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시점에서는 내가 바라던 것을 모두 이루었다.
가끔은 누군가 삶을 방황하면서 이 사이트를 본다면 그리고 나의 과거의 글을 본다면
인생은 꽤나 정신차리면 5년안에 모든것을 다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바꾸고자 하는 방법은 자신의 의지와 독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99.5%가 모를 뿐
10년이 지나도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강산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은 파도와 같다.
인연을 함부로 맺은 나의 잘못.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거라는 착각, 주변은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다를 것이라는 오만함.
나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 협소한 마음.
가끔은 내가 문제도 모르고 살았더라면 아찔 했을 순간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회사생활을 잘 했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수많은 인간관계, 스트레스,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 있지만 나는 나의 것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첫 직장을 퇴사했다.
나는 이곳에서 임원이 될 꿈을 가지고 입사를 했다.
목숨을 걸고 일도 해 보았다.
회사에게 정말 큰 이익이 될 만한 결과도 가져다 주었다.
이곳에서 결혼을 하였고 아이도 키웠다.
나의 30대를 채워준 회사, 고마웠다. 안녕~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라'.
그런데 지혜로운 방법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6개월 전부터 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종교인이 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아마 내가 답을 찾지 못한 것은 지혜라는 것은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아닌 '학습'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2021년 3월 31일에 적은 글처럼 나는 평생을 나의 내적 신념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온 것은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었다.
내가 신념이 있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것이고 타인이 틀렸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상대방을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는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유연함', '절대적인 것은 없다', 'maybe'
이게 끝이다.
2021년의 나의 목표였다
나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직업적인 변화에 꽤 힘을 쏟아 볼 생각이다.
아이에게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 하나는 21년 4월에 작성한 글의 내용 이고, 두 번째 위기는 이모님 이었다.
애 엄마가 산후조리과정에서 만난 분이었는데 이분과 인연이 닿아 아이를 계속 키워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분은 전반적으로 조심성이 없고 다른 일 (보험)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나와 엄마와의 대화를 흘려듣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어서 사람을 바꾸기로 했다.
새로 오신 이모님이 오기 까지 약 1달 간의 시간에 사고가 났다.
장모님이랑 같이 이야기를 하느라고 15분간 아이를 방안에 두었고 그 사이 아이가 약 15cm높이 침대에서 떨어졌다.
다행이 아이에게는 별 일이 없었지만 마음속에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그분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를 위해 서가 아니었고 단지 나에게 밥을 해줬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분이 밥을 안 해주면서 아이에게 하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오로지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 사건이 사실 인간 관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아이를 위한다고 했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선택을 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직업적인 변화는 계속 진행 하고 있다.
나의 직접적인 직업에 대한 변화를 시도했으며 나의 간접적인 직업에 대한 재 생산도 노력도 하고 있다.
처음 시도한 것은 공학쪽에서 금융쪽으로 이동하고자 했다.
역시 사람은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다방면으로 시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나를 뽑을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
계약직은 아무리 거창한 이름을 붙여도 계약직이라는 것.
직급이 올라갈수록 인간 관계와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직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속에 무엇이 필요한지 반드시 생각해 보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을 위해 움직이면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순히 좋아 보이는 곳으로 가면 적응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남들보다 배는 노력해야 했는데 배로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과실만 먹고자 하는 것의 마음의 욕심을 바꿨다.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기여하고 만들어 나갈 인생을 그렸다.
길을 걸어가면서 억지가 아닌 것으로 채우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직접적인 직업이 되면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간접적인 직업을 통해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2021년에는 금융 계열 쪽에 2군데 회사에 합격했지만 가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인생을 '나'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겪는 기분이 있다.
하나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살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나를 보는 만큼 타인을 더 깊게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2년의 나의 목표를 만들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이를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현재 변화하고 있는 직업을 통해 내가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할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변화하는 직업을 통해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이끌어 보는 행동의 시작 점을 찾아 보는 것이다.
블로그의 글을 최소 100개를 작성하는 것이다. (현재 50개)
3년 동안 붙잡고 있던 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한 종목의 고집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는다.
어린시절 부터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목적을 가지고 (주입받아) 살아왔다.
부모님 세대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고 자녀에게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노력 하였다.
내 세대는 모두가 대학을 가고나니 국내보다 해외 대학을 나온 사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고 그중 일부는 해외 대학을 갈 수 있도록 노력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대학을 나오니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지를 수 있었고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였다.
이제 박사는 한해 15000명씩 배출되며 좋은 일자리를 제공받지 못하는 박사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전공을 해도 좋은 전공을 해야 한다면서 인공지능, 클라우드의 학위를 가진 사람들 위주로 인력 재배치가 일어났다.
얼마 전에는 학위보다 실력이 중요하다면서 IT개발자의 가치가 상승하며 코딩을 능숙하게 다를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학업을 하는 사람보다 농업의 기술을 능숙하게 다룰줄 알고 한글보다 한자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농업보다 많은 지식의 양을 가진 사람, 한글보다 영어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강물을 따라 살아가다 보니 강줄기가 궁금했다. 옆에 물에게 물어보니 왜 강을 따라 가는지 모르더라.
바로 윗물을 보고 왜 강물을 따라 살아가나 물어보니 모르더라. 물들에게 물어물어 몸을 옮기기를 십년 강줄기를 따라 강위로 올라가니 강물을 만드는 물을 만났다.
강물을 만드는 물에게 왜 강줄기를 만드는지 물어보니 자신의 맡은 바를 다할 뿐이었다.
산 꼭대기서 하늘을 쳐다 보았다. 나는 더이상 비는 왜 내릴까 하늘에게 물으러 가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과거 뿐 아니라 지금도 의사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중 하나다.
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의 내면적인 목적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의사 또는 의료계의 직업은 돈을 벌기위해서 진로를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살려내고자 하는 이타성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대'라는 것 하나로 이성을 꼬시고 돈을 벌 궁리만 생각하던 사람이 생각난다. 과잉 진료를 통해 필요 이상의 검사를 하던 병원들이 생각난다.
그 사람들은 환자가 아픈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돈을 뽑아내고 문제가 생기면 상위 병원으로 책임을 넘겨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과연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을까? 오히려 평생 시간동안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딸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책임자인 담당 소아과 의사는 자기가 뭘 하는지 몰랐다.
신생아실 간호사는 가이드에 적혀진 반복된 행동만을 했다. 밥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리고 질문에 대한 적당한 처세
사업가인 조리원 원장은 괜히 부모가 아이 데리고 병원갔다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매출이 중지될까 두려워 지켜 보자고만 한다.
그 중 셋 중에서 공학자인 나보다 머리가 나빠 보이는 의사의 멍청함이 모든 사건의 시작과 결론이었다.
순간 머리통을 휘갈기는 충격은 아이는 부모인 내가 아니라면 지켜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 두번째로 질이 나쁜 사람을 만난다면 직업의 사명
보다는 일의 관점으로 책임을 쉽게 넘겨버린다는 것이었다.
책임감 있는 사람,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위험한 것을 하지 않는 사람, 적어도 각자의 직업에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속성을 참 좋아했다. 다른 말로 의리나 아니면 지조 외부의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굳게 지키는 그런 문장과 단어들을 좋아했다.
사람을 만나도 쉽게 변하거나 유행을 찾는 사람보다 듬직하고 변화하지 않는 사람을 더 좋아했다.
지금 순간도 사실 그것을 추구하는 가치가 크게 변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사실은 나 역시도 그런것을 추구했으니 내면적으로는 나보다 어떤점에서는 낫다는 이유로 만남을 지속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인간은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분명 이타적인 사람들도 있다 비율이 적을 뿐) 사실은 높은 확률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만 하며 살았을 뿐이었다.
내가 성장을 하면서 나의 때로는 우매함과 나의 어리석음에 관계를 유지했던 여러 것들을 정리한 적이 있다.
와이프나 회사 동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굉장히 차갑다고 하지만 수없이 당해 무의식의 내가 변화가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
반대로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음에도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보답한 적이 없는 경우가 있었다.
군시절, 2분대 김우* 병장님은 나와 동갑내기 선임 (빠른년생) 으로 내가 군생활에 적응을 못할 때 나를 편안하게 해준 선임이었다. 중국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나에게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굉장히 정도 많고 동갑이지만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동기 슬기이외에 나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임은 분명하다.
나는 이분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역을 하고 이사람을 찾지 않았다. 학고 수준의 학점에 대학에 복학하자니 내 인생이 너무 참담했었고
내 미래에 대한 고민에 가득 찬 생각으로 입대한 군대와 그 군대 생활이 너무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지만 군대를 피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분을 찾을 생각이다. 사실 미안하다고 감사하다고 말은 하고 싶은데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아 글로 나의 위안을 삼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연락해주길 바라는 눈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고 있고 금연은 성공적으로 진행 하고 있다. 과거의 나의 2020년 새해 목표를 달성했다. 다만 그 중 회사와 관련하여 얻은것과 잃은 것이 있다.
얻은 것은 정말 만나기 어려운 인성적으로나 실력적으로나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일을 해 볼 수 있었다는 것, 잃은 것은 열정이다.
회사는 다닐수록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긴다. 모름지기 이러한 감정 (또는 경험)은 학교에 갖혀 살아본 사람들이 알기는 어려운 것들로 가득 차있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괴롭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로 되어 있다. 10년 20년 다닌 선배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다. 그런데 그들은 인내하고 이겨내는 것을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나는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외 직업적인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것은 인생에서 가지기 어려운, 특히 자산 측면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달성했다.
2021년에는 나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나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직업적인 변화에 꽤 힘을 쏟아 볼 생각이다.
회사에 처음 입사 하려는 시절 전후로 구본 회장, 동생 구본, 안승 사장, 회장님을 모시는 분들 그리고 내가 입사하고자 하는 센터장 손보 전무, 밑에 실장 최승 전무 이렇게 만났다. 그중 딱 두분이 기억에 남는데 구회장과 손전무 였다.
구본 회장 이분은 기사에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괜찮았다. 말을 할때 살짝 이 사람이 재벌인가 싶을 정도였다. 지적으로 품격이 나타난다기 보다 허술함이 너무 많았다. 첫마디를 들으면 고등시절 반에서 왕따 당하는 친구 같은 느낌이다. 돌아가실때 장례 방법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러실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좋은 분들이 옆에 있었다면 조금 더 좋은 그룹이 되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다.
동생분은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오히려 군대 스타일로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베풀거 같은 사람이었다. 내 손을 잡고 흔들면서 너 뭐야 이럴때 이분은 그냥 반말하면 더 아껴줄듯 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분들을 보좌하는 분들은 자부심이 꽤나 있었다. 오히려 더 젠틀하고 예의만큼은 최고이신 분들이었다. 남자 분들이었는데 말은 이영애, 한지민, 감사랑등의 이미지에 아주 강력한 여자 연예인 같이 말을 하던게 꽤 놀라웠다. 우아하게 말을 한다고 해야 하나? 역시 왕을 모시는 사람들이라 다른가 싶었지만 아무도 직언을 하지 않았을 듯 하다.
안승 사장은 즐기는 사람이었다. 이후 3번정도 더 밥을 먹었는데 건물주 아들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적어도 예절에 대한 좋은 팁을 알려 주었다.
손보 전무 이분은 꽤 나에게 인상 깊었다. 노력해서 올라온 느낌, 실력이 있을거 같은 느낌. 최소한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말을 하던것이 인상 깊었던 거 같다. 내가 이분을 기억하는 이유는 적어도 신입사원인 나에게 자녀에게만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 해 주었다. 이상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내가 꽤 충격받았던 것은 아무도 이런 사실을 이야기 해 준 적이 없었을 뿐더러 너무나도 궁금했던 기로의 선택에 대한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보문고의 외국 임원의 성공 신화나 삼성 임원의 책을 읽어도 이런 답은 없었다.
난 그 답이 좋았다. 허무맹랑한 소리가 전혀 아니었다. 들으면 뻔한 이야기겠지만 수십년 경쟁해서 그자리에 오른 농축된 직언을 듣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1. 나의 지식을 공유하고 공유받을 수 있는 정기 모임을 참여 한다.
-> 약 8개월 가량 열심히 하였고 남은 기간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첫 해 시작에 방출 당했다. 열심히 하지 않은 이유는 공부의 모임보다 모임 장의 조직 관리, 자기만족,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느낌이 강했다. 직업이 기자라서 그런지 적어도 대중 현혹, 관리, 적절한 타이밍에 자기 어필 하는 능력은 꽤 좋았던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조직 관리에 조금 빠져든 경향이 보였는데 매 순간 너무 단기적인 것과 자극적인 것만 따라 가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맞지는 않았던 거 같다. 어찌 되었든 적어도 공부가 목적인 곳에서 사람들을 정리한다는 신박한 개념을 배웠고 이 모임에서는 안진회계법인에 다니는 동생 한명을 건졌다. 나는 이 모임을 가지 않았어도 책은 계속 읽었다. 목표를 달성했다. 번외로 고전 문학 스터디는 모임이 사라진 이후로 읽지는 않았다.
2. 2018년 내내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 운동을 다시 시작 했고 10월 경부터 더이상 하지 않았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술을 많이 마셨으며 건강이 나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으레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더 컸던거 같다. 매번 하던 운동을 계속 했고 30분~40분 가량 많이 먹은 날은 러닝 머신을, 적게 먹은 날은 웨이트 위주로 했다. 프로젝트를 바꾸면서 다시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딱히 건강이 나빠서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인 듯 하다. 목표는 70%정도 달성한 거 같다.
3. 2020년에 독립한다.
-> 나는 내가 결혼은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독립적인 주체로 남은 인생과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경제 설계를 변경 했었다. 부모님 덕에 거주에 대한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곳에 눈을 뜨고 투자를 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2020년에는 독립이 어렵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아내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소개해준 K누님 너무 고맙다. 목표를 달성했다.
2020년의 목표는 아래와 같다.
1. 결혼
-> 천재 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무난히 할 수 있을 듯 하지만 1순위 목표로 두었다.
2. 80% 금연
-> 지금도 많이 피지는 않는데 서서히 끊거나 아주 많이 줄일 예정이다. 2년정도 끊어 본 경험으로 쉽지는 않을 듯 한데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다.
3. 회사
-> 올해가 지나면 회사 5년차가 된다. 다시 속는척 열심히 할까 했는데 역시나 괜히 했나 싶다. 상반기 정도 까지 지켜 보고 이 부분은 다시 생각해도 될 듯 하다.
최근 전공을 Computer Science로 바꿨다.
세상에 무한한 것, 영원한 것은 없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었는데 1년 못살면 그냥 바보되는게 너무나도 억울하다.
그리고 안다. 지금 에이스 소리 들어도 1년뒤 못살면 그냥 바보된다는 걸.
내가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냐는 것이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보여주는 성과를 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삶의 의미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했고 수련했지만 막상 내앞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자존심이 매우 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그래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반박할 수 없는것이 나는 실제로 일보다 내 삶의 행복을 선택했다.
그런데 실상은 이렇다. 일을 선택하면 보상이 없고 내 삶을 선택하자니 이런 소리 듣는 내 자존심이 상한다.
부양 가족이 있었으면 고개 숙였을텐데 꼴에 미혼에 잃을것도 없으니 열받아서 소심하게 되받아쳤다.
부서이동을 통해 자존감은 찾았지만 확실히 4년 다녀보니 LG는 좋은 회사는 아닌 듯 하다. 연수등을 통해 사람들과 이야기 해 본 결과 LG그룹 전체가 비슷한 분위기다.
이 그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보상 체계인데 내가 4년동안 다니면서 내 기준으로 주변 에이스들이 생각보다 인센티브 (연봉, 성과급, 승진)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다.
에이스라 함은 겉보기에 서울 유명대 교수가 가능할 수준의 학벌을 가진자 또는 직접적으로 느낀 연구소 단위의 큰 성과를 낸 사람정도로 정의 할 수 있다.
그러면 반대로 대외 이미지처럼 사람을 자르지 않는다는 고용 안정성에 대한 보장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회사에 충성을 안하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럼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다닐 이유는 전혀 없는데 자존심을 굽혀가며 아직 다닐 이유는 있다. 그냥 푸념이다. 시부랄..
살다 보며 돌이켜 보며 사실 내 인생을 가장 신경 써 준 사람은 2촌 가족 밖에 없었다.
수많은 친구들 보다 형과 엄마만 내 편을 들어 줬다. 아빠는 항상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그렇게 경쟁했으며
무엇을 얻기 위해 남과 비교하면서 살았을까
오늘도 내가 내뱉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세계 고전문학 스터디에 참여 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 제일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해보고자 한다.
내가 LG전자에 다닌다는 것에 감사히 느낄 때가 있다. 정확히는 내 부서에 있는 것이 감사하다.
내 의사표현이 상위 레벨 임원과, 사업부에 전달될 수 있으며 의사 결정권자들의 이야기를 거의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부서에 있다. 즉, 내 말이 논리적이면 내 의사가 전달된다.
두번째로 소비된다는 느낌이 아예 없다. 돈받고 공부하는 느낌이다. 더 똑똑해지고 더 시야가 넓어진다.
전 부서에서는 사람들의 질도 굉장히 낮았지만 이곳은 오히려 지능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시간이 생기고 내 삶을 돌아보고,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듯 하다.
물론 때가 되면 이런 것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유머를 배우는 방법이 있을까?
1. 나의 지식을 공유하고 공유받을 수 있는 정기 모임을 참여 한다.
-> 부동산 스터디 현재 진행 중에 있다. 2주에 책 한권을 읽고 논의를 하고 있으며 한번도 빠짐없이 참여 하고 있다.
2. 2018년 내내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군시절에 만든 몸이 기억을 하는지 2~3개월 하니 금방 다시 폼이 돌아 왔다.
3. 2020년에 독립한다.
->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운영하는 투자를 멈추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은 나에게 격동기였고 많은 것을 시도해 본 해라고 할 수 있다.
결과는 경험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고 행위 자체에 대한 좋은 성과는 없었다.
2019년에는 새로운 다짐으로 목표 달성을 해보려고 한다.
1. 나의 지식을 공유하고 공유받을 수 있는 정기 모임을 참여 한다.
2. 2018년 내내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3. 2020년에 독립한다.
한 해가 마무리 되었다.
올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부분의 선택의 기로에서 99%로 판단과 결정을 나의 의지로 행동 했다.
스스로 꼿곳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온건히 나의 선택과 책임, 결과임을 느꼈다.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친구들이 TWICE, 레드벨벳, 여자친구, 블랙핑크 소개해 줬다.
삼촌 팬이 되어 버렸지만 JYP 주가가 치솟은 이유를 찾을 근거나 너무나도 많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박진영, 양현석, 이수만등 엔터테이먼트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이익 창출을 위해 사람을 뽑을 때 자신의 주관적 철학을 반영하게 되는데
양현석 같은 경우는 사업성이 강한 친구만 뽑는 반면
박진영 같은 경우는 스타성이 강해도 인간성이 안되면 그 친구를 뽑지 않는다.
아는형님을 먼저 보게 되어 세뇌 당한 것도 있지만
사나, 미나, 나연이의 팬이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미래, 국내 사람들의 삶, 심리학 등 모든 전 분야에 대한 서적, 회사 세미나, 사람들 모임, 국제 국내 리포트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80년대생 세대는 50:50으로 행복과 불행 중 불행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고 판단한다.
워커힐 호텔에는 작은 서점이 있다.
서울에 중심부터 남동 북동쪽 교보문고, 반디엔 루니스를 다 가보긴 했는데 전반적으로 책을 공짜로 읽으려면 서서 봐야 한다.
이곳은 차를 타고 가지 않으면 가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이 없고 조용하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다. 주차도 4시간 무료니 넉넉하게 한권 읽기 딱 좋다.
마블같은 만화책도 있고 제법 읽을만한 걸 볼 수 있다. 호텔에서 3시정도면 라이브 피아노 연주도 덤으로 들을 수 있다.
다만 책을 읽으러 오기엔 자리가 조금 불편하고 조명이 어둡다. 서점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신간은 없다.
혹시 책을 읽으면서 힐링이 필요한 사람은 이곳에 가보길 추천한다. 단돈 만원에 호텔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멋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을 느끼면서 책을 볼 수 있으니까.
회사 추계행사로 건대 롯데백화점 10층에 있는 몬스터 VR이란 곳에 갔다.
VR을 쓰고 다양한 테마 (롤러코스터, 총싸움 등)를 즐길 수 있는 놀이동산 형태의 사업 모델 이었다.
자유이용권을 끊었고 사람이 없어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전반적인 느낌은 이랬다.
1. 너무 어지러웠다. 약 절반의 인원이 계속해서 메스꺼움을 호소해서 다 탈 수 없었다.
2. 해상도가 너무 떨어졌다. 몰입도가 너무 부족했다.
특히 1번 때문에 한, 두개만 타도 머리가 아프고 하루 종일 속이 울렁거렸다. 그나마 총게임, 큐브라는 방에 들어가서 상자옮기기/문열기 하는 정적인 게임이 괜찮았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대부분은 목표와 목적이 정확했다. 목적은 내 삶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내 자신을 위험하게 처하거나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의 삶은 살아본 적이 없었다.
단기적인 쾌락을 즐기는 것이 내 삶에 사실 큰 위험 요소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이 예측 가능한 범위내에서 정착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목적이 사라진 이후...
삶의 중심점이 없어지고 별것도 아닌 환경에 내가 갈대처럼 휘둘리기 시작했다.
특히나 내 가치를 후려치는 행동을 한다던가 사람을 일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는 등 아주 위험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
그런짓 하고 다니는걸 인지만 하고 있는게 어디냐...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고치기도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