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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불쾌감이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공포'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가깝지 안을까.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올린 자신의 선단.

각각의 배의 성능이나 공격력도 어지간한 군함에 뒤지지 않았다. 호각 이상의 승부를 지을 수 있다고 단언할 만큼 자신있었다.

길제로 길리어스의 구역인 세이람 유역에는 수많은 국가가 점재하고 있지만 길리어스 해적단과 정면으로 싸우려는 우주경찰이나 우주군은 없었다.

변경에 위치하는 약소국이니 만치 힘이 부족해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길리어스 해적단은 그 정도의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애송이 한 명한테ㅡ.

길리어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팔라스 아테나'는 궤도를 크게 왼쪽으로 틀면서 제7행성으로 보낸 전투함을 노렸다.

"이쪽으로 안 오는데?"

항해사가 중얼거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팔라스 아테나'의 진로 앞에는 다른 한 척의 우주선이 있었고, 그 앞에 이 '마벨러스'가 있다. 그런데 굳이 멀리 우회해 가면서 먼 곳에 있는 우주선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각 배의 위치를 확인한 길리어스는 신음했다.

그 남자의 배가 '마벨러스'의 왼쪽에서 오고 있었다 치면 '마벨러스'의 정면에 문제의 전투함이 위치했다. 그리고 게이트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특수함이 '마벨러스'의 오른쪽 멀리에 있었다.

이 위치에서 보면 왜 우회했는지 알 수 있다.

저 애송이는 자신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격침시킬 생각인 것이다. 그것도 굳이 '마벨러스'를 제일 뒤로 돌리면서.

"날 깔봐......?"

살기등등하게 중얼거렸지만 아까처럼 기세좋게 말하지는 못했다.

길리어스는 그제야 처음으로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2장

전투지역에서 이탈한 퀸 비는 30분 뒤 '쿠어 킹덤'에 도착했다.

우주선이라기보다 거대한 요새라는 명칭이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쿠어 킹덤'은 다이애나의 지시대로 계속 제7행성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정비원드은 평소처럼 일제히 뛰어나와 퀸 비를 정비하기 싲가했다.

일단 정비를 시작하면 이들은 프로로, 타고 있던 사람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늘만은 조금 달랐다. 재스민에게 뭔가를 묻고 싶은 표정들이었다.

보통 자신의 영역 이외에는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는 브래들리 정비장까지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부하들을 대표해서 재스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아까 소형정을 수용했습니다만......"

"이리 왔어?"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다. 탈출정은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보통은 '미니욘 연성' 쪽으로 이동할 텐데. 거기라면 확실하게 구조해줄 사람이 있다. 그런데 정반대 방향인 이쪽으로 왔다는 것은 제7행성 뒤에 '쿠어 킹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조난신호를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도 해적선에서 도망쳐 왔다는데요."

"타고 있던 건 어떤 사람이지?"

"그게, 되게 화려한 청년이더군요. 머리가 허리까지 오게 길고, 새하얗고 깔끔한 얼굴에 말입니다. 꼼짝달싹 못할 정도로 부상을 입고 있길래 바로 의무실로 보냈습니다만 침대에 실려서 이동하는 동안에도 여자들이 비명을 질러대더군요."

재스민은 살짝 놀라며 눈을 치떴다.

얘기를 들은 이상 만나보지 않을 수는 없다.

비행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의무실에 들어서자 의무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환자를 꾸짖고 있었다.

"총에 맞을 것쯤 알고 있었다고ㅡ? 그럼 왜 도망치지 않은 거야? 이렇게 바보 같은 처치를 해두는 것보다 그쪽이 훨씬 나았을 텐데. 신경억제제가 풀리면 아파서 미칠걸."

"그럼 기절이나 하죠. 여어ㅡ, 미즈 쿠어,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꼴불견인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서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만 당신 남편 분은 봐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더군요."

클라이스트는 천장을 향해 드러누운 채 재스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뻔뻔스럽게 지껄였다.

의무실에는 의무장 외에도 간호사가 들어와서 막 본격적인 치료 준비를 마쳤다. 쉽게 말하자면 상처를 살피기 위해 옷을 벗겨냈다.

덕분에 클라이스트는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검은색 팬티 한 장만 걸친 민망하기짝이 없는 차림이다.

젊은 처녀가 보면 얼굴을 붉힐 만한 광경이었지만 재스민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상처 투성이의 몸을 휙 훑어보고서 간호사를 나가게 한 뒤 의무장에게 물었다.

"일곱 군데, 이걸로 다야?"

"몸의 반대편에 구멍이 뚫렸느냐는 의미라면 더 있어. 손발의 총상은 완전히 깔끔하게 관통했으니까. 뒤쪽에서 총을 맞았느냐는 의미라면 없어. 그 밖의 질문은?"

"살 수 있겠어?"

"저렇게까지 농담으르 지껄여대고 죽어버리는 놈은 거의 없어. 바로 조직재생 장치에 던져 넣었을 경우의 얘기지만."

의무장은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