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생태텃밭협동조합 이사장)
도시농업의 공익적 가치 중에서 공동체형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두레와 품앗이라는 협력을 바탕으로 한 전통 농경 문화는 마을공동체의 핵심 기반이었고, 많은 이들은 농사를 함께하면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거나 복원될 것이라 기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공공영역에서 운영되는 공공주말농장은 높은 경쟁률, 1년이 되지 않는 짧은 경작 기간, 개인별 점유 방식, 교류와 협력 프로그램의 부재 등으로 인해 수확물에 집착하는 소유 중심의 경쟁적 개인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공동체 형성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도시농업 속에서 공동체 운동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은 주로 도시농업단체들이 운영하는 공동체 텃밭입니다. 이곳에서는 공동체형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통해 공동체 운동의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력, 시설과 규모, 운영 여건, 공간의 지속가능성 등 여러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때로는 인근 주민과의 연계 부족으로 “저들만의 공간”이라는 비판도 받습니다.
공동체 개념 자체도 현대에 들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농촌사회학자 힐러리(1955)는 공동체를 “특정한 물리적 공간 안에서 공동의 유대를 바탕으로 지속적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정의했으나, 인구 과밀도시의 형성과 정보통신, 교통의 발달로 생활권이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오늘날에는 적합하지 않은 개념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배리 웰먼(2001)이 말한 네트워크 공동체론 즉, 개인들이 다양한 연결망 속에서 필요에 따라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지원과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 networked individualism)이 현대적 공동체 이해에 더 가깝습니다. 이는 장소나 전통적 소속감을 초월하여 사교, 지지, 정보, 소속감, 사회적 정체성을 제공하는 연결망의 공동체를 설명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부분의 공동체 텃밭은 네트워크 공동체론에 가까우며, 소규모 공간을 매개로 다양한 관계망을 생성하고 확장하는 플랫폼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 운동에서 지역성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돌봄, 교육, 환경 등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곳은 지역이며, 민주주의의 뿌리를 유지하는 곳도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 공동체를 지역과 연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공동체 텃밭 운동을 지역과 연결하여 마을공동체 또는 전환마을 운동으로 어떻게 하면 확장할 수 있을까요? 그 핵심은 텃밭이 커먼즈(commons)로 기능할 때에 있습니다. 커먼즈는 소유를 벗어나 모두의 것이면서, 함께 돌보고 나누는 자원이나 공간, 공유재라 할 수 있는데, 커먼즈는 공동체 운동의 물적 기반이자 거점이 될 뿐 아니라, “공통의 것을 만들고, 돌보며, 나누는 관계망”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커먼즈로서의 텃밭은 지역 주민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기후위기, 자원순환, 토종과 종다양성, 교육, 문화 등의 다양한 공동 실천을 경험하여 지역의 의제에 대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다양한 네트워크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참여자들이 가진 사회적 연결망이 교차하면서 소규모 텃밭 활동이 도시 전체로 확산되는 것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소수의 주도적 인물에게 의존하지 않고, 공동 관리, 자발적 참여, 민주적 운영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또한 텃밭은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폐쇄성을 넘어 열린 공유지로 기능해야 합니다. 즉,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되며,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관계가 확장되며, 공통의 것을 생산하는 장으로 개방될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커먼즈로서의 텃밭은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 가는 장이기도 합니다. 함께 돌보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유롭고 적극적인 활동 주체가 탄생합니다. 흥미로운 일들이 논의·실천되고, 개인의 활동이 공동체와 연결되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커먼즈 공간 덕분입니다.
만수마을이음텃밭의 공동체 실험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과 모임, 아이들과 학부모, 장애인, 노인, 여성, 도시농부들이 어우러져 서로를 연결하고 공통의 것을 생산하는 커먼즈를 만들어 가는 여정입니다. 함께 둘러보기를 바랍니다.
한편 기후위기가 일상적 재난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의 공동체 운동은 생태 전환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커먼즈로서 공동체 텃밭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작물·흙·곤충·자연환경과 맺는 관계까지 포괄하며, 공생의 주체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실천은 단순한 도시농업 활동을 넘어, 생태 전환의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더욱 풍요로워지고, 더 많은 공동체가 도시에 뿌려, 생명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꿈을 꿔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더 많은 텃밭과 더 많은 도시농부가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됩니다. 도시를 경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