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알맞은 시절 이어보기

김은한(매머드머메이드 대표)



미처 씹지 않고 삼키는 시절이다. 몹시 바쁘고 너무 시간이 없다. 늘 조바심이 나거나 슬프다. 끼니를 때우거나 지나치게 빠르게 많이 먹는다. 퀴즈 챔피언처럼 문제를 듣는 데는 관심이 없고 머릿속 정답을 내놓는 데 급급하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 무심하다. 위기는 오직 생활에만 있고 언젠가 나의 차례가 오리라는 생각을 외면한다. 빙하가 녹고 있는데 참 멀게 느껴진다. 목으로 무엇이 넘어갔는지 그날 밤 일기에 제대로 적을 수 없다.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식당을 궁리하고 있다.


<sf식당>은 ‘먹다’라는 행위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고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 모두와의 공존을 살피는 팝업 식당이다. 다른 세계를 불러오고 체험하는 것은, 공연 예술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모든 식당은 극장인지도 모른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동시대를 내 안으로 흘려보내고 집에 돌아가 그 여운을 음미하게 하는 극장. 제철 음식을 제공하는 곳. 제철이란 알맞은 시절이다. 그러나 고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자연이 무대장치처럼 오롯이 우리를 받쳐주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제철은 어떤 지향성과 유동성을 갖춘 시절이다. 지구라는 무대는 점점 빠르게 삭아가고 있다. 그 위에 서 있는 가련한 배우인 우리들은 꺼져가는 빛을 향해 동선을 옮기며 틈틈이 유지보수를 해내며 커튼콜까지 살아내야 한다. 


성북구의 ‘아트라운지 쌀’에 도착하니 분주하게 식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부엌 곁에는 신발을 벗고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TV에서는 미래의 방송이 흐르고 있다. 빙하가 모두 녹아버린 이후 시대의 방송이다. 애프터 멜팅(After Melting), 빙하가 녹은 2042년을 AM 원년으로 삼는다. 방송에선 기후대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제정하려는 목소리가 거세다. 저 시대에도 여전히 단식 투쟁으로 힘겨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속상한 마음이 든다. 익살스러운 광고도 흐른다. 우리에게 털이 없다면 세면용품을 덜 쓸 것이고 자연스레 지구에 이로울 것이다. 민머리가 되자. 맞은편에 있는 스크린에는 물웅덩이와 어슬렁대는 동물이 보인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만이 세계가 아니다. 여기서 더 먼 시공을 향해 가본다. 


<sf식당>의 시공은 묘하게 겹쳐져 있다. 이곳은 현재이기도 하고 손님에게 주어지는 책자인 <준비 일기> 속 인물이 고심해 선택한 메뉴를 선보이는 미래이기도 하다. 돌이킬 수 없는 미래의 그는 빙하가 완전히 녹아버렸을 때 자신을 입양한 모와는 다른 감각으로 AM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홀스페이스’라는 시스템으로 모든 걸 기억하고 기록하지만 잊힌 과거의 ‘먹다’를 위한 요리들은 완만히 멀어진 가족과 다른 이들을 수소문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한다. 다만 어떻게 AM 시대에 요리, 또 ‘먹다’라는 행위가 몰락하고 잊히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손님의 상상력에 맡겨둔다. 우리는 기후 파괴로 많은 걸 잃어버린 끝에, 그저 삼키는 것뿐인 편의성을 추구하게 될까? 음식을 만들고 먹는 건 또한 살아가기 위한 힘을 불러일으키는 일일 텐데. 어떤 고민으로 도달한 설정일지 궁금하다. 지독한 절망과 우울이 햇볕처럼 내리쬐는 시절일 거라 상상해본다. 


지나치게 빠른 배송이 발전한 덕에 ‘냉장고털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게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무엇이건 충분히 남기려고 한다. 작게 보면 냉장고, 책, 지식, 나아가 끝없는 부. 해도 해도 욕심이 나는 개발, 후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최고의 포식자가 되려는 태도. 음미하고 느끼며 충분히 관계 맺지 않은 채로.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비전만으로. 문득, 무분별한 개발과 부의 축적도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욕망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기후 위기는 더욱 선명하며 심지어 실천 방향도 주어져 있는데도 어떤 이에게는 남의 일이다.


만찬에는 창작자가 s.f.라는 말에서 떠올린 여러 상상이 담겨 있다. 캐롤린 스틸이 그리스어로 음식(sitos)과 장소(topos)를 합성해서 만든 개념 ‘시토피아’로 들어가기 위한 기도 sitopia faithful, ‘먹다’를 시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스트레칭 stretching food, 제철 음식이라는 의미의 seasonal food,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science fiction, 저장된 미래로서의 stored future. 훗날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걸 상상해보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을 지금을 잡아두기도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AM 30년(2072년경). 합성 음식이 주류가 된 듯한 시대. 어떤 맛과 식재는 사라졌다. 간신히 가닿을 수 있을 듯한 미래. ‘먹다’는 후대에 충분히 전해지지 않고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경험해본 정도의 행위이다. ‘먹다’가 귀해진 시절에 기도를 드린다. 우주에 감사하고, 생명을 앗아가며 먹는 것에 미안해하며 기억하기 위한 다짐이다. ‘먹다’를 지켜내기 위한 요리사들의 용기와 음식 본연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기도. 


식사 중간에 손님은 <준비 일기>라는 책자를 읽을 수 있다. 구성이 묘하다. 팝업 식당을 꾸리기 위한 창작자의 고민이 담긴 기록이기도 하고, 미래의 누군가의 일지이다. 책자는 가이드이자 제작과정이고 이야기이기도 하다. 창작자의 고민에 미래라는 스킨을 씌우고 가상의 이야기로 텍스트를 만든 듯했다. 우리가 ‘먹다’ 하게 될 만찬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과거의 희미한 전승, 어린 시절 어렴풋이 남은 기억만으로 음식을 재현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언뜻 별난 이들의 비밀 클럽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은 치열하게 세계를 감각하려는 의식의 장이기도 하다. 종교적 체험과도 가까우리라. 초월적인 존재와 닿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니까. 이런 묘한 균형은 주관과 구성을 담당한 이성직의 이전 작업에서 꾸준히 느껴지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유머를 잃지 않지만 동시에 우리가 포착해야 하는 어떤 삶과 만나게 한다. 


기도 이후에 스트레칭을 위한 음식은 팥죽이다. ‘늘 생각보다 많이 만들어지기에 최후의 음식으로 적당한’ 팥죽. 심심하고 고소한 냄새를 맡는다. 한술 떠 입에 물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눈, 코, 입, 혀, 턱 순으로 다양한 감각을 사용한다. 천천히 씹거나 혀로 밀고 으깨며 질감을 안다. 감각을 이해한다. 씁쓸하고 무겁다. 만찬의 시작으로서 강렬한 등장이다. 입자가 곱고 짜지도 달지도 않으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어디에서 와서 우리의 식탁까지 올라왔을까. 어떤 마음을 담아 만들었을까. 팥의 구수함을 떠올리다가도 생각은 더 먼 곳으로 인도된다. 그러고 보니 이대로 빙하가 녹아버린다면 미래의 절기는 어떻게 될까?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습은 계속 이어질까? 미래에 재편될지도 모르는 식문화에서는 어떻게 될까? 양이 적지 않았으니 필시 충분히 느껴보라는 의지였으리라. 혹은 충분히 배부르지 않으면 누구도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넉넉한 인심이었을지도.


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제철 음식 백반 한 상이다. ‘수상한 시절에 알맞은’ 식재료로 만든 백반. 그득히 담겨 나오는 흰 쌀밥은 어떤 반찬과도 잘 녹아드는 우리의 주식이다. 반찬은 과거를 떠올리며 미래 화자가 고심해서 선택한 음식이다. 


그린파파야 생채는 고춧가루 없이 자극적인 맛을 내기 위해 제피나무 열매를 사용한다. 여기 미래에는 고추가 귀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제피는 추어탕이나 장어 등 생선요리와 함께 곁들이는 식재였고, 비슷한 종의 향신료인 산초는 마라탕 등에 들어가는 재료로 더 익숙하다. 고추의 매운맛과는 다른 아린 맛을 띤다. 그린파파야의 단단하고 군내가 없는 식감과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무와 닮아 시원하면서도 특유의 매운맛이 없다. 


맑은 콩나물국이 백반 한자리를 차지했다. 콩나물은 잘 자라기 때문에 자생적인 비상식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재생과 순환을 할 수 있는 물만으로 쑥쑥 자라는 식물. 여러 재난 상황에서의 생존을 대비하려는 ‘프레퍼-족’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자극적인 음식과 함께 먹기에도 좋고 시원하게도 즐길 수 있다. 이번에는 강한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없기에 그 자체의 질감을 느끼면서 ‘먹다’ 해보았다. 


거창 남하식 된장국은 백반을 만끽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짭조름하고 힘이 세다. 미래 화자의 증조외할머니가 계시던 거창 남하의 방식으로 참기름에 된장과 표고버섯을 볶는다. 볶는다는 개념이 불명확한 <준비 일기>의 미래 화자에게는 이것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판단할 수 없는 음식이다. 무척 잘 만들어졌다. 만족스러운 한 접시다.


소이렌트(식사대용품)처럼 가루를 물에 섞어 마시는 합성식품이 주가 된 미래에는 식감보다 목 넘김이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반찬으로 국이 많다. 들기름차요테국은 무 대신 차요테라는 박과의 채소로 만든 국이다. 멕시코에서 주로 자란다고 한다. 무를 대체하기 위해 선택한 재료인데 미래 화자의 말처럼 수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익숙하지 않았다. 박의 질감이 났고 단정한 알로에 같은 미끄덩한 식감도 좋았다. 하지만 조리 방식 때문인지, 본래 차요테의 특징인지 간이 거의 배어 있지 않았다. 피클처럼 절이거나 볶음 또는 무침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식자재는 다른 식자재로 대체되지 않는다. 최근에 부쩍 비건 식당을 찾는다. 종종 어떤 걸 재현해보는 요리가 나오기도 한다. 당근을 뭉근하게 삶아 연어의 식감과 닮게 만들어보기도 하고, 우엉과 토란, 김으로 장어구이의 식감처럼 만들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감상은 대체품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매력을 가진 별개의 요리라는 것이었다. 다만 들기름차요테국의 ‘수상한 맛’은 경각심을 준다. 우리에게 익숙하던 것이 어느새 희귀하고 경험하기 힘든 게 되리라는 경고. 연극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상, 무심코 상상해버리는 일상을 재현한다. 미래의 이들에게 있어 들기름차요테국은 불타고 남은 대본 표지만으로 상상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수상하다는 말은 적당하다.


포항초는 창작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포항에서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시금치를 일컫는다. 기후재난를 통과한 특산물로서 메뉴로 선정되었다. 한 젓가락 정도로 작게 무쳐져 나오는데 귀하기에 더욱 음미하려고 했다. 어쩐지 일반 시금치보다는 굵고 식감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밥에 얹어 먹을 수 있는 무한질주다대기. 고추다대기라는 음식은 경남 지방에서 주로 먹는 반찬으로 고추와 멸치 등을 볶아 액젓으로 맛을 낸 양념장이다. 개운했다. 여기서는 ‘무한질주’라는 고추 품종만이 살아남아 이름마저 바뀌어버린 세계를 상상한다. 현재에도 고추는 재미있는 품종명이 많다. ‘돌격앞으로’, ‘독립선언’, ‘미소천국’, ‘서방님골드’, ‘남자의 자격’ 등 수많은 품종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주로 ‘칼탄’, ‘칼라’ 등이 이름에 들어가는데 이것은 칼라병과 탄저병에 저항이 있다는 뜻이다. <sf식당>이 그리는 미래에는 ‘무한질주’만이 고추의 흔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데 경쟁을 즐기는 한국다운 이름이라 웃음이 나왔다.


시골에서는 식단이 대개 밥과 나물로 이루어져 있기에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한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원하는 사람에게만 건조 밀웜을 이용한 두 가지 요리가 나왔다. 소금구이와 애호박 전이다. 새로운 단백질 보급원으로 주목받는 곤충식을 이제야 경험해본다. 어린 시절에는 메뚜기를 종종 잡아 볶아 먹곤 했는데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꺼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질겨서 이로 잘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에게 이번 만찬에 관해 이야기했더니 밀웜 농장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어 이미 맥주 안주로 즐기고 계신단다. 낯선 경험이라 우선 입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건조 밀웜은 표면이 바삭바삭하다. 갓 구운 어포나 과자처럼 기분 좋게 부서진다. 하지만 속은 뻥튀기처럼 비어 있는데 그래서 공허한 맛이 난다. 여러 개를 집어 먹어도 공허하게 느껴졌다. 허무하고 무엇과 비교하기 어려운 맛이다. 이걸로 단백질을 보충하려면 제법 많은 양을 섭취해야 할 것 같다. 또 이것이 정말 미래의 식재가 된다면, 다른 맛에 빗대지 않고 정확히 곤충의 맛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된장국과 곁들여 먹으니 술술 잘 넘어갔다. 애호박 밀웜전은 건조 밀웜이 따로 가공되지 않고 듬뿍 들어가 있었다. 밀웜 쿠키를 만드는 업체에서는 벌레의 모습을 드러낸다/드러내지 않는다는 옵션을 제공한다. 곱게 가루를 내어 전을 부친 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 입문 요리로 내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원물의 질감을 그대로 접할 수 있다는 건 귀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는 당연한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먹다’하는 건 과일이다. AM 30년의 한반도에는 ‘천상애’라는 품종의 사과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 태백산맥의 고원에서만 자라나는 최후의 사과. 백소정, 정은재 공연자의 짧은 극이 진행된다. 천상애 사과의 전설을 읊는 이 극은 간결하지만 유쾌한 전통연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태백산의 붉은 비가 내린 뒤에 신이 두려움을 아는 인간을 위해 내려준 것이 바로 천상애 사과라고 전해진다. 잠깐 펼쳐지는 공연은 웃음이 절로 났다. 형식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대체되고 간소화되었다는 점에서 미래의 공연 예술은 어떤 모습일지, 어쩌면 재빠르게 공연자의 몸만으로 이루어지는 형태로 명맥을 이어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를 다 먹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귀한 음식이기에 아주 얇게 썰어 모두가 나누어 먹었다. 단맛이 은은하게 풍기는 듯 제법 진했고 껍질은 끈기가 있었으며 과육은 매끄럽고 단단했다. 


쌀로 만든 요리가 하나 더 있다. 파키스탄의 비리야니라는 요리이다. 파키스탄은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국가로 AM 시대에는 기후 부도 선언을 한 나라다. 비리야니는 길쭉한 쌀에 채소 등 여러 재료를 볶거나 쪄서 만든다. 인도의 커리처럼 육두구나 큐민 같은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다. 감자나 과일이 들어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테이블에서 벗어나 부엌 옆에 마련된 공간에 둘러앉아서 한솥밥을 먹는다.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라고 부른다던데, 그보다는 느슨하지만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비인간 존재와 소통하는 것 이상으로 같은 인간종과의 교류도 중요하다.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정도로 뻔한 듯하지만 그 끝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 이들과 함께 앉아 맨손으로 밥을 먹는다. 인도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선 사람에 손에, 손가락에 우주가 응축되어 있다고 전한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건 또한 정신을 채우는 행위라는 것이다. 우선은 너무 맛이 좋아 눈이 번쩍 뜨였고, 손으로 먹는 게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주변과 대화가 이루어져서 이날 가장 화목한 순간이 되었다. 그날의 감흥이 생생하다.


만찬의 마지막 ‘먹다’ 메뉴는 곶감이다. 곱게 말린 감을 식당 천장에서 천천히 따서 손님들에게 나누어준다. ‘햇빛과 바람이 알아서 한’ 달콤한 감이다. 미래 화자는 지금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과거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 이상이라고 말한다. 곶감처럼 더 달콤해지지는 않겠지만, 지나온 어떤 순간은 분명 사람을 더 살아내게 한다. 넉넉히 잡아내기도 간신히 잡아버리기도 한다. 잘 ‘먹다’ 해보는 것만으로 세계와의 연결을 시도할 수 있다면 그 이후의 식당은, 극장은 삶 속에 있다. 무너진 이후에도 삶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면, 알맞은 시절이 되기 위해 힘내볼 수는 있으리라. 어쩌면 이전의 유물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제철 음식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