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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 개시라는 거지…」

「네」

시리카는 키리토의 팔에서 떨어져 표정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레벨과 그 장비라면, 이곳의 몬스터는 결코 쓰러뜨릴 수 없는 적이 아냐. 그래도……」

그렇게 말하며 키리토는 벨트에 묶어놓았던 작은 파우치를 뒤져, 안에서 하늘색의 결정을 꺼내 시리카의 손에 쥐어주었다. 전이결정이었다.

「필드에선 뭐가 일어날지 몰라. 알았지? 만약 예상외의 사태가 일어나, 내가 이탈하라고 하면, 반드시 그 결정으로 아무 마을이든 좋으니 도망쳐. 난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 하지만……」

「약속해줘. 난…… 한 번 파티를 전멸시켰어.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은 반복하고 싶지 않아」

키리토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 시리카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키리토는 재차 다짐을 받아놓고는, 안심한 듯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럼, 가자!」

「네!」

허리에 장비한 단검의 감촉을 확인하며, 시리카는 마음속으로 결심하고 있었다. 적어도 어제처럼혼란에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고.

◆ ◆

-하지만.

「꺄아, 꺄아아아아아!? 뭐야 이거-!? 기, 기분 나빠!!」

47층 필드를 남쪽으로 향해 걸어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첫 몬스터와 조우했으나,

「시, 싫어어어!! 오지 마-!」

키가 큰 덤불을 헤치며 나타난 그것은 시리카가 상상해본 적도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걷는 꽃》이다. 짙은 녹색 줄기는 인간의 팔만큼이나 굵었으며, 뿌리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 단단히 지면을 밟고 있었다. 줄기인지 몸통인지의 끝에는 해바라기와 비슷한 노랗고 커다란 꽃이 얹혀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엔 이빨이 돋아난 입이 쩍 벌어져 내부의 독살스러운 붉은색을 언뜻 드러냈다.

줄기 한가운데쯤에는 마치 동물의 근육을 연상케 하는 두 개의 덩굴이 불쑥 뻗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팔과 입이 공격부위인 모양이었다. 커다란 입으로 싱글거리는 웃음을 흘리는 식인꽃은 팔인지 촉수인지를 휘두르며 시리카에게 달려들었다. 추악한 캐리커쳐같은 그 몬스터의 모습은 하필이면 꽃을 좋아하는 시리카에게 엄청난 생리적 혐오감을 안겨주었다.

「싫다니까-!」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하고 단검을 붕붕 휘둘러대고 있으려니, 곁에 서 있던 키리토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괘, 괜찮다니까. 그 녀석은 굉장히 약하니까. 꽃 바로 아래의, 조금 하얗게 된 곳을 노리면 간단하게…」

「그, 그래도, 기분 나쁘다고요오오-」

「그걸로 기분이 나빠진다면, 이 앞에 나아가는건 큰일이야-. 꽃이 몇 개나 달린 녀석이나, 식충식물같이 생긴 거나, 끈적끈적한 촉수가 산만큼 달린 녀석까지…」

「끼아-!!」

키리토의 말에 소름이 끼쳐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휘둘러댄 소드스킬은, 물론 멋지게 허공을 갈랐다. 그 후 찾아온 경직시간에 불쑥 미끄러져 들어온 두 개의 줄기가 시리카의 두 다리를 휘릭휘릭 감더니, 뜻밖의 괴력으로 훌쩍 들어올렸다.

「와앗!?」

빙글, 시야가 반전하며 머리를 밑으로 한 채 거꾸로 매달린 시리카의 스커트가 가상의 중력을 충실히 따르며 주르륵 내려갔다.

「와와와!?」

허겁지겁 왼손으로 스커트 끝자락을 꽉 누르며 오른손으로 덩굴을 베려 했으나, 자세가 좋지 못해 잘 되지 않았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시리카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키, 키리토 오빠, 도와주세요! 보지만 말고 도와줘요!!」

「그, 그건 조금 무리야」

왼손으로 눈가를 가린 키리토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사이에도, 거대한 꽃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거꾸로 매달린 시리카를 좌우로 대롱대롱 흔들어댔다.

「이, 이게……적당히, 해!」

시리카는 어쩔 수 없이 스커트에서 왼손을 놓고는 덩굴의 안쪽을 붙잡고 단검으로 절단했다. 몸이 확 떨어지면서 꽃의 목덜미가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다시 소드스킬을 사용했다. 이번엔 멋지게 명중해 거대한 꽃의 머리가 툭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전체가 폭발하여 사라졌다. 폴리곤 파편의 비를 맞으며 가볍게 착지한 시리카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키리토에게 물었다.

「……봤어요?」

흑의의 검사는, 왼손 손가락 틈으로 시리카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안 봤어」

◆ ◆

그 후, 5회 정도 전투를 치른 후에야 겨우 몬스터의 모습에 익숙해져 진행속도가 빨라졌다. 한번은 말미잘처럼 생긴 몬스터의 점액질 촉수에 온몸을 붙들리는 바람에 기절할 뻔했지만.

키리토는 그다지 전투에 가담하지 않은 채, 시리카가 위험할 때 검으로 공격을 튕겨내는 어시스트 역할만 했다. 파티플레이에서는 몬스터에게 준 데미지의 양에 비례해서 경험치가 분배된다. 고레벨 몬스터를 차례차례 쓰러뜨리니 평소의 몇 배는 되는 스피드로 경험치가 쌓이고, 금세 레벨이 하나 올랐다.

붉은 벽돌의 길을 한없이 걸어가니 냇물에 걸린 조그마한 다리가 나타났으며, 그 너머에 조금 높지막한 언덕이 보였다. 길은 그 언덕을 감으며 정상까지 이어진 것 같았다.

「저게 《추억의 언덕》이야」

「보아하니, 갈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