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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종말과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만 학원에서 들었고 친구도 말했던 죽어버렸다는 여자아이의 이야기와 쪽지에 있었던 시시한 농담, 요전에 봤던 뜻밖에 재미있었던 아이돌 영화, 체육 교사가 엉큼하다는 것, 자전거 열쇠를 잃어버린 일, 비 오는 날에 우산을 도둑맞은 것, 잡지의 공모전에 뽑힌 것, 자동판매기 옆에서 100엔을 주운 것, 잠자기 전에 생각한 것, 새하얀 사신, 그리고 눈이 내려서 자빠진 것까지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도 소녀는 모든 것을 생각해냈다.

세상의 종말이 온 듯한 얼굴로 전부 떠올렸다.

친구가 죽었다.

그래서 소녀는 떠올렸다.

자신이 생각한 것, 말한 것.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은 얼굴로.

3월 6일. 월요일.

맑음.

이번에야말로 목도리는 필요 없어졌다. 본심을 말하자면 요즘은 그 촌스런 느낌이 묘하게 마음에 들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지각 소년은 지각했다. 그래도 ‘친구’의 쪽지는 이제 오지 않았다. 죽어버렸으니까. 이제 없으니까. 눈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소녀를 잔뜩 놀려댔던 친구는 똑같이 눈길에 미끄러졌는데 - 불행이도 찻길로 몸이 튕겨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달려오던 차에-.

생각하는 순간 춥지도 않은데 몸이 떨려왔다. 슬픔에 잠겨서 옴싹달싹할 수 없게 되어도 일상은 돌아왔다. 아침의 10분간 독서 시간조차 이젠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소녀에게는 고통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 10분 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세상의 종말 같은 건 오지 않았다. 끝난 것은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아이의 목숨이었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다. 많은 것들이 끝났다. 소녀와 친구의 관계, 쪽지 주고받기, 시시한 수다, 그녀의 행동에 대해 화를 내던 것. 전부 끝났다.

이젠 화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다. 바보라고 놀릴 수조차 없었다. ‘안녕’이라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이제는 할 수 없었다.

잃어버렸다.

3월 7일. 화요일.

맑음, 곳에 따라 별안간 쪽지

언제쯤 되어야 봄은 오는 걸까?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봄이 오면 이렇게 춥고 얼어붙은듯한 날씨도 없어질 텐데.

지금은 그저 정말로 봄이 찾아오기나 할까 하고 불안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목도리가 필요할 정도로 춥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얇은 옷차림으로 밖에 나가면 쌀쌀했다. 하늘은 맑았지만 기온은 낮이 되어도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랭전선이 어떻다면서 마치 겨울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되어야 봄은 찾아오는 걸까? 어제는 아주 조금 덜 추워서 기대하게 만들더니 너무해.

10분간의 독서 시간. 교실은 전보다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죽은 그녀의 책상에는 꽃이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꽃이 있으면 이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만약 그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고, 한 번도 집에 갖고 돌아간 적이 없는 사전과 교과서 등등이 담신 가방이 옆에 걸려있으면 그녀가 다시 교실로 들어올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다.

소녀가 펼쳐든 책의 페이지는 한 달 전부터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 시간이 되면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도.

-너야말로 그 사신한테 잡아먹혀라.

전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전하지 못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는....

그때였다.

소녀는 불현듯 등을 쿡쿡 찔려서 심장이 덜컥 멎는 줄 알았다. 온몸이 굳어버렸다.

설마... 그녀가... 그럴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째서인지 몸은 경직해버려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등을 쿡쿡 찔렸다.

심호흡도 있었다. 심장이 고동치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소녀는 책을 손에 든 채 천천히,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전처럼 뒷자리의 남자애가 살며시 소녀에게 종이쪽지를 건네주었다.

한층 더 빨라지는 심장 소리.

받아든 쪽지를 책갈피에 감추다시피 하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일순 펼치기가 망설여졌다.

만약에 정말로 그녀가 보낸 쪽지라면?

그럴 리 없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 그렇다.

소녀는 쪽지를 손에 들었다. 펼쳤다.

작은 글씨. 귀여웠다. 둥글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녀의 글씨는 아니었다. 당연하다. 그녀의 것일 리 없다.

별 생각 없이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