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이란
Catholicus (라틴어) Catholic(영어)
‘일반적, 보편적’이란 뜻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유래된 말이다. 가톨릭 교회란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Ignatius) 이다. 그는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주교의 권위를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 교회가 존재하듯, 주교가 있는 그 곳에 교회 공동체가 존재한다." 여기서 사용된 '가톨릭'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지는 신앙과 사랑의 일치를 가리킨다. 그것은 곧 지역 교회간의 유대를 지칭하는 '하나인 교회'를 강조한다. 또 사도로부터 이어온다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구별되는,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전세계 가톨릭 교회와 이에 속하는 신자들을 뜻하는 공식 명칭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자이며 가톨릭(천주교) 신자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종교’라는 말의 의미
우리말의 ‘종교’는 한자로 ‘宗’과 ‘敎’의 합성어이다. ‘종’은 으뜸·기둥·근본을 뜻하며, ‘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교육(敎)의 으뜸(宗)이 곧 종교(宗敎)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종교 외에 다른 교육은 모두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고, 오직 종교만이 인생의 의미와 생명의 신비를 가르치는 기본 교육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종교 없이는 인간의 근본 문제, 즉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종교의 의미와 그리스도교
종교를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며 절대적 실재와 인간의 관계라고 정의한다면,그리스도교의 경우 절대적 실재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에서 신앙의 대상이며 인간의 궁극 목적이다. 하느님에 대한 교리를 비롯하여 성서와 성전에 근거한 믿을 교리를 교의(敎義)라고 한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종교적 행위가 종교의식(宗敎儀式)이며, 이는 주로 기도와 전례를 통해서 표현된다. 또한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즉 부르심과 응답, 소명과 책임이라는 입장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를 종교윤리(그리스도 계명)라고 한다.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에서는 우주의 신비와 인생에 관한 문제를 ‘창조주이시며 한 분이신’ 하느님이 대답해 주시고 가르쳐 주신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민족의 역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셨고 이 세상과 당신 자신을 더 분명히 가르쳐 주시려고 외아들을 보내셨는데, 이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은 외아들을 통해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고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교는 한마디로 예수가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종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전생애를 통해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예수의 삶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예수의 말씀을 믿고 그분이 직접 실천하신 대로 온 마음과 온 몸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의 믿음이 완성되고 구원된다고 그리스도교는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믿음으로써 인간은 불안과 고통과 죽음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참되고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복음(福音), 즉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재산이 되고,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정의의 힘이 되며,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된다.
기독교(基督敎)란
기독교란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표기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라 할 때는 불교·유교와 대별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파를 뜻한다. 전세계적으로 천주교를 가톨릭으로, 모든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로 통용하고 있다.
- [PD 하느님 DJ 예수님 - 바오로딸] 중에서 -
개신교와의 차이
그리스도교에는 구교와 신교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구교라든가 개신교라 하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에서 쓰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물론 하나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도 하나입니다. 그런데 현재 그리스도교는 크게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가톨릭 교회’가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전세계 그리스도 신자 대다수(8억)가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다음은 전통적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로마 교황의 지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교회’가 있습니다. 이것은 나라마다 독립 교회가 있고 그 나라의 이름으로, 예를 들어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대부분 동유럽에 퍼져 있습니다. 가톨릭과 정교를 합해서 보통 구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개신교라 불리는 ‘프로테스탄트’가 있습니다. 이 말은 ‘항의하다’라는 뜻이고, 그 이름의 유래는 역사적 사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가 생긴 것은 16세기 ‘종교 개혁’에 따른 것입니다. 지금은 크고 작은 교회를 합하여 대략 2만 정도의 서로 다른 교회가 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종류의 교회가 있고, 전세계 프로테스탄트 신자 수를 합하면 3억 정도입니다. 이상의 모든 교회는 같은 성서를 사용하고 있으나, 성서의 해석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16세기 유럽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배금사상이 만연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 구원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대사부 판매의 길을 열어주었고 교회마저도 그 본연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성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신부였던 루터가 기존의 교회에 저항(프로테스탄트)하여 새로운 교회의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기성 종교에 대한 루터의 반발로 루터 파·캘빈 파·쯔빙글린 파와 같은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개신교의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가톨릭은 모든 종교와의 대화와 일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종교(불교·유교·이슬람교 등)의 구원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확실한 구원의 지름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길입니다.
천주교에서만 믿는 연옥이란?
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 교리에는 연옥이 있어서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우리 인간 중에 어느 누가 천국에 갈 정도로 영혼이 깨끗하며, 또 선행과 하느님의 의(義)만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 장소라기 보다는 죽은 후에 선하신 하느님과 대면하기 위해 준비하는 한 과정이며, 부족하고 죄 많고 완성되지 못한 영혼이 정화되는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므로 연옥이 있다는 것은 우리 평범한 인간에겐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그리스도교의 믿음에 의하면 천국과 지옥은 한번 결정되면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러나 연옥에 있는 영혼은 자신의 보속을 이행하고 언젠가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일단 연옥에 들어가면 천국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죽은 이들)을 위하여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는?
하느님은 우리 말로는 하늘, 한자로는 천(天)의 존칭어인데, 끝없이 펼쳐진 높은 창공이 절대자를 상징하는 것은 인류 종교현상 속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이라 하고, 프로테스탄트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원래 가톨릭에서는 ‘천주님’이란 말을 써 왔는데 1971년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이 성서 공동번역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야훼를 ‘하느님’이라고 부르기로 함께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한국 고유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하느님 신앙을 수용하자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이 합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나 불교가 우상을 숭배한다고 오해하여 자신들은 다신교가 아니라 유일신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해서 하늘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애국가에서 보듯이 하느님은 절대자를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한국 교회사
천주교가 전래되기 전의 조선
천주교가 이 땅에 전래되기 전의 조선 후기(18세기 말)는 극심한 당파 싸움으로 매우 불안한 시기였다. 또한 유교의 한 갈래라 볼 수 있는 성리학이 그 당시 조선 왕조의 정치·문화·사회 전반을 이끌어 가고 있었으나 그 내부적 모순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또한 양반·중인·상민의 계급 차별이 심하여 구조적 변화를 갈망하는 움직임과 요구들이 일어났고 기근과 전염병으로 사회 병폐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성리학에 회의를 품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시대적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대안을 모색하는 실학자들이 생겼는데 그 중의 일부는 천주교를 통해 그 답을 찾고자 했다. 당시 중국에 파견된 외교사절단을 통하여 「천주실의」와 같은 천주교 교리서가 들어와 실학파와 남인계 학자들 사이에 널리 읽혔다. 처음에 천주학은 학문적 호기심으로 연구되었으나 천진암 주어사의 ‘강학회'를 통해 신앙적 실천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벽,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권철신,권일신 등은 천주교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고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이승훈을 북경에 보냈다.
교회의 창설
1784년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많은 교리서와 성서 그리고 성물을 가지고 귀국한 후 이벽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영세 입교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서울의 명례방(현재 명동 성당 자리)에서 정기적 종교 집회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것이 한국교회의 시작이다. 단 한 사람의 전교 신부도 찾아온 일이 없이 아시아의 한 왕국에 복음의 싹이 튼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천주교 교리를 받아들이고 신앙의 싹을 틔웠으며,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 오랜 박해 동안에도 신앙을 증거하고 키워 온 자랑스런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최초의 박해와 주문모 신부의 입국
초기 신자들은 명례방에 있던 교우 김범우의 집에 모여 기도하며 집회를 열고 전교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이듬해 관헌에게 발각되어 일행이 잡혀가고 교회 서적·성물·성화를 압수당했다. 이때 김범우가 유배지에서 사망하여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신앙생활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계속되는 박해에도 권철신, 정약종 등에 의해 교세는 나날이 확장되었다. 아직 성직자가 없었던 한국교회는 1786년에 북경교회를 본뜬 소위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를 만들어 2년 동안 주일 미사를 거행하고 세례·견진·고해성사를 베풀었다. 그러나 북경 주교에게 문의한 결과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자 1795년에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모셔오게 되는데, 이는 조선 교우들이 벌인 피나는 성직자 영입 운동의 결실이다. 주문모 신부의 입국으로 신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였으나 이에 위기를 느낀 조선 왕조의 탄압을 피할 수 없었다. 여회장 강완숙은 주 신부를 보호하기 위해 모진 박해와 시련을 겪었다. 그 와중에도 조선 천주교회의 전교는 계속되었다.
천주교 박해
천주교가 이 땅에서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유교의 신분제도와 천주교의 평등 사상이 빚어낸 갈등과, 천주교가 조상 제사를 거부함으로써 전통 질서와 가치관을 파괴한다는 우려를 낳았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으로는 당파 싸움에 천주교가 이용되었다. 김범우가 순교한 이후 주문모 신부의 입국으로 신자수가 1만 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던 중 순조가 즉위한 1801년 당파 싸움의 와중에 권철신, 정약종, 이승훈을 비롯한 천주교 신자 300여 명과 주문모 신부가 순교하였다.(신유박해) 1836년 모방 신부,1837년 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의 입국으로 모처럼 활기를 되찾게 된 교회는 외국인 성직자가 입국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모진 박해를 받았다. 1839년 정부는 ‘사학토치령’을 반포하고 세 명의 성직자와 정하상을 비롯한 신자 200여 명을 처형하였다.(기해박해) 철종 즉위 후 10여년 동안 박해가 뜸해지고 최양업 신부와 12명의 프랑스 신부의 노력으로 신자 수가 2만 3천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 대원군은 자신의 집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1866년에 대대적인 박해를 하였고,이 박해로 9명의 성직자와 1만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병인박해)
신자들의 신심생활
한 번의 성사를 위해 평생을 모험 속에서 조선시대는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단정하여 이를 뿌리째 뽑는 것이 나라의 정책이었으므로 천주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데는 죽음을 각오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국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믿음을 받아들였고 언제나 순교할 각오로 살았다. 신자들은 단 한 번의 성사(聖事)를 위해 평생 사제를 기다렸으며, 단 한 번의 미사 참례를 위해 수백 리 험한 산길을 걸어가 한밤중에야 비밀리에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해가 심해지면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신자들끼리 따로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 재현
이러한 교우촌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상태였지만 교우들끼리 서로 돕는 이웃 사랑이 흘러넘쳤다. 아침·저녁으로 함께 기도하고 같은 생업에 종사하며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이 마치 사도행전(2,4447;4,3237)에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를 연상케 했다. 한국 초대교회 신자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 선교사에게 교리를 배웠으며 구하기 힘든 한글 서적을 통하여 스스로 교리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생명의 양식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으로 교리를 배웠다. 이런 노력은 그들이 처해 있던 무지조차도 극복하고 하느님 말씀의 진수를 깨닫는 지혜를 터득하게 해주었다. 그러기에 그들이 믿고 따르는 교리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진리, 즉 생명의 말씀이었다.
성령의 역사
200년 전 선교사 없이 이 땅에 복음이 전래되었다는 사실과, 1801년의 큰 박해 이후 성직자가 없던 30여년 동안 신자들이 숨어 살아야 했던 어려운 처지에서도 서로 도우며 이웃에게 말씀을 전하는 데 헌신하여 교우 수를 늘리고 교회를 지켜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기적에서 우리는 교회 안에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알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무명의 순교자들
순교 선열 중에 가장 뚜렷하게 떠오르는 인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이다. 그는 가톨릭의 성인일 뿐만 아니라 일찍이 서양 문물을 배워 익힌 한국 최초의 유학생이기도 하다. 1846년 9월 16일, 한국의 수선탁덕(首先鐸德:한국인으로서 가장 먼저 신부가 됨) 김대건은 새남터 모래밭에서 망나니가 내려치는 칼날 아래 참수되었다. 서품받은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군문효수형을 받기 전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될 것이다”라고 소리 높여 자기의 믿음과 신념을 외쳤다. 우리에게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대회에서 성인으로 선포된 103위 순교자들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있다. 바로 이들이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이룩해 놓은 것이다.
[PD 하느님 DJ 예수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