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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하워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에게 꽉 쥐어 사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자리를 비우면서 '저 풋내기에게는 눈치라는 게 없나보군' 하고 비서에게 중얼거렸을 정도였다.

켈리는 무슨 소리를 들어도 태연했지만, 켈리의 견학에 동행했던 재스민의 비서는 그렇지 않았다.

하워드가 자리를 뜨자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솔직하게 켈리에게 물었다.

"저런 소리까지 들었는데 괜찮습니까?"

진심으로 화내고 있는 듯했다. 눈은 험악하게 치켜 뜨고, 매끄러운 뺨도 살짝 홍조를 띠고 있다.

몸집이 작은 프리스틴이 그렇게 화를 내면 마치 온몸의 털을 세운 새끼고양이처럼 보인다.

켈리는 재미있어하면서 분노한 새끼고양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신장차는 약 40센티미터, 그런 신장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켈리가 보기에 프리스틴은 정말 어린애처럼 보였다.

"일일이 다 화내고 있을 필요도 없잖아? 내가 그 여자 기둥서방인 거야 사실이니까. 당신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 아냐?"

놀리듯 말하자 프리스틴은 더욱 눈썹을 찌푸렸다.

"당신은 그 사람의 남편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면 재스민까지 중역들에게 얕보이게 된다고요. 좀더 확실하게 행동해주시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신랄한 어조였다.

변함 없이 프리스틴은 켈리에 대해서 점수가 짰다. 어떻게 보면 이 남자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도 될 수 있지만, 프리스틴이 고개를 한껏 쳐들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큰 이 남자는 그런 분노까지도 재미있게 여기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당신네 여왕님은 저런 놈들에게 얕보일 정도로 만만한 인간이 아냐."

"당연하죠. 그러니까 더욱 당신도 재스민에게 어울리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엄격한 비서님이구만. 그럼 낙제 당하지 않을 만큼은 일을 좀 해볼까."

켈리와 프리스틴은 놀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이번의 회사 방문은 정식 시찰이며, 업무내용과 경영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 있는 곳은 트웨일 성계의 행성 브레인의 제1위성 아로스.

아로스는 반경 1,500킬로미터 정도의 암석질로 구성된 곳으로, 위성이라기보다도 암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하지만 암석 내부에 산소와 수소가 충분히 포함되어 있고 광물자원도 풍부하기 때문에, 거주시설이나 공장, 연구소 등을 세우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환경이다.

두 사람이 견학하고 있는 공장은 최신설비로 가득 차 있었다.

브레인 본성은 물론 세 개의 위성 모두에 쿠어 재벌의 연구소와 공장이 세워져 있고, 브레인의 주민들 중 약 90퍼센트가 쿠어 계열사에서 일하고 있다.

당연히 트웨일 성계에서 하워드의 권력은 절대적이며, 트웨일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흔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재벌 총수보다도 실제로 자신들을 통괄하고 있는 하워드 쪽이 쿠어를 대표하는 인간이며 최고 권력자였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미스터 쿠어, 일을 한다고 해도, 뭐부터 시작할 생각이시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걸. 내가 경영에 관해서 완벽하게 초보자라는 건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이럴 때에는 어디부터 조사하는 거지?"

"보통은 장부나 관계서류를 조사하는 거지만......"

"그럼 그쪽은 당신에게 맡겨두지. 난 근처에서 좀 어슬렁거리고 있을 테니까."

두 사람이 견학하고 있는 시설은 군용 보안시스템 제조를 담당하고 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부품의 조립부터 검사까지가 행해지는 곳이다.

정밀기기를 다루는 부서이니 만치, 얼핏 보기에도 공장이라기보다는 연구소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직원들도 모두 흰 가운을 입고 있고, 바닥에는 먼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하나의 정밀한 공정을 각각의 담당기술자가 자신의 공간에서 행하고 있었다.

켈리는 기술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있었지만, 프리스틴이 보기에 이 부총수는 여자 기술자들에게만(그것도 젊고 예쁜 여자들만 골라서) 접근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하는 '일한다'는 소리는 '여자에게 수작을 건다'는 뜻인 걸까.

귀여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프리스틴은 약간 한숨을 쉬었다.

저 인간이 자신의 남편이라면 힘껏 엉덩이를 걷어차줬을 거라고 이를 갈았지만, 프리스틴은 켈리의 부인인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저 남자는 장부 같은 걸 봐도 하나도 모를 테니 함께 가주라고 부탁한 것은 프리스틴의 고용주인 재스민이었다.

프리스틴에게 있어서 재스민은 단순한 고용주가 아니었다. 지독한 생활을 하고 잇던 자신을 구해내 교육까지 시켜주었다.

그 은혜를 제쳐두고서라도 프리스틴은 재스민을 좋아했다.

자신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척척 해내는 그녀를 동경하고 있었고, 재스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자신이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남편 쪽은 별로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외모는 나쁘지 않지만 뭐든지 적당적당에 경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의지할 수 없는 부총수는 내버려둔 채 프리스틴은 시설의 한쪽에 있는 특별구획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제품을 조립하는 작업장으로 자금 회전과는 무관하지만, 유일하게 브레인 본사의 계수관리담당 인공두뇌와 연결된 단말기가 있다. 물론 일반 사원은 이용할 수 없다.

본사로 들어가도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일이 커진다.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현장을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아로서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당연히 사장인 하워드는 멋대로 기웃거리게 내버려둘 수 없다며 공장까지 따라왔지만, 켈리의 태도에 기가 막혔는지 스스로 자리를 떠버렸다.

그런 의미로는 저 사람의 한심한 태도가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프리스틴은 어떻게든 저 부총수를 호의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단말기 앞에 앉았다.

단순히 장부라고는 불러도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되면 분량은 상당하다. 간단히 열어볼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열람할 수 있는 자격도 엄격하게 제한되어 잇다.

프리스틴은 총수의 대리인으로서 모든 정보의 열람허가를 받았지만, 솔직하게 말해 재스민의 이번 지시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재스민이 최근 석 달 동안 중역들의 발언이나 활동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하워드부터 제일 먼저 공격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지만, 이제 와서 회사에 남아 있는 기록을 조사해도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워드도 다른 중역들도 공식적인 서류에 증거를 남길 만한 인간이 아니다.

프리스틴이 솔직하게 그런 질문을 하자 재스민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대답하며 켈리와 함께 브레인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화면에 막대한 숫자가 나열되면서 계열사의 내부 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프리스틴은 주요 부분을 재빨리 훑어보면서 정보를 복사하기 시작했다.

경리는 물론 제조, 판매, 연구개발, 구매, 홍보, 영업, 인사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작은 흐름이라도 놓치지 않았다. 수익에 관계되는 기록만이 아니라, 내부 감사나 기획 등의 기록도 남김없이 복사했다.

그쯤 되면 복사해야 할 정도의 분량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단순히 복사만 하는 데에도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프리스틴이 하워드의 관할에 있는 모든 정보를 손에 넣고 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부총수는 기가 막히게도 세 명의 여성 기술자들에게 둘러싸여 티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프리스틴은 복사한 자료를 손에 든 채 척척척 켈리를 향해 다가가 날카롭게 말했다.

"미스터 쿠어, 당신은 지금 그 직원들의 작업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업무방해죠."

한껏 소리를 지르는 프리스틴을 보며 켈리는 놀리듯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땡, 미스 애스텔. 시계를 좀 보시지요. 지금은 휴식시간입니다.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45분간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종업원의 의무라는데? 내가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정말 괜찮은 회사잖아?"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여성 기술자들이 웃으면서 가볍게 켈리를 째려봤다.

"너무해요, 미스터 쿠어. 꼭 저희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정말로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니까 휴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요."

상당한 미인이지만 프리스틴이 보기에는 화장도 너무 진하고 치마도 너무 짧았다. 게다가 켈리를 바라보는 그 여자의 시선에는 노골적인 유혹이 담겨 있었다. 실로 눈은 마음의 창. 게다가 말할 때에도 콧소리를 섞어 애교를 부린다.

"그렇게 딱딱한 소리는 그만 해요. 일 끝나면 저하고, 네?"

다른 두 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켈리는 재벌 부총수라는 매력적인 지위에다 외모도 상당히 멋진 편이다. 여자들은 계속해서 유혹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프리스틴은 그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스민이 이 자리에 있어도 똑같은 짓을 할 수 있겠느냐는 싸늘한 비웃음마저 피어났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그런 여자들에게 실실대며 웃어대는 켈리였다.

정보는 전부 입수했으니 더 이상 이곳에 용건은 없다.

프리스틴은 즉시 떠날 생각이었지만 켈리는 좀처럼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예쁜 기술자들에게 상당히 미련이 많은지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의자째로 날려버릴까 진심으로 고민하던 차에,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켈리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상은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