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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한가해?"

남자의 호박색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무슨 뜻이야?"

"일을 맡기고 싶어. 물론 합법적인."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식의 의뢰를 받는 것은 드물지 않지만, 이렇게까지 단도직입적으로 제안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합법적'이라니, 정말로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자신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는 것인지, 호기심에서 물어보았다.

"일? 얘기에 따라서는 해줄 수도 있지만, 배가 필요한 건가?"

굳이 선원이냐고 확인했던 것을 떠올리며 물었지만, 여자는 웃음만 지으면서 작은 카드를 카운터 위에 놓고 일어섰다.

"한 시간 뒤에 여기로 와줘."

대답도 듣지 않고 계산을 마친 후 가게에서 나간다.

경쾌하게 나가는 뒷모습이 사라지자 켈리는 카드를 집어 들었다. 시내의 호텔 카드. 뒷면에 방 번호가 적혀 있었다.

켈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그 여자가 놀이 상대를 찾고 있던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 남자를 유혹하는 게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분위기가 없었다.

노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묻는다.

"지금 그 여자, 단골?"

"아니, 처음 보는 얼굴이야."

노인은 술잔을 닦으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도저히 여자로는 안 보이던데."

"글쎄 말야. 여기까지 걸어온 거라면, 오히려 여자들이 상당히 지분거렸을 것 같은데."

켈리는 계속 웃고 있었다.

하필 고르고 골라서 이 자신에게 '합법적'인 일을 부탁한다는 점이 왠지 재미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 여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술 취향도, 무기 취향도 괜찮았다.

루비를 녹인 듯이 붉은 액체를 삼킨다.

"10년 전부터 다니고 있는데, 이 가게에 이렇게 좋은 술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는 걸."

"당연하지. 누가 가르쳐줄까봐. 아깝게."

"아까워?"

"그래. 이건 1년에 다섯 통밖에 안 나는 명품이야. 5만 통도 5천 통도 5백 통도 아니고, 겨우 다섯 통이야. 찾지도 않는데 일부러 권할 마음이 나겠어?"

노인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운 듯한 울림이 섞여 있었다.

"이걸 만드는 녀석은 술로 돈을 벌 생각 따위 없어. 본업도 따로 있는데, 그저 맛있는 술을 만들겠다는 마음 하나로 혼자서 조그만 밭을 일궈서 거기서 나는 재료만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드는 술을 만들고 있지. 게다가 이 술은 가능한 한 빨리 마시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그러니까 1년에 다섯 통이다. 그것밖에 출하할 수 없는 거야. 이건 시장에도 안 나와. 내지도 않지. 매년 술집 사람들끼리 조용히 분배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야. 그런 귀중품을, 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한테 권할 수 있겠어?"

"너무하잖아. 술집 주인이 술을 숨기다니."

"안 판다고 한 적 없어. 이 술의 가치를 아는 손님한테라면 기쁘게 내놓을 수 있다구. 그런 사람이라면 꼭 마셔주길 바라지."

"확실히 좋은 술이야."

두 잔을 더 마시고ㅡ그 이상은 이 노인이 절대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벌컥벌컥 마실 만한 술이 아니라는 거다ㅡ켈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거리로 발을 옮기면 그곳은 지고바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관광도시 애시드, 그 중에서도 특히 인기 있는 '스프링 페스타'ㅡ봄의 축제ㅡ 거리였다.

계절이 봄이 아니어도, 축제 따위가 없어도 이곳은 언제나 그렇게 불린다.

거리 양쪽에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것은 조명이 비춰진 쇼윈도. 그 안에 진열된 알몸에 가까운 차림의 여자들이 매혹적으로 교태를 부리며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다. 스프링 페스타에는 우선 여자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접근할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에 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들은 말 그대로 거리의 여자. 멍청하게 발을 들였다가 매춘부 취급이라도 받게 되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좀 전의 가게는 그런 번화가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 거리에서 탈것을 이용하는 인간은 없다. 그 여자도 거리 입구에서 좀 전의 가게까지 걸어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지만, 그렇다면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어쩌면 아무도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애시드는 관광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프링 페스타' 거리처럼 남자들 취향에 맞춘 '수상한' 구역과, 같은 밤거리라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훨씬 건전한 오락 시설ㅡ이를테면 무해한 나이트 쇼를 공연하는 레스토랑 겸 도박장 등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구역은 실제로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부인과 아이들을 재운 뒤, 혹은 빈약한 변명을 둘러대며 시간을 짜낸 남편들이 몰래 다녀갈 수 있게 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정책이리라. 이 얼마나 멋진 장삿속인가.

[여기까지 왔으니 구석구석 전부 즐겨주지 않고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손님.]

관광협회의 그런 의지마저 느껴져 켈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스프린 페스타에서 떨어져 젊은 부부나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가득한 구역을 지나가 갑자기 경치가 바뀌었다.

거리를 밝게 비추던 가로등이 사라지고 시끄러운 소란도 멀어졌다. 지금까지의 광경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구역이 나타났다. 녹색으로 가득 찬 거리에는 새하얀 건물들이 조화롭게 세워져 있다.

애시드 광광협회의 거리 조성은 철저했다.

이곳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구역이다. 목적지인 호텔도 이 구역에 있었다.

켈리는 그 호텔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서 발을 멈췄다.

적당히 세련되고 적당히 서민적인 건물. 급수로 따지자면 중상 정도일까.

이미 심야를 넘긴 시간. 바로 근처에 저런 번화가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길을 오가는 사람의 기척도 없다.

그럼에도 다시 주위를 확인하고서, 고풍스러운 가로등에 등을 기대며 호텔을 바라본다.

순간, 케릴의 시야는 비현실적으로 변했다.

왼쪽 눈은 여전히 현실의 풍경을 보고 있지만 오른쪽 눈은 길 건너편에 서 있는 호텔 벽을 투과해 내부를 살피고 있었다.

켈리의 오른쪽 눈은 의안이었다. 단 평범한 의안이 아니다. 다양한 전자파를 감지하는, 문자 그대로 스파이 아이.

이 눈을 통하면 벽 건너편에 있는 인간의 움직임도 감지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몸 속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건물 안에 설치된 감시 시스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면 현관과 비상구에 감시카메라와 평범한 방범 자이가 설치되어 있다.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1층 프런트에는 경찰 통보 장치도 있었다.

프런트에 있는 종업원이나 복도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무장한 사람은 없었다. 단, 지하의 경비실에 경비원이 전부 네 명. 물론 이 사람들은 무장하고 있다.

각 층의 복도는 모니터로 감시하고 있었지만, 그 중 한 사람이 크게 하품을 하는 것을 움직임으로 알 수 있었다. 심야 근무이니 한가한 거겠지.

너무나도 전형적인 시골 호텔이었다.

지정한 방 번호는 502호였다.

켈리는 5층에 시선을 돌리고 방을 찾으려다 잠시 망설였다.

이곳의 방 번호는 전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