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45~246년 낙랑대방의 지배를 받던 마한 진한이 낙랑군 대방군 유주자사 관구검의 공격으로 '사실상 멸망'하고
마한사회 진한사회는 중국군현을 도우며 약탈질을 하는 부여족의 침략에 혼돈에 빠진다.
서기 270~280년 동이교위를 요동군 양평현에 설치하고 진제국 평주군현을 동이교위가 관할해서
낙랑군 대방군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된다.
한반도 경제가 크게 몰락해서 마침내 마한 진한 변한 등 동이 수십국이 진제국 평주 군현(진평군)을 지배하는 요동의 동이교위에게 피난가 '귀부'한다.
한편 한강 유역 즉 백제 지역은 마한 토인 마한의 속국 백제 토인들의 등가죽을 뚫고 가죽끈을 꿰어 풍납토성 공사에 강제동원하는
'관가官家'라는게 있었다.
대방군 석실 묘분을 축조할 때에도 마한의 청년들은 강제동원되어 역시 등가죽이 뚫려진채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황해도 임진강 한강 금강 충주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무려 120현을 관할하는 대방의 호족 궁월군(=진씨=하타씨)이었으리라.
한편 김해 대성동에선 임나 혹은 소나가라(금관) 혹은 수나라(쇠나라)라고 하는 새로운 해적세력의 수장 '아라사등'이 등장해 야마토 대왕으로부터 통형동기 창과 파형동기 방패를 하사받는다. 김해 양동리 고분(구야한국)이 몰락한다. 구야한국인들은 순장당하는 인간쓰레기의 운명에 처한다.
이때 사로국에선 흉노인 매금 혹은 마립간이라 불리는 자가(메르겐) 고구려 적석총과 흉노의 왼팔 낙랑조선의 목곽묘를 합체시킨 새로운 묘제를 등장시키고
진한인들 역시 순장당하는 인간쓰레기의 운명에 처한다.
서기 3세기 말 ~ 4세기 초 - 진제국 말기. 고구려가 요동의 산악지대를 약탈 , 점거하자
모용선비는 백제 포로(서기 270~280년대에 요동으로 귀부한 마한 잔민)를 잔병으로 삼아 부여를 공격, 멸망시켜 요서로 전부 끌고온다.
부여 포로들은 여씨 성을 하사받고 라마동 언덕에 호족 집단 무덤을 세울수있는걸 허락받는다.
요서군 진평군(진제국 평주 군현 : 요동 현토 창려 낙랑 대방)의 항구와 무역로를 점거하고
모용선비를 공격하러오는 평주자사 동이교위 최비 우문부 단부 고구려를 기습해 전부 패배시켜 포로로 사로잡는다. 최비는 고구려로 도주한다.
모용선비 모용외는 백제 부여 우문부 단부 고구려 포로들을 용인술로 받아들여 그들을 '백잔병'이라 부른다.
이 백잔병은 요서 여씨 호족의 가병들이 된다.
백잔병들은 여구 일족과 함께 바다를 건너가 백제 지역 하타씨의 도움을 받아 '백제군현'을 설치한다. 이 과정에서 반항하는 백제 추장들이 사살 , 암살 된다. (책계 , 분서)
백제 땅의 소서노비류 부족 왕의 양자가 된 여구와 백잔병들은 여포처럼 마한족들을 학살하고다니다가 갑자기 비류왕을 죽여버린다.(서기 344년)
서기 346년 여씨 호족과 백잔병이 요서에서 너무 힘을 키우자 열받은 모용황은 백잔병들의 중심지인 요서군 진평군을 모용황에게로 완전히 소속시키고
호족 죽이는 광종마냥 여씨 호족을 박살내서 여씨호족친왕 '현(=설=계)'을 사로잡는다.
그러자 여구는 할수없이 백제란 나라를 최초로 세우고 백제의 나라역사서가 존재한적이 없으므로 최초로 쓰게하고 백제 왕으로 즉위하고
행정업무는 하타씨족에게 전부 맡긴다.
한편 왜국에선 야마토오구나타케루란 전설적 무사가 규슈 이도국의 도움을 얻어 야마토 정권으로 가서 이곳 저곳을 토벌해
야마토 정권을 크게 성장시켜준 후 20년만에 배를 타고 다시 백조가 되어 어딘가로 갔다.
여구의 행방불명 20년간 하타씨족의 백제 통치는 포학하고 제멋대로였다.
여구는 20년만에 다시 친정을 하여 창원 탁순국과 김해의 동아시아해적연합 왜구 '임나' 아라사등과 야마토 정권과의 연결을 성사시키고
자신의 관우 장비 조자룡과도 같은 목라근자 사사노궤 막고해 등 외국인들로 구성된 왜구 용병대장들로 하여금 동아시아해적연합 왜구임나를 데리고
반도 남부의 침미다례(전라도 마한신미제국)와 전라도 나주 영산강 유역 일대 반고 포미지 비리 벽중 4읍과 가라 7국과 신라를 백제의 부용국으로 만들고
임나의 명령을 듣게하고 전라도 경상도 곳곳에 배치된 일본부(제패니즈 타운 즉 왜관)의 야쿠자들에게 공물을 바치게하여 야마토 정권을 섬기게한다.
여구는 백제 지역 낙랑잔민의 주인인 '백잔주'에 오르고 낙랑태수대방태수가 쓰는 성상번이란 말이 적힌 황색 천자깃발을 치켜들고
진제국의 연호 태화 4년을 쓴다. 그리고 중국에 낙랑태수로 책봉받길 기대했고 후에 그리 책봉받았다.
자신의 아들 귀수를 백제후왕에 책봉하고
귀수의 아들 침류는 백제왕세자에 책봉한 후
선세 이래로 일찍이 없었는데 위진제국 태화 4년이란 연호가 새겨진 제후 왜왕의 칼인 칠지도를 성스런 음에 기생하여 만들어내
위나라 연호 태화 당시 친위왜왕으로 책봉된 왜왕의 일을 기억해 야마토 정권에 이 칠지도를 보내 왜왕 지로 하여금 왜국 열도와 반도삼한을 친위왜왕의 위세로서 안무하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