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3/12.18
안정배
국내의 컴퓨터 통신 연구는 SDN의 구축을 통해 시작되었기 때문에 연구자들도 주로 SDN의 운영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정보를 교환하였다. 컴퓨터 통신 분야의 학회나 학술대회는 국내 행사보다 국제행사가 먼저 열렸는데, 그 시초가 바로 1985년에 개최된 PCCS였다. PCCS 이후, 컴퓨터 통신 연구자들은 국내 및 아시아 지역의 연구자들과 학술대회를 개최해 통신기술을 교환했고, 이렇게 공유된 정보를 연구와 개발에 적용시킴으로써 공동의 성장환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유문화는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통신망이 연구-개발망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국내에서는 1986년 ??월 SDN Workshop이 개최되었으며, 1987년에는 정보통신연구회(현, 정보통신소사이어티)가 창립되어 하계컴퓨터통신워크샵(1987~현재)을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 SDN Workshop은 ??년부터 동계컴퓨터통신워크샵(WCCW; 1987??~??)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년에 JWCC와 통합되었다.?? 또한, 아시아 차원에서도 JWCC가 조직되어 한국과 일본에서 번갈아 개최되기 시작했고, 점차 확대돼 아시아 컴퓨터 통신 연구자들이 서로 네트워킹되는 장이 되었다.
1989년, 미국과 호주에서 기업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용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인터넷은 연구-개발 뿐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으로의 가능성도 갖게 되었다. 1990년대 초 웹(www)과 웹브라우져(MOSAIC, netscape, …)가 소개되면서 한국의 인터넷 관련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은 점차 인터넷 대중화 시대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93년 ??월, 제1회 학술전산망워크숍(KRNET)이 개최되었다. KRNET은 이후 매회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국내외 인터넷 관련 기술의 동향을 소개하고 기술 전문가들 간의 기술 교류 및 협력을 도모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인터넷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논의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대중적 행사를 겸하며 인터넷 분야 국내 최대??의 행사로 자리잡았다.
1997년 3월에는 실제 인터넷을 운용하고 있는 국내 각 학교 및 기구의 네트워크 관리자들을 중심으로 제1회 인터넷운영워크숍(WIO)이 개최되었다. WIO는 NIC, NOG, Mbone, Cache 등의 그룹으로 나뉘어 심도있는 토의가 진행되었으며, 1999년 8월에 열린 6회 WIO는 APAN-KR(Asia Pacific Advanced Network-Korea)과 함께 열려 차세대 인터넷 구축과 관련된 논의를 하기도 했다.
한편, 1991년에 조직된 학술전산망협의회 하위에 구성된 각 네트워크 실무자들의 모임인 SG-INET에서는 네이밍, 라우팅, 한글, 보안 워킹그룹 등의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며 운영하는 활동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결과 네이밍 워킹 그룹에서 KRNIC을 설립의 기초를 제공하였고, 한글 워킹그룹에서의 한글 메일 IETF 표준안을 만들었으며, 보안 워킹그룹에서의 CERT Korea를 구성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SG-INET에는 당시 망운영과 관련된 교육망, 연구망, 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충남대, 전산원, 데이콤, KT 등의 실무진들이 활발히 참여하였다.
5.1 KRNET
1990년대 초반은 세계화의 조류가 점점 확장되는 시기였다. 다자간 자유무역을 핵심으로 하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여파로 기업경영의 세계화가 불가피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국가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었다. 특히, EC, NAFTA 등의 경제블록을 형성하면서 기술보호가 심화되면서 첨단기술경쟁력 확보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었다. 선진국들은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유리한 무역협정을 맺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국은 정보통신과 같은 첨단기술을 도입하는데 한창이었다.
한편,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1990년, 하나/SDN 망의 구축 이후 이전보다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도 1987년부터 1989년 사이에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호스트)의 수가 100만 대에서 1,000만 대로 늘어나면서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량도 증가하고 있었다. 한국도 점점 많은 기관이 하나망에 가입하면서 인터넷 이용자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1990년대 초는 바야흐로 인터넷이 컴퓨터 통신망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시기였다. 주요한 계기는 1990년 개발된 웹(WWW; World Wide Web)과 1992년부터 배포되기 시작한 웹브라우져 MOSAIC였다. MOSAIC 브라우져 덕분에 사용자들은 인터넷을 보다 쉽게 사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웹의 기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인터넷은 급물살을 타게 되고, 80년대 인터넷(TCP/IP)과 프로토콜 전쟁을 벌인 OSI 개발을 주도했던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Standards and Technology; NIST)마저 1992년에는 정부기관의 행정정보시스템과 행정정보통신망에 사용된 프로토콜(GOSIP)에 TCP/IP를 추가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세계화가 속도를 내기 시작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핵심기술의 개발이 요청되던 시기에 한국 역시 인터넷 기술을 공유하고, 향후 발전의 방향을 모색하는 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KRNET의 개최목적을 보면 이러한 배경이 잘 드러난다.
행사 목적
- 인터넷 관련 최근 기술동향을 소개하고 향후 인터넷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
- 국내외 해당 기술 분야 전문가를 초빙하여 핵심기술 보급 및 인터넷 정책과 국제협력 동향분석
- 인터넷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에게 필요한 인터넷 강좌를 통한 기술 보급 및 확산
- 인터넷 응용, 네트워킹, 서비스, 보안 등 관련 기술의 중장기 발전방향 설정
- 새롭고 독창적인 인터넷 발전방향과 핵심 기술의 응용을 통한 고부가 기술 개발을 위한 토의
- 인터넷 분야의 국가 경쟁력 강화 및 세계 최고의 실질적 인터넷 강국 실현" (출처: KRnet.or.kr)
제1회 KRNET은 학술전산망협의회(ANC)와 하나망 이사회의 의장단체였던 한국통신의 공동주관(대회장: 강민호 한국통신 연구개발단장)으로 1993년 7월 7일부터 이틀??간 개최되었다. 국내 컴퓨터 통신 분야 전반을 커버하는 행사답게 주최는 국내 3대 연구-개발망이었던 교육전산망(KREN)과 연구전산망(KREONET), 하나망이 공동으로 맡았으며, 데이콤과 쌍용컴퓨터 등 당시 컴퓨터 통신 분야와 밀접했던 SI 업체들의 후원을 받았다.
[그림 .KRNET '93 표지]
제1회 KRNET의 조직위원장은 전길남이, 운영위원장은 한국통신의 송주영과 건국대 컴퓨터공학과의 한선영이 맡았다. 이 중 한선영은 프로그램위원장도 겸임했다. 송주영과 한선영은 전길남의 KAIST SALAB 제자들이었다.
특별강연으로는 카이스트 한태숙 교수가 "인터넷: 사용자의 관점에서"라는 타이틀로 실제 인터넷을 사용할 때 필요한 기초정보를 설명하고, 포항공대 이재용 교수가 "인터네트 정보, 서비스 및 도구"라는 타이틀로 인터넷 프로토콜 구조와 당시 많이 사용되던 검색엔진의 일종인 아키(Archie)와 웨이즈(WAIS), 인터넷 사용자 디렉토리 서비스인 후이즈(WHOIS), 그리고 웹 이전에 가장 널리 사용되던 인터넷 문서 검색 프로토콜인 고퍼(Gopher)와 웹(WWW)을 소개했다.
또한, 국내외 인터넷의 소개, 인터넷 자원 및 서비스, 네트워크 사용자 세션으로 나뉜 일반 세션은 전길남을 비롯해 현재까지 국내 인터넷 분야를 이끌고 있는 당시 최고의 전문가들이 발표자로 참가해 국내외 인터넷과 관련된 주요 현안과 쟁점을 소개했다.
발표 주제 및 발표자 목록;
발표 1 글로발 및 한국 인터네트
Global Networking / 전길남 교수(한국과학기술원)
한국 인터네트 현황 활동 및 조직 / 한선영 교수(건국대)
교육전산망(KREN) / 최양희 교수(서울대)
연구전산망 서비스 현황 및 발전방향 / 변옥환 실장(시스템공학연구소)
하나망 / 송주영 실장(한국통신)
PC통신과 INTERNET / 허문행 부장(한국통신)
발표 2 글로발 인터네트 자원 및 서비스
Networked Information / 박태하 연구원(한국과학기술원)
인터네트 보안 / 임채호 교수(대전실업전문대)
New Communication Services: Multimedia and New Paradigm / 허진호(삼보컴퓨터)
발표 3 네트워크 사용자
서강 네트워크에 대한 소개 / Felix M. Villarreal 소장(서울대)
삼성그룹 전산망 소개 / 이강석 박사(삼성종합기술원)
인하대 종합 정보 시스템(ITIS/NET) / 왕창종 교수(인하대)
VAN과 INTERNET 서비스 / 김태경 부장(데이콤)
제1회 KRNET 참가자는 797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일반인 276명, 교수 및 공무원이 146명, 학생이 275명, 주관단체인 한국통신 직원이 100명으로 고른 분포를 보였고, 이 중 641명(한국통신 직원 포함)이 사전등록함으로써 KRNET에 대한 당시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출처: KRNET '93 재정보고(잠정집계), 1993.7.7 박현제) 제1회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 KRNET은 매년 성황리에 열리며, 급격히 성장하는 국내 인터넷 기술을 공유하는 국내 연구자들의 이벤트로 성장해갔다. 참가자들도 점차 늘어 2000년(1,036명) 이후에는 1,000명 안팎의 참가자가 꾸준히 KRNET에 참가하였다.
또한, 국내 인터넷과 관련된 주요 단체나 기구, 기업들도 KRNET의 개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나망 이사회의 의장단체인 한국통신이 당시 국내 인터넷 조율을 담당하던 학술전산망협의회(ANC)가 초대 KRNET의 맡은 주관단체를 1994년 제2회 대회부터는 한국전산원이 주관단체를 맡았고, 1995년부터 2년간은 인터넷 신문 서비스를 시작한 조선일보가 주관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한국전산망협의회(KNC, ANC의 후속기구)의 후신인 한국인터넷협회(KRIA)가, 1998년부터는 개방형컴퓨터통신연구회(OSIA)가 주관을 맡았고, 이동통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초고속인터넷이 태동했던1998~1999년에는 SK텔레콤이 공동 주관을 맡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인터넷 관련행사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1996년에 개최된 제4회 KRNET은 그 해 개최된 인터넷 국제 엑스포를 위해 개통한 45Mbps의 T3급 국제초고속통신망 개통을 계기로 KRNET 행사장의 실황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중계되었다. 이 생중계는 국내에 도입된 인터넷 멀티캐스트 가상망(M-본)을 사용해 이루어졌으며, 국내 인터넷 연구 모임 중 하나인 인터넷 KIG M-본 워킹그룹에서 운영을 맡았다.
[인터넷 중계팀 사진, 신명기]
[그림 . KRNET '96 기간에 나온 삼성 LAN 광고]
5.2 WIO, APAN-KR, SG-INET
5.2.1 WIO/APAN-KR
KRNET이 연구자들과 전문가들 뿐 아니라 인터넷 사용자들도 함께 모일 수 있는 종합행사라면, 1997년 3월에 처음 개최된 인터넷운영워크숍(Workshops on Internet Operatino)은 인터넷을 실제 운영하는 네트워크 관리자들이 중심이 되어 네트워크 운영에 대한 기술 동향을 교류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취지에 맞게 WIO는 NIC, NOG, MBone, Cache, IRF 등으로 나뉜 분야별 워킹그룹이 각 패널토론세션을 운영하고, 각 네트워크 별로 운영상황을 공유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특히 1999년 8월에 열린 제6회 WIO는 APAN-KR(Asia Pacific Advanced Network Korea)과 공동으로 열려 APAN-KR 워킹그룹의 성과도 공유되었다. 여기에서는 APAN에서 논의된 고속망의 사례를 한국(APAN-KR)에 적용시킨 프로젝트를 비롯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에 사용될 수 있는 고속 IP 라우팅 기술, 점차 늘어나는 인터넷서비스사업자들의 현황을 반영해 그 중요성이 점차 대두되고 있던 인터넷 망간 접속(Internet eXchange) 사례(KIX, KINX), 인터넷 보안과 IPv6 등 앞선 기술적인 논의들이 대거 발표되었다.
[Editorial: WIO/APAN-KR을 다루는 포커스 재확인 필요]
5.2.2 SG-INET
SG-INET의 첫 회의는 1991년 8월 29일 OSIA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의장을 맡은 박현제(솔빛미디어)를 비롯해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의 조국행, 한근희, 서울대학교의 정병호, 김은경, KAIST의 김양욱, OSIA의 박정희가 첫 회의에 참석했다. 향후 SG-INET 계획이 공유되었고, PACCOM 워크샵과 CCIRN 참석자들의 보고가 있었다. 또한, IP 할당원칙과 국내 백본 설정을 논의하기 위한 업무분담도 이루어졌다.
SG-INET은 각 전산망의 실무자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각 네트워크 동향 및 변경에 대한 보고와 운영상의 협조가 주된 아젠다였다. 예를 들면, 해외 네트워크 라우팅 같은 것이 SG-INET의 주요 아젠다였다. 1990년 미국 NSFNet와 HANA/SDN 사이에 구축된 전용선은 위성 기지국을 통한 것이었다. 향후 증속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 이를 해저케이블인 NASA AMES로 옮겨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HANA/SDN망의 국내 게이트웨이였던 KAIST에 CISCO 사의 라우터가 설치되어야 했다. KAIST에 라우터가 언제 교체되느냐에 따라 각 전산망 운영 계획이 조정되어야 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내용이 SG-INET과 같은 모임에서 공유되어야 했던 것이다.
또한, 1991년만 해도 NIC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국내 B, C 클래스 IP 주소의 현황을 파악하는 일이나 3단계 도메인네임인 AC와 ED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대책 마련도 SG-INET에서 이루어졌다. SG-INET에서 AC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지면, 당시 ED 도메인을 교육전산망(KREN)에서 관리하고 있던 KREN에 의견을 보내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3단계 도메인 명칭을 전체이름으로 할 것이냐 영문이니셜로 할 것이냐의 원칙도 ANC에서 최종적으로 확정하기 전에 SG-INET에서 의견을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1992년 12월에는 다음 6개의 2단계 도메인네임 제정원칙이 정해지게 되었다.
2단계 도메인네임 도메인 할당기관
AC: academy KREN
CO: company research HANA
GO: GOvernment KOREONet
NM: Network Management KAIST
OR: non-profit ORganization KAIST
RE: REsearch KREONet
1994년에는 한국통신, 데이콤, 아이네트를 필두로 일반기업 및 개인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상용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기존 교육연구망 뿐 아니라 상용 인터넷의 현황 및 조율도 SG-INET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해 9월부터 KRNIC의 업무가 한국전산원으로 이관(ns.krnic.net의 IP 주소가 143.248.1.100에서 202.30.64.21로 변경)되었고, 점차 국내 망간 라우팅 정책과 망간 상호접속의 관리방법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SG-INET에서 KIX(Korea Internet eXchange)를 추진할 안을 정리하기도 했다.
대부분 20~30대였던 SG-INET의 멤버들은 KRNET, WIO 등 국내 네트워크 행사의 주요 발표자들이었으며, 전세계 네트워크 관리자들이 모이는 IETF, InterOP 등 국제워크샵의 동향을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 1992년 IETF 회의에 참석한 한근희가 5차 SG-INET에서 IETF 회의에 참가했던 경험을 보고하며, 국내의 엔지니어들도 IETF에 지속적으로 참가할 것을 촉구했고, 그 결과 SG-INET에서도 국내 실정에 맞게 워크그룹을 조직해 향후 IETF 참가를 대비하게 되었다. 이렇게 조직된 워크그룹과 각 워크그룹의 좌장은 다음과 같았다;
워크그룹 좌장
보안 임채호(SERI)
한글 최우형(KAIST)
NIS(사용자 서비스, IP 주소 할당)조국행(DACOM)
망 작동 변희수(KTRC)
PC통신 정병남(서울대)
프로토콜 박승철(??)
네이밍 박태하(KAIST)
이중 한글 워크그룹은 93년 1월부터 SG-INET으로부터 독립해 별도로 활동하게 되었고, 네이밍 워크그룹은 점차 KRNIC이라는 별도의 체계로 자리잡아갔다. 보안 워크그룹도 1995년부터 CERT코리아로 발전되었다.
[Edidtorial: SG-INET이 어떻게 소멸되었는지 언급 필요]
[SG-INET-119 "SG-INET 회원리스트]
Reference
KRNET.or.kr (Past KRnet section)
2013.1.7
문의: sec at InternetHisto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