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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렇게 무모한 짓을 했으니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유산한 거야?"

"아니, 아직. 아직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직껏 유산이 안 된 게 신기할 지경이야."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의무장의 얼굴은 진지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예전에 유산했을 상황인데, 아마도 재스민이 자기 의지로 억누르고 있던 거겠지."

켈리는 입을 쩍 벌리고 반문했다.

"공교롭게도 난 임신 같은 거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할 예정도 없긴 한데 말이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봐. 그렇게 사람 맘대로, 자기 의지로 유산을 막는 게 가능해?"

"물론 불가능해. 그러니까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당신을 부른 것도 그래서야. 뱃속의 태아는 임신 10주에서 11주 사이야. 이런 상황에서는 모체 밖으로 적출해서 의사태반에 연결시켜도 살기 힘들어. 그렇다고 이대로 모체에 남겨두면, 물론 안정을 되찾을 확률도 제로는 아니야...... 제로는 아니지만 재스민의 몸에 큰 부담이 걸리게 돼."

"뭐든지 확실히 해두지 못하는 게 의사들의 나쁜 버릇이야. 그래서 결국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베커 의무장은 여기서 의사답지 않을 정도로 솔직한 태도로 켈리에게 말했다.

"임신 상태를 유지할지 아니면 중지할지, 자네가 결정하라고. 지금 태아를 포기하면 재스민은 안전해. 임신을 유지하면 잘만 되면 둘 다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 결국 유산되고 재스민의 목숨도 위험해져."

"그거, 엄청 애매한 소리 아냐?"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된 범위의 처치뿐이야. 한심할 정도지. 유전자 조작치료나 인공장기 실용화가 가능해졌을 정도로 기술은 발전했어. 의료기술 자체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의사는 꼭 이렇게 될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 최후의 최후에는 결국 본인에게 달렸다고."

"왠지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 같은데, 당신은 임신을 중지시키는 편이..., 그러니까 중절시키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거지?"

의무장은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 낫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냐.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아짓껏 유산이 안 됐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야."

"후우......"

켈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부터 아이를 원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자식이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도 없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은 모두 성인 여성으로 이런 문제는 확실하게 대비하고 있었고, 켈리 자신도 예의는 반드시 지켜왔다.

수많은 미녀들과 깔끔하게 어울리다 깔끔하게 헤어졌고, 재스민과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이 임신은 전혀 예정에 없던 사건이었고, 모체와 태아가 걸려 있을 때에는 모체를 중시하는 것이 상식이기도 하다. 마침 좋은 기회이니 중절시키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임산부 쪽은 남자들의 이 의견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기를 우선해."

언제 의식을 되찾은 걸까.

자동기계의 손에 의해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재스민은 침대 위에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재스민의 눈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일어나지 마!"

의무장은 당황하며 제지했지만, 재스민은 전혀 개의치 않고 사납게 말했다.

"어니, 인공 임신중절 따위 난 절대로 허락 안 해. 아기를 살리라고."

"바보 같은 소리 마. 네 몸이 못 버틴다고."

"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으니까 아기를 살리란 말야!"

"재스민, 조금 진정해. 진정제를......"

하지만 임산부는 진정제를 가지고 온 자동기계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며, 침대에 누운 채 발꿈치로 힘껏 걷어차버렸다.

불쌍한 자동기계는ㅡ70킬로그램은 되는 물건이지만ㅡ그 공격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다리에 달린 바퀴가 공중에서 허무하게 공회전을 거듭했다.

"날뛰지 마! 또 하혈한다고!"

의무장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덮으며 탄식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저 여왕님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날뛰는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 증거로 가차없이 발차기를 먹이고서도 침대에서 뛰어내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재스민은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형형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 험악한 기세에 눌린 의사와 간호사들은 감히 다가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침대 주위에 빙 둘러서 있을 뿐, 억지로 잡아 누르려고 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상상이 간다. 자동기계는 뒤집히셔 쓰러지는 걸로 끝났지만 자기들은 틀림없이 기절한다.

하지만 흥분한 상태의 환자를ㅡ그것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환자라 하더라도ㅡ방치할 수는 없었다.

최후에는 의료장 자신이 결사적인 각오로 재스민을 설득하려 했다.

"나도 의사로서 임신을 유지시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유산방지제의 효과가 없다고. 이 이상 투여했다간 네 몸이 위험해져. 지금은 간신히 태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도 거의 한계야."

하지만 이것은 조금 무모한 행동이었다.

재스민은 침대 곁으로 다가온 의무장의 멱살을 무서운 기세로 잡았다.

침대에 앉은 채 완력만으로 잡은 멱살을 틀어 올린다.

"잘 들어. 임산부 본인이 바라고 있다고. 아기를 살려! 진정제 같은 걸로 재워놓고, 다음에 내가 눈을 떴을 때에 애가 떨어져 있으면 각오해! 네 녀석 코를 뜯어서 똥구멍에 처박아줄 테니까!!"

"지..., 지, 진정해......!"

의무장은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안색이 점점 시커멓게 변한다. 그저 입만 뻐끔거리면서 필사적으로 산소를 찾고 있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던 켈리는 한숨을 쉬며 의무장 뒤쪽으로 숨은 채 침대로 다가갔다. 큰 키와 압도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켈리는 이동시에 거의 기척을 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스민의 목덜미에 수도를 휘둘렀다. 즉효성 진정제인 셈이다.

효과도 매우 강력했다. 급소를 맞은 재스민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균형을 잃은 몸이 휘청거리고 붉은 머리가 그대로 바닥을 향해 떨어지려는 것을 켈리의 팔이 받아냈다.

엄청난 완력에서 간신히 해방된 의무장은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부여잡고 헐떡거리다가, 기절한 재스민과 그 몸을 받쳐 들고 있는 켈리를 보고 눈을 크게 치떴다.

"그렇게, 심한 짓을...... 자네......"

"말리지 않았으면 당신이 죽었을 걸."

묵직한 몸을 안아들어 원래대로 침대 위에 눕히고서 켈리는 말을 이었다.

"본인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임신을 유지하는 쪽으로 해줘. 안 그랬다간 당신이나 나나 눈앞에 있는 코하고는 영영 작별이야."

"그래......"

의무장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을 쓰다듬었다.

켈리는 의무실에서 나가려다가, 바깥에 재스민의 친위대가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것저것 물어보면 일이 귀찮아진다.

생각해보면 재스민만이 아니라 켈리도 애드미럴에서 출발한 이래 거의 쉬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동안 계속해서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켈리 역시 남들 이상으로 튼튼한 편이고 체력에도 자신이 있었지만, 다이애나와는 달리 육신을 지닌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게 마련이었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그대로 의식이 날아가버릴 것 같았고, 의안인 오른쪽 눈까지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켈리는 바깥쪽 복도가 아니라 병실 안쪽에 이어져 있는 복도를 내려다보았다. 무균실과 수술실로 통하는 길이다.

무균실을 살펴보자 사용하지 않는 이동식 침대가 놓여 있었다.

켈리는 옳다구나 하며 무균실로 기어들아가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주위는 조용하고 급한 환자라도 없는 이상 사람은 아무도 올 리가 없다. 딱 좋은 조건이었다.

좁은 침대에 누워 숨을 들이키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멀어졌다. 몸이 그대로 침대로 꺼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완전히 지쳐 있었던 것이다.

아주 조금만 잘 생각이었지만,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떠보자 몸이 완전히 가벼워져 있었다. 시각은 열 시간을 훌쩍 넘긴 시점.

이렇게나 깊이 잠들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켈리를 깨운 것은 의무장이었다.

완전히 가뿐해진 켈리와는 반대로 이쪽은 눈 밑에 시커멓게 그늘이 져 있다. 그럼에도 표정 자체는 밝아져 있었다.

"슬슬 재스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일어났을 때 남편이 곁에 있어주는 편이 좋을 것 아냐?"

의무장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켈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치사하긴. 날 방패로 쓸 셈이지?"

"물론이지. 재스민을 때린 건 자네지 내가 아니야."

"자랑스럽게 말할 건 없잖아. 애는 어떻게 됐어?"

"간신히 안정됐어."

"헤에?"

감탄의 시선을 보냈지만 의무장은 여전히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정말 저 여왕님은 의사의 상식도 통하질 않아. 지금은 간신히 안정된 상태지만 어디까지나 지금만 그렇다는 거야. 당분간은 안정해야 하니까, 자네도 여러모로 할말은 많겠지만 일단 꾹 참고 얌전히 맞아주라고. 그 뒤의 치료는 만전을 기해줄 테니까."

"이런 돌팔이를 봤나. 얼굴 정도는 좀 씻게 해줘."

"옆의 수술 준비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