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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들.

"꾸물대면 놓고 간다!"

클라인이 외치자 대형 파티는 앞을 다투어 밤하늘을 날아올라 천공의 성을 향해 돌진했다.

마지막으로 하얀 튜닉과 미니스커트에 은백색 레이피어를 차고, 어깨에 조그만 픽시를 얹은 아스나가 길고 파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두 사람의 앞에 정지했다.

"자! 가자, 리파!"

그녀가 내민 손을 리파는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스나는 생긋웃더니, 등의 물색 날개를 파닥이며 몸을 돌렸다.

그 어깨에서 유이가 날아올라 키리토의 어깨에 착지했다.

"자요, 아빠! 빨리!"

키리토는 투명한 시선으로 잠시 아인크라드를 바라보다.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 입술이 움직이고, 어렴풋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 것 같았으나 들리지는 않았다.

힘차게 고개를 들었을 때, 키리토의 얼굴에는 여느 때와 같은 듬직한 미소가 되돌아와 있었다. 날개를 크게 펼치며, 똑바로 하늘을 향한다.

"좋아ㅡ가자!!"

DC inside

To 라클

『어질(agility) 하나면 장땡이란 건 그냥 환상이에요, 환상!』

톤이 높은 남자의 목소리가 넒은 술집 가득 울려퍼졌다

『물론 어질은 중요한 스탯이죠, 속사와 회피, 두 가지 스킬이 높으면 충분히 고수 소리를 들었어요. 이제까지는.』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대는 목소리의 주인은 어두컴컴한 가게의 중앙에 높이 떠 있는 4면 홀로그램 패널에 비친 플레이어였다.

온라인 방송국《MMO 스트림》의 인기 코너《이번 주의 승리자》였다. 현실세계에서도 TV나 PC로 VOD 동영상을 볼 수는 있지만, 수많은 VTMMO 월드의 여관이나 술집 같은 곳에서도 항상 방송되므로, 역시 플레이어들은《안》에서 보는 쪽을 선호한다.

특히 게스트 플레이어가《그 세계》의 주민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니까요. 8개월 동안 어질에 올인했던 페인 여러분들께는 이런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네요. ──캐삭하셈』

냉소가 듬뿍 어린 그 말에 넒은 가게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오고, 술병이며 유리잔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폴리곤의 파편을 흩뿌렸다.

하지만 《그》는 소동에 가담하지 않고 가게 가장 안쪽의 소파에서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다. 눈까지 깊이 눌러쓴 *길리 슈트의 후드와 얼굴 아래를 가린 두꺼운 천의 틈을 통해서 싸늘한 시선으로 가게 안을 돌려본다.

화면 안에서 한참 콧대를 세우고 있는 사내도 가증스러웠으나, 얼빠진 얼굴로 tv를 보는 플레이어들은 더더욱 불쾌했다. 다들 우우 시샘 어린 소리를 지르면서도, 사실은 그 자체를 이벤트 삼아 즐기고 있다.

어떻게 그리 태연할 수 있는지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TV 안의 사내는 단순한 우연의 결과로 세계 최강의 지위를 손에 넣었으며, 동시에 최대의 착취자가 된 것이다. 모든 플레이어가 지불하는 이용료를 가로채고는 프로라도 된 것처럼 으스대고 있다.

속으로는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플레이어가 사내를 질시하고 증오할 것이다. 그 감정이 추악하다면, 이를 감추고 겉으로만 웃음을 지어 얼버부리려는 행위는 추악할 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럽기까지 하지 않은 가.

《그》는 슈트 밑에 온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 악다문 이 사이로 가늘게 숨을 토해냈다. 아직은 시간이 아니다. 방아쇠를 당기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시선을 홀로그램 패널로 되돌리자, 카메라가 줌아웃되면서 사내의 오른쪽에 앉은 프로그램 사회자와 왼쪽에 앉은 또 다른 게스트를 프레임 안에 담았다.

테크노 팝 풍의 의상을 입은 사회자 소녀가 애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

『역시 요즘 VRMMORPG 중에서도 가장 하드하다는 《건 게일 온라인》의 톱 플레이어이신 만큼 말씀이 과격하시네요!』

『하하. 《M스트림》에 초대 받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요. 하고 싶은 말은 다 해보려고요.』

『에이~,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이번《볼릿 오브 블리츠》도 노리고 계시죠?』

『그야 물론, 기왕 참전할 거면 우승을 노리겠지만요.』

사내는 요란한 은청색 장발을 쓸어 넘기며 카메라를 향해 대담하게 선언했다. 다시 가게 안은 야유의 폭풍.

MMO 스트림은 건 게일 온라인── 통칭 GGO 내부의 컨텐츠는 아니지만, 출연자는 모두 플레이어가 아니라 아바타였다. 《이번주의 승리자》는 매주 수많은 VRMMORPG 게임에서 톱플레이어를 초빙해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번 주의 게스트는 GGO에서 지난달에 치러진 최강자 결정 배틀로열 《블릿 오브 블리츠(Bullet of Bullets)》의 우승자와 준우승자였다.

《하지만 젝시드 님.》

오랫동안 은발 사내의 자랑을 듣고만 있던 준우승 플레이어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는지 입을 열었다.

『BOB는 솔로 조우전이잖아요? 두 번싸워서 똑같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스탯 타입의 승리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건 좀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요?』

『아뇨, 이번 결과는 전체 GGO의 경향을 드러난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야미카제 님은 어질 타입이니까 부정하고 싶은 기분도 이해하지만.』

젝시드라 불린 우승자가 즉시 되받아쳤다

『이제까지야 물론 어질 올인해 강력한 실탄화기를 속사하는 게 최강의 스타일이었죠. 회피 보너스도 같이 올라가니까 내구력이 불안해도 다 커버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MMO란 건 스탠드 얼론 게임하곤 달라서 시시각각 벨런스가 바뀌거든요? 특히 렙업 때마다 스탯 찍는 게임에선 원칙상 스탯 재분배가 불가능하니까, 항상 미래를 예측하면서 스탯을 찍어야죠. 어떤 레벨대에서 최강의 스타일이 다음에도 최강이란 법은 없어요. 생각해보면 뻔하잖아요? 앞으로 나올 무기들은 스트렝스(Strength) 요구치와 명중도가 점점 높아질걸요. 전부 회피하고 멀쩡하게 돌파하겠다는 어설픈 생각이 언제까지 통할 수 는 없다 이거죠. 저랑 야미카제 님의 전투가 바로 그걸 드러낸거고요. 님의 총탄은 제 방탄 아머 때문에 위력이 떨어졌고, 반대로 제 사격은 70퍼센트 가까이 명중했잖아요? 까놓고 말해서 앞으로는 스트렝스─바이탈(Vital) 타입의 시대예요』

잇달아 주워섬겨 대자 야미카제라는 사내는 억울함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대꾸했다

『......하지만 젝시드 님이 대회 직전에 정확히 님의 스트렝스로 들 수 있는 레어 총기를 입수했던 결과 아닌가요? 얼마 주고 샀나요, 그거?』

『에이, 사긴요. 당연히 던전에서 먹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가장 중요한 스탯은 플레이어의 럭(Luck)일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홀로그램 패널 속에서 웃는 은발의 사내를 원한 담긴 눈으로 노려보면서, 《그》는 슈트에 싸인 오른팔을 움직였다. 허리의 홀스터에서 튀어나와 있는 그립을 찾아, 싸늘하면서도 단단한 금속을 꽉 쥐었다. 이제 곧── 이제 곧 그 순간이 온다. 시야 끝에 있는 시각 표시를 확인했다. 앞으로 1분 20초.

《그》의 옆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커다란 피처 잔을 기울이며 투덜거렸다.

"쳇, 잘났다. 진짜. 옛날에 어질 타입이 최강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건 젝시드 본인이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보내려는 함정이었어......, 당한 거지, 뭐."

"그럼 스트렝스─바이탈이 최강이란 것도 뻥일까?"

"그럼 사실은 뭐가 필요하랴나? 럭에 올인해봐?"

"너 한번 해봐."

"싫어."

두 사람은 낄낄 웃었다. 그 목소리가 《그》의 분노를 더더욱 가열시켰다. 속았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은 웃음도 이제 곧 얼어붙고 말 것이다. 진정한 힘, 진정한 최강자를 직접 본다면.

시간이 됐다.

《그》는 소리도 없이 일어났다. 테이블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그 누구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않았다.

어리석은 놈들......, 두려움에 떨어봐라.

그는 중얼거리더니. 술집 한가운데의 홀로그램 패널 바로 아래 우뚝 멈춰 섰다. 길리 슈트의 허리춤에 장비해 놓았던 홀스터에서 핸드건 한 자루를 꺼내든다.

어둠 그 자체를 응축한 듯 사늘한 블랙 메탈릭의 광채. 그립까지 금속제이며, 세로로 톱늬무니가 들어간 그 한가운데에는 별 모양 각인이 찍혀 있었다. 겉보기에는 별다른 위력도 없을 법한, 흔해빠진 자동권총이었다.

하지만 그총에는 《진정한 힘》이 있다.

《그》는 철컥 소리를 내며 슬라이드를 당겨 초탄을 장전하더니,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총구를 상공──거대한 홀로그램 패널을 향해 치켜들었다. 그 안에서 웃고 있는 최강 프레이어 젝시드의 이마를 향해.

《그》가 한동안 그대로 있자 마침내 주위에서 의문 어린 술렁임이 일어났다. PK(Player Kill) 무제한인 GGO에서도 도시 내부는 공격이 불가능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탄환을 발사할수는 있어도 플레이어에게 대미지를 주기는 커녕, 오브젝트를 파괴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의 무의미한 행동에 여기저기서 실소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미동하지 않은 채 검은 핸드건을 *아이소셀레스 스탠스로 들고 있었다.

패널 모니터 안의 젝시드는 여전히 냉소적인 말을 더들어 대고 있었다.

잭시드의 플레이어는 현실세게의 어딘가에 드러누운 채 머리에 장착한 《어뮤스피어》를 경유해 MMO 스트림의 버추얼 스튜디오에 접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건 게일 온라인 세계의 수도 《SBV 클로켄》 상업지구의 한 술집에서, TV에 비친 자신에게 누군가 총구를 들이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입을 열더니 한껏 소리를 높혀 외쳤다.

"젝시드! 거짓된 승리자여! 지금 이 순간 진정한 힘으로 심판을 내려주겠노라!"

어리둥절해하는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는 왼손을 총에서 떼더니 손가락으로 이마와 가슴을,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를 찍어 상호를 그었다.

손을 내린 것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슬라이드가 후퇴하고 머즐 플래시가 샛노랗게 번뜩였다. 높고 메마른 작렬음.

조도가 낮은 술집의 어둠 속을 금속 탄환이 일직선으로 꿰뚫고 날아가──홀로그램 패널 화면에 명중해다. 조그만 광원 이펙트가 흩어졌다.

그뿐이었다. 화면안에서 젝시드가 여전히 신나게 입을 놀리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가게 안에서 조소가 터져 나왔다. "못 봐주겠네." "머하는 거야?" 그런 목소리가 언뜻 들려왔다. 그 위로 젝시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스탯과 스킬의 선택을 포함해서, 결국에는 플레이어 본인의 능력이란 것이......』

갑자기, 목소리가 끊어졌다.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패널로 돌아갔다.

젝시드는 입을 벌린 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얼어붙어 있었다. 그 손이 느릿느릿 올라가더니, 가슴 한복판을 움켜쥐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그 직후, 그 모습은 휙 사라지고 폴리곤 의자만이 남았다. 당황한 사회자가 말했다.

『어머나, 회선이 끊어진 모양이네요. 금방 돌아오실 테니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채널을 고정하시고......』

하지만 가게 안에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싸늘한 정적 속에 모든 시선이 다시 《그》에게 모였다

《그》는 아직까지 패널을 향하고 있던 총을 내리더니 수평으로 들었다. 그대로, 천천히 몸을 회전시켜 가게 안의 플레이어들을 총구로 하나하나 흝었다.

한 바퀴를 돌자,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