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다락방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1. 다락방은 이단성인가? 아니면 이단인가?
다락방은 초창기부터 문제가 많은 단체였다. 다락방은 줄곧 ㄹ목사의 설교에는 문제가 없지만 현장에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해서 문제가 되고 이단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목사와 단체는 그런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권면을 하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다락방엔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런 권면들이 전혀 없었기에 ㄹ목사에 대한 비판이나 교리 수정요청은 모두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다락방은 선교단체로서 문제가 조금 있는 수준의 단체로 이해될 수 있었다. 전도에 대한 지나친 강조, 성경을 올바르게 설교하지 않는 부분, 기복신앙적 요소들은 문제가 되는 많은 선교단체들에서도 발견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문제가 되는 단체가 많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단체가 정당성을 얻고 합리화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지난 2022년부터 수많은 사건들이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다락방의 이단성이 더욱 드러나고 있다. 사실은 2010년경부터 다락방의 메시지가 성경과 상이하고 다락방 목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양심선언하는 목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을 중심으로 설교하지 않고 온갖 전략과 용어로 도배한 한사람에게 의존하는 다락방 특유의 목회구조 때문이다. 현재 다락방은 ㄹ목사가 틀린 말을 해도 수정을 해주거나 건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다락방 산하 교회는 ‘우리는 시대적 전도자를 만나고 바뀌었다, ㄹ목사님이 존재하시기에 우리가 존재한다’며 성도들을 가스라이팅하고 본부메세지를 여과없이 떠먹이고 있고, 개교회 성도들은 의문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단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몇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교리, 윤리, 교회론적 요소다. 한국교회가 다락방을 이단이라고 비판을 했던 양태론, 사단배상설등은 다락방 교리와는 전혀 다르다.
한국교회의 정확하지 않은 지적이 오히려 다락방을 더욱 응집하게 만들었으며, 다락방 성도들은 다락방이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면서 30년간 다락방 교리만을 들으며 정통교리와 바른 성경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니 더 이상 분별할 수 있는 지식과 힘을 상실했다. 윤리와 교리는 밀접하게 연관 되어있다. 윤리가 교리의 열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수님께서도 거짓교사들은 열매로 분별할 수 있다고 하셨다. 다락방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필연적으로 교리 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윤리적 문제들이다. 다락방은 교회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직분에 대한 가벼운 매관매직, 기성교회 비판, 본부와 상임위 등 중심조직을 향한 비판이 불가능 한 이단 조직이 되었고, 성경보다 위에 있는 목사의 말 등이 그 증거이다.
정리하자면, 다락방이라는 단체는 초창기에는 이단성이 있고 다소 우려가 되는 선교단체였지만, 이제는 교회라고 부르기 힘든 이단의 조직이 되었다. 교회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교리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이는 성경을 읽고 신학을 올바르게 공부해야만 성령의 은혜로 깨달아질 수 있다.
2. 성도들은 다락방에 왜 빠져들었는가? 다락방이 잘한 점은 무엇인가?
다락방 전도운동의 오류를 논하기에 앞서서 다락방 전도운동이 객관적으로 잘한 점을 언급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락방 전도 운동은 90년대초 한국교회에 물의를 많이 일으켰고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세가 쉽게 꺾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몇가지 제시했다고 본다.
첫째로는, 여전히 교회에는 순수한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전도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교회에 희망적이다.
둘째는, ㄹ목사의 메세지 중 파급력이 있었던 것들인데, 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들으나 실제로 구원의 확신이 없고 나의 것으로 붙잡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ㄹ목사는 잘 파악했다. 성도들이 말씀을 사실적으로, 또 체험적으로 붙잡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주목할 부분이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은 말씀을 어렵게 붙잡거나 나와 너무 상관 없이 붙잡고 있구나 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우리의 삶에 영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면, 다시말해 말씀이 삶을 바꾸는 예배가 회복될때 교회의 부흥도 자연스레 임할것이라는 점이다. 말씀과 삶이 동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셋째는, 전도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은혜받으면 자연스레 전도는 되어질 수 밖에 없다 라며 쉽게 접근하도록 하였다. 다락방은 이러한 실천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굉장히 획기적으로 잘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락방은 여러 이유로 문제가 많은 단체다. 지금부터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 도록 하자.
3. 다락방에 왜 빠져들었는가?
다락방에 빠져든 이유 (1) 현장성이 강한 메시지
ㄹ목사의 언변은 직설적이고 고리타분하지 않고 듣기에 편하다 또 다이내믹 했었다. 뭔가 어려운 교리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설교를 하기보다 구절만 제시하고 성경을 요약을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또한 템포가 굉장히 빠르다. 그의 스피치 능력은 처음부터 탁월했다기보다는 수천 수만번의 설교를 하다 보니 달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빠른 템포 때문에 사람들이 집중하기 쉬운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내용적으로 청중들이 들을 때 무언가 내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또한 불신자 전도 현장의 경험이 많기에 불신자들이 들을 때도 아 뭔가 하나님 말씀이 내 인생 가운데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이다. 말씀과 삶을 연결하는 부분에 있어서 좋은 스피치 능력을 가졌기에 부흥을 벤치마킹하고 싶은 목회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볼 수 있다.
다락방에 빠져든 이유 (2) 부모님이 하니까, 렘넌트 운동
다락방의 주요 사역 중 하나는 렘넌트 운동이다. 이는 곧 후대, 다음세대, 청소년들을 뜻하는데, 이러한 사역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다보니 부모들은 자연스레 자녀들을 집회와 훈련에 보내게 된다. 물론 이는 모든 교회들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다락방은 이단으로 규정되면서 그러한 공동체 의식이 더욱 강화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은 부모님들이 다락방을 하니까, 또 자기들이 렘넌트라고 어릴 때부터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락방을 하고 있으며, 다락방을 가장 복음적, 모범적, 정상적 교회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우물안 개구리로서 살아가고 있다.
다락방에 빠져든 이유 (3) 간략하게 설명된 그리스도 복음의 강조
다락방에 빠져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자 다락방이 왜 이단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다락방의 메시지는 “예수는 그리스도, 사단을 이긴 참 왕, 죄와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신 참 제사장,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신 참 선지자이기에,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라는 것이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리고 캐치프레이즈처럼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를 강조하니 처음에는 이단인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다락방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왕, 선지자, 제사장이다. 이것을 모르면 복음을 모르는거야”라고 주장한다. 자기들의 표현으로 “원색복음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며 다른 교회들은 복음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점점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다락방에 빠져들게 된다.
다락방에 빠져든 이유 (4): 중심 교리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점을 찾기 힘듬
과거 기존의 정통교단들이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해서 이단 결의를 하였지만 여기에는 굉장히 애매한 점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류광수 목사가 사탄배상설, 양태론등을 주장한다고 이단으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류광수 목사는 사실 사탄배상설을 말하거 나 양태론을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심교리에 있어서는 어찌보면 정통교리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성삼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대한 강조로 인해서 이단으로 규정할 수 있는 중심 교리에 대해서는 큰 이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타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부분들로 다락방을 살펴보면 다락방은 실제로 이러한 부분이 큰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기에 일반적인 성도들은 굉장히 빠져들기 쉽고, 오히려 타 교단들이 이단으로 규정했는데 실제 메시지는 이단으로 규정한 내용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타 교단들이 이단 정죄를 잘못하였다고 생각하며 이단누명 피해자 프레임으로 내부단결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기에 한국 교회는 이단 정죄에 대해서 정말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단들에게 힘을 실어주거나 이단들이 고립되면서 자기들 스스로 괴물이 되는 행보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락방에 빠져든 이유 (5): 확증편향과 군중심리
사람들은 자기가 한번 옳다고 믿는 생각은 잘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주변 사람들이 맞다고 하면 틀린 것도 맞다고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확증편향과 군중심리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 듣 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만을 위해서 다락방을 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직면하는 문제는 사실 나의 어떤 결핍된 부분이나 사회적 현상이나 다른 요인들로부터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이 가져다 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은 전혀 되어지지 않지만, ㄹ목사가 주는 메시지를 붙잡고 있으면 어느 날 모델적인 응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다락방의 많은 사람들은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ㄹ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ㄹ목사의 설교가 유명하거나 많이 듣는다고 생각해서 모이는 것이다. 즉, ㄹ목사의 메세지 자체가 뭔가 특별하다 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 같으니 나도 들어보는 것이다. 이를 의식하는 것인지 ㄹ목사는 자기 메세지를 전국과 세계가 듣고 있다며 수시로 말을 한다.
다락방에 빠져든 이유 (6): 오묘한 신비 류목사의 설교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한번 들어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한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다락방 교인들은 노트에 그의 말씀을 필기를 해두고 각종 모임에서 자기가 이해한 바를 포럼하고 주중에 묵상한다. 그는 신종용어들을 늘 개발해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배경지식도 많이 필요하다. 가령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을 때,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지만 일반 평신도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기에 단어를 추상적인 개념만으로만 붙잡고 있다. 이러한 오묘하게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부분에 있어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 다락방에 빠지는 이유다.
다락방 교회에 출석한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락방은 처음부터 틀린 단체는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너무 속았구나라 책망하지 마시길... 그러나 어느 순간 변질되기 시작하고 개혁되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면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늘 마음속의 우상을 점검해야한다. 혹시 나도 성공과 부흥을 위해서 다락방을 한 것은 아닌가? 탈다락을 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한다. 내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사랑했다는 것에 대한 회개. 이 회개는 다락방을 나오면서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하나님 앞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회개이자 바른 태도이다
4. 다락방의 교리 중 문제가 되는 것들이 무엇인가?
(1)틀린 신앙관: 하나님의 영광보다 앞선 전도와 선교, 응답
다락방은 전도와 선교를 위해 모인 단체다. 그런데 이 전도의 내용과 목적으로 인해서 성도의 신앙관이 무너져있다.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인이 존재 목적은 오직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의 1 문답은 인간의 제일된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다락방은 장로교라면 당연히 숙지해야 할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복음을 이용하여 육신적 응답을 즐거이 누려려함에 초점을 뒀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은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림을 인간이 살아가는 제일 된 목적에 둔다.
다락방은 복음을 누리기 위해서 율법을 요구를 부정하는 방종된 신앙 팬턴을 만들었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의 후반부에서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지, 그 길이 율법과 말씀 가운데 계시되어있음을 살펴볼 때 다락방의 해석이 얼마나 틀린 해석인지를 알 수 있다.
ㄹ목사의 모든 설교를 자세히 보라. 그의 설교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랑,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그분의 성품으로 거룩하게 성화되어 가는 삶, 성화에 대한 적접적인 설명, 거룩을 통한 성도의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내용이나 혹 개인적 간증이 없다.
대부분의 내용이 전도 중심이기에 크게는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전도열매와 응답만 있으면 다 끝난 것이다. 성도의 삶이 모범적이든 불법적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삶이 완전히 무너져있어도 미래의 죄문제까지 해결하신 모든 문제 해결자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외쳤으며, 이미 구원받은 전도자니까 전도로 답내면 괜찮다는 식이다. 교회의 양적 부흥만을 위해 이렇게 가르쳤으니 성도들은 거룩한 삶보다 자연스레 응답중심의 신앙생활을 중심축으로 삼게된다.
응답 중심의 신앙생활은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를 부적처럼, 주간 강단 말씀 성취를 부적처럼 붙들고 살게 만든다. 다락방 성도들은 매주 선포되는 강단 말씀이 성취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말씀을 이상하게 표현하며 작품이라고 만들어낸다. 그것을 해야만 자신의 영적 상태가 좋다고 생각한다. 말씀이 성취되면 영적상태가 좋고 말씀이 성취되지 않으면 나의 영적문제가 치유되지 않았고, 각인, 뿌리, 체질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모든 이단을 포함하여 다락방 또한 고난을 이해할 수 없다. 성도에게 찾아오는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대표적으로 욥기와 시편을 꼽을 수 있다. 고난을 통해 성도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인격적으로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다락방은 전도중심, 응답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도에게 찾아오는 고난을 이해할 수 없다. 다락방은 기복주의, 번영주의 신앙이다.
고난은 찾아와서는 안되는 것이며 사탄이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섭리, 사랑, 완전하심보다 사탄의 일을 먼저 인식하고 강조되는 곳이 다락방이다.
선교단체는 선교단체의 사역으로 머물러야한다. 선교단체는 지역교회의 사역과는 분리되어야한다. 선교단체의 잘못된 이념과 신념이 지역교회를 장악한 것이 다락방이다. 다락방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정결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거론되지 않는다. 어떠한 죄를 저질러도 오직 전도 열매만 있으면, 당신은 전도자라고 덮어주는 곳이 다락방이다. 반대로 어떠한 경건한 삶을 살든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든지 전도와 상관없으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쉽게 판단하는 곳이 다락방이다. 이들에게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능력은 없고 사랑보다는 비판이 득세한다. 그러니 다락방 사역자들끼리도 서로 시기하며 질투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사례가 다반사이다. 다락방의 신앙생활에는 참된 행복과 평안이 없다. 복음편지 1과가 왜 인간은 행복이 없는가인데 많은 다락방 성도들은 참된 행복을 체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도와 시스템에 눌리는 종교생활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복음이면 다 끝났다는데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복음을 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2)성경보다 교주의 말: 우민화정책과 교주 비판 금지
다락방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성경을 많이 읽으려 하지 말고, 메시지 흐름 잘 따라오라”는 ㄹ목사의 오래된 주장이다. 성경보다 목사의 메시지를 우선순위로 설정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성경이 어떤 말을 하든지, 그것을 연구한 학자나 목사들이 어떤 해석을 하든지, 오직 ㄹ 목사의 메시지를 우선으로 인정하는 오류가 범해지고 있다.
다락방은 마치 중세 카톨릭교회처럼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다락방 교재 이외의 것은 쓸모없는 것처럼 무용론을 펼친다. 이는 다락방의 우민화 정책이다. ㄹ목사의 메시지에 문제가 있고 예화에 오류가 있어서 지적을 하면 불신앙하고 흐름 못타는 사람으로 매도되는 곳이 다락방이다.
ㄹ목사가 예전에 메시지에서 든 예화로 영국의 한 교회에 의사가 왔는데 목사님의 강단에서 전문 의학지식으로 설교를 몇 주간 했는데, 그 의사가 결국 교회를 떠나면서 목사님이 알고 계신 의학 지식은 전부 틀렸으며 저는 복음을 들으러 왔다는 예시를 들면서, 설교는 전문지식이 아닌 성경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하던 ㄹ목사가 어느 순간부터는 호흡, 깊은 음식 등을 말하면서 틀린 전문지식들을 말하고 있다.
의사가 지적을 하는 것에 굉장히 기분 나빠 하며 의사들도 몸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혹평을 한다. 이처럼 목사도 변한다. 심지어는 변질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성령의 은혜를 구해야만 하는데 다락방성도들은 ㄹ목사만큼은 무오하고 순수하며 변질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따르고 있다.
또한 다락방 소속 목사들은 절대 권위인 ㄹ목사의 설교와 교재, 메시지의 흐름에 맞추어 설교를 한다. 이 부분이 오히려 본인의 목회현장과 동떨어져있는 것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또 중간사역자들은 강단말씀을 해석하는 역할, ㄹ목사의 용어를 해석하는 역할, ㄹ목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성경을 설교하기 보다 사람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영적으로 힘이 없어진 메시지로 인해 다락방 성도들의 영혼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다.
다락방은 ㄹ목사의 제자들로 구성된 단체이며, ㄹ목사가 전하는 메시지의 흐름을 따라가는 목회방식을 기본 전제조건으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락방 목사가 아닌것이며, 다락방을 탈퇴함이 옳다.
(3) 부족한 기독론: 환원주의(단순화), 우민화정책, 문제해결 중심의 신앙생활
다락방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대한 강한 강조가 특징이다.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신 선지자, 죄 와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 사단을 꺾으신 왕되신 그리스도가 바로 다락방 메시지의 특징이다.
다락방에서는 이 메시지가 선포되지 않으면 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복음은 아주 다양한 성구와 방법, 메시지들로 제시될 수 있다. 다락방은 이렇게 복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하게 만든 교리들에 문제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몇가지만 알아보자면,
선지자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부분이 약하게 설명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말씀을 주시는 부분, 제사장직에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중보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약하게 설명된다. 왕직에서도 사단에 대한 강조만 있다보니 우리를 통치하시고 보호하시는 부분, 왕으로서 우리를 말씀으로 다스리시는데,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말씀에 순종해야하는 삶을 간과한다. 그렇기에 다락방의 기독론은 정통교리의 기독론보다 부족한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그리스도가 약하다고 비판을 하는데, 사실은 신학교에서 다 배 우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다락방 소속의 목사들은 정통교리를 공부하지 않았는지, 분별하지 못하고 ㄹ목사의 잘못된 한국교회 및 세계교회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성도들에게 가르치며, 그렇게만 배운 성도들은 다락방만이 완전복음이라는 잘못된 사상에 가스라이팅 되어있다.
아무쪼록 이렇게 모든 교리를 간단하게만 설명하는 것을 전문적인 말로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한다.
조금 쉽게 표현하자면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복잡한 것은 싫으니 간단하고 알아듣기 쉽게만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교를 들으면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고 자극적일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영양실조에 걸린다. 복음의 풍부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락방에서는 성도들도 신앙에 대한 질문조차 하지 않고, 신앙에 대한 질문을 불신앙으로 여기며,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인 목사들 조차도 성경을 읽지 않고 질문에 대답해줄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니 영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이런 기독론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구호를 통해서 문제 해결 중심의 신앙 생활이 되어버렸다. 신앙생활에서 찾아오는 고난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과 함께하고 영광 돌리며 그 분의 거룩한 성품을 덧입는 신앙생활보다, 시대적 응답속에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바뀌어버렸다.
마태복음 16장을 해석하면서 다른 이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몰랐다고 폄하하면서 성경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일을 알려주신 사역들을 폄하하였다. 이렇게 다락방은 그리스도를 쉽게 설명하면서 교인들을 무지하게 만드는 우민화 정책을 통해서 점점 교인들을 다락방 메시지에만 중독되도록 만들었다.
예전에 다락방에서는 “그래도 우리 메시지는 복음이니까, 계속해서 성경의 본질인 그리스도가 강조되니까”라고 주장해왔다. 그것은 일부분 사실이다.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는 율법, 윤리도덕, 성공, 신비등에 치중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락방이 정말로 복음과 성경의 본질을 얘기하는가?
어느 순간부터 ㄹ목사의 설교에 그리스도의 삼중직 외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한 설교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망대가 성경의 본질인가?
호흡이 복음의 내용인가?
깊은 음식이 도대체 복음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제는 뒤틀려버린 신앙의 중심축을 다시금 그리스도께로 가져갈 때이다.
(4)비틀린 원죄론
원죄로 인하여 인간에게 죄의 부패한 성향이 있음을 간과케 함
다락방에서는 원죄를 아주 강조한다. 한국교회는 자범죄를 강조해서 성도들을 율법주의에 빠지게 만들었으며, 원죄를 제대로 몰랐기에 그리스도를 못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락방의 주장은 완전히 허위인것이다.
한국교회나 다른 교회들도 당연히 원죄를 얘기한다. 원죄와 자범죄를 잘 구분해서 설명한다. 원죄는 아담이 범한 죄 뿐만 아니라 아담이 범한 죄가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죄의 죄책과 죄로 인한 저주의 결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어떻게 죄를 짓고자 하는 성향과 습관들이 전달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이 원죄교리다.
그런데 다락방에서는 원죄는 아담이 지은 죄라고만 이해한다.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은 죄를 짓고자 하는 열망, 습관적인 죄, 예사람의 친죄성향, 자기십자가 등등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성도에게 나타나는 죄의 열매들을 회개라는 성경적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치유라는 심리학적인 방법을 제시하므로써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을 만들어 냈다.
그러니 신자가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교리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다 끝냈는데 나는 왜 안되는가라는 다락방 신도의 물음은 결국 다락방 복음과 다락방의 원죄교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성육신과 공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에 대한 모범을 보이시고 십자가상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서 우리를 향한 구원을 완성하셨다. 우리 인간은 죄인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공로를 값없이 은혜로서 믿음으로 받는다. 마틴 루터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다.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해서 죄의 죄책들과 습관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이 있다. 기독교는 그것을 성화라고 부른다.
죄를 행위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죄는 마음의 문제다. 죄의 죄책과 습관, 성향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가끔 사단이 공격할 수도 있다. 나쁜 생각과 불신앙의 생각을 주입할 수 있다. 그러나 사단을 죄가 의인화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사단과 죄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사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늬앙스가 강한 다락방의 신학은 틀린 신학이다.
(5)자의적인 성경해석
다락방의 설교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성경 본문이 말하는 바를 전하기 보다 목사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성경을 인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깊이 없는 설교 방식은 성도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를 해주니까 굉장히 설득력있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말주변이 좋은 강사들이 다락방에서 잘 먹힌다.
또한 목사들이 성경을 보지 않고, 성도들도 성경을 보지 않기 때문에 서로 분별할 수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성도들도 설교에 대한 책도 읽고 성경을 읽고 신앙서적도 참고해야만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데, 어찌보면 신앙생활이라는 중요한 인생의 한 부분을 맡기는 일에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목사를 신뢰하고 있다.
다락방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말씀보다 목사가 말하는 말씀, 목사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예시들을 다락방 목사들의 설교에서 알아보자면, 예수님도 망대를 설명했다, 예수님도 호흡기도를 했다라는 등의 설교가 있을 수 있다.
어떠한 목사는 지나치고도 틀린 자의적 해석으로 루디아가 바울에게 내 집에 들어와서 유해라고 한 것을 성관계를 하자고 했다는 등의 틀린 해석을 한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바와 상관없는 설교, 내 삶과 성경의 말씀이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짚어주지 못하는 설교에서 도망쳐야만 한다.
(6)관계전도가 아닌 프로그램 전도가 된 다락방
성경적인 전도운동을 표방하는 다락방이지만 사실 다락방의 전도는 되어지는 전도라기 보다는 방법적인 전도가 많다. 오히려 되어지는 전도는 삶의 관계속에 일어나는 것인데 다락방은 전도캠프나 다른 행사들로 전도를 하려고 한다. 초기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나도 변질이 되었다. 왜 전도가 되어지지 않는가에 대하여 인본주의적인 방법을 성령의 역사보다 앞세운 결과 전도캠프에 동원 된 사명자들은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5. 어떻게 성도들을 세뇌시켰는가?
다락방의 성도들은 ㄹ목사와 다락방 소속 목사 이외의 정통교단에 소속된 목사의 설교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 이유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도들을 다락방에 종속되도록 가르쳤는가?
다락방이 성도들을 세뇌시킨 방법
1단계
다락방을 제외한 모든 교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복음이 없고 늘 싸우는 교회라 가르치므로 성도들로 하여금 다락방교회가 아니면 정상적인 교회가 아니라는 생각을 각인시켰다.
그 방법으로는 ㄹ목사가 과거 동삼제일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하기 이전에 시무했던 교회들을 실제 예로 들면서 정통교회는 다 싸우고 복음이 없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주입하였다.
2단계
다락방만이 원색복음, 유일한 복음, 이천년만에 회복된 복음, 루터칼빈 등 종교개혁시대 이후에 복음이 희미해졌는데 다시 오백년만에 복음을 회복한 유일하고 차별화 된 교회라며 성도들을 각인시키므로써 정통교회 정통교리와의 접촉을 차단시켰다.
또한 ㄹ목사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 스스로의 특수성을 강조하였는데 그 방법은 시대시대마다 하나님이 쓰시는 단체와 종이 따로 있었다며, 지금 시대엔 다락방을 쓰시고 ㄹ목사 자신을 하나님이 쓰신다며 ㄹ목사의 말씀의 흐름을 따르는게 하나님의 뜻인줄로 각인시켰다. 그래서 다락방 성도들은 ㄹ목사를 시대적 전도자, 시대살릴 전도자라 칭한다.
3단계
다락방에 헌금, 헌신 하는자는 시대적 언약적 기념비적 축복을 받게 됨을 누누이 강조하였고, ㄹ목사 자신이 그 응답의 대표적인 모델임을 수시로 언급하므로써 ㄹ목사를 따르는 모든 성도와 교역자들은 다 ㄹ목사처럼 복음안에 있는 경제적 응답과 교회 부흥이라는 가시적 응답을 받기 위해 다락방 훈련에 더욱 열중하게 만들었다.
4단계
다락방을 탈퇴하는 자는 진정한 다락방 훈련과 응답을 받지 못한 자들로써 전도자로써는 자격없고 모자란 사람임이라 치부하였고, 더 나아가 다락방을 반대하는 자는 바람부는 날 간판이 머리에 떨어져 죽게된다는 둥 급사 또는 멸망당하게 될 것을 자주 언급하므로써 혹시 화를 당할까 두려워서라도 탈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난 30년동안 이런 방식의 프로세스가 탄탄하게 이어져 왔고 다락방에 소속된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라도 이런 각인 프로세스의 무한궤도에 있으면 심리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다락방 만이 빛의 동산이요 응답의 현장이며 다락방 밖의 교회들은 복음이 없고 늘 싸움만 하는 흑암이라는 생각이 잠재의식에 까지 뿌리내리게 하여 다락방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프로세스를 진행하므로써 다락방의 성도들을 세뇌시켰다.
6. 다락방은 개혁될 수 있는가?
다락방은 개혁될 수 없는 단체가 되었다. 최소한 다락방이 개혁되려면 본부와 총회에서 문제가 되는 목사들을 성경의 규례를 따라서 그리고 총회의 권징조항을 따라서 분명하게 치리를 해야한다. 다락방은 치리가 복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단체다. 치리를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가해자의 입장에서 목사들, 범죄자들의 편을 드는 방관자요 부역자들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치리는 다락방이 말하는 치리와 전혀 다르다. 치리는 사람이 다시는 그 죄를 범 하지 못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돌이켜서 살아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도 치리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다락방은 왜 치리에 인색하고 치리를 하지 않겠는가? 다락방 목사 중 대다수가 음주, 음란, 도박을 비롯한 윤리문제에 사로잡혀 있고 그렇지 않은 목사들도 그것을 심각한 죄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어차피 다 끝났으며 복음누림이니까 술 한잔 마실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니 삼삼오오 형님동생 한잔두잔 기울이다 점점 타락이 깊어졌을 것이다.
장로교에서는 목사들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이 장로다. 장로들이 개혁을 원한다면 총회에서 목사 정년부터 문제를 삼으라. 그리고 치리에 대한 정식적인 요구를 하라. 성도들도 은혜받은 만큼만 헌금하라. 의무적으로 헌금하지 말고 성령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헌금을 하라.
다락방 개혁을 위해서 목회자들이 새로운 학교에서 올바르게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성도들이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이다. 다락방 목회자들은 교단문제가 있어서 나갈 수가 없다.
그런 구조로 신학교를 운영해온 곳이 다락방이다. 최근에 렘넌트신학교 석좌교수직을 사임하신 ㄴ 0 0 박사는 광주 예일교회설교중 “렘넌트신학교에는 좋은 신학교수가 없고, 이런 식이면 렘넌트신학교의 미래는 없다”고 비판했다. 다락방 목회자들이 건전한 신학교의 지도속에 성경을 연구하고 배우면 결국 가장 유익을 얻는 이들은 성도들이다. 성도들이 양질의 말씀과 영적 양식을 먹을 수 있어야만 신앙이 성장한다. 주변의 다락방 목사님들 중에서 탈퇴 후 정통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분들에게 도서비와 학비를 지원해주는 방식도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작은 개혁일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루터가 개혁을 하는데 4년이 걸렸다. 4년을 외치다가 루터는 카톨릭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루터가 카톨릭 교회에 남아서 개혁을 한 것이 아니다. 개혁은 그 교회가 정말 올바른 기초위에 세워졌을 때만 가능하다. 다락방을 나가도 죽지 않는다. 다락방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다락방이 우리의 세계관이라고 세뇌한 그것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기성교회들도 모두 기독교인이며 십자가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며 말씀을 듣는다. 다락방은 단지 전도를 열심히 하려고 한 단체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전하던 그 복음이 정말 올바른 복음이었는가? 정말 전도만 했다면 문제들이 이렇게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성도들을 가스라이팅해서 전도하면 축복받는다, 너도 전도하고 싶었지 이런 마음을 자극해서 전도 영업사원으로 만든 것 아닌가? 올바른 신앙생활은 전도를 못해도 예배를 드리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야한다. 다락방을 와서 해방을 얻었다는 사람들은 실제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방종을 원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를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왕 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여 회개가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줄 모르며 예배의 감격이 없는 단체에서 벗어나라. 샤워를 하고 왜 매주 오물을 뒤집어쓰러 가는가. 회개는 한번하고 그만이 아니다. 믿음은 한번 믿고 그만이 아니다.
참된 믿음은 매일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참된 예배의 감격은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의 삶에서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3,9,3, 보좌의 능력 9가지, 3시대 응답 같은 단어나 외우고 있는 생명없는 종교생활에서 벗어나라. 당신들은 생명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성경말씀을 사모하고 성경말씀을 암송하라. 사람이 만든 단어를 암기하지 마라. 사람이 만든 단어를 주입하는 것이 틀린 각인, 뿌리, 체질을 만드는 길이다. 예배의 감격이 회복되시길 기도한다. 결단 이후에는 반드시 그 결단에 따른 행동이 따라야한다.
결론. 다락방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락방의 미래는 다락방 교인들도 잘 알 것이다. ㄹ 목사 사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들 의문일 것이다.
다락방 소속의 목사들은 ㄹ목사의 설교를 앵무새처럼 따라할뿐이기에 다락방에는 미래가 없다. 중간사역자를 자처하며 ㄹ의 흉내를 내고 있는 목사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이 글을 읽는 다락방 목사 중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다락방을 떠나야 한다. 해적선에 함께 승선해있으면서 해적이 아니라고 할수 있는가?
다락방은 성경적인 내용은 없고 그저 말주변으로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 현장에 증거니 응답이니 하는 목사들도 한번 내용을 잘 살펴보라. 거짓말과 과장, 허풍이 빈번하게 나오는 곳이 다락방이다.
ㄹ목사 이후에 다락방은 몇몇 목사 중심으로 파벌이 형성되고 서로가 내가 정통 다락방이라며 싸우면서 분열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성도들도 무엇을 들을지 몰라서 방황할 것이며 결국에는 ㄹ 목사의 생전 설교를 틀거나 AI ㄹ 목사를 만들어 우상운동을 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덕평RUTC 다락방전도운동 기념관 내부가 ㄹ 목사 관련내용으로 도배된 것을 보면 그런 미래가 어느정도 짐작이 된다. 렘넌트운동이라고 하면서 후대를 그렇게 강조했는데 후대들은 갈 곳을 잃을 수 있다.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나는 후대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다락방은 역사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다락방을 올바르게 성경적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외치던지 나와야만 한다. 그러나 개혁과 회개를 외치는 사람들을 언제나 멸시하고 핍박하던 곳이 다락방이기 때문에 다락방에는 미래가 없다.
다락방 성도들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먼저 만나는 사람들을 넓혀야한다. 다양한 설교도 들어보고 다른 교인들도 만나봐야한다. 관계의 영역과 바운더리를 넓혀야 한다. 요즘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아주 좋다. 다락방 메시지들을 끊어보라. 그러면 유튜브 알고리즘이 좋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찾아서 추천해줄 것이다. 목사를 중심으로 따라가는 신앙생활은 건강한 신앙생활이 아니다. 그러나 좋은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어보라. 처음에는 듣기가 힘들 것이다. 여러분의 응답 중심의 삶을 위한 성공 메시지, MSG 자극으로 가득한 메시지, 뉴에이지나 다름없는 호흡기도, 관상기도, 유니버스, 레이저, 안테나, 우주의 능력 등등 비성경적인 메시지만 듣다가 성경중심으로 올바르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설교들을 들으면 담백하고 은혜가 안된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정말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고 내가 구원받은 것이 맞다면 하나님은 모든 설교에 은혜를 더하기 시작하실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단의 목소리에 속지마라.
다락방은 성도들이 메시지에 의문을 가지는 행위를 소위 불신앙이라고 비판을 해왔다. 심지어 다락방은 목사들과 본부에 의문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고 흐름타는 것을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이단들이 가진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전략이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점점 집단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10명이 음식점에서 청국장을 시켰다고 생각해보자. 청국장이 유독 맛이 쉰 맛 이 났지만 서너명이 이 청국장은 기가막힌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국장이 상한지도 모르고 아주 맛있는 청국장이라고 믿고 집단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이 청국장은 쉰 맛이 심하게 나는 것이 아니라 상한것이 라고 하면 그제서야 집단착각에서 깨어나게 된다. 이제는 집단착각에서 벗어날때다.
80년대 90년대에 한국교회는 부흥운동과 전도운동으로 성장을 했다. 다락방이 그때는 아주 뛰어난 단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변질되었다. 한국교회는 성장하는 과정 중에서 성장통을 겪으면서 아주 많은 성장을 했다. 지금의 기성교회들은 다락방이 비판하는 기성교회와 많이 다르다. 한국에 좋은 목사님들이 많으니 그들의 설교를 들어보라. 서점에도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많으니 한번 참고해보라. 기도수첩부터 생명의 삶으로 바꿔보라. 유튜브로 정통교단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라.
응답중심, ㄹ메세지 중심, ㄹ와 다락방목사들을 높이는 찬양, 단체와 RUTC를 경배하는 다락방찬양 말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다양한 찬양도 들어보라. 그리고 이제는 한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목사가 교주가 될 위험이 있는 교회보다 성경 중심으로 질서가 살아있는 교회를 찾아가라.
개혁주의 신학사상을 가진 목사님을들의 설교와 책을 많이 보라. 개혁주의는 성경에 충실하고 한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사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라는 큰 틀안에 그 사람의 사상이 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이들은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공동으로 만들어서 균형잡힌 교회와 신앙교육을 추구했다. 이들의 슬로건도 우리가 잘 아는 종교개 혁의 5가지 오직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다. 또한 개혁된 교회는 항상 성경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라는 모토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기에 다락방을 떠나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에 알맞다. 다락방을 떠나게 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기 어렵기도 하기에 다락방 출신의 목사가 교리문답을 비롯하여 건전한 신학을 추구한다면 그런 교회로 인도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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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마음으로 다락방 성도님들에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