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시작한 이 일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영학을 공부한 저에게는 전혀 모르는 낯선 길이었습니다. 오직 혼자 힘으로 연구 개발, 특허 출원, 필요한 실험 등의 모든 업무를 수행하며 겪은 어려움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 찾은 곳이 죽산 순교성지이고 이 곳에서 순교자들의 이름과 사연을 읽으면서 기운을 차리고 버텼습니다.
죽산 순교성지 소개
(사진: 2025년 10월 31일 촬영) 죽산은 조선 시대 이미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순교자가 주님을 증거하며 생명을 바친 순교성지입니다. 현재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해도 24명이나 됩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많은 순교자들이 죽산 도호부에서 심문을 받고 모진 매와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주님을 증거하며 사형장으로 끌려가 순교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병인박해의 여파로 1968년 9월 28일 이곳에서 순교한 박경진 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 부부는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병인박해 이후 이곳에 공소가 설립되기 2년 전인 1932년까지 무려 70여 년 동안 신자 공동체의 형성이 전혀 없었음은 그 당시 박해의 참상과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이처럼 거룩한 순교터에 변변한 기념비 하나 없어 안타까워하던 죽산 성당 신자들은 포도를 팔아 모은 돈으로 죽산 도호부와는 약간 떨어져 있으나 잊은터로 불리며 처형지로 사용되었던 곳의 땅을 확보하여 성지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죽산 순교성지는 개발 단계부터 가톨릭교회의 성체 · 성모 · 순교자 신심을 고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풍스런 돌담으로 둘러싸인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순교자 묘역까지 가장자리로 묵주기도 길이 있고, 묘역 가운데 무명 순교자 묘를 중심으로 양쪽에 병인박해 순교자 묘 24기와 순교자 현양탑이 날개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묘역 뒤로는 십자가상과 십자가의 길, 소성당 그리고 옆에 대성당을 마련하여 2000년 9월 3일 최덕기 주교의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2016년 9월 28일에는 죽산 순교성지에서 3.5km 거리에 있는 죽산면사무소 입구 쪽에 조성한 ‘죽산 도호부 옥사 순교성지’ 선포 및 축복식을 거행했습니다.
2025년 10월 31일, 아내와 다시 찾아왔습니다.
2021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홈페이지를 마무리하기 위해, 저의 홈페이지에 순교하신 분들의 사연을 소개하기 위해, 2025년 10월 31일 아내와 찾아와 순교자의 무덤과 사연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무명순교자
이름이 남겨지지 않은 무명의 순교자들의 묘. "눈물로 씨 뿌린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이다.(시편 126:5)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복자 박경진 프란치스코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복자 오 마르가리타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문 막달레나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최제근 안드레아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방 데레사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여기중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여정문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여정문의 아내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여정문의 자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이희서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홍천애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이진오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정덕구 야고보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조치명 타대오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김 우보로시나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최성첨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최성첨 아들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한방치거(치수)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홍치수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정도마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금 데레사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김 도미니코
순교자 유 베드로
순교자 김인원
순교자 유 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