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3일 대전 주민조직가 교육훈련과정이 시작된 이래 대전의 주민운동은 2022년에 20년차를 맞이했습니다. '대전실업극복시민연대 일어서는 사람들'과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이 공동으로 주최·주관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1971년 공동체로부터 뿌리 뽑혀져 도시에 내던져진 도시 빈민의 아픔과 고난의 현장에서 출발했던 한국의 주민운동과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 시대 갑자기 일터에서 쫓겨나 가난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했던 대전의 주민운동의 만남인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주민운동인 것은 돈과 권력을 가진 기업과 정부가 무능하고 무책임했으며 무관심한 상황에서 주민 스스로 자신의 조직화된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고 조직했고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아픔의 현장을 자기 삶의 현장으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실무자라 불리고, 사회복지사라 불리고 때로 활동가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때로 사원이고, 과장이고 팀장이었으며 대표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일터는 직장이고, 기관이며 시설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활동을 빈민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시민운동이라 했습니다. 때로 실업운동, 환경운동, 생명운동, 복지운동, 지역화폐운동, 협동조합운동, 마을공동체운동, 사회적경제운동, 도시재생운동, 주민자치운동 등 다양하게 이름하였습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우리는 이 모두를 주민운동 현장이라 부르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를 주민조직가, 지역사회 조직가라고 자처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지구질서에서 우리는 지역으로부터 사회변화의 단초를 열고자 합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민의 자립과 자치역량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이며 사회혁신이고 공공선이라 선언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부터 조직합니다. 그래서 우리 만남의 원리를 멤버십으로 조직된 결사체를 본질로 사업체를 운영하며 자립과 자치, 연대를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협동방식의 운영원리를 채택합니다.
주민운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원시공동체에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체제 전반에 주민의 주인 됨을 이루려는 주민운동이 있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의 본성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운동이 바로 주민운동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었던 시대 도산 안창호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이상촌 건설운동을 하면서 자신과 활동가들에게 말하였다. “점진적으로 민중의 자각을 기다려서 하는 것”, “민중 자신 속에서 지도자를 발견하고, 그로 하여금 민심을 결합케 하고 결코 자신이 지도자의 자리에 서지 아니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태평양을 건너 30년 늦게 태어난 미국의 사울 알린스키라는 유태인의 말과도 일치한다.
"조직이란 힘없는 사람들의 힘을 키워주는 것, 자포자기해버린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삶의 의욕을 선동하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힘과 그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오재식.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알린스키」
1966년 여름, 오재식은 두 달간 지역 흑인운동 현장을 견학하고 알린스키를 만나 미국의 주민조직가 30명과 2주간 특별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1967년 한국학생사회개발단을 조직하고 알린스키의 조직화 방법론에 따른 교육훈련을 시작한다. 1968년 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가 연합해 연세대 부설 도시문제연구소가 설립된다. 이때 오재식은 1966년 미국에서 3개월간의 주민조직가 교육훈련을 안내받았던 조지 타드(George Todd)를 박형규에게 연결한다. 조지 타드는 미국연합장로교 도시산업선교 책임자로서 도시문제연구소 설립 및 주민조직가 교육훈련에 따른 재정을 지원했다.
그리고 1969년 도시문제연구소 산하 도시선교위원회에서 허버트 화이트(Herbert D, White)를 초대해 행동훈련 프로그램(ACTION TRAINING PROGRAM)이라는 한국 최초의 주민조직 교육훈련이 시작된다.
2~3명의 팀으로 구성된 훈련생들이 파견된 현장에서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사건이 일어난다. 당일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신학 강연회 연단에서 오재식은 “이 자리에 ‘현장은 무엇인가’를 얘기하러 왔지만,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장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명동 성모병원 영안실로 달려간다.
이후 1971년 9월 1일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SEOUL METROPOLITAN COMMUNITY ORGANIZING, 이하 수도권)를 결성했다. ‘수도권’은 1971년 9월 1일, 9명의 위원이 모여 위원장 박형규 목사를 중심으로 건설됐다. 서울 청계천 빈민촌을 중심으로 2년간 조직가들의 훈련이 진행되고 15명이 훈련생이 배출되었다.
그 후 1972년 10월, 유신으로 계엄령이 선포되기 전까지 신설동 4번지의 철거민 투쟁을 조직했고, 평화시장 등에서 영세 상인들의 조세 저항 시위가 있은 뒤 이를 조직화하기 위한 조사 활동을 펼쳐나갔다. 또한 광주대단지와 남대문시장, 송정동 뚝방 지역, 도봉동, 인천 화수동, 금화 시민아파트, 신정동 등에 실무자를 파견해 일상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당시 훈련생으로 권호경, 김동완, 김진홍, 손학규, 오충일, 이규상, 이미경, 이철용, 이해학, 조승혁, 허병섭 등이 있다. 이때를 한국 주민운동의 본격적인 출발로 본다.
일반적인 의미의 대전의 주민운동은 오랜 역사가 있겠으나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의 주민 조직가 정규교육훈련과정을 시작으로 보자면, 「(사)실업극복시민연대 일어서는 사람들」과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2003년 대전 제 1기 주민조직가 교육훈련과정을 출발점으로 할 수 있다. 당시 교육훈련과정은 실업극복시민연대 일어서는 사람들과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이 공동으로 주최·주관하고 출연하였다. 재원의 일부는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마련되었다. 그 이전 대화동 빈들 교회, 대전실업극복시민운동협의회, 민들레의료생협 등에서 주제별로 주민운동의 철학과 방법론이 일부 소개되고 적용되기도 하였다.
대전 최초의 주민조직가는 한국주민운동교육원 정규과정을 수료한 최초의 주민조직가는 안영섭으로서 2002년에 시작하여 2003년 10기 수료생이 되었으며 이어, 대전 주민조직가 1기 수료생도 함께 하였다. 유병규 조직가는 대전 1기 수료 이후, 2004년 한국주민운동교육원 11기를 수료하였다. 당시 조직가들은 지역화폐, 생협, 철거민, 사회복지, 자활현장 등에서 활동하였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활동해오던 부문과 영역의 사회운동을 미국의 사울 알린스키에 의해 개발되고 오재식에 의해 한국화된 지역사회 조직운동(Community Organization)으로 재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민운동’, ‘주민조직가’라는 담론과 현장, 조직가가 지역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기초과정 23명 및 조직가과정 22명이 수료하였다.
그 이후 대전에서 정규 조직가 과정은 중단되었으나 2010년 경 부터 충북 기초 주민조직가 교육훈련과정을 충북지역의 사회복지전문시민단체인 행동하는 복지연합과 연계하여 안영섭, 김성훈 트레이너가 담당하여 6기수를 배출하였다. 지역사회 복지관과 지역자활센터의 사회복지사, 충북지역의 다양한 NGO 활동가들이 교육훈련과정을 이수하였다.
정규과정 외에 대전에서는 김성훈 트레이너를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조직별로 활동가, 리더 양성과정에 주민운동의 철학과 방법론을 적용하여 다수의 조직가 및 지도자를 배출하였다. 대표적으로 2007년 마을어린이 도서관 설립을 지원하기 위하여 반딧불터 사업단 소속 활동가 50명을 5개월간 교육 훈련하여 17개 마을어린이도서관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였다.
이는 대전시민사회연구소와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과 주최하고 한국주민운동교육원과 대전의제21추진협의회가 주관하였으며 민들레의료생협이 후원하였다. 이 사업은 (사)풀뿌리사람들의 창립에 기여하였으며 대전 마을공동체운동, 사회적 경제운동의 전개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 이후 현장조직의 특성을 반영한 조직가 및 지도자 과정이 진행되었다. 민들레의료사협의 건강조직가 교육훈련 4기수를 배출하였으며 이어 건강리더양성과정이 진행되어 200명 이상의 건강리더가 배출되었다. 서구지역자활센터 실무자 교육훈련과정 3기, 사회적 경제 대덕플랜 마을리더 과정, 관저 마을리더 교육훈련과정, 유성구 보건소 건강조직가 과정, 유성구 마을공동체네트워크 마을리더 과정, 품앗이생협 리더과정, 지역화폐협동조합 실무자 교육훈련과정, 모두의마을미디어협동조합 실무자 교육훈련 과정 등 현장 조직의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훈련과정이 진행되었다.
현재 대전에는 안영섭, 김성훈 외에, 서울에서 활동하던 박봉희, 신만수 트레이너가 합류하여 4명의 주민운동 트레이너가 있다. 박봉희 트레이너는 YMCA 활동을 거쳐 인천 부평구 평화의료생협을 현장으로 활동하다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에서 활동하였다. 연합회에서 김성훈 트레이너와 함께 건강조직가 교육훈련과정을 개설 담당하다가 대전으로 이전하여 마음의숲사회적협동조합의 센터 장으로 활동하면서 대전의 주민운동현장조직과 결합하고 있다. 신만수 트레이너는 서울의 금호‧행당‧하왕십리 지역에서 현장의 조직가로 활동하였으며 지역자활센터, 사회적경제센터에서 활동하다 대덕구도시재생부센터장으로 역할하면서 대전에 결합하였다.
2022년 그간 중단되었던 조직가 과정을 재개하여 2022년 5명의 조직가를 배출하였다. 이를 계기로 서울과 부산에 이어 세 번째로 대전 주민운동교육원을 설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