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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생명이란 마음을 실어나르고 전하는 것이라고. 저는 오랫동안 겁을 먹었어요. 남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도, 남의 마음을 아는 것도 무서웠어요.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유우키가 가르쳐줬죠. 스스로 나서서 전하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는다고. 저는 유우키에게 받은 강인함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요. 유우키의 마음을 제 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한 멀리까지 실어나르고 싶어요. 그리고……，언젠가 다시 한 번 유우키와 만났을 때, 많은 마음으로 갚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더듬거리면서도 아스나는 간신히 말을 마쳤다. 하고 싶은 말은 절반도 말로 이루지 못한 것 같았지만，시은은 시선을 떨어 뜨린 채 천천히,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왼손을 아스나의 왼손에 겹쳤다.

고개를 든 시은의 아름다운 칠흑색 눈동자는 눈물에 젖어 있었으나, 입가에는 또렷한 미소가 떠올랐다.

"고마워요……, 아스나 씨.”

속삭이던 시은은 갑자기 두 팔을 뻗어선 아스나의 등에 감았 다. 아스나도 그 가녀린 몸을 단단히 안았다. 귓가에서 말이 이어졌다.

"우린 아스나 씨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어요. 유우키의 언니 인 란이 죽은 후, 유우키는 언니를 대신해 계속 우리를 격려하고 지탱해주려고 최선을 다했답니다. 우리도 그 모습에 의지한 나머지……，괴로울 때, 좌절할 것 같을 때，모두가 유우키에게 매달려 힘을 나눠받았지요. 하지만 새삼스레 이상한 말 일지도 모르지만……，저는 유우키가 걱정스러웠어요. 그녀의 마음은, 누가 지탱해주면 좋을까 하고요. 유우키는 언제나 생 글생글 웃고, 괴로운 표정 한 번 보이지 않았지만……, 그 조그만 등에 아주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언젠가 그것이 유우키 의 마음을 꺾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고……. ㅡㅡ그럴 때 아스나 씨가 나타난 거예요. 아스나 씨와 함께 있는 동안의 유우키는 아주 즐겁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운 작은 새와도 같았지요. 그대로 높이높이 어디까지고 날아올라……，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가버리고 말았지 만요……."

시은은 한동안 말을 끊었다. 아스나의 마음속 스크린에도 조그만 새로 모습을 바꾸어 아득한 이세계의 하늘을 춤추는 유우키의 모습이 한순간 비쳤다.

몸을 떼고 시은은 멋쩍은 듯이 살짝 웃었다. 손끝으로 눈물 방울을 닦아냈다. 한 차례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ㅡㅡ사실은 저만이 아니랍니다. 쥰도……，힘든 암을 앓고 있었는데, 최근 쓰기 시작한 약이 아주 효과가 좋아서 종양이 작아졌다고 해요. 마치 유우키가 아직 이쪽으로 오긴 이르다고 하는 것 같다고 둘이서 이야기했답니다. 슬리핑 나이츠가 다시 한 번 모이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럼요. 다음에야 말로 저도 정식 맴버가 될 예정이니까요.”

아스나와 시은은 얼굴을 마주 보고 웃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핑크색으로 흐려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안은 후 등의 날개를 펄럭이며 멀리 날아가는 유우키의 모습을 떠올리고, 아스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대로 몇 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다가오는 새로운 발소리 두 개가 조용한 침묵을 깨뜨렸다. 얼굴을 앞으로 돌리니 아스나와 같은 색의 교복을 입은 소년ㅡㅡ키리가야 카즈토와, 검은 예복 차림의 쿠라하시 의사가 다가오는 참이었다.

아스나와 시은은 동시에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똑같이 고개를 숙이면서 카즈토가 아스나를 보고 말했다.

“여기 있었구나. 방해한 거야?"

“아니, 괜찮아. 하지만……，어? 키리토랑 쿠라하시 선생님은 아는 사이였어?"

“아……，최근 들어서. 그 통신 프로브 때문에 메일을 주고받았거든.”

"그랬답니다.”

쿠라하시 의사가 말을 받았다.

“그 카메라에는 실로 흥미가 끌려서 말입니다. 의료용 풀 다이브 기술에 활용할 수 없을까 해서 이것저것 상담을 부탁했지요.’’

"그랬군요. ……저기, 그러고보니……."

문득 아스나는 어떤 사실을 떠올리고 의사에게 물었다.

"메디큐보이드 테스트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누군가 다른 분이 모니터링을 이어서 하게 되나요……?"

그 말을 듣자, 의사는 온화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테스트는 이제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는 실제 제품화를 위해 메이커와 협의할 일만 남았지요. 이제 곧 안 시은 씨나 다른 분들도 메디큐보이드를 쓸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말 뒤쪽은 시은에게 향한 것이었지만, 거기까지 말한 후 쿠라하시 의사는 한순간 눈을 크게 뜨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리는 것을 잊어버렸군요. ㅡㅡ안 시은 씨, 퇴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유우키 군도……，얼마나 기뻐할지……."

악수를 청하는 쿠라하시의 손을 꽉 쥐며 시은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이미 게임 내에서 친해진 카즈토와도 악수를나누었다.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메디큐보이드를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그래도 유우키가 남긴 데이터가 병과 싸우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정말 기뻐요.”

시은이 말하자 의사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ㅡㅡ그 기계를 테스트한 첫 사람으로서, ㅡㅡ유우키 군의 이름은 언제까지고 남을 겁니다. 외부에서 초기설계를 제공해준 분과 함께……, 무언가 굉장한 상을 줘도 될 정도예요.”

"아마 그런 걸 받아도 유우키는 기뻐하지 않을 거예요. 먹을 수도 없잖아.’ 라고 할 것 같은데요."

시은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화목한 웃음소리가 잦아든 후, 아스나는 문득 쿠라하시 의사의 말 중 일부가 귀에 남은 것을 깨닫고 그것을 되풀이해보았다.

"저……，선생님. 아까 외부에서 초기설계를 제공해준 분……，이라고 하셨죠? 설계는 의료기기 메이커에서 한 게 아 니었나요?"

"아……，그게 말이죠.”

의사는 기억 밑바닥을 뒤지듯이 안경 안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물론 시험기를 제작한 건 메이커지만, 기계의 심장부가 되 는 초고밀도 신호소자의 기초 설계는 외부에서 무상으로 제공 해준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분도 여성이고……，외국 대학의 연구자였을걸요. 일본인이지만……，음, 성함 이……."

이어서 쿠라하시 의사가 입에 담은 성명은 아스나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시은도 마찬가지였으나, 문득 카즈토의 얼굴을 보고, 거기 떠오른 표정에 아스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카즈토는 마치 있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처럼 눈의 초점 을 잃고 있었다. 핏기가 가신 입술이 두세 차례 가늘게 떨렸다.

"왜……왜 그래, 키리토?!”

황급히 아스나가 말을 걸었지만, 카즈토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옥고 입술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그 사람을 알아.”

"뭐……?"

"만난 적도 있어……. 그 사람은…… “

카즈토는 문득 아스나의 눈을 보았다. 까만 눈은 시공간의 벽을 꿰뚫고 어딘가 이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다이브 중인……，히스클리프의 몸을 돌봐주던 사람이야. 그와 같은 대학 연구실에서 함께 풀 다이브 기술을 연구했지……. 다시 말해, 실제로 메디큐보이드의 기초 설계를 제공한 사람은……."

"……."

아스나도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ㅡㅡ메디큐보이드 또한《더 시드 넥서스》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뿌린 씨앗에서 싹튼 묘목이었다는 뜻인가.

시은도 쿠라하시 의사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지만 무어라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눈앞을 지나가는 벚꽃잎을 시선으로 좇을 뿐이었다.

문득 아스나는 큰 흐름을 느꼈다.

이<현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세계가 단순한 하나의 상에 불과하며.

그러한 세계가 무수한 꽃잎처럼 모이고 모여 형성된 상위구조가 존재하고.

그리고 지금, 모든 세계를 감싸고 준동하며 흘러가는 거대한 힘이 천천히 그 형태를 드러내려 한다ㅡㅡ.

아스나는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한층 강하게 몰아친 바람이 주위에 떠도는 꽃잎을 모조리 먼 허공으로 실어 날아갔다.

Fin

도대체 무엇이야, 이 여자는.

그렇다면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