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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본 뒤야. 참고로 말해두지만 남겨진 가족들에게 그런 말을 내뱉는 건 정말로 사양이니까.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끌고 돌아오겠어."

"당신이 죽는 거야 당신 마음이지만 내 자식까지 끌어들이는 건 관둬. 종마에게도 그 정도 주장할 권리는 있을 텐데."

"안 죽어. 나도 내 아이도 반드시 살아서 돌아온다."

그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선언인 동시에 켈리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다.

보통은 푸른 기운을 띠는 잿빛인 재스민의 눈망울은 때때로 금색으로 빛난다. 지금도 그랬다.

켈리는 그 눈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호화로운 의복도 사치스러운 보석도 이 눈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완벽하게 화장하고 정장을 걸치고 있을 때보다도, 이런 눈빛으로 의연하게 서 있을 때가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진저가 갖고 있는 달콤한 매력과는 다른 종류로 훨씬 강인하고 당당한 강철같은 광채였다.

알렉산더가 신음하며 말을 짜냈다.

"재스민... 정말이야? 정말 당신..., 아기가......"

"아, 그래. 왜 그렇게 놀라는 건데?"

"당신이 타려는 기체에는 감응두뇌가 탑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응, 정말이야."

"안 돼! 그런 소중한 몸으로 결함품을 타고 게이트를 통과하겠다니! 말도 안 돼!"

진저도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부탁이야. 이번만은 포기해줘. 의무장 말대로 당신, 임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어. 아무리 당신이 엄청난 체력을 가진 괴물이라도 몸이 버티지 못한다고. 유산해도 괜찮은 거야?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당신 술도 피하고 있었잖아. 낳을 생각이지?"

"물론 낳고 말고. 하지만 '버밀리온'을 포기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 배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모르잖아."

"그랬다면 벌써 파편이 발견되었을 거야. 우선 사라지는 방식도 너무 이상하다고. 운석하고 충돌했든 소행성에 추락했든 간에, 구조 요청 한마디도 못 보냈을 리가 없잖아."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확증은 없어. 그냥 감이야. 그러니까 확인하러 가겠어."

그 자리에서 재스민과 가장 오랫동안 사귄 사람은 진저였다.

여왕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설득해도 뜻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리라. 여자로는 생각하기 힘든 큰 몸을 꽉 끌어안고서 그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약속이야. 꼭 돌아와줘."

"당연하지. 네 다음 영화도 보고 싶으니까."

역시 누가 봐도 연인들의 이별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구도였다.

그 자리에는 진짜 옛 연인도 있었지만, 이쪽은 그렇게 간단히 넘어가지 않았다. 심하게 당황하며 외친다.

"진저! 무슨 소리야! 말려야지. 뭘 하는 거야! 미스터 쿠어,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주십시오."

하지만 켈리는 뚫어져라 알렉산더를 바라보다가 재스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왕, 어째서 이 남자하고 결혼 안 한 거지? 다른 남자하고 결혼한 여자를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걱정할 만한 인간은 드물어. 괜찮은 녀석이잖아. 조금 착각이 심한 면은 있지만......"

"그게 문제야. 알렉은 정말로 귀여운 남자지만 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고. 날 지금까지 얌전한 아가씨라고 믿고 잇는 것도 그렇지."

"그런 착각, 한 대만 두들겨 패주면 그대로 벗어났을 텐데?"

"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손 안 대."

"난 패서 기절시켜 놓고?"

"네가 먼저 임산부를 때리려고 했잖아. 그건 정당방위였다고."

"뻔뻔스러운 소리 마. 그야 때리려고 한 건 내가 잘못했지만.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짓 않겠어.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묻는데, 이 젊은이라면 기꺼이 당신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주었을 텐데 날 속이면서까지 결혼할 필요가 어디 있었던 거야?"

재스민도 속였다는 표현은 듣기 거북했던지 얼굴을 찌푸렸다.

"너, 그게 자기 부인에게 할 소리야?"

"남편보고 종마라고 부르는 여자에게는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은데."

이번에는 부부끼리 서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켈리도 그리 간단하게 이 문제를 잊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재스민 역시 사과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는 듯했다. 짜증을 내며 고개를 젓는다.

"어째서 네가 그렇게 화를 내는지 난 전혀 모르겠어. 좀 전에도 말했지만 너한테 책임지라고 할 생각은 없어."

"그거 고맙군. 그 한마디로 끝나버리는 남자 쪽 입장도 생각해줄 경우의 얘기지만."

"그럼 어쩌라는 거야? 너에게 아이 압어지로서 책임을 지라고 붙잡는 편이 낫겠어?"

"내 의문도, 화를 내는 이유도 단 하나야. 어째서 애를 낳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

재스민은 포기한 듯이 다시 고개를 흔들며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내가 임신한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그 이혼신고서 써도 돼."

"호오? 일 다 본 종마는 볼일 끝이라는 거야?"

"난 계속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적어도 처음에 약속했던 기한까지는. 하지만 너에게 그럴 생각이 없다면 얘기는 다르지."

"그렇군. 차라리 그래버릴까. 계속 어울리기도 바보 같아졌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그런 것 치고 감정적인 구석은 조금도 없는 냉랭한 대화였다.

알렉산더도 진저도 두 사람의 기백에 밀려 감히 말릴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완전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진저에게 속닥속닥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 두 사람, 연애결혼이 아니었어?"

"그게...,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닌가봐요."

진저 역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신혼다운 달콤한 분위기는 전혀 없다. 하지만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 듯했다.

재스민은 파격적일 정도로 황당무계한 성격이지만 켈리는 그런 재스민을 용인할 수 있을 만큼의 도량을 지닌 남자였다. 재스민이 다음에 무슨 짓을 할지 재미있엉하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외로 호흡이 맞는 구석도 있어 보였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 이자드, 프리스틴, 그리고 헬렌을 필두로 하는 여성 스탭들이 굳은 표정으로 응접실에 들어왔다.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재스민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애원하는 눈빛으로 켈리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도 최후에 매달릴 수 있는 게 누구인지, 혹시 재스민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이자드가 켈리를 향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주인님......"

하지만 여왕의 남편은 끝까지 듣지 않았다.

"말린다고 말 들을 여자가 아니잖아?"

"그, 그건...... 하지만......"

"쓸데없는 짓은 관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