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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워요, 재스민. 이제 돌아가도 돼요."

"이런, 이런. 너무 차갑잖아."

지금까지 퀸 비 역시 상당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런데 저 남자가 배에 타자마자 갑자기 볼일은 다 봤으니까 물러나라니, 해도 너무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다이애나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진지했따.

"이건 부탁이에요, 재스민. 위험하니까 떨어져 있어줘요."

"왜?"

"켈리가 정말로 화났어요. 여기 있다가는 최악의 경우 당신까지 말려들게 될지도 몰라요."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재스민은 다이애나의 말을 따랐다.

"알았어. 특등석에 자리 잡고 구경이나 하지."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 이것은 저 남자의 싸움이다.

그런데도 막 탈출해온 남자의 상태가 신경 쓰여, 재스민은 다이애나에게 물었다.

"그 남자하고 얘기할 수 없을까?"

재스민은 아직 켈리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무리에요. 저 바보들을 다 처리할 때까지는."

"잠깐. 바보'들'이라는 건 길리어스 한 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얘기?"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정말로 화났다고. 켈리는 적 전부를 괴멸시킬 생각이에요. 길리어스 해적단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안 봐줄걸요."

재스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길리어스라는 인간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재스민은 아까 클라이스트가 품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감상을 중얼거렸다.

"그 촌뜨기 놈, 대체 저 남자를 얼마나 우습게 봤던 거야......?"

'팔라스 아테나'는 세 번째의 적함을 향해 급속히 접근하고 있었다.

탐지기에 비치는 이 배의 궤적을 보고 '마벨러스'의 항해사가 낮게 신음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배야, 이건......!"

함교에 있던 전원이 동감이었다.

계속 2.5VL로 날아다니는 것만 해도 믿기 어려운데 때때로 순간적으로 3VL 이상까지 속도를 내고 있었다.

길리어스 해적단도 외양형 우주선으로서는 상당히 빠른 1.6VL의 속도를 자랑하지만, 이래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 도우러 가고 싶어도 시간에 댈 수 없었다.

표적이 된 세 번째 전함은 '팔라스 아테나'를 향해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공격을 퍼부었지만 '팔라스 아테나'는 공격을 하는 족족 전부 피해냈다.

겉보기에는 전혀 변함없어 보여도 아까까지의 '팔라스 아테나'와는 명백하게 다른 움직임이었다. 조종자가 켈리인가 다이애나인가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이다.

미친 듯이 포격과 미사일을 퍼부었지만 스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니, '팔라스 아테나'는 마치 안내라도 하는 듯이 자신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을 끌고 전함을 향해 접근했다.

세 척째의 전함은 자기가 쏜 미사일에 의해 순식간에 우주의 먼지가 되었다.

남은 것은 '마벨러스'까지 전부 다섯 척.

그 다섯 척 모두에서 일제히 비명이 울렸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이거?!"

"탐지기가 고장난 거 아냐?!"

해적들이 절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까는 2대 1이었다. 바로 지금 격침당한 전투함은 '팔라스 아테나'보다 훨씬 큰 10만 톤급 우주선이었다.

아무리 '팔라스 아테나'의 속력이 빨라도 수적인 열세는 극복할 수 없으며, 크기가 작은 우주선이 더 큰 우주선을 쓰러뜨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했다면 어떻게 해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정면 승부로 격침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이들이기에 나오는 비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미 세 척이 파괴되었다.

그것도 너무나 간단하게, 너무나 손쉽게.

'마벨러스' 이외의 네 척은 크나큰 혼란에 빠져 당황하며 '마벨러스'에 연락을 취했다.

이런 이상사태에서 부하가 두목에게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작 '마벨러스'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선내에서는 살아남은 부하들이 전부 나서서 동료들의 시체를 처리하고 있었다. 사령부인 함교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길리어스도 지령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일종의 방심 상태로도 보였다. 항해사도, 통신사도, 조타수도, 다른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 한 명이 굳은 혀를 간신히 움직이며 갈라지는 목소리를 짜냈다.

"연방경찰 새끼들이나 군함이 와도ㅡ, 이 정도로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을 텐데."

전원의 심경을 대변하는 솔직한 감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길리어스의 안색은 원래 피부색보다 훨씬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완전히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얼굴이었다.

켈리가 파충류 급이라고 평했던 뇌도 이제야 간신히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선단의 반을 순식간에 잃었다는 현실이 불쾌감과 함께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길리어스 본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