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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죽인 것은 이놈이다. 창조주인 카야바조차도 이젠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스나의 몸을 찢어발기고 의식을 없앤 것은 나를 에워싼 이 기척-시스템 그 자체의 의지다. 플레이어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며 무자비한 낫을 휘두르는 디지털의 신-.

우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SAO 시스템이라는 절대 불가침의 실에 조종당하는 우스꽝스러운 꼭두각시 인형의 무리인가? 시스템이 허락하면 살아남고 죽으라면 소멸하는, 그것뿐인 존재인가?

나의 분노를 조롱하듯 HP바가 덧없이 소멸되었다. 시야에 작은 보라색 메세지가 표시되었다. 【You are dead】. 죽어라, 라는 신의 선언.

온몸에 격렬한 냉기가 스며들었다. 몸의 감각이 엷어져간다. 나의 존재를 풀어헤치고, 갈라놓고, 집어삼키기 위해 명령 코드의 무수한 무리가 날뛰는 것을 느꼈다. 냉기는 등줄기로부터 목을 타고 올라 머릿속까지 기어들었다. 피부 감각, 소리, 빛, 모든 것이 멀어져간다. 몸이 분해되어간다- 폴리곤 파편이 되어- 흩어져-

그렇게 놔둘 줄 아냐.

나는 눈을 부릅떴다. 보인다. 아직도 보인다. 나의 가슴에 검을 꽂고 있는 카야바의 얼굴. 그 경악의 표정이 보인다.

지각의 가속이 재개된 것인지, 원래는 순식간에 이루워져야 할 아바타의 죽음 처리 과정마저도 극히 느리게 느껴졌다. 몸의 윤곽은 모두 어렴풋하게 흐려지고, 여기저기에서 터져나가듯 빛의 입자가 떨어지며 소멸해가긴 하지만, 아직 나는 존재한다. 아직 나는 살아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나는 절규했다. 절규하며 저항했다. 시스템에. 절대신에게.

그렇게나 어리광쟁이에 외로움을 타던 아스나가 마지막 의지를 쥐어짜내 회복이 불가능한 마비를 깨고, 개입할 수 없는 공격에 몸을 날린 것이다. 나를 구하겠다는, 오직 그 이유만으로, 내가 여기서 허무하게 쓰러질 수는 없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설령 죽음을 피할 수는 없더라도- 그 전에- 이것만은-.

왼손을 꽉 쥔다. 가느다란 실을 이어가는 듯한 감각을 빼앗아온다. 그 손에 남아있는 것의 감촉이 되살아난다. 아스나의 세검- 여기에 담긴 그녀의 의지가 지금은 느껴진다. 힘내라고 격려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없이 느리게 나의 왼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마다 윤곽이 흐려지고 오브젝트가 부서져간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영혼을 깎아가면서도 올라가고 있었다.

불손한 반역의 댓가인지, 무시무시한 아픔이 전신을 꿰뚫었지만 이를 악물고 팔을 계속 움직였다. 겨우 수십 센티미터의 거리가 한없이 길었다. 몸이 얼어붙은 듯 차갑다. 이미 감각이 있는 것은 왼팔뿐이었다. 냉기는 그 부분에도 급속도로 스며들어왔다. 얼음조각을 깨부수듯 몸이 무너지며 떨어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침내, 은백색으로 빛나는 세검이 카야바의 가슴 한복판에서 번뜩였다. 카야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얼굴에 경악의 표정은 이미 없었으며- 살짝 벌어진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반은 나의 의지, 나머지 반은 무언가 불가사의한 힘에 이끌려 나의 팔이 마지막 거리를 좁혔다. 소리도 없이 몸을 관통한 세검을 카야바는 눈을 감고 받아들였다. 그의 HP바가 소멸했다.

서로의 몸을 꿰뚫은 자세 그대로 우리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나는 모든 기력을 쥐어짜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걸로-된 거지....?

그녀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으나, 어렴풋한 온기가 잠시 두근, 하고 왼손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나는 거의 깨져나가기 직전인 몸을 붙들어놓았던 힘을 풀었다.

어둠으로 가라앉아가는 의식 속에서 내 몸이 수천 개의 파편이 되어 흩어져가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카야바도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귀에 익은 오브젝트 파쇄음이 두 개, 겹쳐지듯 울렸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것이 멀어져간다. 급속도로 이탈해간다. 어렴풋하게 내 이름을 부른 것은 에길과 클라인의 목소리였을까. 여기에 겹쳐지듯 무기질적인 시스템 보이스가-.

게임은 클리어되었습니다- 게임은 클리어되었습니다- 게임은.....

【24】

하늘이 불타는 듯한 저녁 노을이었다.

정신이 드니, 나는 이상한 장소에 있었다.

발밑은 두터운 수정의 판이다. 투명한 바닥 밑에는 붉게 물든 구름의 무리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까지고 끝없이 이어진 저녁 하늘, 선명한 주황색에서 피같은 붉은색, 짙은 보랏빛에 이르기까지 그라데이션을 보이며 무한한 하늘이 펼쳐져 있다. 어렴풋하게 바람 소리가 들렸다.

금적색으로 빛나는 구름 무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떠있는 조그마한 수정 원반, 그 끄트머리에 내가 서 있었다.

.....여기는 어디일까. 확실히 내 몸은 무수한 파편이 되어 박살 후 소멸되었을 텐데. 아직 SAO 안에 있는 것일까.....아니면 정말로 사후의 세계에 오고 만 것일까?

내 몸으로 시선을 내려본다. 레더코트와 긴 장갑 등 장비는 죽었을 때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어렴풋이 투명했다. 장비만이 아니다. 노출된 몸조차도 색유리처럼 반투명한 소재로 바뀌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반짝였다.

오른손을 뻗어 손가락을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귀에 익은 효과음과 함께 윈도우가 출현했다. 그럼 이곳은 아직 SAO 내부라는 것인가.

그러나 그 윈도우에는 장비 피규어나 메뉴 일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무늬도 없는 화면에 한 마디, 작은 글자로 【최종 페이즈 실행 중. 현재 54% 완료】라고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숫자가 55로 올라갔다. 몸이 붕괴되는 것과 동시에 뇌사-의식 소멸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어떻게 된 걸까.

“...키리토”

천상의 아름다운 음악소리 같은 그 목소리. 충격이 온몸을 휩쓸었다.

지금 그 목소리가 환상이 아니길- 필사적으로 빌며 천천히 돌아보았다.

불타는 듯한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녀가 서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바람이 살짝 흔들어주었다. 부드럽게 미소짓는 그 얼굴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데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눈을 떼면 사라질 것만 같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노을빛으로 물들어 빛나는 그 모습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눈물이 배어나올 것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참으며 어떻게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나도, 죽어버렸어”

“....바보”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가만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스나”

눈물방울을 반짝이며 내 가슴에 뛰어든 아스나를 꼭 끌어안았다. 이젠 놓지 않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번 다시 이 팔은 풀지 않겠어.

길고 긴 키스 후, 드디어 얼굴을 떼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마지막 싸움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마음과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미 말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시선을 무한한 석양에 향하고 입을 열었다.

“여긴....어디?”

아스나는 무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