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수 : 태양빛이 태워가는
2025. 9. 2. ― 22. 소현문(1층)
*개회 : 9. 2.(화) 17:00
정희수 : 태양빛이 태워가는
2025. 9. 2. ― 22. 소현문(1층)
*개회 : 9. 2.(화) 17:00
서문
대낮에 느끼는 떨림
- 《정희수 : 태양빛이 태워가는》에 부쳐
콘노 유키(미술비평가)
외곽의 감각
수원의 하늘 위에, 커다란 소리가 지나간다. 소리가 들렸지만, 항공기는 보이지 않는다—소리가 먼저 날아오듯 다가왔기 때문이다. 귀를 막고 잠시 머리를 숙였다. 다시 하늘을 보니, 소리는 이미 지나갔고, 지나간 항공기의 모습이 점처럼 보였다 이내 사라졌다—수원 공군기지로 갔겠다. 수원 공군기지에 들어가 본 적 없는 나는 상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주둔했던 과거를 상상해 본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미군과 한국군이 주둔하고 나라를 지키는 동시에 위협적인, 이 복잡한 현재를 상상하기란 가능할까. 이 소리를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 들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는 서울 중심에서 지나가는 굉음을 들을 일이 없다. 도심에서 밀려난 소리가 수원이라는 외곽의 하늘을 덮는다. 이 지역에서 작가 활동을 하는 정희수의 작품이 오키나와에 가본 경험,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한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외곽의 감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곽은 중심부에서 밀려나고 위임된 대상이 있는 동시에, 중심의 중요한 결정권을 좌우하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일본 남쪽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메이지 시대 말기에 일본으로 편입되었다가,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미국의 관리와 간섭을 받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와 일본 패전을 거쳐,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관리하에 비-군사화의 길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1952년의 미일안전보장조약 발효와 1960년의 신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현재까지 미군이 주둔하면서 자위대와 함께 국방을 담당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일본의 국방을 담당하는 핵심적 역할은 오키나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오키나와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세운 기지, 일본군에서 강제 인수한 기지, 그리고 최고사령부 통치 시기에 세운 군사 기지가 있는데, 섬의 많은 부분을 점유한다. 이런 현재를 과연,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있다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외곽의 감각은 군사기지에만 해당하지 않겠지만,(주석1) 현재를 상상하려면 지층처럼 쌓인 얽혀 있고 복잡한 역사를 따라가 봐야만 한다. 정희수에게 수원의 소리는 또 다른 외곽인 오키나와의 공진한다—공기가 같이 흔들린다. 하늘은 이어져 있으니, 어쩌면, 여기까지 잘 들릴지도 모른다—한번 지나갈 때마다 시기와 국가를 넘나들고 연결하면서.
몰락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몰락?
이번 전시에서 사진 작업을 보면, 항공기지의 이미지를 일부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 연작 〈동반망각〉(2025)을 선보인다. 오키나와에 가본 사람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가 이 사진들을 오키나와에서 촬영한 사실을 알자, 프레임 안에 오키나와의 요소를 찾게 된다. 오키나와다움으로 유통되거나 소비되는 대중적 이미지도 있고, 전에 방문하거나 살았던 사람만 알 수 있는 미시적인 단서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하는 상태야말로, 이 지역이 현재까지 겪어온 복잡한 사실을 드러낸다. 열대식물의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동시에 오키나와다움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펜스의 사진은 오키나와다운 동시에 자연스럽다. 자연물이 거기에 있거나, 펜스가 거기에 있거나, 오키나와다운 동시에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받아들일 때, 오키나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시선인 동시에 (정희수가 그랬듯이) 관광객의 시선이 서로 겹치는 묘한 지점이 드러난다. 이는 영상 작업 〈투어리스트 러브 플래시라이트(Tourist Love Flashlight)〉에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당연한 실제와 특별한 실제의 수평화야말로, 외곽의 난처함이다.
이번 전시의 출발은 쿠시 후사코(久志 芙沙子)가 1932년에 쓴 다음 문구에서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억압받아 온 민족이, 쌓이고 쌓인 감정으로 인해, 이와 같은 예술[류큐 민요]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황혼의 풍경을 좋아한다. 이 몰락의 아름다움과 호응하는, 내 안에 잠재된 무언가에 동경하는 마음을 품었다.”(주석2) 이 몰락의 아름다움이 도대체 무엇일까—정희수는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맥상 ‘몰락의 아름다움’은 쿠시 후사코가 글을 쓴 시점까지 오키나와가 겪어온 아픈 역사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몰락의 아름다움은 2025년 현재까지 지나온 역사에도 이어지지 않을까. 어쩌면 몰락의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의 개념마저 몰락해 버린, 오키나와의 난처함이 아닐까. 푸른 바다와 높은 하늘이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 정희수는 자연스럽지만 그렇기만 하지 않은/않던 과거가 아름다움으로 덮여가는 이곳을, 그리고 그러한 과거를 잠시 덮었던 자기 자신을 목도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반응을 내가 직시할 수 있도록,〈동반망각〉은 피사체와 배경 사이에 분리하거나 차단하는 대상을 하나 깔고 들어온다. 내가 있는 곳과 뒤에 펼쳐진 곳—내 시선만 들어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사이에 있는 것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물러선 과거와 가까이 다가간 시선이 만난 그곳은, 아마도 현재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을까.
역추적하듯 따라간다.
하늘에서 지나가는 항공기 소리와 달리, 출품작은 모두 고요하다. 영상 작업의 시선 변화는 빠르지 않고, 사진 작업에는 소리가 없다. 더 보려고 했던 것마저도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 같다. 잘 보이기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카메라를 든 사람은 그 장소에 다가가고, 우리는 정희수의 사진과 영상 작업에 다가간다. 정희수의 발걸음과 시선은 동굴 안으로 향한다.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피하려면 땅 밑의 어두운 곳을 향할 수밖에 없다. 정희수가 방문한 오키나와의 동굴은 고요하고 또 고요하다. 방공호로 사용된 동굴에 들어가, 작가는 개인적인 과거를 소환하게 되었다. 영상 작업〈영원히 사는 소년과 기억하는 행동〉(2025)에는 사촌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면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연결된다. 메모리카드에 남아 있던 캠코더 영상을 어느 날 정희수는 발견한다. 손에 크레파스를 들고 그림을 그리는 사촌 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심지어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클로즈업된 장면과 목소리만 담겨 있다. 그 당시의 상황을, 극히 일부만 포착한 컷(cut)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 줄 것인가.
부분은 전체에 속하기만 하지 않고, 맞선다. 단편(fragment)은 영상 속에서 또 다른 단편을 만나 흐름을 이룬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동굴에서 찍은 컷 다음에 대낮에 정희수가 비행장 주변을 돌아다닌 컷, 메모리카드 속에 남은 영상, 그리고 사촌 동생이 잠드는 수원 연화장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는 컷—이 모든 컷이 시각적으로 꺼내어져 나열되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있었던 기억과 남기려고 애썼던 기록들이 영상에 나온다. 이는 1975년 7월 17일에 일어난 히메유리 위령탑 화염병 사건에서 사람이 기억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패전 이후 처음으로 황실 관계자가 방문한 기념비적인(주석 3) 날에 , 두 청년이 화염병을 황태자에게 투척한 이 사건(주석 4)에서, 당사자는 화염병을 던지기 전까지 히메유리 탑의 지하 공간에 숨어 있었다. 어둠 속의 시간을 거쳐, 죽은 사람을 기리는 전체적 묵상(주석 5)에 맞서 이들은 침묵—나와 너, 국가와 나 사이에 분위기처럼 맴돌고 ‘암암리(暗暗裏)’(주석 6)에 강요당한—을 깬 것이다. 히메유리 학도대가 경험한 폭격은 기념행사에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정희수의 작업도 전쟁의 실제 경험과 거리가 멀다. 단순히 오키나와와 수원, 역사와 개인사를 ‘연상’하여 연결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염병을 던지기 위해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냈던 오키나와의 두 사람처럼(주석 7), 정희수는 동굴에 들어가서 외곽에 외재화된 기억/데이터에 접속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의 경험을 개인적 경험과 접속하여 역추적하듯 따라갔다고 할 수 있다.
암암리에, 필연적인
그렇게 생각할 때, 동굴의 어둠은 어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떨림의 신체와 감정이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은 적군, 국가 주도적 기념(비적) 행사의 참여자, 그리고 망각으로 이어진다. 망각에 대한 두려움은 떨림을 통해서 다시 끄집어진다. 분노를 느낀 것은 화염병을 투척한 두 사람뿐이었을까? 어두운 방공호에서 죽음에 맞서 간호하고 치료받았던 사람들의 과거에, 패전 이후 곳곳에서 열린 메이데이 야간 집회의 역사적 사실을 불러들이면서(주석 8), 정희수가 다시 꺼내놓은 사촌 동생의 흔들리는 카메라 화면이, 촬영하는 방식을 따라해 본 작가의 손을 통해, 군용기가 지나가는 수원 하늘 아래 공진한다. 물론, 두려움과 분노가 섞인 경험과 사촌 동생이 영상을 찍었을 때 감정—그리고 정희수가 저장된 영상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정희수가 하늘 아래서 느낀 항공기의 진동처럼, 수원과 오키나와를 잇고 전쟁이라는 큰 사건과 개인의 상실을 겹친 이유가, 물러선 과거와 가까이 다가간 시선이 만난 현재에—암암리에, 아니 필연적으로—있지 않을까. 그 결과, 공진은 대낮을 평화롭게 비치지 않는다. 수원의 낮에 오키나와의 낮이 겹칠 때, 우리는 외곽에 덮인 어둠을 그 떨림 안에 같이 들여다보게 된다. ■
각주
1. 예컨대, 쓰레기 매립장, 화학공장, 물류센터도 해당할 것이다.
2. 쿠시 후사코,「멸망해가는 류큐 여인의 수기(滅びゆく琉球女の手記)」중에서 인용. 인용문은 정희수가 오키나와를 방문해서 구매한 『沖縄文学選_日本文学のエッジからの問い(오키나와 문학 선집_일본문학의 가장자리에서 묻다)』(岡本恵徳・高橋敏夫 編, 勉誠社, 2003)을 직접 번역한 문장 그대로 사용했다.
3. 기념적이지만, 정리된 ‘형식’만 남는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4. 1972년에 오키나와는 미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그 전부터 전쟁 사상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오키나와 곳곳에 위령탑(기념비)이 세워졌으나, 1975년까지 여러 번 낙서당했다. 반감 의식이 고조된 배경에는 반환 전부터 지속된 일본/미국의 군사적 대응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 지원을 고려한 오키나와 해양박람회(1975) 개최를 앞두고 과도한 개발에 따른 일자리 약탈과 자연 파괴가 이어지자 반발이 거세졌다. (福間良明,『戦後日本、記憶の力学: 「継承という断絶」と無難さの政治学(전후 일본, 기억의 역학 - ‘계승이라는 단절’과 무난함의 정치학)』, 作品社, 2020, p.97-123 내용을 참조.)
5. 이들의 안녕을 비는 사람도, 거기서 희생당한 사람도 모두 침묵을 강요당한다는 점에서 ‘전체적’이다.
6. ‘암암리’의 한자는 어둠-어둠-뒷면으로 풀이할 수 있다.
7. 福間良明, 『「戦跡」の戦後史――せめぎあう遺構とモニュメント(‘전적戦跡’의 전후사 - 맞싸우는 유구遺構와 모뉴먼트)』, 岩波書店, 2015, p. 187
8. 오에 겐자부로는 오키나와 노트에서 야간 집회의 경험을 쓴 시인의 시를 소개하면서, 그 시인이 발신했을 거라 짐작되는 태풍 경보를 라디오 방송으로 듣던 경험과 겹쳐보면서 술회한다. (大江健三郎, 『沖縄ノート』, 岩波書店, 1970, p. 30)
소현동행 25
○ 〈작가와의 대화〉 : 9. 6.(토) 16:30~18:30(120분)
○ 〈후배는 항상 옳다 - 유망과 현역 사이〉 : 9. 20.(토) 16:00~18:00
_위 프로그램 진행 시간에는 전시 관람이 일부 제한됩니다.
운영시간
12:00―19:00, 매주 수요일 쉼
글
콘노 유키, 백필균, 정희수
포스터 디자인
윤충근
번역
고성
감사한 분들
곽용길, 박다빈, 이하늘, 정규영, 치넨 미네코
주최
소현문
주관
정희수, 백림기획, 마음랩
큐레이팅
백필균
전시 운영
이유린(인턴)
후원
수원특례시, 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2025 유망예술가 지원」 사업 선정(정희수)
작가의 글
2019년, 광주에 머물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친척 동생의 부고 전화가 왔다. 나는 급하게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정신없이 3일장이 끝나고 화장터에서 그는 재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책상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메모리카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동생이 나의 카메라로 촬영했던 영상을 발견했다. 영상 속의 그는 초등학생이었고, 크레파스를 들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손을 촬영했다. 나는 그 발견 이후로도 가끔 그 영상을 들여다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내 기억 속 사촌동생의 모습은 영상 속 초등학생의 모습으로만 고정되었고, 나머지 모든 시간들의 모습들은 점점 잊혀지기 시작했다. 기록이 기억을 보조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망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 그의 얼굴들을 애써 떠올려 볼 마음도 사실 없다. 저 영상 하나로 잠깐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오키나와를 방문해서 직접 섬을 둘러보며 느낀 점은 이 섬이 어떤 장소들을 내가 동생을 잊어가는 과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오키나와현 이토만시의 토도로키 동굴을 방문했을 때, 역사적인 전적지로서 유지되어야 할 것 같은 이곳이 왜 방치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일본 해군의 사령부가 있던 구해군사령부호(旧海軍司令部壕)와 히메유리 학도대가 있던 아부치라가마(アブチラガマ)는 관광지로서 유지되고 있는 모습에서, 섬의 동굴을 어떤 기준으로 관광지와 관광지가 아닌 것으로 나누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오키나와 본섬 남부에는 일본 본토 각 지역에서 세운 위령탑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사히신문』 1962년 1월 26일 석간은 이 상황을 “최근 관광 붐으로 인한 본토의 잦은 방문과 함께 매번 위령탑 신설 논의가 일어나며 오키나와 본섬 남부의 밭과 언덕 곳곳에 위령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오키나와 수비군사령관 우시지마 미쓰루가 자결한 격전지 마부니에는 많은 위령탑이 건립되었다.
1976년까지 본토 각 지역에서 건립된 오키나와 위령탑은 총 46기였으며, 이 중 35기가 마부니 영역에 설치되었다. 마부니 영역에는 다른 위령탑들도 있지만 총 50기 중 약 70퍼센트가 본토 지역의 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부니가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성역’으로 성립된 데에는 이들 지역의 비석 건립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 후쿠마 요시아키(2024), 『전후 일본 기억의 역학』, 소명출판, 130, 136쪽
관광지가 되는 곳과 되지 않는 곳은 본토의 관광객의 발길을 끌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나뉘었다. 관광객들은 자기 지역의 위령탑에 참배하고, 1953년 흥행에 성공한 영화 《히메유리의 탑》으로 알려진 히메유리의 탑에 방문하는 것이 관광 코스 중 하나였다.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첫 번째로 세워진 위령비 혼백의 탑은 히메유리의 탑에 가려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지만 영상에 가려져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동생의 모습들처럼.
오래간만에 동생이 있는 수원연화장(Suwon City Yeonhwajang/ Suwon City Crematorium)에 가봤다. 수원연화장은 수원에서도 서쪽 끝에 있기 때문에 같은 지역이지만 집에서 버스로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지금은 이 근처에 아파트도 들어오고 꽤나 발전했지만 과거에는 아무것도 없는 산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이런 장례식장과 화장장, 봉안장이 시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런 시설이 시내에 없는 도시도 더러 있다. 죽음의 기억은 항상 주변으로, 외곽으로 밀려난다. 아니면 아예 없거나.
나하에 있던 숙소에서 요미탄손까지 가는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버스의 창밖으로 보이는 거의 대부분의 풍경은 미군기지들의 펜스들이었다. 기지들은 계속해서 그 수가 늘어만 갔다. 노무라 코야(野村浩也)는 일본 본토가 일본 전체 인구의 약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오키나와 현민에게 민주주의의 절차를 통해 합법적으로 미군 전용기지의 75퍼센트를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 지점에서 미군기지와 수원연화장은 굉장히 닮아 보인다.
동생의 영상이 들어있던 메모리카드가 묘비석같아 보인다. 묘비명은 "4GB". 그는 4GB의 공간에서 18.1MB만큼만 산다.
나는 내가 촬영한 기록을 통해 한국의 사람들이 오키나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 관심이 깊어져 직접 오나는 내가 촬영한 기록으로 한국 사람들이 오키나와에 관심이 생기기를 기대했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 관심이 깊어져 직접 오키나와에 가본다고 한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기록을 오키나와 남부에 수많은 기념탑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한 연유로 무엇을 기록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기록은 무엇과 연대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키나와를 걸어다니며 평범한 풍경과 악수를 나눴다. 오키나와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내가 행해야 할 제일 처음의 행동이었다.
나는 동생이 아직 살아있을 때 먼저 연락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쉽게 닿을 수 있었지만 그에게 관심이 없던 것이었다. 뒤늦은 후회와 함께 기억한다는 것은 눈이 아닌 마음이 선행해서 들여다보는 것이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떤 행동을 통해 표현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결국 나의 오키나와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들은 오키나와를 걸어다닌 행위의 증명이면서, 최종적으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닌 스스로 길러낸 타자에 대한 이해와 오키나와라는 역사적 특수성 안에서 시민 사회의 층에 머물면서 공공성과 연결되는 회로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것이 작가이면서 동시에 타국의 관광객인 내가 죽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다. (글 정희수)
Jung Heesu_The Sunlight
Date
Exhibition : 2 ― 22 September 2025
Venue
Sohyunmun
Preface
The Trembling of Broad Daylight: On Jung Heesu's Exhibition The Sunlight
Konno Yuki
1. Peripheral Sensibility
Above Suwon, a tremendous sound passes through the sky. The sound is heard, yet no aircraft is visible—the sound reaches us before the aircraft comes into view. I cover my ears and briefly bow my head. When I raise my head and look up again, the sound has already passed overhead. By now, the aircraft has receded to a distant dot before vanishing from sight—probably heading to Suwon Air Base. Having never entered that base, I imagine the past when Japanese forces were stationed there during World War II. But how might we understand the present? Can we grasp this complex present where American and Korean forces stand simultaneously as protectors and threats to the nation? What thoughts arise in someone who came down from Seoul upon hearing such sounds? These roaring sounds no longer disturb central Seoul's peace. These sounds, pushed out from the city center, now blanket the periphery's sky—Suwon's sky. If the work of Jung Heesu, an artist based in this region, finds natural connection between his Okinawan journey and the histories it revealed, we might call this connection peripheral sensibility. The periphery serves as both refuge for subjects displaced and delegated from the center, and as the crucial “backbone” that sways the center's vital decisions.
Okinawa, located in southern Japan, was incorporated into Japan in the late Meiji period, then came under American administration and interference after Japan's defeat in World War II. Through World War II battles and Japan's defeat, it took the path of demilitarization under the management of the General Headquarters of the Allied Powers (GHQ). However, following the Japan-US Security Treaty's enactment in 1952 and the new treaty's conclusion in 1960, Japan has continued to have American forces stationed there alongside the Self-Defense Forces, handling national defense to this day. Though geographically distant, it wouldn't be an exaggeration to say that Okinawa plays a core role in Japan's national defense. Currently, Okinawa houses military bases established by American forces during World War II, bases forcibly seized from Japanese forces, and military bases built during the Supreme Command administration period, occupying much of the island. How much can people living in Tokyo really imagine this present reality? If they can imagine it, how could they do that? Peripheral sensibility may not only apply to military bases(FN1), but to imagine the present, one must follow the complex, entangled history layered like geological strata. For Jung Heesu, the sounds of Suwon resonate with Okinawa, another periphery—the air trembles together. Since the sky is connected, perhaps it carries clearly even here—traversing and connecting different eras and nations each time it passes.
2. Beauty of Decline? Decline of Beauty?
Looking at the photographic works introduced in the solo exhibition The Sunlight (Sohyunmun), we can find some images of air bases. Jung shows a series of photographs taken while wandering the city, titled Mutual Forgetting (2025). Whether one has visited Okinawa or not, once we learn these photographs were taken there, we begin searching for Okinawan elements within the frames. Popular images circulate and get consumed as signs of what makes something Okinawan, alongside subtle details that only those who have previously visited or resided there can recognize. The coexistence of these two ways of seeing reveals precisely the complex reality this region has endured to the present day. Images of tropical plants feel natural while simultaneously embodying Okinawan identity. Likewise, photographs of fences are both distinctly Okinawan and utterly natural. When we accept images of natural objects or fences as both distinctly Okinawan yet utterly ordinary, a curious convergence emerges. Here, the perspective of someone born and raised in Okinawa intersects with the tourist's gaze (as Jung Heesu himself experienced). This quality also manifests in the video work Tourist Love Flashlight. This neutralization of mundane reality and remarkable reality is precisely the predicament of the periphery.
This exhibition's starting point lies in the following passage written by Kushi Fusako (久志 芙沙子) in 1932: "A people oppressed for hundreds of years may have created such art [Ryukyu folk songs] due to accumulated emotions. I love this twilight landscape. I harbored longing for something latent within me that resonates with this beauty of decline."(FN2) What on earth is this beauty of decline—Jung Heesu became fascinated by this question. Contextually, "beauty of decline" refers to the painful history Okinawa had experienced up to the point when Kushi Fusako wrote her text. But doesn't the beauty of decline extend through the history that has unfolded until the present in 2025? Perhaps the beauty of decline represents Okinawa's predicament, where even the concept of beauty itself has undergone collapse. Before the exotic scenery of blue seas and high skies, didn't Jung Heesu witness this place where the past—natural but not only natural, never simply natural—becomes veiled by beauty? And didn't he witness himself, who had momentarily participated in such veiling? To enable us to confront this response directly, Mutual Forgetting places objects that separate or obstruct between subject and background. If there's a place that only my gaze can reach—between where I stand and what lies beyond—what do we call what exists in that space? The place where the retreating past and the approaching gaze converge might perhaps be called the present.
3. Following by Retracing
Unlike aircraft sounds passing overhead, all the exhibited works maintain silence. The camera moves slowly in the video works, and the photographic works contain no sound. Even what we wished to see more clearly remains barely visible. Therefore, we're drawn closer. This person holding the camera approaches that place not because it reveals itself clearly, but precisely because it does not. And we approach Jung Heesu's photographic and video works. Jung Heesu's footsteps and gaze turn toward caves. To escape the sounds descending from above, one has no choice but to seek the dark spaces below ground. The Okinawan caves Jung Heesu visited are quiet, and quiet again. When he entered caves that had served as air-raid shelters, Jung started remembering personal memories. The video work The Boy Who Lives Forever and the Act of Remembering (2025) weaves together Jung's personal experience of confronting his cousin's sudden death. One day, Jung Heesu discovers camcorder footage lingering on a memory card. The image reveals his cousin grasping crayons, drawing pictures. Yet Jung himself—and even those who might have been watching nearby—remain absent from the frame; only close-up scenes and voices are preserved. What can this cut, capturing just a tiny fraction of that moment, tell us, and how might it speak?
Parts don't simply belong to wholes; they stand against them. Fragments meet other fragments within the video to create flow. Cuts shot in caves where many casualties had occurred, followed by cuts of Jung Heesu wandering around an airfield area in broad daylight, footage remaining on memory cards, and cuts descending into the underground space of Suwon Yeonhwa Funeral Home where his cousin sleeps—all these cuts are visually extracted and arranged. Memories that had existed but weren't visible and records earnestly preserved appear in the video. This adopts the way people follow memory in the Himeyuri Memorial Tower Molotov cocktail incident that occurred on July 17, 1975. On this monumental(FN3) day when an imperial family member visited for the first time after the defeat, two young men threw Molotov cocktails at the crown prince(FN4). The perpetrators hid in the underground space of Himeyuri Tower until throwing the cocktails. Through time spent in darkness, confronting the collective meditation commemorating the dead(FN5), they broke the silence—circulating like an atmosphere between me and you, between the nation and me, and imposed clandestinely(暗暗裏)(FN6). The bombing experienced by the Himeyuri Student Corps was absent from the memorial ceremony. Similarly, Jung Heesu's work is distant from actual war experience. One might think he simply "associated" and connected Okinawa and Suwon, history and personal history. However, like the two Okinawans who spent time in darkness to throw Molotov cocktails(FN7), it can be said that Jung Heesu entered caves and accessed memory/data externalized to the periphery, connecting incalculable experiences of death with personal experience and following by retracing.
4. Clandestinely, Inevitably
Thinking this way, we can understand that cave darkness extends beyond mere darkness. Here we find trembling bodies and raw emotions. Fear of unpredictable threats connects to enemy forces, official memorial ceremonies, and the process of forgetting. The trembling brings back the fear of forgetting. Were only the two who threw Molotov cocktails filled with rage? Jung brings forth his cousin's shaking camera footage once more. This footage connects to the historical reality of May Day night rallies held everywhere after the defeat(FN8), resonating with the past of people who nursed and received treatment while facing death in dark air-raid shelters. Now it reverberates under Suwon's sky where military aircraft pass, through Jung's hands as he imitates his cousin's filming method. Of course, experiences filled with fear and anger are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e emotions present when his cousin filmed the video—and from what Jung Heesu experiences while watching the stored footage. Still, like the aircraft vibrations Jung Heesu felt beneath the sky, isn't this why he connects Suwon and Okinawa and layers the massive event of war upon personal loss—in the present where the retreating past and approaching gaze meet—clandestinely, no, inevitably? As a result, this resonance doesn't peacefully light up broad daylight. When Okinawa's daylight overlaps with Suwon's, we end up looking together into the darkness that covers the periphery within that trembling.
fn.
1. For example, landfills, chemical plants, and logistics centers would also apply.
2. Kushi Fusako, "Record of a Perishing Ryukyu Woman" (滅びゆく琉球女の手記). The quotation uses the sentence translated by Jung Heesu from the anthology he purchased in Okinawa.
3. Commemorative, but "monumental" in the sense that only organized "forms" remain.
4. Okinawa was returned from the United States to Japan in 1972. Memorial towers (monuments) had been erected throughout Okinawa to commemorate war casualties from before the return, but they were repeatedly vandalized until 1975. The background of heightened anti-sentiment included not only the continued military responses of Japan and America since before the return, but also intensified opposition due to job displacement and environmental destruction that followed excessive development ahead of the Okinawa Ocean Expo (1975). See Fukuma Yoshiaki, Postwar Japan, Dynamics of Memory: "Succession as Severance" and Politics of Harmlessness (Tokyo: Sakuhin-sha, 2020), 97-123.
5. "Collective" in that both those praying for their well-being and those sacrificed there are all forced into silence.
6. The Chinese characters for "clandestinely" (暗暗裏) can be interpreted as darkness-darkness-behind.
7. Fukuma Yoshiaki, Postwar History of "War Sites": Competing Ruins and Monuments (Tokyo: Iwanami Shoten, 2015), 187.
8. Oe Kenzaburo introduces a poet's poem about night rally experiences in Okinawa Notes, recalling it alongside his experience of hearing typhoon warnings on radio broadcasts that the poet presumably transmitted. Oe Kenzaburo, Okinawa Notes (Tokyo: Iwanami Shoten, 197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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