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개발은 비즈니스다
우주개발은 비즈니스다
한겨레21|기사입력 2008-02-29 18:06
[한겨레] 로켓·위성 산업을 상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일본
▣ 쓰쿠바·다네가시마·오사카(일본)=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鹿兒島)현 남쪽 바다에 다네가시마(種子島)라는 섬이 있다. 섬 동쪽 끝으로 차를 달리면 바닷가에 우뚝 솟은 몇 개의 로켓발사대가 눈에 들어온다. 공항부터 식당들까지 섬 곳곳에는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로켓이 발사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내걸려 있다. 다네가시마는 ‘우주강국 일본’의 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주센터(로켓발사장)이다. 1968년 이곳에서 처음으로 로켓이 발사됐는데, 일본의 우주산업이 시작된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인 지난해 9월, 일본 최초의 달 탐사위성 ‘가구야’가 H-2A 로켓 13호에 실려 발사되면서 다네가시마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NHK가 방송하는 ‘달에서 본 지구’
2월14일 방문한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는 H-2A 로켓에 대한 정밀점검이 한창이었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오시마 홍보실장은 “위성을 실은 로켓이 발사되는 날이면 사람들이 꽉 찰 정도로 붐빈다”며 “당초 내일 초고속 인터넷 위성 윈즈(WINDS)를 탑재한 로켓을 발사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이상이 발견돼 발사가 연기됐다”고 말했다. 우주로켓은 한번 발사하는 데 약 110억엔이 투입된다. 총 8.64㎢ 터에 건설된 이곳 우주센터는 중·대형 H-2A 로켓발사대, 옛 소형 로켓발사대, 통제실, 1·2차 로켓 테스트 및 수리조립 빌딩, 위성영상·데이터관측소, 우주박물관 등을 갖추고 있다. 로켓발사체의 경우 일본은 이미 우주강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다. 1970년 첫 인공위성 ‘오스미’를 미국의 로켓에 실어 발사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1994년 순수 국산 액체연료추진 우주발사체인 소형 H-2 로켓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2001년에 대형 액체추진 H-2A 로켓을 쏘아올렸다.
문부과학성의 다카유키 우주국제협력기획관은 “더 큰 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해 현재 H-2B 로켓을 개발 중”이라며 “가구야 위성이 우주 궤도를 돌면서 보내온, 달 표면 너머로 떠 있는 지구 모습이 〈NHK〉 프로그램으로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 우주기술의 획기적인 진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가구야를 필두로 본격적인 달 탐사에 나선 일본은 △정지위성궤도에 거대한 태양전지를 띄워 우주태양광 발전에너지를 지상에 전송하는 시스템 구축 △온실효과 가스관측 기술위성(GOSAT) 발사 △2025년 달 기지 완공을 우주개발 로드맵으로 제시하고 있다.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사옥 로비에는 H-2A 로켓의 본체 일부를 전시해놓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우주기기부 아사다 부장은 “로켓발사 서비스도 비즈니스”라며 “세계적으로 민간 상업위성이 1년에 20기 정도 발사되는데, 유럽의 아리안스페이스가 10개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업체가 각각 5개씩 맡아 발사하고 있다”며 “일본의 로켓발사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한국의 위성발사를 포함해 매년 1∼2기씩 외국 위성을 일본 로켓에 실어 대신 발사해주는 서비스를 수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구야 달 탐사선 발사를 통해 일본의 우주개발 능력이 입증됐으므로 이제 발사 서비스 대행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군사 목적의 발사 수요가 많아서 상업용 발사 서비스에는 손대지 않고 있다. 아사다 부장은 “일본의 로켓 제작 관련 납품업체만 2천여 개에 이른다. 일본의 경우 로켓 부문에서는 더 이상 새 기술이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로켓을 우주에 쏘아올리는 기술은 가능한 지점까지 거의 도달했다. 이제는 미국·유럽 업체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의 로켓·위성 산업은 상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칫솔부터 로켓개발까지’, 젊은이를 부르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보여주듯 일본에서는 우주개발 산업에 민간기업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우주개발을 ‘산업’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로켓 제작·발사는 미쓰비시중공업이 맡고 있는 반면, 위성 제작에는 중소기업들이 활약하고 있다. 2월15일 찾아간 오사카 동부에 있는 오사카우주개발협동조합(SOHLA). 2002년에 설립된 이곳은 우주개발 관련 산업·대학·정부기관이 모여 있는 조합으로, 오사카 동부지역의 13개 중소기업이 SOHLA-1·SOHLA-2 등 다목적 소형위성 개발·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SOHLA의 도모코 실장은 “일본이 1990년대 거품경제에 들어서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고 젊은 인력들이 이곳을 떠났다. 그래서 지역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첨단 소형 인공위성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당시 지역경제에 숨통을 트고, 젊은이들이 돌아오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칫솔부터 로켓 개발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고 말했다. 경제가 활력을 잃은 시대에 일본 젊은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기 위해 위성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부응해 고이즈미 전 총리는 두 번이나 이곳을 방문해 중소기업 지원을 약속했고, 경제산업성 산하의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가 SOHLA 프로젝트에 5년간 7억엔을 지원했다.
이곳 중소기업들은 위성 제작 관련 전문 기술을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도모코 실장은 “도쿄대 등 5개 대학이 공동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일본의 로봇 기술과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인공위성 제작이 서로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현재 지구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은 5천∼6천여 개인데, 그동안 정부와 대기업이 위성을 제작해왔으나 2002년부터 중소기업들이 소형 위성을 특화해 제작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형 위성은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설계 당시와 달리 제작이 완료됐을 때는 더 이상 첨단 위성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대형 인공위성은 제작에 5∼10년이 걸리고 비용이 30억∼700억엔 정도 드는 반면, 소형으로 만들면 1.5∼5년 안에 4억∼10억엔으로 제작할 수 있다. 인공위성 경량화와 내구성 확보를 통해 외국으로부터 위성 제작을 수주한다는 게 SOHLA의 목표다. 올해 SOHLA-1 위성이 H-2A 로켓에 실려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외국 민간기업에서 소형위성 제작 주문이 많이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 사업과 우주실험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는 국제우주정거장에 결합할 일본 첫 유인 우주실험동 ‘키보’(KIBO) 제작(약 2조8600억원 투자)을 끝내고, 현재 미국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 키보는 미국·러시아·유럽에 이어 네 번째로 설치하는 국제우주정거장 실험동으로, 직경 약 4.4m·길이 11.2m· 무게 22.5t에 달한다. 이 거대한 원통 실험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우주실험동이다. 이 실험동 안에서 4명의 우주비행사가 동시에 활동할 수 있는데, 일본 탑승 우주인들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이곳에 머물며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키보는 오는 3·4월 우주왕복선에 실려 우주정거장에 결합된다.
우주실험동에서 4명이 동시에 활동
일본은 또 내년 여름에 일본의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우주화물운반선(HTV)에 우주식량과 실험도구를 실어 우주정거장에 보내고, 이미 사용한 장비·의류 등 폐기물을 실어 돌아올 예정이다. 키보를 직접 제작한 곳은 도쿄 근처 쓰쿠바 과학산업단지에 있는 우주센터 연구실이다. 이곳의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다나카 부장은 “키보에서 각종 과학실험과 의료 응용연구 등을 하게 된다”며 “우주 무중력 상태에서 좋은 단백질 결정체나 합금 반도체,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새로운 약품을 만들고, 고성능 레이저와 새로운 나노 물질을 개발해 지구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에서의 실험 결과를 상업적으로 제품화할 것이란 얘기다. 다나카 부장은 “일본과 한국이 2006년에 우주 분야 협력에 대한 합의서를 교환했는데,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일본이 한국 탑승 우주인에게 몇 가지 실험장비를 지원해주고 키보 실험동에서 일정 기간 공동 우주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우주개발 관련 정부 부처들과 연구기관이 한데 모인 문부과학성 산하 ‘우주개발위원회’에서 10년마다 장기 우주개발 전략을 짜고 있다. 우주개발위원회 마쓰오 위원장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우주공간을 활용해 생활공간을 확보하고,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이 일본의 우주개발 3대 목표다. 많은 사람들이 ‘미지 영역에 대한 도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고 말했다. 일본은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 재난관리 지원 시스템인 ‘센티널 아시아’(Sentinel Asia)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각국의 위성을 서로 연결해 화산 폭발, 지진·산불·홍수·쓰나미 발생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재난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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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를 보라”
일본 최초 우주비행사이자 두 번 우주를 갔다 온 모리 마모루 일본과학미래관 관장
<한겨레21>은 2월13일, 도쿄에서 일본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모리 마모루(57) 일본과학미래관 관장을 인터뷰했다. 모리 관장은 1992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우주왕복선 인데버호에 승선해 우주를 여행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8명의 우주비행사를 배출했다.
한국인 첫 우주비행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얼마 전 고산씨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우주비행사로서 의식도 높고 활동적이라 기대가 크다. 내 경험상 우주에 가는 것보다는 갔다 온 뒤에 더 바쁠 것이다. 나는 그동안 일본 젊은이들에게 우주 강연회를 100번 이상 진행했다. 이번 한 번의 우주비행 축제로 끝나면 안 된다. 고산씨가 우주에 다녀온 뒤로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면서 고산씨가 일본 우주인들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또 우주과학기술과 연계해 우주산업에서 한·일 협력기반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두 번 우주에 가서 어떤 실험을 했나?
= 한 번은 무중력 상태에서 몇 가지 원소를 사용해 새로운 반도체를 제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5가지 실험을 해서 질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인류 생명의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도 했는데, 아프리카의 빨간손톱개구리를 우주에 가져가 부화하는 데 성공했다. 무중력 상태에서도 생물 탄생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두 번째 갔을 때는 지구의 3차원 정밀지도 제작 실험을 했다.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구글 위성지도는 2000년 당시 우리가 우주실험에 성공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3차원 정밀지도는 홍수가 났을 때 물이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또 화산 폭발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를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나?
= 일본인 처음으로 우주에 갔을 때 미국·유럽 사람이 지구를 보는 시각과 내가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이번 한국 우주인은 여러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하므로 부담이 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우주에 간다는 걸 가장 중요한 미션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기술적 측면에서 실험의 성공 또는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라는 관점에서 지구를 보면 좋을 것이다. 따뜻한 시각으로 지구를 보고, 지구가 진짜 아름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해줬으면 한다. 지구는 작은 존재이고, 우주정거장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9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시베리아와 중국·한반도와 일본은 모여 사는 한동네일 뿐이다. 인류는 모두 작은 동네에서 공기와 물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지금 지구는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 문제를 생각하고, 우주에 다녀온 뒤 이 점을 기업체에 설명해 동의를 얻는 일에 나서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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