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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들 자신. 다른 생물들은 결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싸우기를 원했다.

설령 그것이 이 세계 전부라고 해도.

인간이 일으킨 전쟁에 다른 모든 생물들이 휘말려들고 이용당했다.

어느새 세계는 크게 몇 개로 나뉘었다. 사람들이 멋대로 세계를 그린 종이 위에 그은 선이었다.

그것들은 지금 나라라고 자칭하며 서로를 견재하고 있었다.

원래는 많은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되풀이되는 다툼-전쟁에 의해서 나라가 나라를 강탈하여 네 개의 나라가 대두했다.

하나는 서쪽에 위치한, 익룡조차도 섬길 정도로 강한 무력을 지닌 제국.

하나는 동쪽에 위치한 가장 먼저 대지를 지배한 것으로 알려진 이의 후예가 세운 왕국.

하나는 남쪽에 위치한, 수 민족들이 모여 하늘과 땅과 공생하는 공화국.

하나는 북쪽에 위치한, 마술이라는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번영한 마법국.

제국이 인접한 소국을 침략하면서 시작된 새로운 분쟁은 제국에 대한 견제를 명목으로 영토 확대를 노리는 왕국이 즉시 개입하면서 가열되었다. 제국과 왕국의 전력은 거의 막상막하였다. 다른 두 나라는 방관 생태에 있는 까닭에 아직 큰 전쟁으로는 발전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과 왕국의 싸움은 공화국과 마법국에 인접한 소국을 무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이 균형이 깨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머지않아 주변국들도 불가항력으로 전쟁에 휘말려들 것이 분명했다.

이미 마법국에서는 제국에 가담하려는 이와 왕국 편에 가담하려는 이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을 제지하려고 하는 이들과 방관하는 이들로 갈리며 벌써부터 분열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공화국에서는 다민족 국가라는 성질상 전쟁에 나서려고 하는 민족과 철저하게 전수방어를 호소하는 민족,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 없는 민족 등 뜻은 하나로 뭉치지 않았으나 공화국의 대표이기도 한 남자의 카리스마로 그럭저럭 나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나라들과 전쟁에 휘말려드는 것은 이미 시간문제라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었다. 지금은 아직 목자적이고 느긋한 평상시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는 도시와 마을 조자도.

그런 전쟁의 발소리가 사람들의 귀에도 다다르기 시작한 도시에 - 그는 있었다.

“오, 또 왔구먼.”

도구 상점의 문을 열자 카운터에 서 있던 콧수염이 부스스한 가게 주인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가게에 두 번째로 왔을 때부터 항상 듣는 똑같은 대사였다.

언제 봐도 접객업에는 맞지 않는 거칠고 억센 얼굴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약초를 주세요.”

하고 카운터 너머로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말했다.

주인 아저씨는 환한 미소로 응했다.

“싸게 해줄 테니가 많이 사가라고.”

붙임성은 있지만 결코 값을 싸게 해 준 적은 없었다. 이것도 늘 듣는 말.

요는 상투적인 문구라는 것이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그는 신경 쓰지도 않고 대금을 지불한 후 약초를 받아들었다.

평소보다도 많이 구입한 약초를 집어넣은 그는 수염 난 얼굴로 애교를 흩뿌리는 주인아저씨에게 어깨너머로 손을 흔들고 가게를 나왔다.

어제 마친 일의 보수가 그의 수준으로 생각하면 꽤 고액이었던 덕분에 가까스로 두구와 장비도 더 사들일 수가 있었다. 초기의 단점 같은 가벼운 장비만 가진 상태로 진행하기엔 사냥이 점점 더 힘들어져가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일에도 몰두할 수 있고.

이 세계는 정말 볼수록 잘 만들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별이 도는 것도, 달이 두 개 있고 하나는 항상 다른 하나의 뒤에 감춰져 있는 것도, 바람이 차갑고 따뜻한 것도, 비가 내리는 것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며 큰 전쟁으로 확대되려 하고 있는 것도.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계산하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무엇을 하든, 안 하든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일.

“뭐, 결국은 이 세상이 잘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뿐인가.”

그는 혼잣말을 하고 거리를 걷기 l작했다.

길튼 정비되어 있지만 특별히 포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굳힌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비가 내리면 철벅철벅 소리를 낼만큼 물이 고이는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날개 달린 거대한 고래가 구름과 함께 둥실둥실 헤엄치고 있었다. 눈길을 되돌려서.

지금 그가 걷고 있는 곳은 거리의 중심가 한 귀퉁이. 중앙에 위치한 분수 광장 바로 옆이었다.

분수 주위에서는 거리의 사람들이 제각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몇 번이나 똑같이 질리는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뭐, 그것은 ‘여기’나 ‘거기’나 변함없지만.

그것이 그가 익숙하게 봐온 평소의 거리였다.

이 거리는 정확히 구획이 나뉘어 남쪽에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었다. 벽돌로 지은 일반적인 가옥들로, 교회에서 북쪽으로 분수 광장을 넘어 이어지는 번화가에는 상점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수수하기는 하지만 이 주위에서는 가장 활기를 띤 곳이었다.

아직 불편한 것은 없었다.

아직...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가 이 거리에 온 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해지기 시작한 부분은 있지만 그에게는 이 거리와 주위의 모든 것이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옆의 나무벤치에 걸터앉았다.

중앙의 분수에는 이 세계의 창조주인 여신을 본떠 만든 조각상이 들고 있는 물병에서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완만하게 흐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