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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아스나가, 넋나간 듯한 내 얼굴을 걱정스레 들여다보았다.

진 건가-.

나는 아직 믿을 수 없었다. 공방의 최후에 히스클리프가 보여준 무시무시한 반응은, 플레이어의- 인간의 한계를 넘어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스피드 탓인지, 녀석의 아바타를 구성하는 폴리곤마저 일순 흔들렸었다.

지면에 주저앉은 채, 약간 떨어진 곳에 선 히스클리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승자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험악했다. 금속 같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한 번 노려보더니, 진홍의 성기사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폭풍같은 함성 속을 천천히 걸어 대기실로 사라졌다.

【14】

“뭐...뭐냐 이건!?”

“뭐냐니, 보는대로야. 자, 빨리 일어나!”

아스나가 강제로 입힌 것은, 내 새로운 단벌옷이었다. 몸에 익을 대로 익은 후줄근한 코트와 모양은 같지만, 색은 눈이 아플게 될 정도의 순백이다. 양쪽 깃에 조그맣게 두 개, 등에 커다랗게 한 개의 진홍색 십자 모양이 염색되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혈맹기사단의 유니폼이다.

“....수, 수수한 놈으로 부탁했잖아.....”

“이래봐도 충분히 수수한 편이야. 응, 잘 어울려!”

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흔들의자에 파묻히듯 앉았다. 여전히 에길의 잡화점 2층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내가 더부살이하는 긴급 피난처가 되어, 가엾은 점장은 1층에 간소한 침대를 펼쳐놓은 채 자고 있다. 그래도 쫓아내지 않는 것은 이틀이 멀다 하고 아스나가 찾아와선 겸사겸사 가게 일을 거두어주기 때문이다. 선전효과가 엄청날 것이다.

내가 흔들의자 위에서 끙끙거리고 있으려니, 이제는 아예 지정석이라도 된 것처럼 아스나가 팔걸이 위에 걸터앉았다. 내 딱한 모습이 재미있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의자를 삐걱삐걱 흔들어댔으나, 이윽고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가볍게 두 손을 맞댔다.

“아, 제대로 인사하지 않았네. 길드 멤버로서 지금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돌연 고개를 꾸벅 숙이니 나도 당황해서 등을 쭉 폈다.

“자, 잘 부탁해....라고는 해도 난 일반 멤버고 아스나는 부단장님이니까 말야”

오른손을 쭉 펴서, 검지로 아스나의 등줄기를 쭉- 하고 쓸어내린다.

“이런 짓도 못하겠구나-.”

“끼야악!”

삐명과 함께 펄쩍 뛰어오른 나의 상사는, 부하의 머리를 딱 쥐어박더니 맞은편 의자에 앉아 부루퉁하게 볼울 부풀렸다.

늦가을 오후, 나른한 햇살과 함께, 한동안의 정적이 찾아왔다.

히스클리프와의 싸움, 그리고 패배로부터 이틀이 경과하고 있었다. 나는 히스클리프에게 제시당한 조건대로 혈맹기사단에 가입했다. 이제와서 발버둥치는 것도 원하는 바는 아니다. 이틀의 준비기간이 주어져 내일부터는 길드 본부의 지시에 따라 75층 미궁구의 공략을 시작하게 되었다.

길드인가-.

나의 어렴풋한 탄식을 들은 아스나가 맞은편에서 힐끗힐끗 시선을 보낸다.

“...웬지 완전히 말려들게 해버렸네....”

“아니, 마침 잘됐어. 솔로 공략도 한계가 오고 있었으니”

“그렇게 말해준다면 다행이지만.....저기, 키리토”

아스나의 헤이즐넛색의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어째서 길드를....사람을 피하는지....베타테스터니까, 유니크 스킬 사용자이니까 아니지. 키리토는 상냥한걸”

나는 시선을 깔고, 천천히 의자를 흔들었다.

“......벌써 꽤 옛날..., 1년 이전일까나. 딱 한 번, 길드에 들어갔던 적이 있어....”

스스로도 의외라 생각될 정도로 순순히 말이 나왔다. 이 기억을 건드릴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아픔을 아스나의 눈길이 녹여 줄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미궁에서 우연히 도와준 인연으로 길드 가입 제안을 받았어.... 날 포함해도 6명밖에 안 되는 작은 길드고, 이름이 걸작이었지. 《달밤의 검은 고양이단(月夜の?猫?)》.

아스나가 살짝 웃었다.

“리더가 좋은 녀석이었지. 무슨 일이 있어도 멤버를 제일 먼저 챙겨주는 남자라서 모두에게 신뢰받고 있었지. 케이타란 이름의 양손봉(스텝) 사용자였어. 멤버는 대부분 양손용 원거리무기 사용자여서, 포워드를 찾고 있다고 했어....”

솔직히 그들의 레벨은 나보다도 훨씬 낮았다. 아니, 내가 무턱대고 너무 많이 올렸다고 해야 하려나.

내가 자신의 레벨을 말했다면, 케이타는 사양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단독으로 미궁에 들어가는 하루하루에 조금 지쳤던 탓인지 《흑묘단》의 at home 풍의 분위기가 매우 눈부시게 여겨졌다. 그들은 모두 현실세계에서도 친구 사이인 듯, 온라인 게임 특유의 거리감 없는 분위기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내겐 이제와서 남의 온기를 추구할 자격은 없다. 솔로플레이어로 이기적인 레벨업에 매진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 자격을 잃은 거다- 귓속에서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억지로 눌러버리고, 레벨과 베타테스터 출신이라는 사실을 감춘 채, 나는 길드에 가입하기로 했다.

케이타는 내게 길드에 둘 있는 창술사 중 하나가 방패검사로 전향하도록 코치를 해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그러면 나를 포함해 포워드가 셋이 되니 안정적인 파티를 짤 수 있다.

내게 맡겨진 창술사는 검은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사치라는 이름의 얌전한 여자아이였다. 소개를 받았을 때, 온라인 게임 경력은 길지만 성격 때문에 좀처럼 친구를 만들지 못하겠다고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나는 길드의 활동이 없는 날도 거의 그녀와 어울리며 한손검을 가르쳤다.

나와 사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닮아 있었다. 자신의 주위에 벽을 만드는 버릇, 말이 서투르고, 그런 주제에 외로움을 타는 면까지.

어느 날,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