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사고 추천 자료는?
서지정보: 정창권. (2017) 기후변화 시뮬레이션이 던지는 시사점. 이달의 신기술 Vol. 50. pp.6-10 출간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1년 전만 해도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경영학박사로서, 대학교수로서, 기업체 임원으로서 경력이 꽤 있는나는 늘 도전적이면서도 무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MIT 경영대에서 1960년대 개발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시스템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라는 복잡계 학문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내 인생이 과거에는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나는 후회 없고 심지어 행복하다.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유명한, 심지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된 기후변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C-ROADS)을 성인은 물론 초·중·고 학생들에게 유엔기후변화협상게임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부상하고 있는유엔기후변화협상게임
유엔기후변화협상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유엔에 모인 각국 대표가 돼 2015년 있었던파리협약처럼 지구온난화를 저지하는 노력을 기울여 2100년 기준으로 산업화 이 전 대비 지구의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협상안을 도출한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의 예상온도는 4.2도다. 내가 이 게임에 빠져든 이유는 컴퓨터 시 뮬레이션의 장점을 살려 먼 미래를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만큼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핵심 인데 여타 미래 예측 프로그램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나다. MIT 경영대의 존 스터먼 교수가 이미 20여 년 전에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링 기법으로 이 프로그램 을 개발했고, 이후 오랜시간 검증을 받았 는데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지구온난화대응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하 려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미래 시나리오를 브리핑하면서 이 프로그램 을 사용한 것이 계기가 돼 더욱 유명해졌다. 이런 프로그램을 어린 학생들이 가지고 놀면서 미래를 논한다니 얼마나 매력적 인가.
작년 7월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세계시스템다이내믹스학회 학술대회에서 그 유명 한기후변화 예측 프로그램을 유엔기후변 화협상게임으로 발전시킨 것을 보고 열심 히 배워 바로 다음 달 서울시교육청에서 교사연수로 이 게임을 국내에 처음 소개 했다. 작년 8월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서는 1500명이 참여했다. 연말까지 2000명 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그만큼 우리나 라에서도 환경교육에 관한 갈증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교사 49만명 중에서 환경교사는 고작 28명이고, 서울에는 경희중 신경준 교사가 유일할 정도로 환경교육은 척박하기 때문이다.
유엔기후변화협상게임의 시사점
작년 8월 처음 한국에 소개한 이래 지금 까지 약 1500명이 이 게임에 참여했고, 입 소문으로 계속 늘고 있다. 덩달아 내가 양성한 강사들도 바빠지고 있다. 이 게임이 급속도로 퍼진 이유는 반전의 연속에 깨달음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참여자들은 각국의 대표로서 각국 입장에 충실하기 위해 기밀문서를 받아든 다. 이 기밀문서의 핵심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하도록 협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자국으로 돌아가다양한 입법을 통해 이산 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정치인, 정부, 언론, 기업, 환경운동가, 언론의 반발을 이겨낼수있는지를 살펴야한다.
예를 들어 파리협약을 공식적으로 탈퇴 하겠다고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생각하면 미국 대표가 후하게 협상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중국은 오로지 시진핑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의사결정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인도는 또 어떤가. 1인당 GDP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다. 이런 나라에 이산화탄소를 줄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경제 개발을 하지 말라는 뜻이 되는데 협상이 가당키나 하겠나. 하이라이트는 개도국이다. 이 게임에서는 국제사회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개도국 대표를 땅바닥에 앉히 고 음료수도 지급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이 제와서 줄이라고 하면 개도국이 순순히 받아들일리 없다.
결국, 협상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게 나오 지 않는다. 한 번 더 협상을 해도 마찬가지 다. 여기에 화석연료 기업을 대변하는 로 비스트가 활약하게 되면 지구의 온도는 오 히려 상승하기도 한다. 참여자들은 좌절감 과 분노,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그나마 협 상 결과 지구의 온도가 비록 유엔의 목표 에는 미달했지만, 1도 이상 많이 낮춘 경우에도 해수면이 상승하는 추세는 변함없다. 여기에서 또다시 충격을 받는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해안가에 살고 있는 전 세계 인 구의 50%뿐만 아니라 저지대 국가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참여자들은 우울해 지기 시작한다. 해도 해도 안 되는 무기력 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구조의 무서움을 알게 된다. 각국 의 입장 차이가 바로 협상 결과를 형편없 게 만드는 구조라는 점. 하지만 이 구조를 바꾸기 쉽지 않다는 점을 깊이 깨닫는다. 그러나 다양한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어렵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어느 중학생의 후기에 이런 성찰이 묻어나온다.
"(중략) 하지만 백 년 동안 2도를 낮추지 못했다고 어차피 안 될 거 그냥 노력하지 말자. 이렇게 생각할 순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 손자 손녀 등 인류는 2100년을 살아 갈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진국과, 개발도상 국 모두 기후변화에 더 열심히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국민을 설득할 수 있 는 범위에서 협상하다 보니 국민이 정말 깨어 있지 않은 이상 엄청나게 대단한 실 행을 주장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세계적인 협상을 잘해서 기후변화에 성공 적으로 대응하려면 사람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달걀로 바위 치기가 불가능의 상징 이라면 달걀이 수백만 개로 많아지면 옆에서 돌을 던지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 현재 까지 전 세계에서 이 게임에 참여한 사람 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3만4000여 명에 이른다. 그 수의 증가속도는 갈수록 빨라 지고 있다. "구조가 행태에 영향을 미치지 만 구조를 바꾸는 것 역시 사람이다. 구조 를 바꾸는 것은 혼자 힘으로 절대 안 되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렵다는 것 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 게임이 던지는 시사점이다.
그리고 나는 늘 한마디 더 한다. 나는 이 게임에서 보여주는 2100년을 못보지만 어린 학생과 우리 자녀는 보게 되기 때문 에 이런 암울한 미래를 넘겨주게 되어 미 안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산호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이런 소리가 쑥 들어갔다. 먼 미래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호가들려주는 가까운 미래
숲에 나무가 있듯이 바다에는 산호가 거 대한 해양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다. 해양 생물의 25%가 산호초의 영향을 받고 있 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름다운 산호가 바닷속에서 하얗게 죽은 고목처럼 돼버리는 산호 백화 현상(Coral Bleaching) 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이 산호가 해양 온도의 상승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위 사진은 백화현상 전후를 비교한 것이 다. 이런 끔찍한 변화가 두 달 안에도 벌어 질 수 있어 이를 관찰하는 생물학자들은 경악한다. 산호가 사라지면 해양 생물의 25%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냥 한 종의 운명으로 치부할 일 이 아니다. 이는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종, 속, 과목을 넘어 유 기생명체 전체가 멸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또 그 소리냐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이런 멸종 이야기 는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이슈에서가장어려운 점은 최근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서서히 온도 가 올라가는 냄비에 있는 개구리처럼 환경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면 생각이 달라질까.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와 산호초를 같이 언급 할 때는 기후변화 여부는 뒤로한 채 늘 기후변화에 따른 변화가 얼마나 나빠지를 따진다. 아주 정말 심각한가 아니면 아주 심각한가 말이다.
최근 미국해양대기청(NOAA) 산호초 감시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마크 에이킨 박사에 따르면 해수 온도의 상승을 예측하 는 자료 어디에서나 평균 25년 안에 전 세 계산호의 멸종이 예측된다고 한다. 과거 에도 엘니뇨 현상과 같은 이상기후 때문에 산호초 백화현상이 발생하곤 했지만 이내 회복됐다. 하지만 지금의 예측으로는 회복 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다. 즉, 한 번 백화 현상이 나타나면 끝장이 라는 것이다. 예측이 맞다면, 틀리기를 정말 바라지만 모든 지표는 맞다고 외 친다. 향후 25년 안에 산호초가 멸종되리라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생애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태계에서 산호초 카드가 빠진다면
모든 생태계가 연결돼 있다는 것은 누구나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 이런 예를 들면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까. 생태계는 워 낙에 여러 장의 카드가 겹겹이 지탱해 주 고 있는 카드 집이었다. 어느 카드가 나이 들어 빠지면 언제나 새로운 카드가 등장해 서 카드 집을 지탱해줬다. 새로운 카드는 빠진 카드와 똑같지 않았다. 진화와 적응 이 반복되면서 전혀 새로운 카드가 등장해 도 자연스럽게 카드 집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런데 산업화가 고도로 진행되고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카드 중 일부가 물에 젖기도 하고 아예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렇게 튼튼했던 카드 집이 점점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맨 밑에 있는 산호초라는 카드가 빠지려고 한다. 그리고 대체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단다. 과연 이 생태계라는 카드집 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무너지게 되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까.
앞으로 정부와 산업계는 이런 환경 변화 에 적응하거나 악화되는 속도를 줄이는 노 력을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겠지만 미리 준비한 정부와 기업은 또 다른 기회를 선점하게 될 것이 다. 환경 변화 그 자체는 주어진 사실이지 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 떠밀려 할 것 인지 먼저 나서서 선두에 선 사람의 혜택을 누릴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미 해군의 교훈
이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특정 분 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 해군이 기후변화 대응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놀랍게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2017년 7.8월호 합본호에 '미 해군으로부터 배우 는 기후변화 대응전략(Managing Climate Change: Lessons From The U.S. Navy'l 라는 논문이 이 소식을 들려주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노퍽 해군기지 (Naval Station Norfolk)가 대표적인 사례로 나온다. 지구온난화가 해군 활동에 큰 지장을 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면 기후변 화에 따른 피해를 덜 입기 위한 노력(적응 전략)과 지구온난화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으로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 이는 노력(저감 전략)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응 전략을 위해 침수에 따른 부식이 덜 발생하기 위한 노력, 외래종 대 발생에 따른 피해 최소화 노력 등은 이해 하기 쉬운데 해외 물자 수송 경로에 출몰 하는 해적 관리 노력도 포함된 것은 의외 였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해양도시가있는 개도국에서는 해적과 난민이 생기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 잠재 위험 요인을 관리한다는 취지라고 하니 고개가 끄덕 여진다. 저감 노력의 핵심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원의 다변화, 특히 태양광 에너지 사용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미 해군을 다룬 이유는 간단하다. 미 해군도 필사적으로 하는데 기업들도 분발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후변화의 대응 자세가 우리와 사뭇 다르다.
미국방부는 기후변화대응지침을 2014년 부터 관리해 오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미 국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국방, 산업, 삶의 방식 모두를 송두리 째 바꿔놓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인공지 능과 함께하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온 두려움과 변화보다 훨씬 크고 우리를 무기력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우리 집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한다고 해서 당장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새로운 기회
산업계가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가장 일 반적인 태도는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는 2014년 4월 커버스토리로 이 점을 다뤘다. 지구온 난화의 현실에서 기업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사례와 전략을 소개하고 있 다. 누구는 뒷짐 지고 나 몰라라 할 때, 누 구는 적극적으로 전략을 세워 새로운 비즈 니스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견원지간인 나이키와 아디다 스는 물 없이 세탁할 수 있는 의류 개발을 위해 손을 잡았고, 역시 껄끄러운 상대로 치면 최고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린피 스와 코카콜라, 펩시콜라, 유니레버, 미국 소비자연맹이 같이 손잡고 연구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목적은 냉매 없는 냉장고를 개발하기 위해서 물어뜯고 경쟁하기 이전 에 이렇게 협력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이익 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의 물류회사 인 월마트는 향후 20년 안에 어떤 기후 악 조건에서도 매장을 정상운영하기 위해 에 너지원을 최대한 태양광으로 사용하고 분 산 발전시키며, 유통의 위험을 줄이기 위 해 매장 인근에서 제품을 조달하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2010년 출간돼 전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블루이코노미'라는 책 에서는 한술 더 떠 쓰레기와 곰팡이를 이 용해 분해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한 에바라(Ebara) 기업과 징그러운 구더기를 양식해 상처치료제로 개발한 것처럼 쓰레 기가 하나도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그대로 비즈니스에 활용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오로지 인공지능밖에 안 보이는 4차 산업 혁명의 물결에서 허우적거리는 산업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자연의 지혜를 활용 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물 결을 만들면 어떨까.
행동과 결과 사이의 지연(Delay) 효과
시스템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가 시스템 구조를 언급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지연 효과다. 다시 유엔기후변화협상 게임의 마지막 시사점으로 돌아가보자. 협 상을 해도 해도 해수면 상승을 막지 못했 다. 분명 각국의 노력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이 줄어들었는데 왜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 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연에 있다. 각국의 행동이 결과로 나타나기까지 해수면은 너 무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우리나라 말의 어원에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주기 때문에 바다라고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을 받기 때 문에 움직임이 더디다. 우리는 눈앞의 일만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나타나는 지연효과에 대해서는 결과를 눈 앞에서 직면해서야 허둥대면서 놀란다. 그래서 지연효과가 무섭고, 그래서 지연효과 가 많이 엮여있는 환경문제가 무서운 것이 다. 시스템구조의 비선형(Nonlinearity) 성 격 때문에 처음 변화의 속도가 시간이 지날 수록 급격하게 달라지고, 이 때문에 항상 우리는 직관과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맞 닥뜨리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입력과 출 력이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선형(Linearity)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게 되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 번 미국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은 해수면 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과거보다 더 규모가 커진 것이라고 기후학자들은 이구동성으 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구온난화와 맞물리면서 매년 '유사 이래 최대 규모'라 는 타이틀이 붙은 허리케인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유엔기후변화협상게임부터 산 호초의 멸종이야기, 미국 해군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 사례, 다국적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사례를 연결해봤다. 환경문제는 모두 의 문제이기도 하고, 딱 꼬집어 누구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연결이 어색하 고비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만약 그 렇다면 그건 나의 설득력 문제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중 심에 기후변화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한발 앞서 표준을 만들 수 있다. OECD 대한민국 대표부 일원으로서 파리협약에 참여한 산업통상자원부 전응 길 서기관이 내가 진행한 유엔 기후변화 협상 게임에 참여한 후 이런 말을 했다. "이게 임은정말 리얼하다. 국제사회가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기후변 화에 대한 대응은 철저히 빈익빈 부익부구 조를 만든다. 한나라에서도 그렇고, 국가 대국가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각국 이 열심히 협상해서 2100년까지 지구의 온 도가 현저하게 낮아진 해수면 상승 억제 효과는 미미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처럼 기후변화는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고 그 변 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따라 서 이미 한발 앞서 준비하고 있는 미국의 해군처럼, 적극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 서초과이익을 얻고 있는 다국적 기업처럼 우리 산업과 정부도 기후변화 대응 로드맵 을 시급히 작성해야 한다.
프랑스 수수께끼인 연못 수련(water lily) 이야기는 끝이 뻔히 보이는 내용 같지만, 마지막에 생각하지 못한 반전이 있기 때문에 나는 시스템의 행태(behavior)를 소개할 때 늘 빼놓지 않고 이 내용을 언급한다. 특히 시스템의 행태 중에서 지수 증가(exponential growth)의 위험을 언급할 때 사용한다. 세계적인 명저 '성장의 한계 (Limits to Growth)'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Meadows et al. 2004. 주 1). 하지만 나는 더욱 많은 사람이 이 사례를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육용으로 작성해 보았다.
<그림 1> 수련 (water lily) source: Wikimedia Commons
당신은 정원 관리인이다. 당신이 관리해야 할 정원에는 큰 연못이 있고, 이 연못에 있는 수련은 1개에서부터 시작해서 매일 2배로 증식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30일째 되는 날에는 정확하게 연못을 다 덮는다고 가정해 보자. 연못이 수련으로 뒤덮이면 생태계에 안 좋기 때문에 정원 관리인은 수련이 연못을 다 덮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련이 증식하는 모습을 표로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더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30일째 기준 전체 개체군 대비 비율을 표시해 주면 좋다. 수련 잎이 연못을 가리는 것을 가정했기 때문에 수련 개체 수는 면적으로 환산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백분율은 전체 연못에서 차지하는 면적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더 실감 나게 표현하려면 다음과 같이 그래프로 그려보는 것이 좋다.
위 그래프는 전형적인 J자(字) 형태로서 지수 증가(exponential growth)를 하고 있다. 수련 개체 수가 갑자기 증가하는 그래프를 본 모든 사람은 미리 대처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정원 관리사인 당신 역시 위 그래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원 관리사인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곳곳에 깔렸다. 따라서 연못 하나에만 시간을 뺏기기에는 다른 할 일도 있기 때문에 당신은 자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수련이 점점 많아져서 결국에는 연못을 다 가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도 처음부터 매일 매일 물속에 들어가서 수련 개체의 증가를 관리하거나 매번 끌채를 가져와서 확인할 수는 없다. 매우 번거롭고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가 아주 심각한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마침 10일째 되는 날 수련 개체군을 관찰했는데 전체 연못에서 수련이 차지하는 면적은 고작 0.0000954%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수련의 개체군이 기하급수로 증가한다고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수련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그렇게 문제가 크지 않다.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해결할 시간은 충분하다.
정원 관리사인 당신은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신은 효율적으로 시간과 자원을 배분하는 과학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열흘 뒤에 다시 확인해 봤다. 20일째 되는 날이다.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련이 차지하는 면적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정원 관리사인 당신은 더 중요한 다른 일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24일째 되는 날 우연히 관찰하니 이제야 겨우 1.6%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관찰하고 계산하는 것도 귀찮아질 지경이다.
29일째 되는 날이다. 당신은 부쩍 많아진 수련이 상당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수련이 연못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뭔가 조치를 할 때가 슬슬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위 일꾼들에게 조만간 수련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게 될 테니 연장을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하고 퇴근했다.
수련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그렇게 문제가 크지 않다.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해결할 시간은 충분하다.
다음 날 당신은 연못을 보고 망연자실할 것이다. 수련이 연못을 다 덮어버린 것이다. 하룻밤 만에 연못의 나머지 반이 덮이게 될 줄은 몰랐다.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다음 날 당신은 연못을 보고 망연자실할 것이다. 수련이 연못을 다 덮어버린 것이다. 하룻밤 만에 연못의 나머지 반이 덮이게 될 줄은 몰랐다.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지수 성장하는 것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선형(linear)으로 사고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선형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시간에 따라 증가하는 양이 일정할 때 나타난다. 마치 돼지 저금통에 매일 천 원씩 집어넣는다고 하면 지금 집어넣는 금액이나 한 달 뒤에 집어넣는 금액, 또는 일 년 뒤에 집어넣는 금액은 똑같이 천 원인 것과 같다. 하지만 은행의 복리 적금과 같이 쌓이는 양에 따라 새로 입금되는 금액이 달라진다면 연못 수련 사례처럼 지수 증가를 하게 된다. 은행 잔액에 따라 7%의 이자가 매년 붙는다고 가정하면 은행 잔액이 두 배가 되는 시점은 11년 뒤가 된다. 즉, 홍길동이 100만 원으로 시작했을 때 처음과 같이 7만 원(100만 원 x 0.07 = 7만 원)의 이자를 매년 받는다면 계좌 잔액이 200만 원이 되는 시점은 15년 째 해가 되지만(100만 원 / 7만 원 = 14.3), 정창권이 매년 은행 잔액 기준으로 7%의 이자를 매년 받는다면 11년 째 해에 두 배가 되는 200만 원을 갖게 된다. 이 대목에서 다음 퀴즈를 맞혀보기 바란다. 위 사례와 같은 조건으로 홍길동과 정창권이 200만 원으로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각각 두 배가 되는 시점 즉, 400만 원을 갖게 되는 시점은 몇 년 뒤가 되겠는가? 답은 홍길동은 29년 째 해가 되지만 정창권은 여전히 11년 째 해가 된다(주 2).
위 단락에서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는 증가라는 표현을 유입량(inflow)으로 대치시켰다. 지수 증가의 구조적인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유입량에 따라 누적되는 양이 달라진다. 홍길동의 경우나 정창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유입량과 쌓이는 양(누적되는 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휴지를 길에 버릴 때 그 휴지가 어딘가에 어떤 의미로 쌓인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말한다. 변화에 관심을 두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길에 버린 휴지가 많아질수록 길거리의 오염도는 증가할 것이다. 내가 길에 버린 휴지가 많을수록 환경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홍길동과 정창권이 다른 점은 이다음부터다. 홍길동의 경우는 늘어나는 잔액이 이자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정창권의 경우는 늘어나는 잔액이 이자에 영향을 줬다. 이는 홍길동이 길거리에 휴지를 버려서 거리가 갈수록 더러워지지만 그렇다고 길거리에 휴지를 더 많이 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정창권은 내가 버린 휴지 때문에 거리가 더러워질수록 더 많은 휴지를 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길동의 경우는 원인은 원인이고 결과는 결과였다. 결과가 다시 원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는데 정창권의 경우는 결과(거리 오염도의 증가)가 원인에게 영향(더 많은 휴지를 버린다)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젠 뭐가 원인이고 뭐가 결과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바로 피드백(feedback)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모든 지수 증가 현상에는 피드백이 있을 거라고 믿고 살펴보기를 권한다. 이것이 구조를 파악하는 훈련의 시작이다.
지수 증가 구조의 핵심은
피드백 (Feedback)
이 연못 수련의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 주위에서 지수 증가의 사례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자원 소비, 환경 오염, 식량 생산량, 산업 생산량 등 수없이 많다. 이들의 모습이 모두 연못 수련의 지수 증가처럼 매끄럽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 3>의 전 세계 콩 생산량 그래프에서처럼 약간의 등락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추세가 지수 증가의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림 3> 전 세계 콩 생산량 (Meadows et al., 2004 인용)
산업 혁명 이후 각종 사회 경제 시스템이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위 정창권의 복리계산의 구조를 적용한다면 이런 다양한 지수 증가 현상에는 피드백 구조(feedback structure)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시 정원 관리사에게 돌아가 보자.
이 정원 관리사는 문제가 심각해지는 양상을 시간에 어느 정도 비례해서 나타나는 선형 관계(linearity)를 전제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수 증가의 실체를 경험할 때 당황하게 된 것이다. 이 수련 이야기는 우리가 문제를 생각하는 방식이 선형 관계에 매우 익숙해져서 아직 문제 해결할 시간이 많다고 착각하게 하는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위 본문에서 두 번에 걸쳐서 강조한 문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수 증가의 형태로 문제가 커지고 있는데 이것을 선형 관계로 받아들이게 되면 문제를 해결할 적절한 시간을 놓치게 된다. 혹시 주위에 문제가 아직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이고, 시간이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이 문제가 사실은 지수 증가 행태를 보이는데 내가 선형 관계로 해석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연못이라는 공간에서 수련이 점점 많아지는 모습에 정원 관리사가 쩔쩔매며 대응하는 모습이 마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직도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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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첫번째 로마클럽 보고서로 유명한 Limits to Growth는 1972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당시 성장이 영원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자본주의 최고 성장기인 1970년대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의 저자들은 30년 뒤인 2004년에 그 업데이트 버전인 Limits to Growth: 30-year-update라는 책을 출간한다. 내가 볼 때도 2004년도 책이 훨씬 잘 쓰여져있다. 나는 2016년 1월에 제자들과 함께 일주일에 걸쳐 이 원서를 낭독(엄밀히 말하면 윤독)하면서 한줄 한줄 음미한 경험이 있다. 이 책의 제 2장 The Driving Force: Exponential Growth에는 연못 수련 사례를 포함해서 다양한 지수 증가(exponential growth)의 사례와 함께 왜 위험한지 잘 설명되어 있다. 본 내용에 대해 더 궁금한 분은 이 책으로 심화학습하기 바란다.
주 2) 홍길동의 식의 식은 다음과 같다.
(목표 금액 - 현재 잔액)/이자=(400만 원 - 200만 원)/7만 원 = 28.6(년)
반면 정창권의 지수 증가에서 두 배가 되는 시점을 계산하는 손쉬운 공식이 있다. 대략 72/성장률(%) 하면 된다. 따라서 현재 금액과 상관없이 무조건 두 배씩 증가하는 시점(doubling time)은 72/7(%) = 10.28이 된다. 따라서 연 단위이기 때문에 11년째 두 배가 넘는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그림 3>의 콩 생산량의 doubling time은 16년이다. 즉, 성장률은 약 4.5%다(16 = 72/4.5(%)).
Reference
Donella H. Meadows, Jorgen Randers, and Dennis L. Meadows (2004) Limits to Growth: The 30-Year Update. Chelsea Green Publishing
서지정보: 정창권. (2014) 이 땅의 엑스맨을 위하여, Big Issue no.094, 2014 October 15 p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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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창권
감수: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원용진 교수, 김유섭 교수, 황성진 박사와 박소연 박사과정
삽화: 박소연 박사과정
지난 추석 연휴 동안에 초딩 5학년인 내 딸이 엑스맨을 보고 싶다고 해서 나는 기회다 싶어서 같이 봤다. 영화 엑스맨(X-Men)은 미국 마블 코믹스의 만화 시리즈를 영화로 만든 것으로 다양한 돌연변이가 인간과 공존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삽화 1] 이땅의 엑스맨을 위하여
어떤 사람이 남들과 다른 재능과 독특한 형태를 보일 때 ‘그’ 또는 ‘그녀'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유리한지 불리한지에 따라 배척당하거나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래서 특이한 재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또는 ‘그녀'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자신을 끼워 맞출 것인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재능을 드러낼 것인지 결정하라고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이처럼 영화 엑스맨은 이 ‘다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와 돌연변이 집단 내에서의 갈등을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영화 시리즈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는 사람이다. 나 역시 돌연변이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귀담아 둘 은유가 많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는 기본적으로 ‘다름'을 말한다. 이 다름을 받아들이려면 용기와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먼저 시각을 살짝 바꾸면 이 ‘다름'은 ‘장점’이다.
장점을 강화할 것인지 단점을 보완할 것인지 선택하기란 평생을 두고 풀기에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이 답에 대한 단서를 하버드에서 찾아봤다. 하버드 대학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중에서 전 세계 경영자와 경영학자들이 즐겨보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Harvard Business Review)의 편집진은 1922년부터 지금까지 이 잡지에 소개된 수많은 논문 중에서 꼭 읽어야 할 필수 논문 10개를 선정한 바 있다. 이 10개의 논문 중 백미는 단연코 피터 드러커가 작성한 ‘자신을 경영하라 (Managing Oneself)’다. 150년 전 개신교의 전파과정과 수많은 성공한 리더와 실패한 리더들의 특성을 연구한 피터 드러커는 시종일관, 장점에 집중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지 단점을 보완해서는 성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어서 피터 드러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펙을 쌓는 사람들에게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를 계속 물어보고 실험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렇다. 다름은 장점이다. 이처럼 다름은 장점이고 장점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다름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
이제 좀 더 흥미 있는 세계로 들어가 보자.
다름의 의미를 푸는 또 다른 실마리는 바로 진화(evolution)에 있다.
테니스 운동을 많이 하면 한쪽 팔이 더 두꺼워지고 길어진다. 반대로 두껍고 긴 팔을 가지면 테니스에 유리해진다. 그래서 테니스를 즐기는 집단에서는 한쪽 팔이 길고 두꺼운 사람들이 많다(자연 선택의 결과). 그런데 이 집단에는 노력해서 팔이 길어진 사람도 있지만(획득형질) 태어날 때부터 그런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돌연변이). 그리고 만일 이 사회가 테니스를 잘 할수록 더 매력적인 이성으로 인정한다면 결혼해서 자손을 만들 가능성 또한 많아진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획득된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돌연변이는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따라서 끊임없이 미세하게 생겨나는 돌연변이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들은 자연 선택된 돌연변이가 진화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돌연변이는 진화의 재료라고 말한다. 하지만 돌연변이는 늘 발생하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이 장구한 과정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변수는 환경의 변화와 집단의 크기다.
돌연변이는 무작위로 일어나지만 어떤 방향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특정 돌연변이가 자연선택을 받는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 저러한 돌연변이들을 품고 있는 원 집단의 크기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집단의 크기가 작으면 환경에 적합하더라도 자연선택을 못 받아 배제될 수 있는 우연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연변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자연선택을 받으려면 돌연변이와 이와 유사한 개체집단이 커야 한다. 즉 획득형질로 팔이 길어진 사람이든 태어날 때부터 팔이 길어진 사람이든 팔이 길어진 사람이 많아야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왕따 당하지 않고 선택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서 연대하는 것이 자연 선택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돌연변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환경 변화가 심할 때다. 환경 변화가 심할수록 돌연변이의 출현이 더 많아지는 것은 원래 있는 돌연변이가 평소에는 눈에 안 띄다가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서, 즉 달라진 기준으로 볼 때 눈에 잘 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영향을 주고받는 범위가 계속 커진다. 게다가 인공지능 시대에는 환경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그야말로 돌연변이의 세상이 되었다. 즉, 돌연변이가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자신을 선택하는 환경을 찾거나 만들기 쉬워졌다는 이야기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과 유사한 돌연변이를 찾아서 연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집단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페달은 돌연변이를 찾고 연결하는 속도를 높여준다. 이렇게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돌연변이가 모여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 선택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돌연변이에게 이처럼 완벽한 환경은 역사 이래 없었다. 이제 자신과 유사한 집단을 전 세계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많은 교육기관들이 돈을 벌어 들이기 위해서 '이 시대는 이러저러한 장점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단점을 강조했었다. 여기에 현혹된 소비자는 시대가 요구하는 장점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눈을 들어 더 넓게 바라본다면 자신의 장점을 선택해 줄 시장을 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시장을 만들 수도 있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어느 분야에서 10년 동안 자신의 강점을 더욱 개발하고 적합한 시장을 만들거나 찾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에 집중할 때 몰입이 생기고 재미가 생기기 때문에 긴 준비 기간에도 행복하게 준비할 수 있다. 우리는 진화의 결과만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우연의 산물인 진화를 신비롭게 바라보고 신의 작품이라고까지 말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진화는 수많은 돌연변이에서 시작됐으니 이 땅의 돌연변이가 바로 인류의 희망이 아닐까.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더욱 궁금해졌다. 과연 내 딸은 어떤 돌연변이일까?
[삽화 2] 이땅의 엑스맨을 위하여
서지정보: 정창권. (2014) 효율성과 다양성의 충돌, Big Issue no.96, 2014 November 15, pp.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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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창권
내용감수 : 소지현 이화여자대학교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식물분류학 박사과정
내용감수 : 최은용 이화여자대학교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미생물 전공 석사과정
삽화: 박소연 이화여자대학교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식물분류학 박사과정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점심 대신에 김밥과 바나나를 매점에서 사다 먹는다. 줄 서는 것이 귀찮고 김밥과 바나나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 게 병인지 나에게 편리함을 주고 있는 바나나를 볼 때마다 위기감을 느낀다. 바나나에 닥칠 운명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네이처>발(發)로 바나나 마름병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외 언론은 일제히 바나나 산업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대서특필 보도했었다. 바나나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외떡잎식물 생강 목 파초 과 파초 속에 속하는 바나나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인류가 재배하기 시작해서 인류 최초로 품종 개량한 식물일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처음에는 씨 많은 바나나 열매를 거뜰떠 보지 않고 뿌리를 캐 먹었는데 씨가 없는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과일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대 개발도상국에 사는 4억 명 넘는 사람들이 날마다 섭취하는 칼로리의 3분의 1을 바나나에서 충당한다고 할 정도로 바나나는 주식(主食)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만큼 바나나는 우리 인류에게 고마운 존재다. 우리나라 역시 2012년 한 해에만 36만 7천 톤을 수입할 정도로 바나나는 지난 10년간 수입 과일 1위답게 늘 우리 옆에 있었다. 그런데 이 바나나에는 아픈 역사가 있고 갈수록 그 영향도 커질 전망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면 멸종 위험 커져.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바나나가 아주 미세한 곰팡이에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간편하면서 열량이 높은 과일이기 때문에 바나나의 인기가 갈수록 커지자 수출하기에 효율적인 품종을 찾기 시작했고 이것이 비극의 서막이 될 줄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19세기 이후에 씨 없고 껍질이 두꺼워서 먹기에 좋고 장거리 수송에도 좋은 그로 미셸(Gros Michael) 품종이 만들어졌고 순식간에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 품종은 지구 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공기와 같이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미생물인 푸사리움 (Fusarium oxysporum) 곰팡이 때문이다. 이 곰팡이는 사막이나 열대지역 그리고 툰투라 지역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토양에서 기가막히게 환경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수많은 돌연변이를 만들어서 주어진 환경에 선택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파마나에서 사단이 벌어졌다. 유전적 정보가 미세하게 달라진 푸사리움 곰팡이 변종인 R1 균주가 그로 미셸 품종 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바나나를 고사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파나마 병이라고 불린다. 치명적인 바나나 마름병을 일으키는 이 균주는 빠른 속도로 다른 지역으로 퍼져서 그로 미셸 곰팡이를 싹쓸이 하게 된다. 이 사태를 두고 다양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모든 전문가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진 생물이기 때문에 외부충격(질병)에 취약해져서 일시에 멸종 위기로 몰렸다는 점이다.
그런데 1970년대 말에 앞서 사라진 그로 미셸 품종을 대체할 기가 막힌 품종이 발견되었다. 그 주인공은 영국 캐번디시 공작의 정원사가 발견한 캐번디시 (Cavendish) 품종이었다. 선배 품종인 그로 미셸 품종을 한 방에 없애버린 R1 균주에 내성을 가진 이 기특한 품종은 1970년대 이후 산업화 고도화 과정에서 생긴 폭발적인 수요와 바나나를 신흥산업 주력 상품으로 선택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책 덕분에 바나나 수출량은 늘어났고 재배면적은 더욱 넓어졌다. 바나나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드라마틱한 품종의 변화를 나이 드신 분 중 일부만이 그 맛의 차이로 눈치챌 정도로 새로운 품종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졌다.
아뿔싸.
갈수록 넓어지는 재배면적, 갈수록 적은 비용으로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는 물류시스템의 혁신, 믿을 건 바나나라며 적극적으로 수출 장려를 한 국가, 그리고 바나나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어져 있는 나와 같은 전 세계 소비자들이 캐번디시 품종에 박수를 보내는 순간 그로 미셸 품종 멸종이 주는 교훈은 까마득히 잊혀졌다. 그런데, 바나나 주요 생산국 중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푸사리움 곰팡이 변종인 TR4 균주가 만든 새로운 곰팡이병이 발견되었다. 이 발견이 작년 12월에 <네이처>지를 통해 발표했을 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곰팡이에 의한 피해 속도는 그로 미셸 품종 피해 확산 속도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효율적인 산업형 재배 기술과 가장 효율적인 운송 시스템은 푸사리움 곰팡이의 새로운 균주인 TR4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파하도록 길을 닦아준 셈이다. 수출에 효율적인 품종은 관리의 효율성을 위해서 독점이 되었고 정부의 정책이 추가되고 소비자의 수요가 끌어당기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었다. 효율성을 위해서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 동원되는데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의존도가 높아진다. 의존도가 높아지니 다른 대안을 마련할 필요를 못 느끼고 더욱 효율성 높은 품종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다가 외부의 작은 충격(곰팡이의 습격)에 힘없이 쓰러진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은 식량안보와 밀접한 인과관계.
UN 산하 단체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가 협의체(IPCC)가 7년 만에 2014년에 개정한 보고서를 보면 산업화 이전 기준으로 기온이 1℃ 상승하면 주요 식량자원 수확이 줄어든다고 한다. 미세한 기후 변화의 1차 피해자는 먹이사슬 최상부에 있는 인간이 아니다. 먹이사슬에서 낮은 위치에 있을수록 치명적인 피해를 받게 된다. 곰팡이는 돌연변이를 수시로 일으키지만 평소에는 그냥 도태되어서 거의 완벽한 생태계 균형을 만든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생기면 각기 다른 돌연변이가 선택받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서 새로운 생태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생태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기후 변화에만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푸사리움 곰팡이의 변종을 만든 원인이 기후 변화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영향들이 작물에 미쳐서 수확량이 떨어진다는 전망은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리고 하버드대학 사무엘 마이어스 교수와 연구진은 2014년 6월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2050년의 기후로 예측된 환경을 만들어서 작물을 재배했더니 주요 영양분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두 가지 연구를 요약하면 가까운 미래에 주요 식량 작물의 수확량은 줄어들고 영양분은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는 더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중・하위층 계층과 개발도상국 국민 대다수다.
효율성과 복잡성 그리고 의존성과의 비극적인 밀월관계.
이제 인간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 눈을 돌려보자. 원자력은 우리 인류가 만든 최고 효율성이 높은 에너지다.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는 과정은 이루 헤아릴수없이 복잡하다. 마치 바나나의 운명과 데자뷰를 이룬다. 국제원자력기구 정보사이트(IAEA PRIS) 11월 3일 자 업데이트된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는 22기고 27기가 건설 중이다. 우리나라는 23기가 가동 중이고, 일본은 48기가 가동 중이다. 이 정도면 원자력 중독이다. 원자력 에너지가 주는 달콤한 효율성에 중독될수록 대체 에너지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몸이 안 따라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전형적인 금단 현상이다. 갈수록 원전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국가 발전에 효자 노릇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대체 에너지 회의록은 은근슬쩍 책상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 결과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다.
2014년 7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기술자로 1968년부터 근무해 온 오구라 시로(73세)가 ‘전(前) 원전 기술자가 알리고 싶은 진정한 두려움’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스템의 복잡성이 만들어 내는 두려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오구라는 “원전의 설계나 부품 제조는 수많은 기업과 기업 내 여러 부문의 분업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원전 전체를 혼자서 이해하는 기술자는 세계에 단 한 명도 없다"며 “원전의 복잡함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에 원전이 일으킬 수 있는 사고에 인간이 완전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 원전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기 마련. 다만 약간의 지식과 용기가 필요할 뿐.
바나나 멸종 위기의 해결책은 바나나에 있다. 그나마 다행으로 전 세계에서 생산된 바나나 중에서 수출되는 것은 12%밖에 되지 않는다. 즉, 수출용이 아닌 내수용 바나나들은 굳이 수출에 효율적일 필요가 없어서 더 다양한 품종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맞다 수출 상품성은 낮지만, 식용으로 쓸 수 있는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품성'이라는 가치는 독점・효율성・경제성이라는 단어와 가까운 친구라는 점이다. 그래서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런 작물도 먹어보고 저런 작물도 먹어봐야 한다는 뜻이고, 운송의 ‘혜택’을 덜 받을 수 있는 주변의 작물, 토착 작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고, 이런 다양한 작물 생태계에 관심과 연구와 예산과 정책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스트리아는 생물 다양성을 관리하기 위해서 1990년부터 종자 은행을 의미하는 노아의 방주 (Arche Noah)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효율성이 높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위험할 수 있고, 이 위험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성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말처럼 절대로 쉽지 않다. 인간의 관성과 습관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효율성은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 개입한 환경・사회・경영・산업・경제・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생태계에서 ‘의지’를 가지고 효율성을 높이려고 한다는 점에서 자연 생태계의 효율성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연 생태계는 순환하는 먹이사슬을 통해 균형을 이루는 최고의 효율성을 갖추고 있지만, 인간이 개입한 생태계는 순환하는 먹이사슬이 아니므로 독점과 같은 쏠림 현상을 만든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따라서 다양성을 강조하고 실천하려면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린 자본주의의 효율성 논리와 대항한다는 결연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효율성의 때를 벗기기 위해서는 꾸준한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효율성만 쫓지 않고 다양성을 찾는 여정을 떠나야 한다. 때론 거친 밥도 먹어야 하고, 때로는 먹을 수 있는 우리 주위의 식자재에 관심을 가져봐야 하고, 때로는 편리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불편하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걸어 다닐 용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다양성에 대해 훈련을 할 때 식량 안보나 대체 에너지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이 원고를 쓰면서 바나나를 먹고 있다. 바나나를 염려하면서 바나나와 이별을 해야 한다는 원고를 쓰고 있으니 참 묘하다.
서지정보: 정창권. (2014) 다양성과 잉여의 재 발견, 그리고 두레와 품앗이, Big Issue no.97, 2014, December 1, pp.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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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창권
내용감수 : 이남숙 (이화여자대학교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식물분류학 전공 교수)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그리운 여우』(창비, 1997)
솔직히 고백하지만 나는 무식한 놈이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국화를 뜻하는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식물분류학의 권위가인 이화여대 이남숙 교수를 포함해서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거의 모두 이 짧은 시를 좋아한다. 이 시만큼 식물의 다양성에 경외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식물을 사랑하게 만든 시가 또 있을까. 그래서 이 시를 읽고 자신을 탓하고 절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국화 중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꽃 색깔이라고 한다. 보라 색조라면 쑥부쟁이, 흰색 또는 붉은 색조라면 구절초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노란 색조를 보고 감국 또는 산국이라고 하면 주위에서 달리 볼 것이다.
지난 호 칼럼에서 필자는 유전적 다양성이 없이 단일품종으로 수출되고 있는 바나나 품종이 곰팡이의 습격에 멸종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바나나를 수출하기 위해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가 단일 품종이었고 이 때문에 외부의 작은 충격(곰팡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내용이다.
바나나 멸종위기와 후쿠시마 원전 사태처럼 사고・재난이 끊이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알아두면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개념이 있다.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는 것인데 예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찰스 페로우가 1984년에 동명의 책으로 선보였다. 페로우는 이 책에서 사전 예방 중심의 정책에서 사후 대처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을 강조한다. 그는 사고・재난을 마치 감기처럼 자연스러운 감기에 안 걸리려고 노력해 본들 소용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더 나아가 감기에 걸리고 치료되는 과정에서 감기가 우리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감기에 걸리기 이전에 무너진 생체 균형을 다시 회복시키는 순기능까지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감기를 평생 친구처럼 대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 시스템이나 환경 시스템에서도 사고(accident)는 뭔가 문제가 있는 시스템을 다시 복원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뜻에서 정상(normal)이라는 것이다.
모두 경험하다시피 감기에서 나아지는 과정이 고통스럽듯이 어떤 시스템이나 복원되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는데 문제는 재난의 크기가 갈수록 커지고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는 점이다. 왜 재난의 크기와 강도가 갈수록 커지는 걸까. 그리고 극심한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을 독자와 풀고자 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효율성을 높이려고 할 때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재난을 겪게 된다.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인간은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추구하게 되고,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복잡성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다. 이 때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분업은 복잡성에 부채질하게 된다. 이 복잡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의 작은 결함이 전체 구조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게 된다. 수출용 바나나도 그렇고 더욱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원자력도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고도로 복잡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은 대체 가능한 대안을 제거한다. 단일한 품종으로 재배하고 운송하기 바쁘다 보니 바나나의 다양한 품종이 매장에 선보일 여지를 없앴다. 원자력보다 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에너지가 없다 보니 대체 에너지를 개발할 여지를 없앴다. 그 결과가 멸종위기의 바나나와 후쿠시마 원전 사태이다. 이렇게 인간이 개입한 시스템의 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사고와 재난은 앞으로 자주 그리고 크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보다 사고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빨리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원력(Resilience)을 키우는 방법을 어디에 배울 수 있을까. 바로 우리 옆에 있다. 복원의 귀재인 자연 생태계는 우리 옆에서 늘 속삭이면서 해결책을 들려주고 있다.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식물들의 처절한 몸부림, 잉여성.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서 근친교배를 하지 않는 식물의 지혜는 매우 다양하다. 예외는 있지만, 종자식물이 다양성을 가지기 위해서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과 만나는 수분(受粉)과 수정의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고 번식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씨를 퍼트리는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대부분의 식물이 자가불화합성, 소위 근친교배를 안 하려는 전략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첫째는 은행나무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것처럼 구조의 차이를 두는 전략이고 둘째는 꼬마 남자와 성숙한 여인이 한집에 있는 것처럼 같은 꽃에서 암술과 수술의 성숙 시기에 차이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수술의 꽃가루가 자유낙하 해서 같은 꽃 안에 있는 암술에 떨어진다고 해도 수정되지 않는 식물이 많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수술은 필사적으로 멀리 있는 꽃에 눈길을 주고 자신의 꽃가루를 뿌린다. 이런 수분 과정을 거쳐서 열매를 맺으면 그 다음에 씨를 퍼트리는 전략 역시 독특하다. 일단 씨를 멀리 퍼트리고 본다. 모(母)식물과 가까울수록 영양분을 놓고 모식물과 경쟁하게 되거나 모식물을 겨냥한 포식자에게 희생 되기 때문이다. 멀리 퍼트리는 방법 역시 가지가지다. 난과(科) 식물처럼 바람을 이용하는 녀석, 수생식물처럼 물을 이용하는 녀석, 봉선화처럼 자기가 직접 산포하는 녀석, 그리고 동물의 먹잇감이 되거나 먹잇감과 같이 움직여서 동물의 동선을 따라가는 녀석들이 있다. 이때 사격 자세로 정조준해서 한 발 한 발 씨앗을 퍼트리는 식물을 상상할 수 없다. 엄청난 수의 종자를 쏟아 붓는다. 난과 식물의 경우 1g의 열매에 200만 개~400만 개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잉여성이 있어야 다양한 변이체를 만들고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다양성과 잉여성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볼 수 있고, 다양성은 잉여성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양성과 잉여성 그 너머에는 두레와 품앗이가 있다.
식물이 보여주는 공생전략 기생전략의 다양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런 다양한 전략을 통해서 숲을 이루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난초는 공생균이 필요하다. 그래서 난초만 덩그러니 옮겨 심으면 자라지 못한다. 반드시 난초가 자랐던 흙을 정성스레 옮겨줘야 한다. 중남미에 서식하는 어떤 아카시아와 개미와의 공생전략은 유명하다. 아카시아 가시에 둥지를 튼 개미는 아카시아로부터 꿀을 받고, 아카시아는 개미로부터 생존권을 보호받는다. 어느 정도냐면, 호전적인 이 개미는 아카시아를 호시탐탐 노리는 초식동물과 결투를 벌이고, 아카시아 나무 근처의 잡풀을 제거해서 아카시아가 맘 편하게 영양분을 확보하도록 도와줄 정도다. 이런 공생관계 협업관계는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레는 온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서 농사일을 같이 하는 공동노동 조직이면서도 오락 프로그램이다. 농악대의 연주와 춤도 등장한다. 각기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농사일을 돕는 행위다. 그야말로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한데 어울려서 농사일을 돕곤 했다. 또 품앗이는 어떤가. 품앗이의 겉모양은 일대일 노동 교환이다. 하지만 각박하게 각자의 노동 가치를 따지는 일은 없다. 그냥 가서 일해주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신뢰를 바탕으로 각자의 상황을 인정해 주며 노동을 교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전통문화에는 각기 다른 모습을 인정해 주는 다양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것이 우리 한민족 고유의 관습인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이런 우리의 행위를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몬순기후면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산악지대가 많다. 이 두 가지 환경이 결합하면서 비가 많이 내리는 울창한 숲이 만들어졌다. 이 울창한 숲에 산악지형이 더해지면서 우리 문화는 단절의 문화가 만들어진다. 강만 건너도 노랫가락이 다를 정도로 다양성이 풍부한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이 숲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의 순리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너와 내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문명이 들어오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원래 우리 민족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행동을 용인하는 민족이었다. 그렇게 한 민족의 문화가 만들어졌다.
문명과 경제가 발전하면서 에너지의 혁명, 교통의 혁명, 정보통신의 혁명 등 어지러운 각종 혁명적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갈수록 사는 게 편리해지고 사회 시스템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작은 기침에도 중병을 앓게 되는 현실 역시 맞닥트리고 있다. 조직의 의사결정자는 다양성과 잉여성에 대한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일반인은 자신의 처지에서 다양성과 잉여성을 다시 살펴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11월 18일에 표준협회에서 주관하는 2014년 대한민국 좋은 기업 시상식이 열렸다. 전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가지는 GWP(Great Work Place, 일하기 좋은 직장) 지표와 같이 기업을 평가하는 지표는 매우 많다. 그런데 한국표준협회와 서울대 경영정보 연구소가 개발한 이 ‘대한민국 좋은 기업' 지표에는 CEO의 리더십, 창조경영, 고객만족 등의 지표 외에 기업의 사회공헌 지표를 포함해서 기업이 사회와 얼마나 공생하려고 하는지를 대놓고 질문했다고 한다. 서울대 김수욱 교수는 이제 기업은 사회의 고통과 갈등뿐 아니라 번영과 책임 공동체 유대감을 모두 공유하는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기업이 수상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비슷한 지표와 비슷한 시상식이 많아
지면서 우리 민족의 DNA에 있는 두레와 품앗이의 전통이 다시 재조명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 문학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객주’의 저자 김주영씨가 지난 11월 8일 청송에서 개최한 객주문화제에서 ‘객주’의 핵심 정신이라면서 추천한 대사가 있다. 이 대사에서 우리 민족의 다양성과 잉여성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길가에 피는 꽃이 임자는 없으되 이름은 있다 하였소, 세상 만물 중에 이름이 있는 것치고 어느 것 하나 허술히 여겨지는 것이 있소?”
다음 원고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복원력(resilience)을 높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례와 기업들이 앞장서서 복원력을 높이는 최신 흐름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서지정보: 정창권. (2014) 떴다! 리질리언스, Big Issue no.98 , 2014, December 15, pp.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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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창권
내용감수 : 이남숙 (이화여자대학교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식물분류학 전공 교수)
경영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2014년 4월호에서 이례적으로 생태학 분야에서 다룰 법한 주제인 회복력(resilience)을 커버스토리로 삼았다.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가 산불이나 가뭄 등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아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 균형을 되찾는다는 이 단어가 기업 경영에도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가 자연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하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면서 대가도 지급하지 않고 풍덩 풍덩 갖다 쓴 자연 자본(natural capital)의 경제적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코스탄자(Costanza)와 그 연구원들은 이미 1997년에 생태계 서비스(ecosystem service)의 경제적 가치를 연 33조 달러로 추정했다. 당시 지구 전 세계 나라의 국민총생산(GNP)이 18조 달러였으니 인류 문명이 만들어 내는 가치에 두 배 정도의 혜택을 자연으로부터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고마움을 외면한 대가는 끔찍하다.
2011년 태국에서 발생한 대홍수 때문에 수많은 다국적 기업의 생산 공장이 물에 잠기면서 큰 피해를 보았는데, 도요타 단일 회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피해액이 1조 5천억 원 규모였다. 하지만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을 강타했을 때는 공공시설 기능 마비로 생긴 경제적 손실이 6조 원에 달했으며, 2013년 태풍 하이언이 필리핀을 강타할 때는 사망자가 6,000명에 이르렀고, 경제적 손실도 14조 원에 이르는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액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이런 재난 앞에서는 어떤 기업도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선 기업들은 기상 이변 현상과 자원이 고갈되는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발 빠르게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형 할인 마트 월마트는 어떤 기상 조건에서도 운영할 수 있도록 각 매장이 사용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2020년까지 현재 수준보다 600% 증가시키는 목표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두루마리 휴지 안에 있는 휴지 말이 봉은 펄프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펄프 가격이 오르면 수익성이 떨어지니 킴벌리 클락이라는 회사는 아예 휴지 말이 봉을 없앴다. 코카콜라는 최근 기업들에 쓴소리를 날리는 소비자 연맹과 그린피스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프로젝트에 숙적인 펩시도 같이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음료수를 시원하게 해 주는 냉장고의 핵심 요소이자 환경 오염의 주범인 냉매를 대체하는 연구 프로젝트다. 이런 기업들의 움직임은 주목을 받고 박수를 받아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외침은 경영진과 종업원 간 사이의 극단적인 소득격차 때문에 더 힘을 받고 있어서 기업은 눈치 보기 바쁘다. 이런 와중에 극단적인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이라는 또 다른 환경 위험을 직면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전략 컨설팅 회사인 멕킨지가 조사한 바로는 사람들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하향 추세를 보이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생산 비용이 증가하는 충격과 소비자가 지갑을 닫게 되면서 매출이 감소하는 충격을 받게 된다. 여기에 경쟁사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을 때는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충격까지 받게 된다. 이런 자연환경 변화의 충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은 복원력을 키우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노력만으로 시스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위험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내부에 적을 키우고 있다.
2013년 1월 미 연방항공국(FAA)은 항공사에 한쪽 분량의 특이한 권고문을 보냈다.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적절히 수동 비행을 하도록 권유하라는 내용이었다. 조종사들이 자동항법 장치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항공기를 복원시키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문화 비평가 니컬러스 카(Carr)는 2014년 9월에 출간한 “유리감옥”이라는 저서에서 이런 형상을 자동화가 불러온 어두운 미래의 모습이라고 했다. ‘유리 감옥'은 고도로 자동화된 조종석(glass cockpit)을 말한다. 인류 문명은 자동화를 통해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만 바라봐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 자동화는 분업화와 전문화와 함께 고도로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효율성을 고도화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 발전의 엔진이라고 칭송받던 가치가 인류를 위험하게 만드는 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업화, 전문화가 만들어지지 전에는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네 일이었다. 뒷산에 불이 났다고 생각해 보자. 예전에는 뒷산 산불은 우리 모두의 문제였고 모두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나르며 불을 껐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빨리 출동하지 않는 소방서를 탓하면서 불구경한다.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효율성 높은 사회의 단상이다. 이렇게 전문화, 분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좁아졌고 더 넓고 깊게 생각하는 훈련을 안 하게 되면서 나 외의 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대가를 치르고 만들어진 효율성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덜 효율적인 대안을 제거하고 인간이 만드는 시스템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의 성장 욕심이 더해질 때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2007년 GM을 제치고 한때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으로 올라선 도요타 자동차는 아직도 생산 시스템에 관한 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이후 양적 확산에 치중하면서 세계 시장별로 다양한 차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다 보니 관리해야 할 경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결국 2009~2010년 대규모 리콜 사태라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서울대 국제대학원 김현철 교수는 도요타의 실패는 바로 복잡성 관리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 시스템 구조를 더 깊이 들여야 보면 다음과 같다. 다양한 시장 수요를 반영하려는 노력의 결과 다양한 상품이 만들어지면 상품 구색이 좋아져 판매량 증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매출 성과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려는 동기부여는 증폭된다. 이런 동기부여는 상품 개발과 매출로 이어지게 되면서 피드백 구조(되먹임 구조)를 만든다. 선순환처럼 보이는 이 반복되는 과정은 기업 내부에서 관리해야 하는 시스템의 복잡성을 급속도로 증가시킨다. 이 때 성장의 속도를 늦추면서 복잡성을 감당할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성장의 욕심 때문에 성장의 속도를 늦추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복잡성은 관리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서 사건・사고・재난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도요타의 사례는 선순환 구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맞이해서 악순환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복잡성과 성장에 대한 본능이 인류 문명을 만들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인류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스템의 복원력을 키우는 노력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이것은 지혜이고 용기다.
이 글에서는 기업 사례를 들어 문제와 대안을 언급했지만 비단 기업만 국한해서 생각할 일은 아니다. 얼마든지 우리 지역의 문제, 우리 조직의 문제, 우리 국가의 문제로 확대할 수 있다. 생태계에서 교란(disturbance)은 태풍 불, 홍수, 가뭄, 지나친 방목, 그리고 인간 활동 같은 것으로 군집을 변하게 하여 생물을 없애고 자원의 이용 가능성을 바꾸는 사건을 말한다. 물론 모든 교란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정 수준의 교란은 오히려 종(種)의 다양성을 도와주는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이론도 있다. 하지만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경제・사회 생태계는 갈수록 복잡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사건・사고・재난의 빈도와 강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갈수록 적당한 교란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책과 자원은 사건・사고・재난이 안 일어나도록 예방하는 데에 집중하기보다 사건・사고・재난이 일어났을 때를 가정하고 피해를 줄이고 더 좋은 생태계로 만들 수 있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바로 복원력(resilience)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복원력의 핵심은 다양성에 있다. 일견 논리의 비약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키운다면 희망은 있다.
자선 단체 중에서 세계 최대 규모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NGO 중 하나로 꼽히는 록펠러 재단은 리질리언스에 대한 지원과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록펠러재단 대표 주드 로딘(Judth Rodin) 박사가 지난 11월 'The Resilience Dividend(리질리언스 배당 이익)'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주위를 환기할 정도다. 참고로 로딘 박사는 이 책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외부의 교란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위험을 언급하면서 복원력의 역량을 강조하고 있고, 리질리언스 역량이 높아서 피해를 덜 보는 것도 이득이지만 리질리언스에 투자해서 이익을 보는 것 역시 이득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 역시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제3섹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불같이 일어나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과 사회적 기업, 그리고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활동에 대한 관심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물론 고용 창출이라는 국정과제라든지 갈수록 사회에 눈치를 보는 기업들의 활동에서 시작했다고 그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 시스템의 복원력을 키우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현재 국회 재정위원회에서는 여야가 각각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매우 환영할 만하다. 국가와 사회의 자원이 효율성이 높은 곳에만 집중하지 않고 당장에는 효율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성을 높이려는 시도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지혜로워지는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복원력을 키우는 노력도 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동화를 거부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불편한 것을 애써 외면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 좀 불편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든지 노동이 주는 달콤함을 찾아본다든지 우리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것 모두 해당한다. 지난 11월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제인 구달은 최근 저서 “희망의 씨앗”에서 서바이버(survivor)라는 독특한 나무를 소개했다. 911테러 사건이 일어난 세계무역센터 빌딩에서 살아남고 잘 회복된 돌배나무다. 그렇다. 우리가 희망을 품고 복원력을 위해 노력한다면 테러라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이 나무처럼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작은 곳에서부터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시점이다.
이 글은 "시스템사고와 함께하는 기후변화 플레이북" (데니스 메도즈, 린다 부스 스위니, 질리안 마틴 메허스 지음. 정창권 옮김. 2019. 지식플랫폼) pp.252-263에 실린 역자의 소감입니다.
원문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는 것은 새로운 책을 쓰는 것 못지 않게 고통스럽기 때문에 나는 번역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회과학 분야 번역물을 볼 때마다 번역 수준에 실망해서 읽고 싶은 책을 항상 원서로 구매해서 읽었다. 이랬던 내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내 발등을 찍는 격이다.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세 가지다. 그래서 어찌 보면 나에게 이 책은 운명과 같다. 첫 번째는 기후 변화, 두 번째는 저자인 데니스 메도즈,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게임이다.
내가 중고등 학생, 교사, 교감, 교장, 기업인, 연구자들에게 강의하면서 미래 변화를 언급할 때마다 두 가지 핵심 단어를 꺼낸다. 인공 지능과 기후 변화다. 인공 지능이 발전하는 속도와 기후 변화가 전개되는 속도의 속성이 같다. 복리 이자처럼 지금 변화가 그다음에 일어날 변화에 영향을 미쳐서 조금 더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시스템사고에서는 이런 구조를 강화 피드백이라고 부른다. 강화 피드백 구조가 왜 중요하냐면 지수 성장(exponential growth)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수 성장은 이 책의 저자인 데니스 메도즈가 연구 책임자로서 공동 집필했던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 1972년 판 첫 장 제목이다. 이 ‘성장의 한계'는 첫 번째 로마클럽 보고서로 인정받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처음 언급한 유엔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브룬트란트 보고서)(1987)에 영향을 미쳤으며 전 세계에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알린 UN 리우 총회(1992) 결의에 영향을 미쳤다. 이 정도로 중요한 책에서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지수 증가이기 때문에 가볍게 넘겨봐서는 안 된다.
다음 그림은 전형적인 지수 증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순간 급격하게 증가한다.
<그림1>
1번 그림에서 눈여겨봐야 한 점은 급격하게 증가하기 전 단계다. 상대적으로 변화가 거의 없어 보이는 이 단계에서 앞으로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지 않다. 지금 느끼는 변화 속도와 패턴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선형 사고(linear thinking)이다. 2번 그림이 보여주는 변화는 1번보다는 덜 긴박하다. 큰 변화가 갑자기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1번 그림처럼 엄청나게 변했다고는 볼 수 없다. 마지막 3번 그림이 보여주는 변화는 관찰하고 있는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3번 그림과 같은 변화를 보게 되면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대비해야겠다는 각성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독자가 보기에 이 세 개의 그림 중에서 가장 위험한 변화는 어떤 것인가?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는 세 가지 그림 중에 어떤 것일까? 각자의 판단에 맡길 문제지만 이 세 가지 그림이 같은 구조라면 생각을 달리할 것이다. 그렇다. 이 세 가지 그림은 같은 구조에 시간의 길이만 달리 한 것이다. 위 세 개 그림은 모두 1부터 시작해서 매일 두 배씩 증가하는 모습을 그래프로 표현한 것이다. 1번 그림은 30일 동안의 변화, 2번 그림은 15일 동안의 변화, 3번 그림은 7일 동안의 변화를 그래프로 옮긴 것이다. 누구나 엑셀로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이 그림이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래 변화 예측을 잘 못해서 대비할 시기를 놓친다는 점이다. 1번, 2번, 3번 그래프의 마지막 세로축 값은 각각 약 5억 3천 6백만, 약 1만 6천, 64다. 2번 그래프와 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마지막 날(15일째)에 1에서 1만 6천까지 증가한 모습을 보고 놀라겠지만 앞으로 15일이 더 지나면 5억 3천 6백만이 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3번 그래프와 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마지막 날(7일째)에 1에서 64까지 증가한 것을 보고 놀라겠지만 30일째 되는 날에 5억이 넘는 수가 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경험한 방식 대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래 예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시사점은 더 중요하다. 이런 지수 증가 변화를 보이는 구조는 우리 삶, 사회, 지구 도처에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감지 못할 뿐이다. 위 그래프는 2배씩 증가하는 상황을 그렸다. 금융 거래에서 복리 이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2배씩 증가하는 복리 이자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비현실적인 사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2배씩 증가한다는 점과 복리 이자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면 세상 만물의 변화 이치가 다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엑셀로 2배씩 증가하는 것을 재현하면 데이터가 길게 열거된다. 하지만,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앞선 숫자가 뒤에 있는 숫자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반복되는 모습을 연결하면 정확하게 복리 이자 구조가 된다. 이자를 받으면 잔고가 증가한다. 다음번 이자를 받을 때는 늘어난 잔고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이자가 늘어난다. 늘어난 이자 때문에 잔고는 더욱 증가한다. 이자(원인) 때문에 잔고(결과)가 늘어났지만, 잔고(원인)가 늘어났기 때문에 이자(결과)가 늘어난다. 이렇게 순환(feedback)되면 원인과 결과의 경계가 없어진다. 이렇게 인과 관계가 한 방향이 아니라 비록 시간이 걸리지만 순환되어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시스템사고의 핵심인 피드백 사고다. 여기서 말하는 피드백은 숙제 검사나 부하 직원이 보낸 서류를 검토하거나 코칭할 때 쓰는 피드백이 아니다. 인과 관계의 영향이 순환되는 것을 말한다. 독자가 관심 있어 하는 인과 관계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면 피드백 사고를 하는 것이다.
다시 2배씩(100%) 증가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위 그래프는 30일 동안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100% 증가가 아니라 50% 증가하는 것으로 상황을 바꾸고 30일에서 60일로 바꾸면 위 그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100% 증가가 아니라 10% 증가하는 것으로 상황을 바꾸고 30일에서 300일로 늘리면 위 그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100% 증가가 아니라 1% 증가하는 것으로 상황을 바꾸고 30일에서 3,000일로 늘리면 위 그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시간의 길이만 다를 뿐이지 우리 삶 도처에 강화 피드백이 존재하며 이 강화 피드백이 작동하면 위 그래프와 같은 변화를 보게 된다.
우리 도처에 있는 강화 피드백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것이 환경과 기후 변화다. 피드백 시간의 길이가 매우 길기 때문이다. 환경 변화와 기후 변화를 지켜보는 우리의 태도는 위 그림 중에서 1번, 2번, 3번 어떤 것일까? 이 태도는 의사 결정 또는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과 기후 변화 문제는 미래 세대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올바른 문제의식과 적절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어린 학생 때부터 이런 구조의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개념을 교실에서 가르쳐야 할 환경 교사가 너무 부족하다. 우리나라 전체 교원 수는 약 50만 명인데 환경 교사 모임에서 파악한 전국 환경 과목 전공 교사는 2019년 기준으로 31명이다. 시스템다이내믹스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환경 교육의 위기가 너무 안타까웠다. 이런 위기의식과 안타까움이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첫 번째 이유다. 이 책에는 22개의 게임으로 시스템의 특징과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아무쪼록 환경 교사 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의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는 강사들이 이 책을 십분 활용해서 환경 교육에 활용하기 바란다.
제1 저자 데니스 메도즈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박사 과정 학생으로 우연한 인연으로 대전에 있는 솔브리지 대학에서 한 과목 강의했었다. 여기에서 (사)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학회 학회장을 역임하셨던 안남성 교수를 만나게 됐고(안남성 교수는 현재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INGS) 제3대 총장이다), 시스템다이내믹스에 관해 환담을 하던 중 교사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미국에서 콘퍼런스가 있고, 바로 당해 여름에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때부터 내 인생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이지만 마치 정해진 길을 가는 것처럼 흘러가게 됐다. 이 행사를 계기로 박사 학위를 무사히 취득했고, (사)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학회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2017년부터 학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처럼 귀신에 홀린 듯 사비를 털어서 보스턴까지 날아가서 이 행사에 참여한 것이 나에게 부흥회 같은 동기부여를 주었다. 이 행사에서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인데 시스템다이내믹스 학문을 만든 제이 포레스터 교수, 성장의 한계 저자인 데니스 메도즈 교수, 시스템사고의 대가인 피터 셍게에 이르기까지 교과서에서 봤던 별들을 모두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이런 대가들이 교사들과 어울리면서 뭔가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열정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미가 데니스 메도즈였다. 범접하기 힘든 인상을 품어내는 석학이 교사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게임을 전수해 주고 이 게임으로 시스템다이내믹스와 시스템사고의 정수를 가르쳐 줬다. 이때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박사 과정에서 그렇게 머리 싸매고 어렵게 배운 학문을 이렇게 간단한 게임으로 쉽게 설명하다니. 물론, 학술 논문을 쓰는 연구자에게 필요한 지식의 폭과 깊이는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필요한 수준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대가로부터 게임을 통해 시스템다이내믹스와 시스템사고의 핵심을 배우다 보니 박사 과정에서 진도 나가기 바쁘고 논문 쓰느라 바쁜 가운데 놓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이때 배운 게임을 지금까지도 사용한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고, 아직 배우지 않은 게임도 있어서 흥분되었다.
이 책은 기후 변화라는 주제를 게임을 통해 설명하는 책이지만 핵심은 시스템사고다. 기후 변화는 시스템사고를 통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시스템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력과 태도가 연결되어 있다. 시스템을 해석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시스템을 이해한 다음에는 바람직한 시스템으로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 시스템에 대한 태도가 시스템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시스템다이내믹스와 시스템사고를 정립한 대가들이 세상을 향해 목 터져야 외치는 화두가 무엇인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시스템다이내믹스와 시스템사고의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이것이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두 번째 이유다.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세 번째 이유는 게임 책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목적은 다양하다. 주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게임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노인을 위한 게임은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를 복원하는 순기능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게임의 목적은 성찰이다. 사람이 성찰할 수 있다면 이 성찰은 강력한 학습 동기 부여를 만들어준다. 문제는 혈기 왕성한 중고등 학생들을 어떻게 성찰하게 만드냐는 것이다. 학원 생활에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교실에서 '주무시는' 학생들을 어떻게 성찰하게 만드냐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내 교육 프로그램을 거친 3,000여 명의 학생들은 교실에서 살아 숨 쉬고 엄청난 집중을 보이면서 성찰했다. 이 책에는 없는 게임이지만 UN기후변화협상게임의 경우 쉬는 시간 없이 3시간을 진행한다. 자는 아이 한 명 없고 화장실 보내 달라고 칭얼대는 학생 한 명 없다. 다음 그림은 역자가 게임을 통해 교육하는 것을 정리한 게임성찰모형(GBR, Game-Based Reflection Model)이다.
<그림2>
이 모형에서 언급한 활동 게임은 소요시간이 긴 큰 게임이고 놀이는 작은 게임이다. 이 모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성찰과 응용 단계에서 다시 성찰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다. 이 두 가지가 역자가 교육 현장에서 얻은 놀라운 교훈이다. 두 가지 모두 시스템사고로 개발된 게임이기에 가능하다.
시스템사고 게임은 성찰을 위한 최고의 도구다. 그 이유는 시스템사고의 특징 때문이다. 시스템사고는 시스템 구조의 독특한 특징에 관한 사고다. 결국 성찰은 시스템 구조의 독특한 특징 때문에 발생한다. 시스템 구조는 복잡계로서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 작용한다. 그런데 그 상호 작용하는 모습이 앞서 소개한 대로 서로 시간의 길이가 각기 다른 피드백으로 엮여있다. 이러면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없게 된다. 교육과 관련해서 말할 수 있는 시스템 구조의 특징 첫 번째다. 이 첫 번째 특징이 왜 중요하냐면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모든 생각이 정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열린 사고를 하게 되고 내가 맞을 수 있듯이 네가 맞을 수도 있고, 네가 틀릴 수 있듯이 내가 틀릴 수 있다. 그래서 교실에서 자고 있었던 아이들은 맘껏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생각을 경청하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서로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모둠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멀리 핀란드까지 안 가도 얼마든지 우리나라 교실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스템 구조의 두 번째 특징은 반(反) 직관적인(counterintuitive) 모습이다. 지수 증가를 표현하고 있는 1번, 2번, 3번 그래프를 다시 돌아가 보자. 3번 그래프를 관찰하고 있는 사람에게 1번 그래프는 직관과 다른 모습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더 다양하게 관찰될 수 있다. 그 핵심은 각기 다른 시간의 길이가 있는 피드백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각자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 좋게 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을 탓하게 된다. 남을 탓하거나 자신이 반성한다. 문제는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최종 단계에서 예상과 정반대 결과를 만나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심한 경우는 서로 잘잘못을 따지면서 싸우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시스템 구조의 문제이며 심지어 우리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원치 않은 시스템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시스템 구조가 가진 특징 때문에 학생들은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 충격에 휩싸이고 이 충격은 성찰로 이어진다. 학생들은 너무 신기해한다. 그리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후 교육은 순탄하게 진행된다.
역자가 만든 게임성찰모형에서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한 대목은 응용 단계에서 다시 성찰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다. 이 순환 고리는 브루너의 나선형 교육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똑같은 게임을 해도 학생들의 연령에 따라 성찰의 깊이와 적용하는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스템사고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미래 핵심 역량을 함양하는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교육부에서 발행한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해설서에서 핵심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교과가 기반하는 학문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나 원리를 포함하는 교과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다. 지식의 한 종류인 개념과 동의어는 아니며 교과를 가장 잘 대표하면서 교과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아이디어, 즉 빅 아이디어의 성격을 띤다.” 그리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 함양을 하기 위해서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구조화하고 협력 학습, 토의, 토론 학습 등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 브루너가 강조한 지식의 구조화다. 이런 미래 교육이 게임과 함께하는 시스템사고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한 22개의 게임은 기후 변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스템(복잡계)을 해석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짧은 게임이라도 깊은 성찰을 유도할 수 있으며 시간이 흘러 다시 했을 때 또 다른 성찰을 하게 한다. 그 사이에 학생들의 지식이 달라지고 경험이 달라졌기 때문에 성찰한 내용을 적용할 분야와 깊이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브루너식 나선형 교육 과정의 이상적인 모습을 멀리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 교육, 우리나라 교실에서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이 책이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말머리에서 밝혔듯이 역자는 전문 번역가도 아니고 평소에 번역을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이 두려운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비록 대표 역자로 혼자 이름이 등록되겠지만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기 때문에 공동 역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상충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역자가 결정할 수밖에 없었고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 또한 역자의 몫이다. 따라서, 본 번역물에 대한 과오가 있다면 온전히 역자의 한계라고 말하고 싶다. 몇 달 동안 십시일반으로 도와준 분들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 성함과 당시 소속을 아래에 밝힌다.
고재욱(인천남동초), 권순형(한국교육개발원), 김길지(더함플러스협동조합), 김다현(능동고), 김동석(김정문 알로에), 김두환 (인하대), 김민성(관인초),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김인재 (의왕부곡초), 김지광 (경희여고), 박근성 (아시아퓨처스그룹), 손명선 (가재울초), 신경일 (삼괴중), 안재정 (송내고), 유지혜 (장기고), 이다혜 (원초초), 이영이 (교육공동체 북극곰), 이윤순 (한국애니메이션고), 이윤희 (매화초), 이준범 (상천초), 이지연 (기후변화센터), 임영채 (피플스노우), 장미화 (충남서천군기후변화교육센터), 장영창 (나사렛대), 장윤석 (인공지능연구원), 전성호 (참소나무행복학교), 정동혁 (유한공고), 정애란 (광교고), 정요한 (세종고), 정철한 (Cliff Capital Partners), 조현수 (다산고), 한경희 (번역가), 한학범 (인수초), 황정혜 (KT)
이렇게 여러 사람의 공이 들어간 이 책이 작게는 우리나라 환경 교육에 귀하게 사용되었으면 좋겠고, 더 욕심을 부린다면 우리나라 시스템사고 교육에 널리 활용되었으면 한다.
2019년 7월
정창권
<그림1>
<그림2>
글감:
The methane mystery:
Scientists struggle to explain a worrying rise in atmospheric methane.
A potent greenhouse gas
- The Economist Apr 28th 2018
지구 온난화의 원인 중에서 중요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끌고 있는 메탄(methane)에 대한 내용이 이번 주 이코노미스트 지에 실렸다. 이 재미없는 기사를 중심으로 주변 지식을 덧붙여 상당부분 각색해서 쉽게 정리해 본다.
이 메탄 같은 사람아~
위와 같은 말이 나올 법도 할 것 같다. 메탄의 속성 때문이다.
메탄의 녹는 점은 영하 183도이고 끓는 점은 영하 162도다. 따라서 빙하 속에 꽁꽁 얼어 있지 않으면 기체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메탄 같은 사람은 늘 떠다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메탄(CH4)은 수소(H)가 네 개에 탄소(C) 결합한 것이다. 이산화탄소(CO2)는 산소(O) 두 개에 탄소(C) 하나가 결합한 것이니 메탄을 사(四)수소화탄소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탄소와 수소의 결함이 재미있다. 탄소와 수소의 결합 강도는 매우 강해서 산, 알칼리, 금속, 산화제, 환원제 등과는 거의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렇게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는 지조가 있으니 메탄 같은 사람은 평생 반려자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온전해 보이는 결합도 연소 반응과 치환 반응에는 속수무책이라고 하니 방심하면 그걸로 끝이다. 세상에 완벽한 결합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좋아 죽겠다고 붙어 다니는 수소와 탄소를 제3자가 쳐다볼 때는 불안해 죽을 지경이다. 외국 여행할 때 지하철에서 기차역에서 부둥켜안고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면 “Get a room”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메탄도 마찬가지다. 어디 방을 구해서 메탄이 안 보이게 묶어 두고 싶다. 왜냐하면, 지구 온실 효과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매년 인류가 뿜어내는 온실 효과 유발 물질인 이산화탄소 유사물질(carbon dioxide equivalent)은 500억 톤 정도 된다. 이 중에 70%가 이산화탄소이고 15%가 메탄가스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약 5분의 1 수준으로 대기에 있는 셈인데 온실 효과는 이산화탄소에 비교하면 25배 정도라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런데도 자연적인 메탄 발생 원인 외 인간이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발생하게 되는 원인과 그 규모에 대해서는 과학자마다 이견이 있고 이 연구에 투자가 덜 되고 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를 주제로 하는 연구가 2,000 건인 데 반해 메탄은 주제로 하는 연구는 600여 건밖에 없다고 한다. 원인을 알아야 적절한 대처가 가능할 텐데 연구가 활발하지 않아서 걱정이다.
하지만, 대기 중에 있는 메탄을 관리하는 것을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로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물질의 저장과 흐름을 욕조로 빗대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대기 중의 메탄을 욕조에 담겨있는 물로 생각하면 된다. 욕조의 물을 적정하게 관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흘러 들어오는 물과 흘러 나가는 물을 조절하면 된다.
들어오는 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 물이 어느 파이프를 통해 들어오는지를 살펴야 한다. 메탄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세 종류다. 유기물이 물속에서 부패하거나 발효할 때와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채굴하거나 수송할 때, 그리고 토양에 갇혀있던 메탄이 슬금슬금 빠져나와 대기에 바로 유입되는 경우다.
반추동물(反芻動物)이라는 말이 있다. 추(芻)를 반복(反)하는 동물이라는 뜻인데 추(芻)라는 단어는 풀을 베어 묶은 단을 손에 들고 있는 모양이 위아래 겹쳐 있는 것으로 동물들이 먹는 꼴을 의미한다. 즉, 소와 같이 위에서 오랜 시간 되새김을 반복하는 동물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새김질을 반복하면서 꼴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소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메탄이 발생한다. 소가 트림하거나 방귀를 뀔 때 메탄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간에 지구 온난화 주범으로 소의 방귀를 지적하기도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미세먼지의 발생 메커니즘을 보더라도 그렇다. (사)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학회에서는 2017년 학회 차원에서 미세먼지 연구를 벌여 ‘미세먼지는 동네 먼지’라는 연구를 선보인 바 있다. 미세먼지 발생 원인이 다양하며 각 지역의 특징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대단위 축산 사업을 하는 곳은 메탄이 미세먼지의 2차 발생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습지에서도 미생물의 분해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메탄이 발생한다. 이렇게 메탄이 발생하는 첫 번째 경우는 유기물이 분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음식물 쓰레기들을 흙과 함께 비닐봉지에 담아 지하실에 두면 같이 있는 물체는 메탄 중독을 경험하기 딱 좋다. 이런 원인 때문에 메탄 생성 미생물(methanogen)의 번식지와 원인을 중국과 인도에서 축산업의 성장으로 급증하고 있는 소와 더불어 동남아시아의 논 농사지대의 습지와 열대지역의 습지가 주목받기도 한다.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채굴하거나 수송할 때 메탄이 다량 유출되는 것 때문에 구소련 연방 시절의 낡은 천연가스 배관 시설이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낡은 천연가스 배관 시설에서 새어 나오는 메탄이 습지와 가축에서 발생하는 것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메탄 발생 원인 중에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토양에 갇혀있던 메탄이다. 툰드라 지대를 포함한 북극은 산업화 시대(19세기)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가 내뿜고 있는 이산화탄소 총량보다 2.3배가 많은 메탄을 가두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이 더워지고 있다. 그래서 묶여있던 메탄이 기살아서 도망가고 있다. 진짜 심각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를 25배나 증폭시킨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렇게 증폭시킨 온실 효과 때문에 툰드라 지역과 북극이 더욱 더워져서 더 많은 양의 메탄이 배출된다는 것이다. 즉 양성 피드백이 만들어지면서 대기 중의 메탄은 우상향 곡선을 만드는 지수 증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수도꼭지를 말할 때다. 제아무리 물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도 빠져나가는 물이 많으면 욕조의 물은 걱정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물을 빠져나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오염 물질을 없애주면서 인체에 무익한 물질,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준 축복과 같은 물질이 있다. 수산기(hydroxly radical)라는 천연 물질이다. 산화력이 매우 뛰어난 산소 음이온계 물질로 스스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다. 공기와 물 속의 오염 물질에 직접 관여하여 자신은 다시 중간물질(hydroperoxy radical, 하이드로 페록시)로 바뀌고 오염 물질을 물(H2O)과 이산화탄소(CO2)로 환원시켜 준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신의 선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줄어드는 사실은 발견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인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메탄 같은 사람아~
어떤 뜻으로 사용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