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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던 프리스틴이 살짝 비꼬는 어저로 말했다.

"식사만 하고 온 것치고는 너무 늦은 거 아냐?"

"같이 술도 마셨어. 재스민 앞에서 마실 수는 없잖아."

헬렌은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켈리도 헬렌과 함께 배에 올랐다. 식사가 끝난 뒤부터 계속 함께 있었던 듯하다.

오랜만에 화난 고양이처럼 씩씩거리고 있는 프리스틴에게, 켈리는 양손을 들며 말했다.

"착각하지 말라고. 난 그냥 보디가드야. 이상한 남자를 쫓는 것뿐이니까."

"당신 자신이 이상한 남자 아닌가요?"

이 말도 켈리는 웃으며 흘려버렸다.

"알았어. 다음에는 당신하고도 데이트 할 테니까 그렇게 화내지 마."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잔뜩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렁거렸지만, 사실 여기서 화를 내야 할 사람은 프리스틴이 아니다. 그럼에도 제일 화를 내야 할 사람은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남편한테 협력하는 지경이었다.

재스민에게 전언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린 프리스틴은 본론에 들어갔다.

"재스민이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더군요. 방으로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프리스틴한테 시킬 것 없이 켈리의 통신기로 직접 연락했으면 됐을 텐데.

그렇게 말하자 프리스틴은 더욱 짜증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방해하기 미안하니까, 라던데요."

잔뜩 화를 내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씁쓸하게 웃으면서 바라보던 켈리는 재스민의 방으로 가 프리스틴의 태도에 대해 한탄했다.

"이런, 완전히 찍혔어. 최근에는 간신히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지. 나한테도 화내던데."

재스민은 쓴웃음을 지었고, 켈리한테 차를 권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헬렌은 멋진 여자인데도 남자 운이 없단 말이야. 이제는 좀 행복해지면 좋을 텐데."

켈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재스민도 대충 사정은 알고 있는 걸까.

"이야기라는 건 그거야?"

"아니, 네 배 말이야. '팔라스 아테나'가 이번 항해에 동행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러는데, 너도 알고 있었어?"

"아, 당신네 수납고를 좀 빌리고 싶다더군."

"어디 고장이라도 난 거야?"

"아니. 아마도 어딘가 개조하려나봐."

"아마도라니, 누구한테 맡겼는데."

재스민은 저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설마 다이애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감응두뇌는 선체를 관리하고 고장난 곳도 알아서 지적하지만, 기계를 개량해서 더 좋게 만드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감응두뇌는 현재 기체의 상태를 최상으로 인식하므로 그 이상 좋은 상태라는 것 자체를 '알 수 없다'.

뭘 어떻게 해서 지금 이상으로 좋게 만드느냐 하는 것도 문제이다.

속도를 높일 것인가, 탐지성능을 강화할 것인가, 거주성을 중시할 것인가, 감응두뇌는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없고 결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며, 여기를 이렇게 고쳤고 이런저런 기능이 추가되었다고 알려주면 감응두뇌는 곧바로 새 상태를 '완전'한 상태로 인식하고 관리한다.

켈리는 '팔라스 아테나'의 단 한 명뿐인 승무원이다.

자기가 하건 전문가한테 맡기건 조정의 내용에 대해 알아둬야만 할 입장이면서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 것이 이상했지만, 켈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비하고 기자재만 있으면 저 녀석을 얼마든지 자기 선체를 개량할 수 있어. 특히 성능 향상에는 굉장히 집착하는 편이니까.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짓을 해놔서 조종하기 힘들어질 때도 있지만, 그걸 어떻게든 다루는 게 내 역할이지."

재스민이 다음 말을 꺼낼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약 5초 이상. 이 사람 치고는 믿을 수 없는 공백이지만 시점을 바꾸자면 이 사람이나 되니까 그 정도로 끝났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틀림없이 찻잔을 떨어뜨리면서 기절할 만한 상황에서, 재스민의 경이로운 정신력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정도로 지금의 충격을 받아넘겼다.

"감응두뇌가? 혼자서? 자기 선체의 조정이나 성능향상까지 하고 있다는 말이야?"

"뭐, 그런 셈이지."

"농담하는 거 아냐?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괴물이야?"

"나도 처음엔 기가 막혔으니까."

사실 이런 소리는 아무한테나 가볍게 할 수 없다.

다이애나의 기묘한 특성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져서 좋을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정보관리장처럼 연구심 투철한 사람들을 쓸데없이 자극할 뿐이지만 지금은 신용하는 마음이 반, 시험하는 마음이 반쯤이었다.

그리고 이때에도 재스민은 켈리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흔들면서 말한다.

"아까운데. 다이애나가 네 전속이 아니었으면 이쪽으로 바로 스카우트하고 싶을 정도야."

"정비사로?"

"아니, 개발자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이애나는 자발적으로 학습할 수 있어. 학습한 내용을 참고로 새로운 발상을 할 수도 있지. 그런 거 아냐?"

그렇다면 주어진 정보를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공지능의 '학습'과는 전혀 차원이 달라진다. 이미 인간의 학습과 완전히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덤으로 다이애나에게는 먹고 자는 시간도 필요가 없다. 기억 속도도 인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빠른 것이다.

"그 상태로 계속 지식을 축적하면, 이론적으로는 만능 전문가가 될 거야."

"현재 흥미를 보이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뚜렷하게 나뉘어 있기는 핮디만, 우주선 구조 전반과 감응두뇌, 의학에 대해서는 상당히 박식하지."

"너하고 같이 다니게 되고 나서야?"

"의학에 대해서는 아마 그럴 거야. 아, 요리도. 처음엔 더럽게 맛없는 것만 만들었으니까."

재스민은 다시금 감탄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다이애나가 너하고 만난 건 양쪽 모두에게 엄청나게 필연적인 행운이었다는 말인가."

이상한 표현이지만 켈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이애나가 같이 오지 않아도 괜찮아?"

"흔히 있는 일이야. 처음도 아닌데 뭘. 게다가 배를 손보려면 지금 해둬야겠지. 당신이 애를 낳고 나면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거 아냐?"

"그래. 각오해두라고. 그때에는 와일리나 브라이언도 당신을 살려둘 이유가 없어지는 거니까. 물론 나도 포함해서."

재스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위험한 소리를 내뱉고서 다시금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부모가 죽어버리면 유산은 모두 아이한테 넘어가게 되고, 꼭두각시로 내세우기에 갓난아기보다 편한 것도 없을 테니까."

"더러운 이야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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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좀 괴로운 걸로 끝날 수 있을까. 상상해보면 엄청난 광경이다.

재스민이 내일 낮에 출발하자고 말하자 켈리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거 곤란한데, 조금 늦출 수 없을까?"

"무슨 예정이라도 있어?"

"응. 헬렌하고 데이트하기로 했거든."

"헬렌?"

"식사 초대를 했더니 내일 밤이라면 괜찮다더라고. 어차피 할 거라면 '쿠어 킹덤'의 식사보다는 지상에서 좀 화려한 곳에 가고 싶은데. 꼭 내일 낮에 떠나야겠어?"

이런 의논을 부인한테 하는 인간도 인간이지만, 의논을 듣는 쪽도 듣는 쪽이었다.

"그럼 출발은 모레 아침으로 하지. 그래도 시간은 충분할 테니까."

너무나 쉽게 승낙하는 부인에게, 남편은 더욱 뻔뻔스러운 의논을 시작했다.

"아폴론을 따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정식으로 데이트를 하는 거니 아무래도 옷을 보내고 싶은데 사이즈를 잘 모르겠거든. 당신은 몰라?"

재스민은 조금 생각에 잠겼다. 양손으로 원을 만들며서, 뭔가를 잡는 듯이 손짓을 한다.

"대충 이 정도인데......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군. 프리스라면 알고 있을 거야."

"그렇다고 내가 물어볼 수도 없잖아."

"알었어. 내가 물어보지."

아무리 생각해도 부부 사이에 오갈 대화는 아니다. 부인 쪽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자면 더욱 그랬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재스민은 진지하게 못을 박아두었다.

"해적, 하나만 미리 말해두겠는데 진심으로 만들지 마."

'진심으로 만나지 마'도 아니고 '진심으로 사귀지 마'도 아닌, '저쪽이 진심이 되도록 만들지 마'라는 말이다.

"넌 지상에서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고, 헬렌도 널 따라서 우주로 나갈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우선 헬렌을 데려가버리면 내가 곤란하니까."

켈리는 다시금 씁쓸하게 웃었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가 되는 건지가 수수께끼였지만, 조금 장난기가 들어 물어보았다.

"그럼 당신은 어때? 내가 유혹하면 인류가 없는 우주까지 같이 와주겠어?"

물론 그러려면 쿠어 재벌 총수의 자리를 버려야 한다.

딱 잘라서 거절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의외로 재스민은 켈리를 비난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불가능한 소리 하지 마. 같이라고 해도 네 배가 너 이외의 인간을 태울 리가 없잖아."

"그렇지만도 않아. 배에 구멍이 났을 때 정비장이 부하들을 데리고 탄 적도 있는데."

"그건 정박 중이었으니까."

"......"

"너하고 다이애나가 그 배의 승무원으로 인정하는 건 너뿐이야. 혹시 그때 급발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 다이애나는 틀림없이 정비장을 배 밖으로 내던져버리고 격납고에서 뛰쳐나갔겠지. 너하고 같이 탄다고 해도 어차피 마찬가지일 거야. 너희들에게 있어서 다른 인간은 귀찮은 이물질에 지나지 않을 테고, 너나 다이애나도 방해꾼의 생명까지 걱정해줄 정도로 자상한 성격이 아니니까.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딱 잘라 단언한다.

그 의연한 태도에 켈리는 조금 감탄했다. 일종의 감동이라고 해도 좋다.

식사를 하던 손을 멈추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려니, 재스민이 이상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왜 그래?"

"아니, 재미있어서."

"뭐가?"

켈리는 조금 불편한 듯이 콧잔등을 긁었다.

"옛날 여자하고 지금 마누라를 비교하는 건 실례겠지만, 지금까지 '배에서 내려달라'던가 '같이 데려가 달라'는 소리밖에 못 들어봐서 말이야."

그러자 재스민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군. 어느 쪽이든 불가능할 텐데."

"그렇긴 한데, 어째서 당신이 거기까지 이해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서 말이야."

"당연하잖아. 나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퀸 비를 포기할 수 없고, 그 기체에 나말고 다른 사람은 태우고 싶지 않으니까."

아까처럼 자신 있게 내뱉는 말에, 켈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여자는 대화상대로서 최고였다. 그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로서도 아쉬운 구석이 없다. 이렇게까지 잘 맞는 상대라면 안심하고 함께 일할 수 있다.

"퀸 비는 어때? 슬슬 완성될 때 아냐?"

"몸체 쪽은 거의 끝났고, 지금 유레카가 전산기를 최종 확인하는 중이야. 또다시 그런 웜이 섞여들지 못하게 하겠다면서 현장에서 지내고 있어."

"어이, 설마 옛날 남자를 무료로 써먹는 건 아니겠지."

"실례야. 보수도 확실하게 지불한다고."

식사 뒤, 재스민은 정말로 비서에게 연락해 헬렌의 옷 치수를 물어봤다. 그 이유까지 솔직하게 말해버리는 바람에 헬렌이 켈리와 함께 데이트를 한다는 이야기가 프리스틴에게까지 알려지고 말았다.

놀란 것은 프리스틴이었다.

다음날 저녁 무렵, 프리스틴은 동료를 붙들고 따지기 시작했다.

"대체 어쩔 셈이야?"

"그렇게 무서운 표정 하지 마. 그냥 인사 대신이니까. 봐, 이거. 아까 도착한 옷이야."

켈리가 선물한 화려한 은색의 드레스는 헬렌의 검은머리에 잘 어울렸다.

"원래는 내 쪽에서 대접해야 할 텐데, 이렇게 되면 너무 미안한걸."

한숨이 섞인 중얼거림이었다.

그 말을 들은 프리스틴은 작은 몸집에 비해 풍만한 가슴을 당당하게 펴면서 키가 큰 헬렌을 노려봤다.

"그래서? 정말 식사뿐이야?"

"당연하잖아."

생긋 웃고서, 헬렌은 근무 중과는 다른 분위기로 화장을 하고 은색 드레스를 걸친 후 틀어 올린 머리도 은색 장신구로 꾸미고 외출했다.

'쿠어 킹덤'은 출항 준비에 들어갔고 승무원들은 저녁에서 밤에 걸쳐 제각각 승선했지만, 헬렌은 자정이 넘어서야 배에 올랐다.

화장은 그대로지만 옷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