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묵상(QT)

8월 13일 2020년

이사야 25장 1~12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좋은 아침입니다. 학창시절 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을 치려하면 학생들에게 분명한 두 가지 현상이 나타 납니다. 준비를 잘 한 학생에게는 기쁨의 시간이 되고 준비를 게을리 하거나 준비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두려움과 답답함의 시간이 되듯이 사람의 마지막 시간이간이란 그런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모습이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고 주의 뜻을 행하고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다가 주 앞에 간 사람은 죽음이야 말로 영광스러운 시간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삶을 산 사람은 마지막 시간이야말로 끔찍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임종 예배를 경험하면서 그런 걸 목격하게 되는데, 끝까지 고통스러운 얼굴로 비명을 질러가며 죽지 않으려고 사투를 버리다 임종 하는가 하면 세상에서 더 없이 평온한 얼굴로 빛나는 얼굴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신 최대의 축복입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겠다. 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에게 최대의 축복은 바로 영원한 삶, 영생입니다. 영생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 합니다. (최재형 목사)

이사야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8월 12일 2020년

할렐루야! 좋은 아침 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24:14-23)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날에 구원받은 소수의 “남은 자들”과 심판 받는 대다수에 “땅의 주민”입니다. 마지막 심판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땅의 주민들은 (곧 땅에 소망을 둔 이들) 땅이 깨지고 흔들리고 갈라질 때 땅과 함께 몰락하는 자들입니다. 땅이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니, 땅을 의지하며 살았던 이들이 모두 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소수의 남은 자들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그들은 하늘을 의지하고 살았던 자들입니다. 땅이 흔들리는 심판의 날에도 결코 넘어지지 않는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14-16절에서 남은 자들이 소리 높여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들의 찬양의 내용은 온 땅을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의로움심 입니다. 심판의 날에 슬피 울며 통곡하는 자도 있지만, 구원의 기쁨을 즐거이 노래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힘 재림하십니다. 그때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설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이 날은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보서 2:12 에서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할 것 입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계산하시겠다고, 오직 착하고 충성된 종들만 잔치에 참석합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은 어두운 곳에 쫓겨나서 슬피울며 이를 갈았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재림에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재림신앙이 없다면, 누구나 1달란트 받은 종처럼 땅에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 갈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이땅에서 살았다해도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향해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주어진 삶에서 땅에 것 바라보지 마시고 하늘에 소망과 위로 받으시는 귀한 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김기찬 목사)

7월 24일 202년

이사야 10:5-19 오만과 착각

착각은 자유란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 혼자 생각하고 기뻐 하니 혼자 생각하고 기뻐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오만은 다르다. 뜻을 보면 거만할 오와 거만할 만자를 사용하여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하다는 뜻이 오만이다. 착각이 힘이 들어가고 의지가 들어가면 오만이 될 수 있다. 앗수르가 그렇다. 저들이 크게 일어난 것은 자신들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시고 힘과 능력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앗수르는 깨닫지 못하고 선민인 이스라엘을 괴롭힌다. 결국 하나님은 앗수르의 영광을 심판하시기로 결정 하시고 앗수르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오늘 앗수르 영광을 보면서 내 삶을 뒤돌아본다. 영광과 은혜, 승리와 함성, 기쁨과 행복 이 모든 것은 내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오늘도 주 안에서 감사 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사10: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7월 21일 2020년

이사야9:1~7 하나님의 열심

부모로써 자녀를 키울 때 기쁨이 있는 것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부모 말에 순종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즐거움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부모로써 자식을 키우는 기쁨이 있다.

우리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셨다.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모습을 보셨을 때 이는 하나님의 큰 기쁨이요. 행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대강대강 하시지 않으셨다. 최선을 다해 우리를 구원 하셨다. 그 증거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외면 하셨다.

그렇게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 주어졌다. 오늘 나도 주를 위해 열심을 내며 나에게 주어진 삶 또한 열심을 내며 살도록 다짐해 본다.

이사야9:7 “.......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7월 22일 2020년

이사야3:13-4:6 장막과 그늘 되신 주

찬송가에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이란 찬송이 있다. 후렴부분에 보면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영원히 산다고 한다. 천국 집도 소중하고 귀하지만 내가 이 땅에 몸 담고 있는 집도 참 귀하고 소중하다. 집은 내 삶의 울타리가 되어준 동시에 하루 고된 일과를 마치고 편안하게 쉼을 주는 장소이기도 하고 온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정답게 사랑을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집은 소중하고 귀하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4장 6절에 여호와의 장막은 낮에는 더위를 피하고 폭풍과 비를 피하게 하신다 말씀한다.

그렇다. 나의 생업에 쉼과 울타리는 집이 있듯이 내 인생의 울타리와 쉼은 여호와의 장막이다. 하나님 품이다. 그곳으로 가면 낮에 더위를 폭풍과 비를 피하기도 하며 나를 숨겨 주시기도 한다. 하나님! 오늘도 주의 장막 안에 거하길 소망 합니다. 주의 장막이 나의 쉼이 되고 안식처가 되어 주소서!

사4:6 “또 장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폭풍과 비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7월 18일 2020년

이사야 7장 1~9 믿음에 굳게 서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있다. 당장은 막막해 보이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 해결된다고 성경에서 분명히 약속하며 말씀을 주시는데 현실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비현실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 때 어느 편을 택할 것인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보기에 이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택할 것인가? 고민이 된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은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현실적 판단을 의지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오늘 유다 왕 아하스가 그렇다. 막강한 아람 나라가 또 다시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아하스는 풀잎처럼 흔들리며 떨고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저들은 부지갱이에서 연기 그루터기와 같다시며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 하셨다. 그러나 아하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기보단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판단을 믿었다. 그 결과 남왕국 유다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말씀을 믿는 다는 것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기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현실을 택하기 쉽다. 그래서 주님은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신다 하셨다.

부끄럽지만 나는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믿음 안에서 몸부림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소망 한다. 주여 부족한 자의 손을 붙잡아 주소서!

이사야7:9“....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6월 23일 2020년

고린도전서14:20-40 질서의 하나님

사람들의 삶 가운데 질서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질서는 중요하다. 만일 질서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나라가 질서가 없다면 그 나라는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다. 정부가 균형과 분배를 해야 하는데 그 체제가 무너져 버리면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다. 가정은 어떠한가? 가정에 아버지에 대한 권위 어머니에 대한 권위가 무너지면 그 가정은 이미 가정의 질서가 무너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이 세상에 질서를 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chaos 혼돈 그 자체일 것이다. 아무리 독재국가라도 하나님은 그 나라에 질서를 주셨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질서를 주셨다. 그렇다면 그 교회의 질서는 어떻게 세워질까? 그에 대한 해답은 26절에서 말씀 하고 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그렇다. 하나님은 교회인 나에게 질서를 주신 이유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 하신다.

주님! 부족한 자를 주의 은혜로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고전14:26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6월 16일 2020년

고린도전서10:14-11:1 주의 영광을 위해

사람이 살면서 자기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성적으로 좋은 학교를 졸업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많은 보수를 받고 일하기를 원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자기 영광을 위함이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성도는 자기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말씀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하나님 자신의 본체적 속성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계시 현상의 모습이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공개되고 당신이 핏 값으로 주고 산 교회이다. 그래서 에베소서5:27절에 교회는 영광스러운 교회라 말씀 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핏 값으로 사셨다. 그리고 나를 영광스러운 교회라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인 나는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길 원한다. 주님! 나에게 주의 빛을 비춰 주시사 주의 영광이 임하게 하옵소서~!

고전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