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 다락방 탈퇴 목회자들이 쓴
류광수 다락방은 교리적 이단이다.
- 2024. 8. 1 -
“코람데오“ 다락방 탈퇴 목회자들이 쓴
류광수 다락방은 교리적 이단이다.
- 2024. 8. 1 -
우리는 지난 7.16 기자회견을 통해 류광수 다락방은 교리적 이단임을 천명하고 다락방을 탈퇴한 목회자들이다.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의 이단성을 뒤늦게 발견하고 개혁을 촉구하다 탈퇴함을 하나님과 한국교회 앞에서 다시 한 번 회개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한다.
류광수 다락방은 한국교회 9개 교단으로부터 이단정죄를 받았다. 역대 이단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정죄이며 이는 다락방이 한국교회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혔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류광수 다락방이 그럴 수 있었는가? 다락방은 여느 이단과 달리 오직 그리스도, 오직 전도를 주장하는 가장 순수하고 복음적인 단체로 보였기 때문이다.
초창기 류광수 목사는 평일에 평신도가 평신도의 집을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성경적 전도방법을 강의했다. 이 강의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다락방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전도방법론은 이단이 될 수 없고, 전도내용도 교리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이었기 때문에 한국교회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다락방에 참여했다. 우리는 전도를 배우러 다락방에 참여했지 교리를 배우러 참여한 것이 아니다.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임은 사탄을 강조하는 전도메시지(다락방복음)에 있었다. 그러나 불교문화권 한국 불신자들에게 사탄과 영적문제를 강조하는 다락방 메시지는 비록 그 내용이 신학적 오류가 있더라도 현장전도메시지로는 어느 정도 사용가능했었다. 그 대상자가 교회 성도가 아닌 교회 밖의 불신자였기 때문이다. 전도 받은 불신자를 교회 안으로 데려와 칭의와 성화의 십자가 구원진리를 가르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의미로 다락방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락방 메시지가 성도들의 전도훈련용으로 교회 안에서 사용되자 서서히 문제가 드러났다. 다락방 교회마다 십자가 정통교리가 사라지고 사탄강조 다락방 메시지가 교리가 되어 성도들에게 가르쳐졌다. 그 결과 다락방 전도단체 전반에 성령의 사람에게는 결코 맺혀질 수 없는 열매들이 맺혀졌다. 죄의 열매들이다. 다락방 메시지의 결과였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그 안에서 체험했던 목회자들이다. 우리는 다락방 메시지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난 101명 탈다락 선언 후, 한국교회와 다락방 본부 측에서 왜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인가를 물어왔다. 이에 우리는 두 가지로 대답한다.
첫째, 우리는 한국교회 9개 교단이 발표한 다락방 이단결정문이 비록 일부 지엽적인 부분을 말하기는 하지만, 다락방의 본질이 사탄강조 세미베뢰아 이단신학과 무율법주의 세미구원파 이단신학임을 바르게 지적함을 보며 전적으로 수용한다. 한국교회의 다락방 이단결정은 정당하고 올바르다.
둘째, 우리는 다락방을 탈퇴한 목회자들로서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임을 다락방 내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술한다. 이는 아직 다락방에 남아있는 신실한 목회자와 성도들의 탈다락을 돕기 위함이다.
1. 우리 목회자들이 류광수 다락방에 참여하게 된 이유
(1)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 이르는 성경적 전도방법론 때문
류광수 다락방은 불신자 전도하는 단체로 시작했다. 류목사는 사도행전을 강의하며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성경적 전도방법론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평신도가 평일에 평신도의 집을 중심으로 전도하다가 주일에 본교회로 모이는 전도방법론이었다. 류목사는 이것을 다락방, 팀사역 미션홈 전문사역 지교회로 부르며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경적 전도방법이라고 강의했다. 우리는 그 강의를 좋게 여겼고 그가 말하는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의 전도방법론을 배우기 위해 다락방에 참여했다.
분명 류목사가 말한 다락방 전도방법론은 사도행전의 전도가 평신도의 집에서 가정교회로 시작되어 지역교회로 발전된 점을 비춰볼 때 타당해 보였고 그 설명도 매우 독창적이었다. 우리는 전도가 어려운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사도행전의 집을 다락방에서 미션홈과 지교회로 설명하는 류광수 전도방법론을 배우러 다락방에 참여했다. 이것이 우리가 다락방에 참여한 가장 큰 동기였다.
(2) 불신자 전도용 다락방 메시지의 독특성 때문
류목사의 전도방법론은 평일에 평신도의 집을 중심으로 불신자 전도해서(다락방) 제자를 확립하고(미션홈) 그를 데리고 불신자 전도 나가 다락방을 열고 사역자로 맡긴다(팀사역) 그들 중 전문기능인들은 팀으로 묶어 전문분야 전도하게 하고(전문교회) 그 모든 다락방과 미션홈과 전문교회를 지교회로 모은다(지교회). 그리고 주일에는 모두 본교회로 와서 온 성도와 함께 예배드린다(본교회). 다락방 전도방법론은 이론적으로 볼 때 신선하고 좋았다.
그러나 류광수 전도방법론의 독특성은 메시지에 있었다. 다락방 전도는 다락방 메시지로 하는 것이다. 그 메시지는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던 사영리식 전도메시지와 달랐다. 거기에는 사탄이 강조되어 있었다(복음편지). 이는 한국의 불교문화권 불신자들이 이해하기에 쉬웠기에 전도하기 쉬웠다. 초창기 다락방에 한국교회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모여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확히 제시되는 전도방법론과 그것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만든 복음편지 전도메시지 때문이다.
복음편지는 성경공부가 아니었다. 류목사는 다락방에서 성경공부 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 증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락방은 현장에서 복음편지로 불신자와 성경공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영적문제를 그리스도로 답주는 것이다. 이것이 다락방이며, 다락방 메시지였다.
(3) 원죄와 사탄, 영적문제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깨닫는 착시현상 때문
류광수 다락방은 불신자를 전도해서 오늘의 세계복음화전도협회(다락방)를 만든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끌어들여 성장한 것이다. 불신자를 전도한다는 다락방 메시지에 불신자들이 반응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반응했고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는 불신자를 전도할 새로운 방법론이 생겼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다락방 메시지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답답한 문제를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깨닫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함으로 보였기에 당시 다락방에 참여한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의 이단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명백한 우리의 과오였다.
우리는 다락방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의 충격을 받았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 곧 죄를 교리로만 알고 내 문제에는 적용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문제의 원인을 사탄에게 전가함으로 생겨난 착시현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속인이 전도되고 또 풀리지 않는 내 문제에 답을 얻어 그 메시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신학적으로 간과했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교리 메시지가 아닌 불신자 전도메시지로 쉽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
2.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으로 변천되는 과정들
(1) 불신자 전도메시지가 다락방 교회 주일설교메시지로 바뀜
다락방 메시지는 불신자 전도용으로만 쓰이지 않고 점차 교회 안에서 사용되었다. 다락방 목회자들은 성도를 전도훈련 시키기 위해 모든 강단메시지를 다락방 메시지로 바꾸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 새벽기도 기타 전도학교 전도신학원... 모든 설교와 강의는 다락방 기본메시지로 채워졌다.
다락방 기본메시지는 인간의 근본문제, 불신자 상태, 그리스도, 신자의 축복, 성경적 전도방법, 응답받는 기도 등으로 구성된다. 이는 1차 합숙에서 강의되는 내용으로 일주일 분량이다. 다락방 목회자들은 다락방 기본메시지로 성도들을 훈련 시켰지만 곧 강의할 메시지가 고갈됨을 느끼고 류목사의 모든 메시지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류목사가 해석하는 다락방식 성경강해를 교회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로서 다락방 교회들은 정통교리에서 벗어나 류광수 이단사상과 성경해석을 따르게 되었다. 전도현장에서 사용되던 불신자 전도메시지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성도들 훈련메시지가 되더니 이제는 그 메시지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류목사의 성경이해가 다락방 교회들의 주된 강단메시지가 된 것이다. 이로서 류광수 메시지는 다락방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지는 교리가 되어버렸다.
혹자는 다락방은 현장전도 하느라 교리를 정립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다. 교리란 지금 교회에서 가르쳐지고 성도들이 따라가는 그 메시지를 통칭하는 것이다. 류목사는 지금까지 자기 스스로도 교리로 인정할 수 없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해온 것인가? 아니다. 30년간 다락방 모든 성도들에게 일관되게 가르쳐진 류광수 메시지가 다락방의 교리요, 다락방의 신학이다.
(2) 다락방 메시지는 점차 교리적 이단임을 드러냄
우리는 다락방 메시지를 불신자 현장전도용으로 받아들였다. 전도용 메시지는 그 내용이 신학적으로 바르고 정확한 여부 보다 불신자들이 잘 이해하고 잘 받아들이는 여부가 더 고려된다. 이런 면에서 사탄이 강조된 다락방 메시지는 사영리로 대표되는 한국교회 전도메시지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다락방 메시지는 인간의 근본문제를 “하나님 떠남, 죄 가운데 빠짐, 사탄에게 잡힘” 이 세 가지로 말하며 시작한다. 여기서 “하나님 떠남, 죄 가운데 빠짐” 두 가지는 한국교회에서도 이미 말하던 바다. 류목사는 여기에 “사탄에게 잡힘”을 하나 더 말한 것이다.
“하나님 떠남, 죄를 지음“ 이 두 요소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회개하고 죄용서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 정통신학은 회개와 죄용서, 칭의와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구원론을 가르쳤다. 이는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감사 감격의 신앙생활이다. 그러나 정통신학의 신앙생활은 십자가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면 예수 믿는 것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다. 모든 것은 너의 잘못이니 네가 회개하라는 식의 꽉 막힌 율법주의로 느껴지기 쉽다.
또한 정통신학은 어려운 일을 만난 성도들에게 욥기의 신정론으로 위로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분명 예수 잘 믿고 구원받은, 진실된 성도요 헌신된 목회자인데 자기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신앙생활이 뭔가 답답하다. 이것은 십자가 은혜로 해결되는 문제였고, 우리는 그 복음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복음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은사주의 신비기도 예언환상에 기웃거리며 자기의 답답한 신앙생활을 해결하려 했다. 이게 당시 한국교회 잘 믿는 성도들의 현실이었다.
이때 류광수 다락방은 정통신학과 똑같이 하나님 떠남과 죄를 말하고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사탄이었다. 이는 굉장한 방향전환이었다. 하나님 떠남과 죄는 비인격이므로 내 문제였다. 내가 하나님을 떠났고 내가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다르다. 사탄은 자기의지를 가진 인격이다. 사탄이 추가되는 순간 사탄이 내 문제의 원인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 성도들이 느끼던 답답한 문제들의 해답이 되었다. 그래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자기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니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 온다. 영적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는 당연히 깨달아지고 이 내용을 말하면 전도가 저절로 되는 것이다.
류목사는 메시지를 조금씩 다르게 설명하며 사람들을 다락방 메시지로 끌어들였다. 인간의 근본문제는 처음에 “죄, 세상, 사탄”으로 말하다가“죄, 육신, 사탄”이 되더니 “죄, 저주, 사탄”으로 말이 바뀐다. 이는 근본문제의 원인을 사탄에게 돌리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 떠남, 세상으로 나감, 육신이 됨, 저주 가운데 있음은 모두 같은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천은 죄의 책임을 나에게서 서서히 사탄에게로 옮기는 과정이다. 결국 하나님 떠남은 저주라는 말로 바뀌었다. 하나님 떠남은 내가 가해자로 느껴지지만, 저주 가운데 놓임은 내가 피해자이다. 저주는 내가 현재 당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지금 일어나는 문제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결국 류목사는 하나님 떠남을 세상, 육신, 저주로 점차 바꾸며 내 책임을 경감시키고 서서히 사탄을 원인자로 부각시켰다.
또한 류목사는 원죄 단어를 영적문제로 바꿨다. 영적문제는 내가 저지르지 않았는데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이는 영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문제이며 결국 사탄에게 잡혀있어 일어난 문제이다. 다락방에서 원죄와 영적문제는 같은 의미이며 결국 사탄에게 잡힌 것이다. 죄는 내가 저지른다. 죄의 책임이 내게 있다. 영적문제는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니다. 죄책이 내게 없다. 결국 인간의 근본문제 세 가지 “하나님 떠남, 죄를 지음, 사탄에게 잡힘”은 처음에는 원죄로 설명되다가 영적문제로 바뀌며 역시 죄의 책임은 나에게서 사탄으로 완전히 옮겨졌다.
원죄와 영적문제를 알게 되면 그리스도는 바로 깨닫게 된다. 류목사는 그리스도를 삼중직으로 설명하며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선지자, 죄 문제 해결하는 제사장, 사탄의 머리를 깨뜨린 왕으로 설명했다. 이 삼중직은 류목사가 말하는 원죄와 영적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너무 잘 들어맞는 설명이었고 류목사는 이를 초대교회가 증거했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원색복음의 회복으로 강조했다. 이는 다락방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너무나 잘 먹혔다. 신학적 오류임은 나중에 알게 된다.
류목사는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설명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이다. 모든 문제란 사탄에게 잡힌 영적문제와 그 때문에 발생한 불신자 여섯가지 상태이다. 근본문제, 미신우상에 빠짐, 정신과 영이 시달림, 육신의 고통, 마음의 고통(안식없음), 후손 문제 옴... 성경은 이것을 죄로 인한 사망의 증상(현상)들로 말하는데, 류목사는 사탄에게 잡힌 영적문제들로 말한다. 불신자에게 나타나는 상태는 여섯가지이나 원인은 한 가지 영적문제에서 왔다. 이는 사탄에게 잡혔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락방은 영적문제를 입에 달고 다닌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왕이심을 증거 하면 두 말 없이 바로 해답이 된다.
다락방의 그리스도(십자가)는 죄용서를 통해 죄인을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음이 아니라, 영적문제(사탄잡힘)와 영적문제들(불신자 여섯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탄 꺾는 분이시고, 십자가는 사탄 꺾는 능력이다. 그래서 다락방 메신저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영적문제와 그 이유들을 계속 찾아낸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락방에서 영적문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근거이다.
다락방 최고의 사역자는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영적문제(들)를 상세히 찾아내어 그리스도로 답을 주는 사람이다. 그게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깨달은 사역자이다. 그들은 심리학이든 뭐든 끌어다가 사람의 내면을 파헤치고 이를 영적문제라고 진단한 후 그리스도로 답 준다. 이게 다락방의 치유사역이다. 이런 설명은 대단히 심오하고 깊은 것 같지만 성경이 말하는 죄와는 거리가 멀다. 영적문제 앞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없어진다. 사탄 꺾음만 제시된다.
결국 다락방 사역자는 성도를 하나님과 바른 관계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영적문제를 밝혀내어 그리스도로 치유하고 해답 주는 일(=사탄 꺾음)에 온 힘을 쏟는다. 그래서 다락방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부각되기보다 영적문제와 사탄이 부각되고 사탄 꺾는 그리스도가 강조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당하고 있는 영적문제(사탄)와 영적문제들(불신자상태)을 해결하는 모든 문제 해결자이기 때문이다. 이게 다락방 복음이고 다락방의 십자가이다. 여기에는 평안과 안식이 없다.
(3) 다락방의 패러다임은 불신자 현장전도에서 렘넌트 후대복음화로 바뀜
류광수 다락방은 성경적 전도방법을 통해서 불신자를 전도하자는 단체였다. 이것이 우리가 다락방에 참여하는 이유였다. 초창기 10여 년간 류목사는 언제나 불신자 전도를 위한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 전도방법론과 다락방 기본메시지를 강의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다락방은 달라졌다. 렘넌트 후대 복음화가 다락방의 메인스트림이다. 지금 다락방은 현장에서 전도하는 것보다 RUTC 훈련장과 237 센터 건축이 목표가 되고 WRC 대형집회를 여는 것이 주요 사역이 되었다. 이제 다락방은 불신자 현장전도 하는 다락방에서 건물 짓는 다락방이 되어버렸다.
초창기 류목사는 한국교회가 생명운동 하지 않고 화려한 건물 짓고 대형집회하며 유혹목회 한다고 비난했다. 지금 류목사가 그것을 하고 있다. 지금 류광수 다락방의 주된 방향은 다락방이 아니라 렘넌트이다. 다락방에서 지교회로 연결되는 불신자 전도할 성경적 전도방법은 없어지고 렘넌트를 위한 대형건물과 대형집회만 남았다. 물론 다락방이 불신자 전도를 포기했다는 말이 아니라 무게중심이 렘넌트에 있다는 말이다.
(4) 다락방 교회에서 성경이 사라지고 류목사 개인사상이 가르쳐짐
다락방에는 성경이 없어진지 오래다. 복음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을 읽으면 오히려 독이 되니 성경을 읽지 말고 류목사 설교를 들으라고 한다. 다락방 교회들마다 성경의 기본교리들이 가르쳐지지 않고 류광수 목사가 설교하는 다락방 메시지만 있다. 성경본문의 의미와 맞지 않은 류목사 개인의 경험과 사상이 성경의 권위로 선포되고 다락방 모든 성도들은 그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초창기 다락방 1세대들은 성경을 읽고 성경진리를 배운 분들이다. 이분들은 성경의 권위를 신앙생활의 절대기준으로 알고 있다. 이분들은 지금 류목사 메시지를 듣고 있지만 성경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다락방 2세대들은 다락방에서 태어났고 다락방에서 예수 믿었다. 이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고 오직 류목사에게 배운 다락방 메시지가 전부이다. 이들은 한국교회는 복음이 없고 다락방은 2천년 만에 회복된 복음이라고 태어나면서부터 교육받았다. 이들과 한국교회 성도들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한국과 북한에서 태어나 각각 30년 다른 교육받은 남북한 젊은 세대의 간격만큼 크다.
(5) 다락방 성도의 신앙생활 목표는 류목사 같은 전도자가 되는 것
다락방 성도들은 성경과 다른 류광수 개인사상을 하나님 말씀처럼 배움으로 그들의 신앙생활 목표를 류목사 같은 전도자가 되는 것으로 삼는다. 그래서 다락방의 구원론은 거룩이 아니라 전도이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원인 전도에 방향을 맞추는 것, 이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경과 맞다. 이는 절대로 틀릴 수가 없다.
류목사 메시지로 세뇌된 이 단순무지한 전도열광주의 확신이 다락방 성도들의 신앙생활 목표가 된다. 여기서 다락방식 구원론(신앙생활)이 나온다. 다락방은 회개를 통한 칭의와 성화의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류광수 목사처럼 사탄을 꺾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세계복음화 하는 전도자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전도를 가장 기뻐하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금 불신자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것에 관심 갖는 것이 죄다. 전도자는 어떠한 실수를 해도 정죄하지 말고 살려야 한다. 복음전도를 막는 것이 죄다. 잘못을 회개하지 말고 전도안한 것을 회개하라. 류목사 메시지에 세뇌된 다락방식 신앙생활은 성경이 가르치는 칭의와 성화의 구원론에서 완전히 벗어나 회개 없는 무율법주의 구원파 방종신앙 구원론에 도달하게 됐다.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을 30년 경험한 목회자들이다. 우리는 1990년대 초에 성경적 전도방법을 배우기 위해 다락방에 참여했지만, 불신자 전도메시지를 교회의 강단메시지로 사용함으로 우리도 모르게 정통교리에서 벗어나는 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2000년대 중반에 다락방의 방향성이 불신자 전도에서 렘넌트로 바뀌며 RUTC가 신앙의 목표가 됨을 당황했고, 어느덧 다락방 모든 교회들마다 성경은 사라지고 류목사 개인사상이 하나님 말씀으로 대체됨을 깨닫고 속으로 탄식하고 있었다.
이때 류광수 자신과 그의 측근 목사들의 재정의혹, 성비위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다락방에 만연한 죄의 열매들이 다락방 이단교리 때문임을 확인하고 류목사와 다락방 본부 측에 개혁을 촉구했지만 거부당하고 다락방을 탈퇴하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임을 주장하는 근거를 말하겠다.
3. 류광수 다락방은 교리적 이단이다.
(1) 인죄론 이단이다 - 인간의 근본문제를 사탄에게 잡힌 것으로 주장.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인간의 근본문제를 죄에서 찾는다. 죄는 모든 사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아담의 본성이다. 아담은 선악과 금령을 어기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주인되어 살겠다고 선언했다(창3:5) 모든 인간은 아담처럼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주인되어 살아가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원죄).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의 소욕/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범죄를 짓는다(창4:7). 비록 자범죄가 죄로 오염된 자신의 의지(원죄)에서 왔어도, 자범죄는 자기의 인격적 결정이므로 죄의 책임은 죄를 범한 자신에게 있다(죄책)
아담은 사탄의 유혹받아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의 책임을 물으셨다(창3:17). 가인은 아담의 원죄로 오염되어 아벨을 죽이는 자범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책임을 물으셨다(창4:13) 이것이 성경진리이다.
다락방은 정통신학과 다르다. 인간의 근본문제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탄에게 잡힌 신분 소속 상태이다. 한마디로 현재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탄에게 잡혀있는 존재이다. 이 세 가지는 반드시 함께 나온다. 하나님 떠났는데 죄는 없거나, 죄에 빠졌는데 사탄에게 잡히지 않았거나 이런 것은 없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 세 가지에 동시에 걸려있다.
다락방의 문제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근본문제를 죄라고는 말하나 그 내용이 결국 사탄에게 잡힌 것으로 말하는데 있다. 물론 개혁주의 정통신학에서도 모든 인간은 사탄의 지배하에 태어난다고 말한다. 사탄은 이 세상 임금이요 공중 권세 잡은 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다락방처럼 사탄에게 직접 잡혀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사탄의 참소와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노릇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다락방 교리처럼 모든 사람이 사탄에게 잡혀있다면 로마서의 칭의와 성화의 가르침은 틀린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잘못 가르친 것이고 로마서는 사탄 꺾는 복음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게 맞는 말인가?
분명히 성경은 사탄이 직접 사로잡은 사람이 있음을 가르친다. 거라사 광인처럼 귀신들린 사람이다.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사탄에 의해 지정의가 잡혀있으므로 죄의 책임은 사람에게 없고 그를 사로잡은 사탄에게 있다. 이들은 소수이며 특수한 상황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사탄에게 잡혀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죄의 본성을 가진 죄인이라 가르친다. 그들은 부패한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탄의 유혹과 참소를 벗어날 수 없고 자범죄를 짓는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다.
인간의 근본문제에 대해 다락방과 개혁주의 정통신학의 다른 점을 정확히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사람을 구원하고 성도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사탄 꺾음이 필수적 요소인가 아닌가 질문이다. 다락방은 반드시 사탄을 꺾어야만 구원이 일어나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죄를 회개함은 부수적인 요소이다. 정통신학은 내가 죄를 회개함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사탄은 유혹자로서 부수적인 요소이다.
(2) 구원론 이단이다 – 회개 없는 신앙생활, 죄의 책임을 사탄에게 돌리며 칭의와 성화가 없음
다락방은 영적문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인간이 사탄에게 잡힌 원죄의 다른 표현이다. 요즘 다락방 본부에서 원죄는 하나님 떠난 것이라고 말하며 사탄에게 잡힌 것이 아니라고 반박논리를 개발한 것 같다. 그러나 류목사가 말하는 원죄는 정통신학처럼 하나님을 거부하는 아담의 부패한 본성이 아니다. 다락방은 원죄가 사탄에게 잡힌 것이 아니며 하나님 떠난 죄라고 아무리 반박논리를 펴도 그들이 말하는 그 원죄 때문에 지금 모든 인간이 사탄에게 잡혀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다락방은 인간이 하나님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탄에게 잡혀있다고 항상 세 가지를 말했다고 반박하나 그 강조점은 분명 사탄에게 잡혀있음이다. 하나님 떠남과 죄는 모든 기독교회가 말해 왔다. 다락방만 사탄에게 직접 잡혔다고 말한다. 사탄이 강조되지 않는다면 다락방 메시지가 아니다. 이것이 2천년 만에 회복된 복음의 비밀이다. 류목사의 깨달음은 바로 그것이다.
다락방이 말하는 인간의 근본문제(원죄)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적문제이다. 이는 정통신학처럼 내 속에 있는 부패한 죄의 본성을 내 힘을 벗어날 수 없음이 아니다. 사탄이 나를 잡고 있기 때문에 내가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영적문제는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죄의 책임은 내게 없다. 사탄에게 있다. 죄는 나로 하여금 죄의 책임을 느끼게 하지만, 영적문제는 문제일 뿐이다. 나의 죄책이 느껴지지 않는다. 회개가 아닌 사탄 꺾음이 필요하다.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죄의 책임을 사람에게 지운다. 죄의 소욕은 네게 있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창4:7) 사탄이 유혹하고 나는 아담의 죄로 오염된 죄인이지만 분명 죄는 내가 내 인격적 결정에 의해 짓는다. 그러므로 죄책은 내게 있다. 그러나 다락방에서 가르치는 죄는 직간접 모두 사탄과 연관되어 있다. 원죄는 사탄이 죄인을 직접 잡고 있다는 것이고, 자범죄도 사탄이 직접 잡은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내게 죄의 책임은 희미해진다.
다락방은 죄의 책임을 나라고 강조하지 않고 사탄에게 돌린다. 지금 류광수 다락방은 죄를 지어도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함이 아니다. 류목사는 죄를 지으면 죄의 책임이 내게 있으니 내가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음이다. 오히려 다락방은 복음은 사람을 살리고 율법은 죽인다고 말하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영적문제가 심해서 사탄에게 속아서... 이런 식으로 말하며 내가 져야할 죄의 책임을 사탄에게 전가한다. 그래서 다락방은 자범죄에 대한 회개가 없다. 이는 성도의 구원론(신앙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믿어 죄용서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어 구원을 얻었다. 이때 죄인은 죄가 하나도 없는 실제 의인으로 바뀌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죄인이다. 그는 죄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죄를 덮으사 죄인에게 죄없다하심(죄용서)과 의롭다하심(칭의)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성도를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라 말했다.(simul justus et peccator) 성도는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진 죄인이지만 성령을 보내 그리스도와 연합시켜주신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의 구원론이 시작된다.
성도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성령을 받은 자이다. 죄인에게 성령이 내주함은 불가능하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일을 이루신 것이다. 이제부터 성도는 죄의 소욕대로 살 것인가 성령의 소욕을 따를 것인가 이 두 마음이 충돌하게 되어 있다. 충돌이 없다면 나는 죄가 없는 의인이구나 오해 말고 내게 성령이 있는가를 의심해야 된다. 구원받고 성령 받으면 반드시 충돌이 생기고 또 생겨야만 한다. 이 싸움이 신앙생활이요 성경의 구원론이다. 즉 죄인인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며 점점 거룩해져가는 성화의 구원론이다. 성도는 부활이전까지 성화되어져가는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론은 칭의를 통한 성화의 삶을 필수로 다룬다. 이것이 없는 구원론은 이단이다.
다락방은 죄(원죄,자범죄)를 성경과 다르게 가르쳤다. 원죄는 내 속에 있는 아담의 본성이 아니라 사탄에게 잡힌 영적문제였고, 자범죄는 원죄의 오염으로 인해 내가 저지르는 죄가 아니라 사탄에게 잡혔기 때문에 내게 일어난 영적문제들(불신자상태)로 가르쳤다. 나의 죄책은 없어지고 사탄이 죄의 원인자가 되었다. 결국 다락방의 구원론은 회개와 성화가 없고 반복되는 죄를 영적문제라고 부르며 묵인하고 방종하게 된다. 회개가 없고 성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류목사 측근 목사들의 타락과 그들의 뻔뻔스런 담대함은 이런 이단교리 때문이다. 다락방은 구원론 이단이다.
(3) 기독론 이단이다 - 그리스도와 십자가는 죄사함 보다 사탄 꺾음을 강조.
다락방은 인죄론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에 기독론이 잘못된다. 다락방의 그리스도는 사탄 꺾는 왕이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사탄을 꺾기 위함이다. 물론 죄사함도 말하나 그냥 지나가는 언급이다. 다락방의 십자가는 사탄 꺾음이 핵심이다. 강조점이 그렇다. 그래서 다락방에는 내가 주인되어 살아온 죄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 없다. 내 죄를 위해 피흘리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감격하는 통곡의 눈물이 없다. 오직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그리스도를 깨달았다는 확신, 기쁨, 자신만만함만 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회심이 아니다.
다락방은 그리스도를 삼중직으로 설명한다. 삼중직은 개혁주의 정통신학의 자랑스런 전통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계시중보자로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시다(신18:15). 그리스도는 자기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히10:18) 그리스도는 하늘보좌에 앉으사 성령을 파송하사 자기 백성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다(마28:18)
다락방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인간의 세 가지 근본문제와 연결시킨다. 하나님 떠난 우리를 하나님 만나게 해주시는 선지자,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왕이다. 개혁주의 정통신학과 다른 것은 지금 하늘보좌에 앉으사 성령 안에서 자기 백성을 통치하시는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왕으로 축소시키고 이러한 왕직을 크게 강조한다.
다락방의 문제점은 사탄 꺾으신 왕을 강조하는 다락방식 삼중직을 초대교회 복음의 회복으로 주장함이다. 류광수 다락방은 초대교회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마16:18) 의미가 다락방이 설명하는 영적문제 세 가지를 해결한 왕 선지자 제사장의 삼중직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초대교회 사도와 모든 성도들이 다락방식의 왕 선지자 제사장의 의미를 전파하며 복음을 전했고 다락방처럼 영접시켜 전도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2천년 만에 복음회복이 이 말이다.
교회사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4세기 유세비우스때 불완전한 형태로 처음 등장하고 16세기 칼빈에 와서 오늘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복음을 그리스도 삼중직으로 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오류이다. 사도행전 때는 삼중직 자체가 없었다. 거기에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다락방식으로 사탄을 꺾는 왕을 강조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했다는 확신은 근거 없는 맹신이다. 구원은 그리스도 삼중직을 알고 영접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을 때 얻는다.
초대교회가 증거한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는 뜻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멸망기 16명의 구약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그리스도라는 의미이다. 구약 대소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날(말세)이 되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언약의 성령을 부어주시고,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새성전을 짓고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실 것을(사65장) 계속 예언했다. 이사야는 그 그리스도께서 로마를 정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죄를 위해 대속제물로 죽으심으로 구원하신다고 예언했다(사53장). 예수님은 바로 이 구약예언들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그 그리스도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의미는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약선지자들이 예언한 하나님 나라 구원을 가져다주신 그 그리스도시라는 뜻이다. 하나 더,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보좌에 앉으사 우리에게 성령을 파송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연관된 칭호이며 주님은 부활승천 성령강림과 연관된 칭호이다.
(4) 성경론 이단이다. - 성경은 없어지고 류목사 메시지를 성경처럼 가르침.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나타내주신 계시의 책이다. 성경은 교회생활과 성도의 삶에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다. 교회에서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갖는 것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권위로 성도들에게 구원과 신앙생활을 계시한다. 그런데 다락방 교회 성도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 대신 류목사 설교메시지를 읽고 배우고 공부하고 가르친다.
다락방에서 성경을 읽지 말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음 모르고 성경 읽으면 우상숭배와 같다고 말하고, 편지는 중요한 내용만 알면 되지 인사말이나 부수적인 다른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성경 읽기를 권하지 않는다. 대신 류목사 설교메시지를 반복해서 외울 때까지 듣고 심지어는 치유받기 위해서는 토씨 하나까지 빼지 말고 다 녹취하라 강조한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류목사 메시지는 성경진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이는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금방 안다. 칠판에 적혀지는 수많은 성경구절들이 본문의 의미와 전혀 다르게 적혀있을 때가 많다. 류목사는 본문의 의미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느낌만 맞으면 그 구절로 칠판에 적는다. 류목사는 성경말씀에 대한 경외감이 없다. 그런데도 다락방 성도들은 류목사가 말하는 237, 777, CVDIP 등 수많은 용어들을 성경말씀처럼 붙잡고 기도한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진리와 다른 류목사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여기며 따라가는 단체는 참된 교회가 아니다. 모든 이단들이 다 그렇다.
(5) 교회론 이단이다. - 공교회를 거부, 배타적 교회관, 사도적 전통교리 없음
주님은 자기 피로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그들이 교리적 이단만 아니라면 부유하건 가난하건, 지식이 있건 아니건...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다. 모두 그리스도의 보편교회(공교회) 하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지역교회는 자신만의 유일성을 주장하거나 이웃교회에 대한 배타성을 가지면 안된다. 류광수 다락방은 한국교회와 목회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을 복음을 못 깨달았고 그리스도를 모른다. 다락방은 복음 깨달은 유일한 단체다. 이게 이단이다.
류목사는 끊임없이 한국교회를 비난했다. 다락방은 한국교회와 다름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보편교회(공교회)를 거부함이다. 또한 다락방은 2천년 기독교회(공교회)가 가르쳐온 전통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2천년 만에 깨달은 다락방 진리를 가르친다. 그것은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 내용이 아니다. 다락방은 사도적 전통에 서있지 않다. 그래서 이단이다.
다락방에서 영접한 불신자는 교회화 되지 않는다. 다락방의 목표는 오직 전도이기 때문이다. 다락방 사역자는 구원받은 불신자를 교회화 시키기보다 다락방 전도하는 제자로 양육시킨다. 이는 교회론이 잘못된 것이다. 불신자가 구원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그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게 구원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전도시키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러 구원하셨다. 다락방의 교회관은 성경과 다르다.
말을 맺으며,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에게 세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류광수 다락방은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 성경적 전도방법을 가르치는 단체였다. 류목사는 한국교회 전도방법을 비난하며 자신이 강의한 성경적 전도방법은 될 수밖에 없다고 수도 없이 강조했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다락방에 참여했다. 이제 류목사는 성경적 전도방법으로 전도가 되어진 증거를 한국교회 앞에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요구한다.
둘째, 류광수 다락방은 지금까지 모금한 RUTC 목적헌금의 사용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 액수는 수천억원으로 추정하는데 그 금액은 지금 어디있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부분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도 재정의혹이 있음을 의심하고 있다. 류광수 다락방은 우리와 우리 성도들이 낸 RUTC 목적헌금 사용처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셋째, 류광수 다락방은 탈퇴 목회자들의 교리적 이단 주장을 반박할 때 다른 문헌을 인용하며 그 뒤에 숨지 말라. 우리는 기독교강요나 여러 신앙고백서들이 류광수 다락방의 원죄와 그리스도 사탄 꺾음, 성화 없는 방종메시지를 결코 인정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글은 다락방 성도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내부 단속용일 뿐 사실과 다르다.
류광수 다락방은 우리에게 반박문을 쓸 때, 원죄에 대해서, 영적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 삼중직, 성화 없는 신앙생활과 기타 논란이 되는 교리부분에 대해서 다락방은 이렇게 주장한다고 명확히 자신의 말로 밝혀주시길 바란다. 그래야 올바른 반박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락방 지식노동자들의 부역은 류목사 메시지를 정통신학처럼 보이게 포장하는 일만 한다. 결국 이 싸움은 그런 가르침을 해온 류목사가 나와야 끝날 것이다.
우리는 류광수 목사를 앞에 두고 다락방 신학자 대표와 한국교회 신학자 대표들이 나와 공개토론하기를 분명히 요구한다. 이렇게 해야 한국교회와 다락방 성도들이 무엇이 성경진리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우리는 그 공개토론을 계속 촉구하고, 최종 실현시킬 것이다.
[출처] “코람데오“ 다락방 탈퇴 목회자들 선언문 (다락방 밖으로(다락방 탈퇴자의 모임)) | 작성자 h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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