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광수 다락방, 교리적 이단 논쟁
류광수 다락방, 교리적 이단 논쟁
나용화 교수의
다락방을 탈퇴한 목회자들이 쓴 "류광수 다락방은 교리적 이단이다"에 대한 평가 (전문)
2024년 8월 11일
최근에 다락방을 탈퇴한 목회자들이 발표한 성명서는 1995년과 1996년부터 다락방 운동을 사탄 신학으로 규정한 합동, 통합 등 9개 교단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1996년 합동 교단의 '다락방 확산 방지 및 이단성 규명에 관한 조사위원회'(위원장 이상강 목사)는 다락방이 이단이 아니라고 밝혔고, 2012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다락방 신학을 검증하고서 이단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었다.
한때 경제정의 실천운동을 주도한 서경석 목사도 다락방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이단 감별사인 최아무개 목사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류 목사와 그의 전도사 시절부터 십여년 이상 함께 교회를 섬긴 총신대 신대원 70회 졸업생인 최동근 목사도 다락방은 결코 이단이 아니라고 단언하였다.
다락방을 탈퇴한 목회자들(이하에서 '탈퇴 목회자들'로 표기한다.)도 다락방의 초기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좋게 생각했다고 하였다.
탈퇴 목회자들이 다락방의 신학을 사탄 신학으로 규정한 까닭에, 이에 관하여 우선 언급하자면, 성경은 사탄에 대하여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창3:15; 계20:2, 10, 14)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사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더라도 결코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사탄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성경적이다.
그리고, 귀신들린 소수의 사람들만 사탄에게 직접 사로잡힌 것이고, 우리 보통의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사탄에게 직접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고 탈퇴 목회자들은 주장하나,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에 의하면,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사실상 죄의 몸종이요(요8:34), 사탄의 올무에 걸려 사탄에게 사로잡혀 그의 뜻을 좇아 산(딤후2:26; 엡2:2)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다(엡2:3).
그러나 탈퇴 목회자들이 다락방의 신학을 교리적 이단으로 규정함에 있어서 인죄론, 구원론, 기독론, 성경론, 교회론의 순서대로 다루었기에 이 순서를 따라 평가했다.
(참고: 조직신학의 순서에 따르면 성경론, 인죄론, 기독론, 구원로, 교회론이 순서이다)
1. 인죄론에 관하여
탈퇴 목회자들에 의하면, 다락방은 현재 인간의 근본문제를 하나님 떠남, 죄 가운데 빠짐, 로잡힘 등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이에 비하여, 정통신학은 하나님 떠남과 죄 가운데 빠짐 두 가지만 언급하고, 사탄에게 사로잡힘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탈퇴 목회자들은 주장했다.
이 점에서 다락방이 정통신학과 특별히 다르다고 했다.
탈퇴 목회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다락방이 사탄에게 사로잡힌 바 된 영적 문제를 특별하게 강조한 것은 우리가 죄를 범한 것이 사탄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는 없고, 사탄에게 전적으로 있으며, 따라서 다락방은 회개할 필요를 가르치지 않고 결과적으로 무율법주의에 빠져 죄를 뻔뻔하게 범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락방은 사탄을 꺾고 결박하는 것만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사탄을 꺾는 것으로만 가르친다고 탈퇴 목회자들은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만 죄의 책임을 물어 저주했는데, 다락방은 반대로 사탄에게만 죄의 책임을 물은 것으로 가르친다고 했다.
그래서, 다락방의 경우는 죄 회개하는 일은 부수적이고 사탄을 꺾는 일이 가장 중요시되고 있으나, 정통신학은 사탄을 꺾는 일은 부수적이고 죄 회개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탈퇴 목회자들의 주장대로,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죄 회개를 중요하게 여겨 강조하였다 (막1:15; 행2:38).
그러나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은 악령들을 꺾는 것이었다(막1:21-28).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악령들을 쫓아내는 일을 처음부터 힘써 행하셨다(막1:32-34; 참고, 행10:38).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경우, 죄 회개와 사탄을 꺾는 일이 다같이 중요하고,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부수적인 것이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악령들을 꺾는 일을 했고(눅10:17),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악령들에게 괴로움 당하는 자들을 힘써 고쳐주었다(행5:16)
이같은 까닭에, 탈퇴 목회자들이 죄 회개와 마귀 꺾는 일 중에 우선순위를 임의로 정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지가 않으며, 따라서 다락방이 마귀에게 사로잡힘을 강조한 것을 이유로 하여 교리적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터무니없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아담뿐 아니라 사단에게도 책임을 물어 저주한 바 있다(창3:14, 15)
2. 구원론에 관하여
탈퇴 목회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다락방만이 사람들이 사탄에게 직접 사로잡혀 있다고 하고, 정통신학은 소수의 귀신 들린 사람들이 있을 뿐 모든 사람들이 사탄에게 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사탄의 참소와 공격을 받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락방은 죄의 책임을 사탄에게만 전적으로 돌리는 데 반하여, 정통신학은 인간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하여, 다락방에는 칭의를 통한 성화의 삶이 없고, 다락방의 목사들이 타락하여 성비위 사건들에 연루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죄를 짓는 자는 모두 죄의 몸종이고(요8:34), 예수님이 자유롭게 해주어야만 자유롭게 될 수 있다(요8:36).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한 까닭에(롬3:23)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들이 되었으며(엡2:3), 바울에 의하면, 사탄의 올무에 걸려 사탄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사탄의 뜻을 좋아 살게 되어 있다(딤후2:26). 사탄 마귀는 으르렁거리는 굶주린 사자처럼 늘 집어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다(벧전5:8).
칼빈도 그의 기독교 강요(1권 14장 13-19절)에서 공중의 권세 잡은 이 세상의 신, 곧 사탄 마귀가 모든 죄의 설계자요 창시자라고 하였고, 우리를 미혹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하여 파멸을 당하게 하려 하며, 우리를 대적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모든 죄악의 궁극적 원인은 사탄의 소행이라고도 말했다(기독교 강요, 2권 4장 1절). 물론, 칼빈은 죄의 실제적 원인은 사람의 의지라고 가르쳤다.
사람이 사탄의 지배를 받아 필연적으로 죄를 짓지만, 자발적으로 자기의 의지로 죄를 짓는다고 하였다(기독교 강요 2권 4장 1절).
이로 보건대, 귀신들린 소수의 사람들만 사탄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가룟 유다의 경우처럼(요13:2, 27), 그리고 사도행전의 아나니아 부부의 경우처럼(행5:3)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우리 중심에 모시지 않으면 사탄에게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이다.
탈퇴 목회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다락방에는 칭의로 말미암은 성화의 삶이 없고, 그래서 다락방 목사들에게는 우리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여 흘리는 회개의 통곡의 눈물이 없다고 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3권 11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동시에 칭의와 성화의 유익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면 의롭다 함을 받음은 물로 동시에 성화되는 것이다.
성화 없는 칭의는 없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칭의와 성화를 동시에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칭의로 말미암아 성화되는 것이 아니다.
즉, 칭의는 성화의 원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연합이 칭의와 성화의 원인이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성화를 먼저 다루고 나서(3권 6-10장) 칭의를 나중에 다루었다(3권 11-18장).
그러기에, 칼빈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다락방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로 필연적으로 칭의와 성화가 있게 마련이다. 만일에 다락방 목사들에게 성화의 삶이 없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참되지 않아 예수님을 그들의 중심에 모시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다락방의 「복음편지」 (p.168)에 보면, 구원을 얻는데 다섯 단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단계, 믿는 단계, 영접 단계, 시인 단계, 나타내는 단계 등이다. 다섯 단계를 세분한 것에 대해서는 논쟁의 소지가 없으나, 다락방이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다락방은 가르치기를, "매일의 삶 속에서 죄의 문제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사함을 받음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복음편지」 p.48, 79)고 했다.
탈퇴한 목회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다락방의 목사들이 부패 타락한 것은 그들의 교리와 다르게 살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실제로는 모시지 않은 데 있는 것이다.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 이어서가 아니라, 목사들이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기 때문이다(참고, 요12:6; 갈5:24; 딤전6:10; 딤후3:2).
3. 기독론에 관하여
탈퇴 목회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도행전 때는 그리스도의 삼중직 자체가 없었고, 그리스도를 사탄을 꺾는 왕으로 증거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사탄 꺾기로 강조하는 다락방은 교리적으로 이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직분은 본래 영원한 삼중직이어서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한순간도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 아니신 적이 없으시다.
만일 이 직분들 가운데 하나라도 결여하셨다면 그분은 그리스도가 아니시다.
사도행전 2:14-36에서, 베드로가 한 설교만 보아도,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나타나 있다.
특히, 사도행전 3:22에는 그리스도가 선지자로, 5:31에는 임금(영도자)으로, 20:28에는 제사장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사탄과의 대적 또는 사탄 꺾기로 강조한 것은 루터를 비롯하여 많은 찬송가 작사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귀들과 담대하게 싸울지라."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일인 죄를 멸하기 위해서는(요일3:8) 마귀들을 꺾어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죄를 없이 하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피를 흘려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히9:12, 26), 죄를 멸하기 위해 사탄 마귀를 십자가로 결박하고 꺾어 승리하셨다(골2:15).
그러기에, 다락방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사탄을 꺾는 것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가 씻어진다는 것도 가르치고 있다(「복음편지』 p.48).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속죄제물이 되셨다 할지라도, 십자가로 죄의 원인자인 사탄 마귀를 꺾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에게는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과 십자가로 사탄을 꺾으심이 다같이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가 사탄 마귀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깨어서 항상 힘써 싸워야 하기 때문에 (엡6:11, 12; 벧전5:8, 9), 우리의 실제 신앙생활에서는 마귀를 꺾는 십자가 사역이 더 강조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다락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사탄 꺾는 것과 관련하여 강조하였다 하여 교리적 이단이라고 한 탈퇴 목회자들의 주장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다.
논리적으로 탈퇴 목회자들이 인간의 근본문제와 관련하여, 사탄에게 사로잡힘, 사탄 꺾기, 사탄에게 죄의 책임을 돌림, 이로써 회개가 없고 성화의 삶도 없으며 목사들이 무율법주의에 빠져 뻔뻔스럽게 죄를 범하고 있다고 한 것은 맞는 주장인지 의문스럽다.
거듭 말해 두는 것은, 다락방 목사들의 재정 의혹과 성비위 사건들의 원인이 교리적 이단 때문인가, 아니면 육신적인 정욕과 탐욕의 죄성때문인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가룟 유다, 아나니아 부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등의 재정 의혹은 교리적 이단 때문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정욕 때문이었다(칼빈, 기독교 강요, 2권 1장 8절).
사탄은 우리를 속이고 사로잡아 그의 뜻을 따라 정욕으로 죄를 범하게 하여 우리를 죽인다 (롬7:11; 딤후2:26; 요일2:16).
그러기에 사탄을 힘써 대적하여 꺾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하다.
4. 성경론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보면, 이단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교주의 가르침이나 메시지를 성경보다 우위에 두어, 성경의 권위보다 교주의 메시지의 권위를 더 높이는 것이다.
이같은 특징을 고려하여 탈퇴 목회자들은 다락방이 성경 읽는 것을 적극 권장하지 않고, 류 목사의 설교 메시지를 녹취하는 것을 더 강조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류 목사의 메시지와 그것과 관련하여 인용하는 성경 구절들의 경우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이 많다고도 했다.
이는 류 목사가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탈퇴 목회자들은 주장했다.
또한 다락방의 사람들도 성경 읽는 것보다는 류 목사의 메시지를 녹취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탈퇴 목회자들은 다락방이 성경의 권위를 소홀히 하는 바 교리적 이단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만일에 다락방이 성경의 권위보다 류 목사의 메시지의 권위를 더 중요하게 여겨 류 목사의 메시지 녹취에 열심을 내는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탈퇴 목회자들이 이같은 사실을 현장에서 감지했다고 하면 그들의 주장은 수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다락방의 신학교인 렘넌트신학연구원의 경우, 성경 고사에 합격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신구약 성경을 힘써 읽지 않을 수가 없으며, 교과과정에도 다수의 성경 과목들이 포함되어 있어 성경을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같은 신학교의 제도를 보면, 다락방이 성경 읽기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의문스럽다. 광주에 있는 다락방 소속의 한 교회는 전교인들에게 성경 읽기를 강권하여 성경 전체를 완독하면 시상하기도 했다
5. 교회론에 관하여
다락방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폄하한 것에 대하여, 즉 다락방의 배타적 교회관을 인하여 2004년 공개적으로 기독교계 신문에 사과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그 후로는 한국교회에 대하여 함께 하려고 노력하였다.
탈퇴 목회자들에 의하면, 다락방이 얼마 전부터 RUTC 훈련장, 237센터 건축, 그리고 WRC 대형집회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 이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예배당을 크게 짓고 수련관을 세우며, 대형집회를 통해서 교회를 발전시키고자 할 경우, 다소간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여 이단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탈퇴 목회자들의 주장대로 하면, 모든 대형 교회들은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다락방 목사들의 재정 의혹과 성비위 사건들은 탈퇴 목회자들의 주장대로 비난받아 마땅하며, 반드시 바로잡아져야 하고 교단 차원에서 징계해야 할 것이다.
그같은 비행들은 육체의 정욕과 탐심에서 비롯되어 교회를 해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기 때문이다. 다락방 목사들이 자기들의 비행을 스스로 진실하게 회개하고 개혁하며 변화되기를 거부한다면 자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때문에 다락방을 교리적 이단으로 단정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나용화 총장님께 드리는 질문
2024년 8월 11일
존경하는 나용화 총장님
지금 총장님은 코람데오 연대 발표문에 대한 다락방측 반박문을 쓰셨습니다.
이로서 총장님은 본인께서 원하시든 원하시지 않든 다락방측 대변인이 되셨고, 저는 다락방 탈퇴목회자 코람데오 연대 측 목회자로서 총장님과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신학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되어 지는 모든 일은 개인 이광은 목사와 개인 나용화 총장님과의 일이 아닌 코람데오 연대와 류광수 다락방과의 이단 문제 싸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나용화 총장님 개인에 대해서는 신앙인격과 신학에 대해서 존경합니다.
제게 보내주신 따듯한 문체의 글들은 목사님의 신앙인격이 훌륭하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류광수 다락방 이단문제 만큼은 저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절대로 물러설 수 없고 총장님과 끝까지 맞서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나용화 총장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저 개인에게 아닌 공식적 문서로 대답해 주십시오.
첫째, 총장님이 다락방 변론에 대해 쓰시는 모든 글은 다락방측 대변인으로서 쓰시는 공식문서로 제가 발표해도 되겠는지요?
저는 나용화 총장님의 글을 한국 칼빈주의 학회와 조직신학회, 모든 교단 총회와 이단대책위원회, 한교연 등에 다락방측 공식문건 이라고 보내고 제 글과 비교해서 검토하고 확인할 것입니다.
둘째, 나용화 총장님은 본인께서 류광수 다락방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셨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다락방 30년 동안 류목사 설교가 다락방 목사들과 성도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정말 아십니까?
코람데오 연대측 목사들이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 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강요를 몰라서, 신학이 부족해서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셋째, 나용화 총장님은 지금 한국교회 9개 교단이 발표한 다락방 이단발표가 신학적으로 틀렸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한국교회에 발표해도 되겠는지요?
넷째, 저는 계속 제 글 십자가 복음과 다락방 복음(1-18)을 한국 기독일보 실어줄 것을 윤광식 발행인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류광수 목사의 녹취록을 가지고 한국교회 신학자와 다락 방측 신학자들이 모여 공개토론 하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용화 총장님은 윤광식 발행인에게 제 글을 한국기독일보에 실어줄 것을 요구해주시고 공개 신학토론회에 나오실 수 있으신지요?
다섯째, 이후부터 저는 나용화 총장님을 나용화 목사님이라 호칭 하겠습니다. 앞으로 오갈 모든 공식문서에 현직이 아니신 분을 총장님이라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앞으로 저는 모든 것을 공적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이후 오가는 모든 글은 한 국교회 앞에 공개 될 것입니다.
한국시간으로 8월 14일 자정까지 나용화 총장님의 답변을 기다립니다. 저도 그때까지 나용화 목사님이 쓰신 글에 대해서 답변 을 올리겠습니다. 개인 메일이 아닌 공적문서로 발표해 주십시오.
2024. 8. 11 주일예배를 마치고... 이광은 목사 올림
나용화 교수의 답변
제 글을 곧 개혁공보에 올려 놓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저는 류광수 목사의 다락방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대변인도 아닙니다.
또 렘넌트신학연구원의 석좌교수도 이제는 아니고 강사도 아닙니다.
제가 탈퇴 목회자들의 글에 대한 평가를 쓴 것은 전에 한기총 신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써 다락방의 신학을 검증하고 이단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보기에는 탈퇴 목회자들의 성명서 자체만 놓고 볼 때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것 때문입니다.
탈퇴 목회자들의 중심에 대해 과소 평가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적극 응원합니다.
앞서도 언질을 준 것 같은데 저는 내년이면 80세가 되기 때문에 지금 맡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날 뿐 아니라 개혁교단 전남노회에서도 탈퇴할 겁니다.
이목사님께서 저의 중심을 이해 못하셔도 서운해 하지 않을 테니 목사님 좋을 대로 하십시요.
저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저의 명예나 권위는 제게는 아무 의미가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은 시골에 묻혀 농사꾼으로 사는데 만족하고 있거든요.
앞으로 목사님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든 저는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컴퓨터도 사용할 줄 모르는 컴맹이니까요.
제 유튜브에 올린 글들은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겨우 한 것이어서 구독자들에게 아무런 감사의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목사님이 저 대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든 저는 일체 반응을 할 수도 하지도 않을 터이니 마음 놓고 편하게 마음껏 하셔도 됩니다.
주 안에서 건강하시고 모든 일에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이 목사님께 보내는 저의 마지막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광은 목사의 글
나목사님과 저 사이에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나목사님이 다락방과 합칠때 성함을 처음 들었고 그후에는 잊었는데
제 선배 체사픽신학교 김병은 총장님으로 부터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귀한 분으로 알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것입이다.
저는 목사님의 신앙이나 신학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단지 다락방을 잘 모르시는 목사님이 다락방에 이용당하심을 안타까워 할뿐입니다.
제가 말씀드린데로 목사님의 글은 윤광식에의해 대대적으로 홍보 될 것이고 다락방 내부결속용으로 이용될 것입니다.
저는 류광수 이단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싸움도 피하지 않을 것이고 물러서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목사님을 다락방축 대변인으로 오피셜하게 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제 글들은 감정없는 오피셜한 글로 이해해주십니다.
저는 목사님 개인에 대해서는 인격모독같은 그 어떤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목사님께 감정없이 공식적 표현으로 쓰게됨을 용서해주시고 이해해 주십시요.
나용화 목사가 쓴 코람데오연대 평가문을 반박한다.(전문)
- 2024. 8. 14. -
다락방 탈퇴목회자 및 성도모임 코람데오연대는 우리가 쓴 "류광수 다락방은 교리적 이단이다”에 대한 나용화 목사의 평가문(2024.8.11)을 반박한다.
이에 앞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한다.
첫째, 우리는 나용화 목사가 다락방 측 평가문을 발표하기 전에 코람데오연대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1-18)”과 “십자가 복음의 영광“을 나용화 목사에게 직접 파일로 전달했음을 분명히 밝힌다.
둘째, 우리는 코람데오연대 발표문에서 이미 류광수 다락방의 핵심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교리에 대해서 정확한 자기주장을 펼쳐줄 것을 요구했다. 나용화 목사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음도 분명히 밝힌다.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무지나 말실수, 인간의 연약함 등을 지적하지 않고 오직 교리적 이단 문제만 다룬다. 류광수 다락방에서 일어난 모든 성비위와 재정의혹 등 각종 부패와 타락은 이단교리에서 발생된 나쁜 열매이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마7:15-20).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임을 입증하는데 조직신학 교과서 순서대로 기술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의 핵심 이단교리 다섯 가지를 그 위험성과 중요도에 따라 순서대로 적는다. 그것이 인죄론, 구원론, 기독론, 교회론, 성경론 순서이다. 물론 류광수 다락방의 이단성은 열 가지도 더 되지만, 기억하기 쉽도록 중요한 순서대로 다섯 개만 기술했다.
1. 나용화 목사는 인간이 사탄에게 잡혔다는 다락방의 핵심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용화 목사는 예수님이 사탄결박(꺾음)하신 것과 사도행전의 제자들도 귀신축출사역 했음을 근거로 다락방의 사단결박을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1,2,10,13번)” “십자가 복음의 영광(5,6,7,8,9장)”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사역인 사탄결박과 귀신축출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을 거부하면 성경을 거부하는 것이다. 나용화 목사는 류광수 다락방과 코람데오연대 사이에 오가는 원죄와 사탄결박 교리논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사탄결박과 귀신축출은 다르다. 사탄결박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것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깨뜨릴 예언(창3:15)의 성취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죄사함과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사탄의 머리는 깨어졌고, 사탄은 무저갱에 갇히고 그의 권세가 결박된 것이다. 귀신축출이 그 증거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탄결박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와 사망, 사탄의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구원받게 된 것이다. 그 방법은 십자가 죄사함과 부활성령을 주심으로 의롭다하심(칭의)을 주심이다. 이는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 사역이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사탄결박이다(마12장).
사도행전 제자들은 사탄결박한 것이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축출사역을 했다. 사탄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그 권세가 결박되었다. 제자들은 곳곳을 다니며 예수님처럼 사탄결박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결박된 사탄의 졸개인 귀신을 축출한 것이다. 이것은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13번)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둘째, 다락방 원죄론의 핵심은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에게 잡혀있는 신분 소속 상태”이다. 이것을 류목사는 “어린아이가 집을 나와 인신매매범에게 잡혀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다락방에서 가장 유명한 비유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군가 가서 그 인신매매범을 꺾고 아이를 구출해야 한다. 이게 다락방이 말하는 사탄결박이다
류목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한사람도 예외 없이 사탄에게 잡혀있는 상태로 태어났다. 나용화 목사는 기독교강요에서 모든 사람은 죄와 사탄의 지배아래 태어나고, 이 세상 신과 이 세상 임금을 섬기고,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함을 인용하며 다락방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지 말라. 칼빈은 절대로 다락방이 주장하는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다. 죄로 인해 사탄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사탄이 직접 포로로 잡고 있기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 누구든 다시 한 번만 기독교강요나 신앙고백서 및 다른 문헌들을 인용하며 그런 주장을 하면, 우리는 한국칼빈학회와 한국조직신학회 및 해당학회에 공문을 보내 공개검증을 요청할 것이다.
성경에는 거라사 광인처럼, 귀신들려 지정의가 완전히 사탄에게 잡힌 사람이 있다(막5장). 또 귀신들려 점하는 여종처럼, 제정신을 가졌지만 때때로 그의 인격이 사탄에게 잡혀 사는 사람도 있다(행16장). 이런 이들은 소수이고 특수한 경우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지정의 자유인격이 아담의 죄로 오염된 죄인이다(롬3:23). 성경에서 죄인은 후자를 말함이지 전자를 말함이 아니다. 다락방에서 죄인이라 함은 모든 사람이 거라사 광인이나 귀신들린 여종처럼 사탄에게 직접 잡혀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집나와 인신매매범에게 잡혀있는 것이다. 이게 류목사의 핵심사상이며 다락방 교리이다. 다락방은 여기에서 출발했기에 모든 것이 어긋났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 치유기적의 약 25%가 귀신축출사역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75%는 귀신과 아무 연관 없는 기적이다. 예수님의 귀신축출사역은 십자가로 사탄결박하신 구속사적 사건을 보여주심이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오늘의 우리가 귀신축출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사탄결박이 아니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귀신축출사역은 귀신들린 특수한 사람에게 해당될 뿐 모든 사람에게 행해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열두 해 혈루병 여인(마9장), 실로암 소경(요9장), 세리장 삭개오, 소경 바디매오(눅19장)... 등 구원하실 때 류광수 다락방처럼 사탄결박 하지 않으셨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사탄을 결박하고 루디아에게 복음전하지 않았다(행16장).
셋째, 나용화 목사는 평가문을 통해 성경에서 예수님이 사탄을 결박하고 귀신축출 하셨듯이 우리도 다락방처럼 사탄을 강조하고 사탄을 결박하며 귀신축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사탄결박과 귀신축출사역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도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귀신축출사역을 하고 또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락방처럼 사탄결박을 하지 않는다. 이게 류광수 다락방과 코람데오연대 사이에 이단교리 논쟁의 핵심이다.
예수님의 귀신축출사역은 당신께서 사탄결박을 하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귀신축출은 그들이 사탄결박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로 사탄결박을 하셨기에 귀신축출사역을 함이다. 그런데 류광수 다락방은 모든 사람, 모든 일에 사탄결박을 하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도 예수님과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귀신들린 특정사람에게 귀신축출사역을 함이 아니라 일반인 모든 죄인에게 예수님만 하실 수 있고 또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미 끝낸 단 한 번의 구속사적 사건 사탄결박을 매일 매사건마다 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용어사용 잘못이나 신학미숙이 아니다. 아주 교묘하고 지능적이다.
류광수 목사는 귀신축출의미로 사탄결박용어를 사용하므로 베뢰아 귀신론의 내용은 가져오고 그 거부감은 무마시켰다. 다락방 성도들은 어려움만 생기면 사탄(흑암)결박하고, 전도할 때도 사탄결박하며 모든 일에 사탄결박을 한다. 다락방 어디에도 베뢰아처럼 거북한 귀신축출은 없다. 그런데 내용은 귀신축출과 다를 바 없다. 귀신축출은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가는 것이고, 사탄결박은 사탄에게서 사람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분명히 다르지만 내용은 다를 바 없다. 교묘하게 의도적이다. 이게 다락방이고 이게 류광수다.
2. 나용화 목사는 다락방이 죄를 내 속에 있는 부패한 아담의 본성으로 가르치지 않음을 모르고 있다.
류광수 다락방은 인간이 사탄에게 잡혀있음을 주장하므로 죄의 책임을 사탄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것 역시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11,12번)“ “십자가 복음의 영광(5,6,7,8,9장)”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나용화 목사는 코람데오연대가 정통신학은 모든 사람들이 사탄에게 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사탄의 참소와 공격을 받고 있을 뿐이므로 죄의 책임은 사탄이 아닌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함이 잘못이라 말했다. 또한 나용화 목사는 죄의 책임은 류광수 다락방의 주장처럼 사탄에게 있다고 기독교강요를 들어 반박했다.
먼저 우리가 사용한 용어의 의미를 분명히 하겠다. 우리는 이미 길게는 18년 전부터(2008.5월), 짧게는 6개월 전부터(2024.3월) 류광수 다락방과 이단교리 논쟁을 해오고 있다. 우리의 언어는 칼빈신학회나 조직신학회에서 사용하는 신학자들의 학술언어가 아니며 류광수 다락방과 코람데오연대 사이에서 오가는 이단논쟁 용어이다. 학술성이 있으나 학술용어에 매이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그 문장의 의미는 이미 “십자가 복음의 영광”과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1-18)”을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첫째, 우리가 모든 사람이 사탄에게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류광수 다락방이 말하는 것처럼 사탄에게 직접 포로로 잡히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거라사 광인이나 귀신들린 여종을 생각해보라. 어린아이가 집을 나와 인신매매범에게 잡혀있는 것 말이다. 만약 류광수 다락방과의 교리논쟁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사탄이 이 세상 임금(요12장) 이 세상 신(고후4장) 공중권세 잡은자(엡2장)이므로 사람이 죄로 인해 사탄의 유혹과 참소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사탄의 종이요, 마귀자녀이며 심하면 마귀에게 잡혀있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사탄의 종이나 사탄에게 잡힌 것은 그리 차이가 없으며, 무엇보다 그 의미가 사탄에게 직접 포로로 잡혀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락방에서 말하는 인간이 사탄에게 잡혀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기에 의도적으로 구분했다. 죄로 인해 사탄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과 사탄이 직접 포로로 잡고 있어 빠져나오지 못함은 완전히 다르다. 칼빈과 기독교강요 1권 14장은 류광수 다락방처럼 모든 사람이 사탄에게 직접 잡혀있음을 말함이 아니다. 이는 상식이라 설명도 필요 없다. 이것을 다시 한 번만 언급하면. 한국칼빈학회와 조직신학회 및 각 교단 신학대학 교수들에게 공문을 보내 공개검증을 받을 것이다.
둘째, 나용화 목사는 가룟유다와 아나니아 부부를 예로 들며, 소수의 사람만 사탄(귀신)에게 잡혀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중심에 모시지 않는 모든 사람이 사탄에게 사로 잡혀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일반교회 용어로 류광수 다락방을 이해하지 말라. 다락방 용어와 일반교회 용어는 그 의미에 차이가 있다.
가룟유다와 아나니아 부부는 죄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죄의 정욕에 잡히므로 그 순간 사탄이 그의 속으로 들어가 그를 완전히 지배하고 장악했다. 죄로 인해 사탄이 그의 영혼을 완전히 지배함이다. 새언약이 출범되는 구속사의 큰 전환기에 사도와 성도들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아나니아 부부를 보라.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가룟유다를 보라. 그가 무당처럼 머리를 흔들고 있지는 않아도 그 순간은 분명히 귀신들림이요 사탄에게 잡힌 것이다. 그러나 류광수 다락방은 지금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탄에게 직접 잡혀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게 이단교리이다.
셋째, 나용화 목사는 우리가 류광수 다락방에는 칭의로 말미암는 성화가 없다는 말함을 기독교강요 3권 11장을 예로 들며 성화는 칭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온다고 반박했다. 지금 우리 주제는 류광수 다락방의 회개와 성화 없는 무율법주의 구원파적 신학을 따지는 것이다. 칭의의 결과로 성화가 오느냐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칭의와 성화가 동시에 오느냐를 따지는 신학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칼빈학회나 조직신학학회에서 신학자들끼리 해야 할 논쟁이지 여기서 할 말이 아니다.
우리는 성화는 칭의가 원인이며 그 내용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고, 그 시작은 하나님의 창세전 선택과 예정임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죄인에게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이 전해지면(외적소명) 진리의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내적소명) 죽은 죄인의 영혼 속에 생명의 씨앗이 잉태되고(중생) 죄인이 하나님을 거부하며 자기주인되어 살아온 온 삶을 돌이키고(회개)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믿음) 회심함을 잘 알고 있다(회심). 이것마저 지적할까봐 이 과정은 시간순서가 아닌 논리순서라고 구태여 적어둠이 한심하다.
우리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죄없다하시고(죄용서) 의롭다하심(칭의)을 주셔서 구원하심을 알고 있다. 칭의는 성령내주를 통해 죄인을 의롭게 만들어 가시는 성화의 동인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칭의는 성화의 시작이며 견인은 성화의 마지막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말할 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며 성령내주이다. 칭의와 성화는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 성화의 한 단면이 칭의이며, 칭의를 연속한 것이 성화이다. 성화는 칭의로 말미암고 성화가 칭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우리 또한 칼빈신학과 기독교강요의 핵심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임을 잘 알고 있으나, 성화의 원인은 칭의가 아니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나용화 목사의 주장은 류광수 다락방 이단논쟁과 아무 연관이 없기에 말하지 않겠다. 학회에 가서 신학자들끼리 논쟁하시길 적극 추천한다. “십자가 복음의 영광(14.15장)”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11,12번)”을 참고하시라.
3. 나용화 목사는 회개와 성화가 없는 다락방 메시지와 그들의 실천적 삶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류광수 다락방의 구원론 이단교리는 성화가 칭의에서 오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오는가?가 아니다. 그것은 “복음이면 다 끝났다 그리스도를 누려라“는 영지주의적 깨달음에서 오는 회개와 성화 없는 성도의 삶인 것이다. 이것도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14.15.16번)”과 ”십자가 복음의 영광(14.15장)”에 자세히 기술해 놓았다.
나용화 목사가 복음편지(p.168)에서, 구원을 얻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단계, 믿는 단계, 영접 단계, 시인 단계, 나타내는 단계 등 다섯 단계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가 다락방을 너무 모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다락방의 구원론이 아니다. 류목사나 다락방의 그 어떤 목사도 그 다섯 단계를 다락방의 구원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섯 단계는 그냥 그럴듯하게 말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문제는 나용화 목사가 복음편지(p.48,79)를 언급하며 다락방은 "매일의 삶 속에서 죄의 문제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사함을 받음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정말로 다락방 교회는 매일 삶 속에서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고 믿음으로 죄문제가 해결된다고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가? 나용화 목사는 다락방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첫째, 류광수 다락방이 말하는 죄는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 속에 있는 아담의 부패한 본성이 아니다. 다락방에서 가르치는 죄는 인간이 하나님 떠나 사탄에게 잡혀있는 영적문제(원죄)와 그로 인한 불신자상태 여섯가지의 영적문제들이다. 복음편지든 다락방 훈련교재든 류목사 설교든 죄를 아담의 부패한 본성(원죄)과 그로 인한 자범죄들로 설명하고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증거로 제시해 주시라. 나는 류목사가 죄는 인간이 하나님 떠나 사탄에게 잡힌 영적문제와 그로인한 영적문제들이라고 설명한 것을 제시하겠다. 자세한 것은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2)”를 참고하시라.
둘째, 나용화 목사는 복음편지 글에서만 말고 실제 류광수 목사 메시지에서 매일 죄를 회개하고 죄씻음을 받으라고 말함을 확인한 적이 없다. 우리가 본적이 없는데 나용화 목사가 보았을 리가 없다. 류목사는 회개와 죄사함의 본문이 있다면 원론적인 말을 하거나 그냥 스킵하고 지나갈 것이다. 그는 결코 오순절 베드로처럼 가슴에 불을 담고 “너희가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리니...”(행2:36)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렇게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너희에게 이를 것이요.”(행3:19) 라고 십자가 복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류목사는 여자성도를 강간미수한 부교역자를 정죄하지 않고 덮어줌으로 교회도 부흥하고 부교역자도 살게 되었다는 간증을 여러차례 자랑스럽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류목사의 이 설교가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를 써보면 다섯 페이지 이상 나오기 때문은 생략한다. 회개와 죄사함에 대한 류목사의 비성격적 설교는 이것 말고도 넘친다.
셋째, 류목사와 지근거리에서 함께하던 다락방 본부의 핵심측근 목사 네 명이 모두 성비위와 연관되어 다락방 교단을 강제적으로 탈퇴했다. 모두 하나님 앞에서를 교훈으로 하는 경건한 신학의 OO출신 목사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다락방 메시지를 오래 들었고 정확히 알고 있으며, 오직 류광수를 외치는 다락방 특A급 일타강사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비위가 드러나 국가법으로 처벌당할 위기에 처하기 전까지 강단에서 아무 문제없이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를 외쳤고 수많은 집회를 인도하며 강의했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당당하게 했는가? 정통 OO신학 때문인가 류광수 사탄신학 때문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정통 OO신학으로는 절대로 그런 열매가 맺힐 수 없다. 회개와 죄사함이 없는 류광수 사탄강조 신학의 열매라는 당연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4. 나용화 목사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라는 복음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리스도 삼중직은 다락방의 복음 깨달음의 핵심이다. 그러나 다락방의 삼중직은 신학적 무지이며 오해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3,4,10번)“과 “십자가 복음의 영광(12장)”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나용화 목사는 코람데오연대측이 비판하는 류광수 다락방의 그리스도 삼중직 문제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초대교회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왕 선지자 제사장 삼중직의 의미를 몰랐다고 말함이 아니다. 논쟁의 핵심은 초대교회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락방처럼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설명하며 복음 전했느냐하는 것이다.
첫째, 지금 나용화 목사는 베드로가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마16:16)라고 고백한 의미가 다락방처럼 예수님은 왕 선지자 제사장이시란 의미를 깨달은 고백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에 기름부음 받은 가야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헤롯왕과 분봉왕들(이방인들이지만 왕위즉위 때 정통성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대의식을 따랐을 수 있다) 세례요한이나 기타 당시 무명의 선지자도 있었을텐데 왜 그들은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지 대답해야 한다.
나용화 목사가 아직도 초대교회는 삼중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했다고 주장한다면 더 논쟁할 것이 없다. 구약선지서 전공학자들과 한국신약신학회에 공문을 보내 이것을 공개검증 하도록 요구하자.
둘째, 다락방의 그리스도 삼중직과 개혁신학의 삼중직은 왕직에 있어서 조금 다르다고 이미 설명했다. 지금 나용화 목사는 하늘보좌에 앉으사 성령으로 자기 백성을 통치하고 계시는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락방이 제대로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나용화 목사는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고 영적문제를 해결해주는 왕직만 주로 강조하는 다락방의 삼중직을 초대교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원색복음의 2천년만의 회복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을 철회하시라. 하지 않겠다면 학회로 가서 공개검증을 하자.
셋째, 지금 나용화 목사는 한국교회 목사와 성도들은 왕직을 강조하는 다락방의 그리스도 삼중직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는 류광수 다락방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지금 나용화 목사는 다락방 교회와 전도현장에서 사탄머리를 깨뜨리신 왕직의 그리스도를 초대교회 원색복음으로 전하는 것이 칼빈의 기독교강요 가르침 그대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나용화 목사는 류광수 다락방이 그리스도 삼중직을 말할 때, 아담의 부패한 본성인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는 제사장직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왕직 만큼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용화 목사는 다락방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 자료를 제시하시라. 우리는 그것보다 10배 많은 자료를 제시하겠다.
5. 글을 마치며, 류광수 다락방은 교리적 이단이다.
나용화 목사는 코람데오연대가 발표한 다락방의 성경론과 교회론 문제점을 수용하기에 우리는 그 부분을 반박하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나용화 목사가 다락방의 핵심이단 교리를 옳다고 말하므로 다락방의 만연한 부패와 타락을 이단교리의 나쁜 열매로 보지 않고 신앙과 실천의 개인문제로 다뤘다는 점이다. 이는 류광수 다락방의 이단교리를 너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용화 목사는 먼저 류광수 다락방 교리와 성도들의 삶을 깊이 파악하고 그에 대한 자기주장을 다시 해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류광수 다락방을 30년 동안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직접 가르쳤음을 부끄러워하고 아파하는 목사들이다. 나용화 목사의 글은 다락방의 교리와 우리 주장 중 어느 한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락방을 탈퇴했고 코람데오연대를 결성했다. 류광수 다락방이 교리적 이단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나온 30년을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또 사과까지 하며 다락방을 나올 이유가 전혀 없다. 류광수 다락방의 문제는 신앙의 적용문제가 아닌 이단교리에서 발생한 나쁜 열매이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예수님이 말씀은 바리세인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말해온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7:15-20)
나용화 목사의 코람데오 평가문을 반박한다.
죄 문제입니까? 사탄 문제입니까?
교리의 개혁없이 도덕적 개혁이 가능할까요?
다락방복음과 십자가복음_원죄에 대하여(1)_원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