가 울리며 내 왼팔이 팔꿈치 밑에서 잘려나갔다. HP바 밑에서 부위 손실 아이콘이 점멸했다. 혈액과도 같은 선홍색 광점을 절단면에서 무수히 흩뿌리며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모은 나는-

그 수도를 두터운 갑옷의 이음매로 찔러 넣었다. 노란빛을 띤 팔이 축축한 감촉과 함께 크라딜의 배를 깊이 꿰뚫었다.

카운터로 명중한 체술계 초근거리용 스킬 《엠브레이서》는, 2할 정도 남았던 크라딜의 HP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나와 달라붙은 마른 몸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금세 축 늘어졌다.

대검이 지면에 떨어지는 소리에 이어 왼쪽 귓가에서 쉬어 터진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살인자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