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오프닝
<헌법 제1조 2항>
하재욱(일러스트작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2.3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를 막아낸 건 여의도로, 남태령으로, 한남동과 광화문으로 달려간 광장의 시민들이었다. 특히 여성과 청년들이 든 응원봉 물결은 2025년 다시 만난 세계를 알리는 새로운 상징이었다. 그에 앞서 4.19가, 5.18이, 6.10이 있었다. 또, 그 이전에 제주4.3이 있었다. 내란을 종식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2025년 6월, 6.10 항쟁 38주년에 돌아보는 민주주의 광장史.
섹션1 제주4·3
<항쟁의 시작>
김휘승
1947년 ‘3.1절 28돌 제주 기념대회’에서 벌어진 경찰의 무책임한 발포와 함께 이를 이용한 미군정, 이승만 정권의 합작으로 시작된 제주4·3 참극의 시작, 그 시한폭탄.
<오름>
최해솔(인제대학교)
‘한라산에 타오른 4·3 봉기의 횃불’. 무장대 350여 명이 주축이 된 봉기는 1947년 3.1 기념대회 이후 제주도 기관 단체의 90% 이상이 참여한 총파업을 탄압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아이, 어른을 가리지 않고 수천 명을 검거하고, 경찰의 고문치사 사건까지 발생하며 제주를 빨갱이 섬으로 만드는 등 1년간 제주도민을 탄압한 데 대한 저항의 결과입니다.
<레드 아일랜드(Red Island)>
최민(민중의소리)
1947년 3.1절 발포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을 뿐인데, 미군정은 제주도를 ‘레드 아일랜드(빨갱이 섬)’로 규정하고 군경과 서북청년단을 동원해 제주에서 자행한 만행을 파블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로 오마주 했다.
<잃어버린 마을, 사라진 사람들>
김상민(경향신문)
제주도의 잃어버린 마을은 약 300여 곳. 곤을동, 어우눌, 리생이, 드르구릉 등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의 마을들이 토벌대에 의해 파괴되고, 끝내 복구되지 못해 오랫동안 오순도순 살아왔던 마을 공동체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무명천 할머니의 꿈>
이동수(인물풍자화가)
무명천 할머니(진아영)님은 후유증의 고통속에서도 살아 생전 제주4·3의 해원과 평화로운 제주도를 꿈꾸며 살아가셨다고 한다. 그 아픈 역사와 평화를 그리는 할머니의 마음이 제주도민의 마음이라는 생각에 푸른 하늘로 표현된 제주의 형상에 무명천 할머니의 모습을 담았다.
<김익렬 연대장>
최민(민중의소리)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제주4·3 사건은 당시 인구의 10분의 1가량을 희생시켰다. 당시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김익렬 9연대장은 평화협상을 진행하며 유혈사태를 막고 평화적으로 해결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방해 세력에 의해 평화협정은 깨졌고 강경 진압작전을 거부한 김 연대장은 미군정으로부터 해임됐다. 4·3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헌신한 김익렬 연대장은 4·3 당시의 상황을 유고록으로 남겨 진실을 밝히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노사이드>
하재욱
제주도민을 향해 국가가 벌인 제노사이드. 시간이 지나서 멀찍이 이 사건을 바라 보고 있지만. 아름다운 섬 제주도가 피로 물이 들어가도록 총질을 한 이들의 잔혹함은 기억해야 한다.
<동토(凍土), 동백꽃 피다>
이용호(더경기)
김대중 “정부로서는 과거의 억울한 문제에 대해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노무현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문재인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며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여순 10.19>
서민호(국민일보)
여순(여수순천)의 큰 상처가 조금씩이라도 아물길 바라며…
<무명천 할머니(진아영 할머니)>
유동수(경기일보)
평생 무명천 할머니로 살아가시다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무명천을 벗고 편히 쉬 실수 있겠구나 하는 ...
섹션2 4.19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