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하나인데, 바다 위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빛이 된다.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작은 반짝임들이 피어났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빛이 채워진다. 마치 푸른 바다 위에 수많은 별들이 내려앉은 듯한 풍경. 우리는 이 아름다운 반짝임을 '윤슬'이라고 부른다.
윤슬은 햇살과 물결이 함께 만들어 내는 풍경이다. 같은 햇살 아래에서도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빛의 모양과 크기, 반짝이는 위치가 끊임없이 달라진다.
작은 물결 위에서는 빛이 잘게 부서지고, 길게 이어지는 파도 위에서는 수많은 반짝임이 하나의 빛줄기처럼 펼쳐진다. 가까이에서는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반짝이지만, 조금 떨어져 보면 그 모든 빛이 어우러져 하나의 눈부신 풍경을 이룬다.
윤슬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변화와 어우러짐에 있는 것 같다. 햇살도 바다도 그대로인데, 어느 순간에도 완전히 같은 윤슬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결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낼 때마다 또 다른 빛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반짝임 하나하나는 짧은 순간에 머무르지만, 그 작은 빛들이 모인 바다는 오랫동안 눈부시다.
햇살이 물결을 만나 윤슬이 되듯, 아름다운 순간도 만남에서 시작된다.
바람이 스치고, 물결이 일렁이고, 따스한 햇살이 그 위로 내려앉는다.
그렇게 푸른 바다에는 빛이 스며들고, 수많은 작은 별들이 피어난다.
그중 어떤 빛은 유난히 오래 반짝이고, 어떤 반짝임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2026.10.23
창문을 열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그리고 멀리 펼쳐진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로 배들이 오가고, 햇살은 물결을 따라 반짝인다. 멀리 보이는 산과 건물들까지 어우러져 하나의 넓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풍경이지만, 창문 하나가 참 재미있는 역할을 한다.
창문은 바그저 안과 밖을 이어줄 뿐. 하지만 그 작은 연결을 통해 멀리 있는 바다와 도시가 내가 머무는 공간의 일부가 된다.
사진 속 다리도 비슷하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두 곳은 다리 하나로 이어지면서 서로의 일상에 한층 가까워졌다. 달라진 것은 두 도시의 위치가 아니라, 그 사이에 새로운 길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풍경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 풍경과 이어지는 경험과 기억이 달라졌을 뿐이다.
어쩌면 연결이 가진 가장 흥미로운 힘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두 곳을 이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미 존재하던 것들의 의미까지 새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
작은 창문 하나로 이어지는 넓은 세상.
창문 밖의 바다와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연결 하나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훨씬 풍성해진다.
늘 같은 풍경도 무엇과 이어지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2026.10.18
바닷가에서 한 아이가 파도를 따라 뛰어다닌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다시 파도를 향해 달려가기도 한다. 물결이 발끝에 닿을 때마다 아이의 움직임은 더욱 활기차진다. 그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조각상마저 아이와 함께 놀고 있는 듯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파도가 물러난 자리에 얇게 남은 바닷물이 도시의 풍경을 비춘다. 높은 건물과 하늘, 그 사이로 스며든 빛까지 물 위에 고스란히 담긴다. 조금 전까지 힘차게 움직이던 바다가 이번에는 주변의 풍경을 차분하게 담아내고 있다.
같은 바다인데 참 다른 모습이다.
아이에게 파도는 더 신나게 뛰어갈 이유가 되고, 도시에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공간이 된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존재하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바다는 그저 자신의 리듬대로 밀려왔다가 물러날 뿐이다. 하지만 아이의 발끝에 닿았을 때와 도시의 모습을 담아낼 때, 그 물결이 만들어 내는 장면은 전혀 달라진다.
무언가의 가치는 그것이 지닌 모습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무엇과 만나고, 어떤 순간에 놓이느냐에 따라 같은 것에서도 전혀 다른 의미가 생겨난다.
작은 파동 하나가 새로운 움직임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잠시 찾아온 고요함이 평소 지나치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들기도 한다.
같은 물결이 누군가에게는 달릴 이유를,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하늘을 건넨다. 🌊☘️
2026.10.16
햇살이 수면에 닿으면 수많은 빛의 조각들이 물결을 따라 반짝인다.
윤슬이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움직일 때마다 빛의 위치도 달라진다. 어느 한곳에 머무는 듯하다가도 금세 흩어지고, 다시 모여 물 위에 길을 만든다.
그 반짝이는 길 위로 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물결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빛이 반사되는 위치도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멀리서 바라본 윤슬은 늘 하나의 길처럼 이어져 있다.
윤슬이 배를 위해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빛과 물결, 그리고 바라보는 위치가 만들어 낸 멋진 풍경. 그리고 배가 그 길을 따라 나아가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우리의 일상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마주하는 상황도 다르고, 생각과 감정도 조금씩 달라진다. 때로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변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오래 지키고 싶은 것, 그리고 향하고 싶은 방향은 분명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반짝이는 길을 걷는 일이 아니라, 어떤 길 위에서도 자신이 향하는 방향을 잃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빛나는 순간이 많아서 좋은 삶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기에 좋은 삶.
오늘 바다에서 본 윤슬은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물결은 끊임없이 바뀌어도, 햇살은 그 위에 또 다른 빛을 남긴다.
그리고 배는 자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잘 지키며, 각자가 선택한 길을 자기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하루✨⛴️☘️
2026.10.14
여름의 초록이 완전히 물러나기 전,
가을의 색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물빛은 여전히 반짝이고
나무에는 초록이 제법 남아 있는데,
그 사이사이로 계절이 한 칸 움직였다는 흔적이 보인다.
이맘때의 풍경에는
한 계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색이 있다.
한쪽에는 지나온 색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다음의 색이 천천히 번지고 있다.
같은 길위에 시간을 달리하여 다른 계절을 걸어본다.
색이 스며드는 만큼,
설명하지 않아도 조금씩 깊어지는 것들이 있다.
빛나는 초록과 물빛,
한 칸 흘러간 계절,
다음의 색을 머금으며 한층 깊어지는 길🍂☘️
2026.10.4
푸른 하늘 한쪽에 구름 한 조각이 떠 있다.
온종일 흰빛이었을 구름에 주황빛이 천천히 스며든다. 바다 건너 산자락에도, 낮게 이어진 도시의 지붕에도 저녁의 색이 내려앉는다.
머금는다는 말이 좋다. 빛을 가득 담고도 가만히 있는 모습. 구름을 보고 있으면 그 말의 모양을 알 것 같다. 가장자리는 옅게, 가운데는 조금 더 짙게. 빛이 닿은 자리가 그대로 색이 된다.
같은 하늘을 떠다니던 구름도 어떤 빛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표정을 갖는다.
오늘의 저 구름은 노을을 만나 저렇게 따뜻해졌다.
구름이 머금은 빛을 닮아가듯, 사람도 자신에게 깊게 스며든 온기를 닮아간다.
좋은 빛을 만난 흔적은 그렇게 남는다.
2026.10.2
쌓여 있는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이 마주한 곳
오래된 성곽을 걷다 보면
시간에도 서로 다른 모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 하나하나를 겹쳐 올린 성벽에는
수많은 날이 층층이 쌓여 있다.
같은 자리를 지키며 계절을 지나온 시간이다.
그 위의 하늘은 전혀 다르다.
바람을 따라 모양을 바꾸고
금세 멀어지는 구름처럼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간다.
무겁게 쌓아 올린 시간 위로
깃털 같은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
한쪽에는 오랜 시간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바로 지금의 시간이 흐른다.
그날의 풍경은 유난히 가볍고 따뜻했다.
어디를 얼마나 걸었는지보다
걷는 동안 보았던 하늘과
눈안에 담기던 풍경들 모두가 선명하다.
빛의 색,
바람의 감촉,
그날의 온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모든 시간이 같은 방식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간은 성곽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어떤 시간은 구름처럼 흘러가면서도
한 장면을 오래 남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도
그날을 떠올렸을 때 처음 돌아오는 것은
장소의 이름이나 정확한 시간이 아니라
그날을 감싸고 있던 온기이다.
쌓여 있는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이 마주한 곳.
무겁게 쌓아 올린 시간 위로
깃털처럼 흘러가던 구름.
그 사이에 오래 남아 있는
그날의 온도☘️
2026.9.26
윤슬이 벽면에 파동을 그리고 있다.
수면의 작은 굴곡들이 빛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반사하면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물 위에서는 반짝임으로 보이던 빛이
벽에 닿자 하나의 움직이는 무늬가 된다.
빛은 같은 곳에서 오고 있는데
수면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만으로
전혀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파동은 여기서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
서로 다른 파동이 겹치면
각각의 진폭과 위상에 따라 보강되기도 하고 상쇄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느 하나의 파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파형으로 나타난다.
조금 더 작은 세계로 내려가면
양자역학 역시 상태를 파동함수로 표현한다.
여러 가능성이 중첩되고 간섭하면서
관측할 수 있는 하나의 결과가 만들어진다.
생각해 보면 빛도 파동도 그대로인데
무엇을 만나고, 어떻게 겹쳐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수많은 파동이 스쳐가지만
모든 겹침이 같은 무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겹침은 잔잔한 흔들림으로 지나가고,
어떤 겹침은 서로의 진폭을 깊이 끌어올려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진폭’까지 만들어낸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얼마나 큰 파동이었느냐보다
어떤 파동과, 어떤 위상으로 겹쳐졌느냐인지도 모른다.
유난히 깊고 아름다운 무늬가 생기는 이유인 것이다.
2026.9.24
퇴근길에 바라본 바다 위로
푸른빛과 오렌지빛이 함께 걸려 있는 장면
해가 지평선 가까이 내려가면
지상에서는 하루가 거의 끝난 것처럼 보여도
조금 더 높은 곳의 구름은 여전히 햇빛을 받고 있다.
그래서 같은 하늘 안에서도
어떤 곳은 먼저 어두워지고
어떤 곳은 조금 더 오래 빛을 머금는다.
같은 시간인데도
빛이 머무는 시간에 따라
하늘은 서로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
푸른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오렌지빛이 그 위에 겹쳐지고,
하루의 끝에는 잠시 두 색이 함께 머문다.
그래서 해 질 무렵의 하늘은
어느 하나의 색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먼저 지나간 빛은 사라진 듯 보여도
다음 빛과 겹쳐 전혀 새로운 색을 만든다.
결국 한 장면을 풍성하게 만드는 건
하나의 선명한 색이 아니라,
그 안에 차곡차곡 더해진 여러 빛인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는 흘러가지만
그 안에 머물렀던 장면들은
각자의 색으로 조금씩 남는다.
어떤 날은 맑은 푸른빛으로,
어떤 날은 따뜻한 오렌지빛으로,
또 어떤 날은 쉽게 이름 붙이기 어려운 색으로.
그렇게 하나둘 더해진 색들은
지나온 시간을 단순히 길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간다.
빛이 머무는 시간이 달라지며
저마다의 색을 만들어내듯,
차곡차곡 쌓인 시간 속에
새로운 색은 계속 더해지고,
그 색들이 모여 만들 하나의 장면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 같다.
2026.9.12
평형이라고 하면 보통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변화가 멈추고,
모든 것이 한자리에 고정된 상태.
그런데 화학에서 말하는 평형은 다르다.
정반응도 계속 일어나고 있고,
역반응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두 방향의 변화가 서로를 맞추며
하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를 동적평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화학에서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멈춰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 움직이고,
계속 오가고,
서로의 변화에 맞춰지면서
하나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한쪽의 상태가 달라지면
다른 쪽도 그 변화에 따라 움직이고,
조건이 달라지면
그 안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변화의 폭이 크고
움직임도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모습은 조금 달라지지만,
움직임은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변화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균형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의 오래 유지되는 균형은
고정된 상태라기보다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에
움직임이 줄어든 상태라기보다
더 편안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상태인 것이다.
계속 움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아가는 상태.
동적평형
2026.9.11
그린과 블루는 언제 보아도 참 편안하다.
맑은 하늘 아래 초록이 넓게 펼쳐져 있으면
풍경 전체에 자연스럽게 안정감이 생긴다.
푸른 하늘과 초록의 잔디,
그 사이로 이어지는 물빛과 산.
각각의 색은 분명한데
한 장면 안에 놓이면 참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각자의 색은 그대로 선명하고,
전체의 결은 부드럽게 하나로 이어진다.
아마 두 색이 품고 있는 분위기가 닮아 있어서일 것이다.
맑고, 차분하고,
서로의 색을 한층 더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어울림.
블루 곁의 그린은 조금 더 싱그러워 보이고,
그린 곁의 블루는 조금 더 맑아 보인다.
그래서 이 두 색이 함께 있는 풍경에는
유독 균형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있다.
좋은 어울림이라는 건
많은 설명이 없어도 자연스럽고,
같은 장면 안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며,
서로가 원래 가진 모습을 더 잘 드러나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 좋은 어울림이란
아마 이런 모습에 가까운 것 같다.
이날의 그린과 블루가 유난히 예뻐 보였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2026.9.8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도
보는 풍경은 같지 않다.
기차 안에서는 빠르게 흘러가는 바깥을 보고,
기차 밖에서는 창문에 비친 저녁을 본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누군가는 남겨지는 빛을 본다.
어느 쪽이 더 정확한 풍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라보는 자리가 달라지면
같은 순간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장면에도
각도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빛이 스며들고,
한쪽에서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모습이
다른 쪽에서는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한 번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그 장면의 한 면일 뿐인지도 모른다.
조금만 자리를 달리하면
익숙했던 풍경은 뜻밖의 표정을 보여준다.
내가 보지 못한 쪽에서 들어온 빛은
그곳만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바라보던 풍경의 모습까지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어떤 빛은 풍경을 잠시 비추고 지나가지만,
어떤 빛은 그 이후의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는다.
2026.8.29
우리는 대체로 좋은 답을 찾는 데 익숙하다.
무엇이 맞는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결과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계속 판단한다.
하지만 답의 정확성만큼 중요한 것이 질문의 방향인 것 같다.
“왜 안 되는가?”와
“무엇을 바꾸면 가능한가?”는
같은 상황을 두고도 전혀 다른 사고를 만든다.
질문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지고,
같은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차이는 결국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서 이후의 방향까지 달라지게 한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본질을 더 정확히 들여다보게 하고,
답 밖의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좋은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한 출발점이라기보다,
무엇을 중요하게 바라볼 것인지 정하는 기준에 더 가깝다.
좋은 답은 하나의 문제만을 해결해준다.
하지만 좋은 질문은 그 이후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가능성까지 바꾸어 준다.
2026.8.24
골목길을 걷는다.
큰길처럼 반듯하게 뻗어 있지도 않고, 어디로 이어질지 한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조금 걷다 보면 길이 갑자기 좁아지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방향이 꺾이기도 한다.
골목이 구불구불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넓은 도로는 대개 도시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지지만, 오래된 골목은 이미 자리 잡은 집과 담장, 지형을 따라 조금씩 생겨난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하나의 완성된 길로 그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가며 필요한 만큼 이어놓은 길이다.
그러니 골목의 모퉁이는 잘못 만들어진 흔적이 아니다.
그곳에 먼저 존재하던 것들을 함부로 밀어내지 않고, 피할 것은 피하고 품을 것은 품으며 길을 이어온 결과다.
반듯하지 않은 모양 안에는 그 길이 지나온 시간과 나름의 이유가 남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골목의 특징이다.
모퉁이 너머를 미리 볼 수 없기에 지금 눈앞에 놓인 만큼만 걸어야 한다.
그러다 몇 번의 굽이를 지나면 생각하지 못했던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멀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하늘이 건물 사이로 열리고, 평범한 길 끝에서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난다.
길은 꼭 멀리까지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보이는 만큼 걷고,
조금 돌아가고, 조금 더디더라도
방향을 알고 바라보며 걷고 있다면
멀리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
2026.8.20
카메라에는 화이트밸런스라는 기능이 있다.
빛은 모두 같은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낮의 햇빛과 저녁의 빛이 다르고,
그늘 아래의 빛과 실내의 빛도 다르다.
카메라는 그 차이를 계산해
흰색이 흰색답게 보이도록 색을 보정한다.
기준이 되는 값을 찾아
장면의 색을 가능한 정확하게 되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 보면
정확한 색이 언제나 내가 본 색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카메라가 기록한 값과
그 순간 내가 바라본 장면 사이에는
아주 작은 차이가 있다.
예전에 서해바다 사진을 보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데이터는 평균값이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은 숨겨진 찰나의 순간값이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아도
누군가는 회색을 보고,
누군가는 그 안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푸른빛을 발견한다.
수치로는 같은 장면일지 몰라도
어느 순간에 바라본 색까지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화이트밸런스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보다
내가 바라보았던 빛에 조금 더 가까운 쪽을 선택한다.
몇 도의 색온도였는지는 언젠가 잊히겠지만,
그 순간 마음에 들어왔던 색은
뜻밖에도 오래 남는다.
평균값은 장면을 설명하고,
순간값은 그 장면을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짧았던 하나의 순간값이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평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마 어떤 빛은
처음 바라본 순간부터
그 사람의 기준이 되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2026.8.18
오늘 부산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한동안 거세게 내리던 비가 잦아들고
구름 사이로 조금씩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창밖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몇 장을 담았다.
무지개는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기 중에 충분한 물방울이 남아 있어야 하고,
그 물방울을 비추는 햇빛이 있어야 한다.
태양을 등지고 바라봤을 때
햇빛이 물방울 속으로 들어가 굴절되고,
내부에서 반사된 뒤 다시 굴절되어 나오면서 빛이 파장에 따라 나뉜다.
우리가 보는 여러 색의 무지개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햇빛과 물방울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의 위치와 바라보는 방향,
그리고 물방울이 있는 위치까지 맞아야 한다.
수없이 많은 빛이 스쳐가지만,
그 모든 빛이 서로에게 닿아 하나의 빛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2026.8.17
나는 물건을 꽤 소중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는 꽤 오래되었는데도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 많다.
중학생 때 구입한 카세트테이프는 여전히 새것처럼 남아 있고, 임용 때 받은 집기류들도 아직 처음 모습 그대로다.
오랜 시간, 때로는 매일같이 사용해왔는데도
그 시간만큼 낡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조금 뿌듯하기도 하다.
오래 사용한 흔적보다
오랫동안 소중하게 다루어온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새로운 물건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는 누구나 조심스럽다.
흠집이 생길까 신경 쓰고, 작은 먼지도 닦아내고, 내려놓을 때도 괜히 한 번 더 살펴본다.
하지만 그 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간직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인 것 같다.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그 안에는 처음에는 없었던 기억과 의미도 하나둘 쌓여간다.
처음에는 단지 마음에 들어서 소중했던 것이
어느새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되고,
처음과는 또 다른 이유로 소중해지기도 한다.
시간과 의미가 하나씩 더해지는 것.
그래서 처음보다
소중한 이유가 더 많아지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소중해지는 것.☘️
2026.8.15
유독 고해상도 카메라를 좋아한다.
사진을 확대해도 디테일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크게 크롭을 해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멀리서는 하나의 풍경이었던 장면 속에서
빛의 결을 발견하고,
작은 피사체를 만나고,
보이지 않던 새 한 마리까지 센서에 담기게 된다.
그 풍경들이 새롭게 생겨난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을 뿐이다.
삶도 이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일것이다.
고해상도 카메라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곳에 있던 디테일을 보여주듯,
같은 하루를 살아도,
같은 하늘을 올려다봐도,
예전에는 지나쳤던 삶의 디테일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며 의미를 더하기 시작한다.
삶의 해상도를 높여준 것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가
분명하게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26.8.4
같은 풍경은 두 번 만날 수 없다.
아무리 같은 자리를 다시 찾아도,
그때의 빛도,
그때의 바람도,
그때의 시간도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한 장은
내일로 미룰 수 없는 기록이 된다.
같은 풍경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시간은 늘 앞으로만 흐르고,
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에.. 그리고 언젠가…를 기다리기보다,
오늘의 빛을 담고,
어제의 마음에 오늘의 마음을 더하며,
지금이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여 소중히 채워간다.
우리가 바라는 언젠가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들이 차곡차곡 이어져 닿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2026.8.3
생명과 문명을 구성하는 탄소.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소재 혁명을 이끌고 있는 탄소.
탄소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원소지만, 아직도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고 있다. 최근에는 탄소 골격의 내부 결합을 끊고 다시 연결하는 skeletal editing 기술을 통해, 기존에는 만들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나선형 구조와 새로운 키랄 나노카본이 개발되었다. 탄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용액 중 플라즈마법으로 탄소나노볼을 최초로 합성에 성공하였었고, 그 후로 이어진 수많은 이종원소도핑 탄소나노볼들의 성공..
알카리 금속을 이용한 컵스택 타입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fiber)합성, 그리고 최근에는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킨 Carbon Nanobrush Fiber(CNBF)의 개발까지..
새로운 탄소 구조를 설계하고, 그 안에서 전자와 이온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며, 더 높은 성능을 갖는 소재를 만드는 일이 자연스럽게 나의 연구가 되었다.
배터리에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슈퍼커패시터에서는 더 빠르게 충·방전하며,
전자파를 차단하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소재까지.
탄소는 하나의 원소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구의 목표도 조금씩 달라졌다.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성능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하고 원하는 기능을 갖도록 설계하는 것이 연구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다.
나노미터 크기의 아주 작은 구조 하나가 전자의 이동을 바꾸고,
그 변화가 배터리의 성능을 바꾸며,
결국에는 미래 기술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늘 설레게 한다.
탄소는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원소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도 가장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원소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새로운 탄소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탄소를 연구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가능성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만나고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가능성까지 연결되어 더 큰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26.7.31
예전에는 목표가 하루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논문을 써야 했고,
연구를 해야 했으며,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목표보다 동기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동기가 생기면 아침이 조금 빨라지고,
운동을 하루 더 이어가게 되고,
연구 데이터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며,
글 한 문장을 쉽게 넘기지 않게 된다.
해야 해서 하는 것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동기가 있는 하루는
평범한 일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만든다.
연구를 대하는 태도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하루를 보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잘 살아보자는 마음.
오늘의 일을 조금 더 정성껏 해보자는 마음.
그리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싶다는 다짐.
그런 작은 마음들이 반복되며
어느새 하루의 기준이 되고,
삶의 방향이 된다.
좋은 동기는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하루가 반복될 때,
어느새 삶은 이전과 다른, 더 소중한 것을 향해 흐르고 있다.
2026.7.29
식물은 조용히 자란다.
눈에 띄는 소리도 없이, 자신의 속도를 재촉하는 일도 없이 하루하루 빛과 물을 받아들인다.
처음부터 높이 자라려 하지 않는다. 땅 위로 잎을 틔우기 전에 먼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뿌리를 내린다. 더 높이 자라기 위해 먼저 더 깊어지는 것이다.
뿌리가 자리 잡으면 여린 줄기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한 장이던 잎은 두 장이 되며, 앙상하던 가지 끝에는 새로운 초록이 더해진다.
매일 바라보면 그 변화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바라보면 줄기는 전보다 길어져 있고, 잎은 훨씬 풍성해져 있으며, 작았던 화분이 비좁아질 만큼 자라 있다.
겨울의 나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꽃도 없고, 잎도 없고, 자라기를 멈춘 듯 고요하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나무는 자신의 안쪽을 지키고 있다. 다시 찾아올 계절을 위해 뿌리에 힘을 모으고, 지나온 시간을 줄기 안에 나이테로 새긴다.
봄이 되면 나무는 잃어버린 잎을 아쉬워하기보다 다시 새로운 잎을 틔운다. 지난 계절보다 더 깊어진 뿌리 위에서 조금 더 굵어진 가지를 펼치며 자신의 시간을 이어간다.
그렇게 작은 식물은 그리고 나무는,
수많은 햇살과 비, 바람과 계절을 지나
뿌리는 더 깊게, 줄기는 더 단단하게, 잎은 더 푸르고 풍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자신이 견디고 지나온 모든 계절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품어낸다.
깊어지는 것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같은 햇살을 받고,
같은 비를 지나며,
같은 계절을 함께 견뎌내면서.
식물은 꽃으로 피어나고,
나무는 거목이 된다.
2026.7.25
양자역학에는 결맞음(Cohere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여러 개의 양자 상태가 서로의 위상(Phase)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하나의 질서 속에서 움직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리듬을 공유하기 때문에 하나의 파동처럼 행동하며 간섭 현상을 만들어 낸다.
이 결맞음이 있어야 전자는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Superposition)을 유지할 수 있고, 양자컴퓨터의 연산이나 초전도, 초정밀 양자센서와 같은 기술도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결맞음은 양자역학이 고전역학과 가장 크게 구별되는 핵심적인 성질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결맞음은 매우 섬세하다.
주변의 열, 빛, 전자기장, 공기 분자와의 충돌처럼 아주 작은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만으로도 위상의 질서는 쉽게 흐트러진다. 이를 결어긋남(Decoherence)이라고 하며, 이 순간 양자계는 더 이상 하나의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고전적인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양자기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결맞음을 얼마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연구 과제다. 극저온 환경을 만들고, 진공 상태를 유지하며, 외부의 미세한 진동까지 차단하는 이유도 모두 이 작은 질서를 위해서다.
결국 결맞음은 단순히 '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도 같은 위상을 유지하고, 외부의 작은 흔들림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질서다. 확률적으로도 결코 흔한 상태가 아니기에, 양자세계에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삶도 조금 닮아 있다.
다른 계절을 지나온 시간들이 어느 순간 같은 리듬을 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더욱 드문 것은,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외부의 흔들림을 지나면서도
처음의 리듬을 조금씩 맞춰 가며 이어지는 일이다.
양자역학에서 결맞음이 특별한 이유도,
수많은 흔들림 속에서도 같은 리듬을 잃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2026.7.24
사진은 늘 지나간 순간을 남긴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고,
사진은 그 시간을 조용히 붙잡아 둔다.
하지만 가끔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사진도 있다.
'그날이 참 좋았다'라는 기억보다,
'언젠가 이 장면 속에 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기록한 순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인데,
그 사진을 바라보는 마음은 미래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그렇게
추억을 꺼내기보다
기다림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진 한 장은
단순히 한순간을 기록한 결과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가
조용히 시작되는 첫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 속 셔터는
아직 만나지 않은 계절과
앞으로 남겨질 수많은 장면들을
먼저 담아 두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진의 진짜 매력은
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이어주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그 이어짐은
계절을 지나며,
조금씩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간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은,
이미 남겨진 한 장이 아니라
아직 셔터가 눌리지 않은 시간 속에서
조용히 기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6.7.20
노을이 하루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사장교를 올려다보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수많은 케이블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중심을 향하고 있다.
그 위로는 비행기 한 대가 노을을 가르며 지나갔다.
하나는 땅을 이어주고,
하나는 하늘을 이어간다.
사장교의 케이블은 하나가 빠져도 균형이 달라진다.
겉으로는 수많은 선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 하나가 전체를 지탱하는 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선은 방향을 만들고,
중심은 그 방향에 의미를 더한다.
지나온 모든 선들은,
결국 하나의 중심을 완성하기 위한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은,
중심을 찾는 여정인 동시에
그 중심을 품고 나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2026.7.18
많은 사람들이 양자역학을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정말 많이 어렵다)
전자의 파동함수, 불확정성 원리, 중첩 상태….
처음부터 이런 개념을 접하면 당연히 어렵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식을 먼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이론이 필요했는지를 아는 것이다.
처음에는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세상을 거의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세계로 들어가자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흑체복사.
광전효과.
원자의 안정성.
그때마다 새로운 가설이 등장했고,
플랑크가 문을 열고,
아인슈타인이 빛을 입자로 바라보았으며,
보어는 원자의 모형을 제안했다.
그리고 마침내
양자역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배우는 수식들은
사실 그 긴 고민과 실패,
그리고 수많은 질문 끝에 남겨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맥락과, 흐름과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그렇다.
지금의 모습,
지금의 말,
지금의 선택은
수없이 많은 시간과 고민,
기쁨과 상처,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과정들이 쌓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그 지나온 이야기를 조금씩 천천히 읽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나씩 이해해 갈 때,
지나온 수많은 장면과 말들은 더 이상 흩어진 조각이 아닌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하나의 이야기로 전해지며
비로소 따뜻한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게 된다.
2026.7.17
논문을 쓰다 보면 문장을 적는 시간보다 지우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가 있다.
한 문장을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면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어 하나를 바꾸고,
문장의 순서를 바꾸고,
때로는 한 페이지를 통째로 지우기도 한다.
조금 전까지는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던 문장도,
시간을 두고 다시 보면 더 좋은 표현이 보인다.
논문은 그렇게 완성된다.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고쳐 본 사람이 더 좋은 글을 남긴다.
이러한 습관은 논문이 아닌, 글을 쓸때에도 이어진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내는 것보다,
한 번 더 읽어 보고,
혹시 생각과 다르게 전해지지는 않을지
고민하며 다듬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문장은 짧아지고,
어떤 표현은 조용히 사라진다.
겉으로는 몇 줄 되지 않는 글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수정의 시간이 담겨 있다.
좋은 문장은 단지 잘 쓰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고쳐 보고도 끝내 남겨 두기로 한 단어들로 완성된다.
그래서 어떤 글은 길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 안에, 고민한 시간까지 함께 담겨 전해지니까.
2026.7.14
조각구름 하나,
그리고 그 아래를 넉넉하게 채우는 뭉게구름.
조각구름은 작지만
파란 하늘을 더 푸르게 보이게 하고,
뭉게구름은
묵묵히 든든하게 그 아래를 채우며
하늘에 안정감을 더한다.
서로 다른 모습,
서로 다른 크기.
가까이 있지 않아도
같은 하늘을 채우는 구름은
한 조각은 여백을 만들고,
다른 한 조각은 그 여백을 품어준다.
그렇게 서로를 완성한다.
2026.7.13
음악을 듣다 보면 화려한 기교나 강렬한 사운드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담백한 노래들이 있다. 한 번 스쳐 지나갈 때보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을수록 조금씩 깊이가 느껴지는 그런 음악들이다.
그림하일드는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밴드다.
지금은 아쉽게도 해체했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조용히 사랑받고 있다.
그 중 기억의 빛은 잔잔한 밴드 사운드 위에 맑은 보컬이 어우러져, 바쁜 일상 속에서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멜로디가 귀를 사로잡고, 반복해서 듣다 보면 곡이 품고 있는 따뜻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빠르게 감정을 몰아가기보다 천천히 쌓아 올리는 전개 덕분에, 노래가 끝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기억의 빛이라는 제목 역시 인상적이다. 누구에게나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 있고, 시간이 흘러도 쉽게 바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이 곡은 그런 기억들을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조용히 비춰 주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비록 더 이상 새로운 곡을 만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은 지금도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채우며, 조용한 감성과 잔잔하고 깊은 여운을 전하고 있다.
좋은 음악은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오늘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2026.7.12
오랜만에 해돋이 공부방을 찾았다.
수녀님의 요청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산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공부방으로 향하는 골목은 조용했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했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밝게 웃었고,
그 웃음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교실 앞에 서 보니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시선을 모으는 일.
한 사람의 질문을 놓치지 않는 일.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 주는 일.
겨우 오늘 하루 수업이었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마음이 필요했다.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하루를 함께 걸어 주는 일에 더 가까웠다.
누군가는 매일 그렇게 살아간다.
아이들의 표정을 먼저 살피고,
작은 변화를 기억하며,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처음인 것처럼 웃어 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하루일지 모른다.
하지만 직접 그 자리에 서 보니,
그 평범함이 얼마나 많은 인내와 애정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하러 갔다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어쩌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이들만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도 매일 조금씩 자라게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그 자리에 잠시 서 보니,
그 하루를 묵묵히 이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알게 되었다.
2026.7.11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을 오래 붙잡는 아주 작은 장면들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
비가 그친 뒤 더욱 선명해진 공기.
비 온 뒤 아스팔트에 남은 빗물 냄새.
한 장 넘기는 책장의 소리.
퇴근길 귓가를 채우주는 누군가가 건네준 음악.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시 걸음을 늦추면
우리 곁에는 이미 많은 행복이 머물러 있다.
그 평범한 순간들이 쌓여
오늘이라는 하루를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날로 채워준다.
행복은 멀리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이고,
일상 속 소중함을 발견하는 시선이기도하다.
그래서 무엇이 소중한지 조금씩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소중함을 놓치지 않으려 마음을 기울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 가는 것.
2026.7.10
하루를 시작할 때도 커피 한 잔,
연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커피 한 잔,
좋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자연스럽게 커피가 함께한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어제의 하루를 천천히 돌아보게 하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워갈지 생각하게 만든다.
일과 중에 마시는 커피는 잠시 멈춰 서게 해서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을 풀어내고,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그래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것 같다.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한 잔이기도 하고,
하루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한 잔이기도 하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더하면 아메리카노가 되고,
우유를 더하면 라떼가 된다.
같은 한 잔의 커피지만,
무엇을 더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향과 맛을 만들어 낸다.
오랫동안 진한 커피를 좋아해 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라떼 메뉴를 한 번쯤 더 바라보게 된다.
커피는 여전히 같은 커피인데,
그 한 잔이 전하는 의미는 예전보다 조금 더 깊어진 것 같다.
어쩌면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씩 더해 가며 살아가는 것 같다.
2026.7.8
교원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연구가 아니라 시선인 것 같다.
예전에는 얼마나 앞으로 나아가는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누군가와 함께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연구실 문을 처음 열고 들어오는 대학원생들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기대와 설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다.
실험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논문은 수없이 고쳐야 하며,
미래는 아직 희미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함께 걸어가려고 한다.
조금 앞에서 길을 먼저 확인해 주고,
넘어질 만한 곳이 있으면 먼저 알려주고,
힘들어 보이면 잠시 쉬어 가자고 말해주는 사람.
결국 좋은 지도교수란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옆에서 걸어주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혼자서는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라야 멀리 갈 수 있다.
지금 연구실을 떠난 졸업생들과도 여전히 연락을 이어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논문이 끝났다고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과 함께 미래를 걸어갈 것이다.
누군가는 연구자가 되고,
누군가는 기업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 친구들의 걸음 속에 아주 작은 용기 하나쯤 남겨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교수라는 직업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문득 '함께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같은 속도로 걷는다는 뜻이 아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가끔 걸음을 늦춰 뒤를 돌아보고,
뒤처진 사람은 용기를 내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걸음을 기다려 주기도 한다.
결국 함께 걷는 미래란,
서로의 걸음을 존중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걸음이 조금 느려진다면 그 속도에 맞추면 되고,
잠시 멈춰야 한다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쉬어가면 된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상대를 재촉하는 일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일이다.
2026. 7. 6
도시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은 아래를 향한다.
신호등을 보고,
사람들을 지나고,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후쿠오카 거리를 걷던 중 맑아진 빛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높은 빌딩들이 빽빽하게 둘러싼 공간.
차갑게 뻗은 직선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을 가릴 것만 같았던 건물들이 오히려 하늘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프레임이 생기니 하늘의 넓이가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삶도 비슷한 것 같다.
해야 할 일,
책임,
약속,
수많은 일정들이 하루를 빼곡하게 채워도,
그 사이에는 언제나 작은 빈틈이 남아 있다.
그 빈틈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하루의 색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커피 한 잔으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짧은 산책으로 그 시간을 채운다.
그리고 누군가는, 소중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그 빈틈을 채운다.
그렇게 채워진 빈틈 덕분에, 회색으로만 보이던 하루에도 어느새 푸른 하늘이 스며든다.
2026.7.5
내일부터 중학교 동창 다섯 명과 함께 후쿠오카로 떠난다.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끝까지 곁에 남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친구들은 오래된 친구라기보다, 내 삶의 한 시절을 함께 살아낸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학창 시절이 있었다.
가정환경으로 인해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했다. 졸업식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중학교 역시 입학식을 치르지 못한 채, 입학한 지 일주일 만에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그곳에서 지금의 친구들을 만났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친구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
아침 8시면 학교 운동장에 모여 농구를 했고, 점심시간에도 농구를 했으며, 수업이 끝난 뒤에도 다시 농구를 했다.
공 하나만 있으면 하루가 모자랄 만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서로의 형편을 묻지 않았다.
누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같이 웃고,
같이 뛰고,
같이 땀 흘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시간이 어느덧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되었다.
각자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만나면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웃을 수 있다.
이번 여행은 그런 다섯 명이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이다.
후쿠오카라는 목적지도 좋지만, 사실 어디를 가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같은 곳을 향하고,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여행이다.
운동장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던 소년들은 이제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여행을 떠나는 나이가 되었다.
30년 전에는 평범했던 하루들이 평생의 우정이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매일의 순간을 더 소중히 바라보게 된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지만, 깊은 인연은 시간을 지나며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소소한 하루를 함께 기억하고, 평범한 일상을 오래 나누며, 서로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인연은 조금씩 깊어진다.
오늘의 안부 하나,
사진 한 장,
사소한 대화 하나도,
언젠가는 우리의 시간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깊은 인연은 특별한 날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평범한 하루를 오래 함께해 주는 사람에게서 천천히 자라나는 것 같다.
2026.7.2
산책을 하던 중,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것은 화려한 꽃도, 이름난 나무도 아닌 바닥 가까이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던 작은 초록 잎 하나.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잎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잎 하나가 온전한 하트 모양이었다.
클로버처럼 여러 장의 하트 모양 잎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잎 자체가 스스로 하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보통 우리는 행복이 거창한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라 기대한다.
특별한 여행이나, 오래 기억될 선물, 삶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주 소박한 풍경인 경우가 많다.
이름도 모르던 작은 잎 하나가 하루를 환하게 만들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나에게는 이 작은 하트가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갈 풍경일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이유가 되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되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간이 되기도 한다.
작은 하트 모양의 잎 하나를 발견했을 뿐인데,
평범했던 산책길은 조금 더 특별한 풍경으로 기억되었다.☘️💚
2026.7월의 시작
은사님 연구실 소파 테이블에는 보호 유리가 덮여 있었다.
정말 오래된 테이블이기도 하고, 항상 그 테이블 위에서 따뜻한 녹차를 내어주시며 연구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유리 아래에는 '인연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짧은 시 한 편이 오래도록 놓여 있었는데, 학생 시절에는 그 글을 계속 읽으면서도 깊은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저 인연은 소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은사님께서는 늘 사람과의 인연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셨다.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셨고, 연구실을 떠난 뒤에도 꾸준히 안부를 물으셨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한 번의 스침으로 끝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셨고, 지금도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이어가고 계신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깨달은 건, 인연은 만나는 순간보다 만들어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일은 우연일 수 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회사에서, 같은 공간에서 마주칠 수도 있고, 같은 시간 속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시선을 머물게 하고, 한 편의 글이 마음을 움직이며, 그렇게 시작된 작은 관심이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만남이 오래 이어지는 것은 우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상대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배려.
말보다 먼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심.
이런 것들이 하나씩 쌓일 때 비로소 인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인연은 특별한 사건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안부를 묻고, 작은 기쁜 일을 함께 기뻐하며, 힘든 날에는 말없이 응원해 주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인연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인 것 같다.
한 번의 만남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의 기록이다.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하고, 자신의 마음을 앞세우기보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한다.
급하게 가까워지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속도가 느려도 방향이 같다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인연은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보다, 그 사람과 어떤 시간을 함께 만들어 왔는가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2026년 6월의 마지막 날.
학교에서 보직을 맡아온 지도 어느덧 8년째
기회가 조금 일찍 찾아와 조교수 시절부터 여러 보직을 맡으며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 오며 느낀점은,
직에 대한 존중과 사람에 대한 존경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직을 맡으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호칭이다.
어제까지는 '교수님'이라 부르던 직원분들이 어느 날부터는 '부원장님', '학부장님' 등 직책을 불러주신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호칭은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자리를 향한 것이지,
반드시 나라는 사람을 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학생이 '교수님'이라고 부를 때와 직원분께서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단어지만 담겨 있는 의미는 다르다.
학생에게 교수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호칭에는 자연스럽게 존경이 담기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직원분께서 사용하는 호칭은 조직 안에서 역할과 책임을 존중하는 의미가 더 크다.
조직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한 예의이자 질서이기 때문이다.
보직을 맡을수록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하게 보인다.
그 호칭은 그 자리에 앉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그런데 종종 이 둘을 혼동할 수 있다.
직책 때문에 받는 존중을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에 대한 존경으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보직을 맡기 전부터 신뢰를 받고 많은 업적으로 존경받던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직책은 이미 쌓아 온 신뢰를 더 넓게 보여 줄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평가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보직을 맡은 이후의 모습을 더 오래 기억한다.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는지.
성과를 누구와 나누는지.
실수는 어떻게 책임지는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런 모습이 하나씩 쌓이면서 사람들은 직책이 아니라 사람을 보기 시작한다.
임기는 언젠가 끝난다.
그러면 직책을 부르는 호칭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때에도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 참 좋았던 분이었다.'
'다시 함께 일하고 싶은 분이었다.'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다.'
라고 이야기해 준다면, 그때 비로소 직책을 넘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보직을 오래 맡을수록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 자주 질문하게 된다.
지금 사람들이 존중하는 것은 직책일까, 아니면 나일까.
이 질문을 잊지 않는 것이 보직자에게 가장 필요한 메타인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조직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는 첫인상, 분위기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이 먼저 다가온다.
그것은 관계를 시작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관계를 이어 가는 이유는 조금씩 달라진다.
배려하는 방식.
말 한마디에 담긴 진심.
힘든 순간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모습.
그런 시간들이 쌓일수록 처음의 인상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눈에 들어왔던 것이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을 유지하게 해준다.
직책이 사람을 증명하지 못하듯,
첫인상 역시 사람을 완성하지는 못한다.
존중은 자리에서 시작될 수 있다.
관심은 첫인상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존경도, 마음도 결국은 사람에게 머문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은 처음의 이유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느끼게 되는 진심어린 마음과 진정성인 것 같다.
2026.6.29
파란 하늘 아래, 작은 온기. 💙💡
밝아서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따뜻함을 전해주는 빛도 있으니까. ☀️
어떤 온기는
세상을 밝히기보다,
그 빛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
2026.6.28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Lewis Hamilton과 Max Verstappen.
최고의 드라이버인 두 사람은 성격도 다르고, 운전 스타일도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둘 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는 타협이 없다는 것이다.
해밀턴은 레이스가 없는 날에도 체력 관리와 데이터 분석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이버가 느낀 감각을 엔지니어에게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느냐도 경기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운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머신을 이해하고 팀과 함께 발전시키는 과정까지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베르스타펜은 공식 레이스가 끝난 뒤에도 시뮬레이터 앞에 앉아 가상 레이스를 이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게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훈련이다.
차량의 거동을 익히고 새로운 세팅을 시험하며 감각을 계속 유지한다.
한 인터뷰에서는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승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 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외부의 시선보다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는 그의 태도는, 평소의 훈련 방식과도 닮아 있다.
좋아하기 때문에 반복하고,
더 잘하고 싶어서 다시 도전하고,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낸다.
전문성은 남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도 같은 기준을 유지하는 태도이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즐길 수 있는 마음이며,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다는 꾸준한 열정인 것 같다.
그래서 최고의 선수들은 경기에서만 최고가 아니다.
연습이 끝난 뒤에도,
시즌이 끝난 뒤에도,
트로피를 들어 올린 뒤에도 멈추지 않는다.
정상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은 평범한 하루를 누구보다 깊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닿고 싶은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다.
오늘도, 닿고 싶은 미래를 향해 꾸준히 한 걸음. ☘️
2026.6.27
손을 바라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움직임도 없고, 변화도 없다. 책상도, 의자도, 우리가 만지는 모든 물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눈에는 모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원자의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원자를 이루는 전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배터리가 있어서도 아니고, 외부에서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아서도 아니다. 양자역학은 전자가 완전히 멈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20세기 초, 물리학자들은 이 사실을 설명하지 못했다.
고전 물리학으로 계산하면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에너지를 잃으며 결국 핵으로 떨어져야 했다. 그렇다면 원자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의 원자는 너무나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처음 설명한 사람이 보어였다. 그는 전자가 아무 곳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에너지 상태에서만 안정적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드브로이는 전자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도 가진다는 사실을 제안했고, 이 생각은 현대 양자역학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더해진다.
전자의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알려고 하면 운동 상태는 불분명해지고, 반대로 운동 상태를 정확히 알수록 위치는 흐려진다. 결국 전자는 완전히 멈춘 채 존재할 수 없다. 절대영도에서도 아주 작은 운동은 계속되는데, 이를 영점에너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직접 볼 수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평균값이다. 수많은 전자들이 서로 다른 방향과 에너지 상태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그 움직임이 평균적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하나의 고요한 물체처럼 보이는 것이다.
순간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안에서는 지금도 전자가 움직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멈춰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는 사실 셀 수 없이 많은 움직임이 평균화되어 나타난 모습일 뿐이다.
그래서 평균값은 자연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자연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순간을 바라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공학도 마찬가지다.
평균값은 시스템을 설계하고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평균값만으로는 실제 시스템의 모든 특성을 설명할 수 없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진짜 거동을 이해할 수 있다.
양자역학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보는 고요함은 평균값의 모습일 뿐, 자연은 언제나 순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회색빛으로 보이는 서해 바다에서도, 찰나의 빛이 만들어내는 푸른 파장을 발견하는 사진가의 눈과도 닮아 있다.
평균값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순간에는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작은 차이를 발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는 순간까지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2026.6.25
어제와 오늘은 꽤 긴 라운드였다.
연구과제 기획 회의와 협력 미팅,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회의
하루가 끝나가는 지금은 마치 장거리 항해를 마치고 넉다운이 되어 있다.
어제와 오늘을 합치면 꽤 긴 라운드를 치른 셈이다.
바쁘더라도 지금의 분주함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새로운 일을 만들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일정표는 빈칸보다 채워진 칸이 더 많아진다.
물론 가끔은 넉다운도 된다.
체력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의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힘인 것 같다.
속도가 조금 느려져도 괜찮고 잠시 숨을 골라도 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고, 아직 보여주고 싶은 모습도 남아 있고, 아직 지켜야 할 약속도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잠시 넉다운.
잠시 바닥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른 뒤, 다시 일어나 다음 라운드를 준비 🥊
지금 당장은 숨이 차더라도, 언젠가 부끄럽지 않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오늘도 다시 한 걸음. ☘️😊
2026.6.23
오랜만에 깊게 잠든 밤.
잠들기 전, 마음의 파도가 고요해진 덕분인지
눈을 뜨니 아직 새벽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푸른 하늘 아래로 주황빛 구름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해가 떠오르기 전인데도
하늘은 이미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고,
해질녘 노을처럼 구름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덕분에 그 풍경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긴다.
하늘에는 아직 밤의 푸른빛이 남아 있었고,
그 위로 따뜻한 빛이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따스한 여운이 깊은 잠을 선물해주었고,
뜻밖의 새벽 풍경까지 보여주었다.
2026.6.21
사람마다 출발선은 다르다.
누군가는 더 많은 기회와 환경 속에서 시작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출발한다. 경제적 여건일 수도 있고, 교육의 기회일 수도 있으며,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경험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현재의 위치를 비교한다.
하지만 위치를 바꾸는 것은 속도이고, 속도를 바꾸는 것은 가속도이다. 같은 시간 동안 누군가는 멀리 나아가고, 누군가는 제자리에 머무른다. 그 차이는 현재의 위치보다 가속도에서 시작된다.
물론 출발선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좋은 환경에서 시작한 사람이 유리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위치가 미래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속도가 충분하다면 현재의 위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오히려 처음부터 좋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보다 더 큰 가속도를 가진 사람이 결국 더 멀리 나아가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꾸준히 가속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다.
위치는 과거의 결과이지만, 가속도는 미래를 바꾸는 힘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가속도를 만들어 줄 원동력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사람마다 답은 다르겠지만,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속에서 그 동력을 얻곤 한다. 세상이 기억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속도를 만드는 계기가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길을 건너는 어르신을 돕는 사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작은 친절을 실천하는 사람.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갈 힘을 주고, 어떤 이야기는 지금보다 더 성실해질 이유를 만들어 준다. 또 어떤 이야기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조금 더 겸손한 자세를 갖게 만든다.
결국 가속도는 하나가 아니다. 성장을 위한 가속도도 있고, 전문성을 위한 가속도도 있으며,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가속도도 있다.
때로는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인연이 오랫동안 남아 새로운 가속도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가속도는 조금씩 우리의 시야와 내면을 변화시킨다. 예전에는 담지 못했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기회를 발견하며, 과거에는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보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의 위치가 아니다.
지금 나에게 어떤 가속도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 가속도를 만들어 줄 원동력을 찾고 있는지다.
2026.6.20
기부를 시작한 지는 꽤 되었지만, 요즘은 주로 돌고도네이션을 통해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다.
돌고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영상 때문이었다. SK가 3세인 이승환 대표의 인터뷰 영상이었는데, 처음에는 그의 배경이 궁금해서 영상을 보게 되었지만 끝까지 보고 난 뒤 기억에 남은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그가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기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영상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기부를 선의의 영역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사람들이 기부를 망설이는 이유를 좋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뢰하기 어려워서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는지 알 수 없다면 선한 마음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의가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돌고가 강조하는 투명성이라는 가치가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후원금의 사용 내역과 전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신뢰를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행복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마침 나는 과거 SK 연구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SK가 오래전부터 행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고객의 행복, 구성원의 행복, 사회의 행복. 우리가 흔히 나비라고 부르는 SK의 로고 역시 공식적으로는 행복날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행복을 단순히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도움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더욱 깊게 다가왔다.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의 도움일 수도 있고, 친구의 응원일 수도 있으며,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배려일 수도 있다. 그렇게 받은 것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면, 그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돌고라는 이름에는 행복과 마음이 사람들 사이를 돌고 흘러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좋은 마음은 혼자 간직할 때보다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더 큰 가치를 만든다. 그리고 그 마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때 선의는 하나의 문화가 된다.
기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도 그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는 거창한 생각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도움과 응원을 조금이나마 다시 흘려보내고 있다는 마음.
그것만으로도 기부를 이어갈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사람의 진심도, 선의도, 신뢰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받은 것을 다시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쌓여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시간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깊이로 남기를 바란다.
2026.6.18
세상에는 커다란 무언가보다 작은 진심에 더 깊이 감동하는 사람이 있다.
값비싼 선물보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편지 한 장을 더 오래 간직하고,
화려한 칭찬보다 서툰 문장으로 적어 내려간 아이의 시 한 편에 마음이 움직인다.
아이들이 건네는 선물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색종이 한 장일 수도 있고,
조금 어설픈 그림 한 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계산도, 조건도, 이해관계도 없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가 담겨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작은 마음의 무게를 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게 지나갈 순간도 오래 기억될 소중한 장면이 된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서툰 표현 속에서도 진심을 발견하고,
작은 손이 건네는 마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것.
그런 사람 곁에서는 아이들이 더 환하게 웃는다.
자신의 마음이 소중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가르치는 순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말과 표정,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주는 작은 선물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2026.6.17
우주는 경이로울 만큼 광대하다.
우리 은하에만 수천억 개의 별이 존재하고, 그 중 상당수는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지적 생명체가 오직 우리만 존재한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외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물음은 오래전부터 페르미 패러독스라는 이름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토록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왜 우주는 이토록 침묵하고 있는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언급되는 것이 드레이크 방정식이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우리 은하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기술 문명의 수를 추정하기 위해 제안된 개념적 모델이다. 별의 생성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행성의 비율, 지적 생명체의 출현 가능성, 그리고 기술 문명이 유지되는 기간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우주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흥미로운 점은 수많은 변수들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문명의 존속 기간이다.
생명이 탄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을 발전시키고, 신호를 보내고, 다른 문명을 인지할 수 있는 상태를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기술 문명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만에 사라진다면 어떨까.
우주 곳곳에서 문명이 끊임없이 탄생하더라도 서로 같은 시대를 살아갈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우주의 침묵을 문명의 부재가 아닌 문명의 수명에서 찾는다. 문명은 존재할 수 있지만, 서로를 발견하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생명의 탄생 확률도, 지적 문명의 출현 가능성도, 외계 문명의 소통 방식도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가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외계 문명의 존재 여부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오래 존속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 또한 다르지 않은지 모른다.
많은 것들은 시작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인상적으로 시작되었는가보다, 얼마나 긴 시간을 견디며 이어질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어쩌면 모든 의미는, 그 시간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6.6.14
세상에는 정말 사람 수 만큼의 언어가 있다.
우리는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걱정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장난으로 호감을 감춘다.
또 어떤 사람은 침묵으로 배려를 전하고,
어떤 사람은 무심한 말 속에 진심을 담아둔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오해는 말이 부족해서 생기기보다,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호의는 부담으로 읽히고,
배려는 거리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반대로 차갑게 들렸던 말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상대의 진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말 자체보다 내가 이해한 의미를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의 표현 방식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
그것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다.
그래서 어떤 마음은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다만 진심이라는 것은 참 신기해서,
시간이 조금 걸릴 뿐 결국은 전해진다.
2026.6.13
평소라면 피했을 역광이었지만,
오늘은 그대로 바라보았다.
하늘은 넓었고,
두 구름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같은 빛이 두 구름의 가장자리를 함께 비추며
림라이트를 만들어주었다.
빛은 거리를 지우지 못했지만,
같은 순간을 만들어주었다.
2026.6.12
오랜만에 장수암에 다녀왔다.
절에 가면 보통 대웅전이나 불상을 먼저 보게 되는데,
장수암에서는 늘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덕분인지,
시선이 자연스럽게 먼 곳으로 향한다.
아래에서 볼 때는 커 보이던 것들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의외로 작다.
그래서인지 높은 곳에 오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요하다고 여겼던 일들도,
오래 붙들고 있던 고민들도
잠시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같은 바다 위에 있듯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보다
무엇을 사이에 두고 있는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2026.6.11
오늘 또 채운을 보았다.
중요한 순간들 근처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순간을 잘 품어두라고 말하는 것 같다. ☁️🌈
2026.6.9 ☘️
살아가다 보면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것을 포기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에 닿지 못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세상에는 노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들도 분명 존재한다.
아무리 진심을 다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아니라,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인지도 모른다.
내려놓음과 체념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체념은 가능성을 믿지 못한 채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고,
내려놓음은 더 멀리 가기 위해 잠시 걸음을 늦추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내려놓음은
닫음의 결과가 아니라 이해의 결과에 가깝다.
모든 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는 없고,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갈 수도 없다.
때로는 끝내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마주하고,
때로는 원하는 방향과 다른 결과를 받아들이며 나아가야한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기억들은 조용히 마음속에 남고,
어떤 감정들은 삶의 결이 되어
시간이 흐르며 삶의 일부가 된다.
지금은 지나가는 일처럼 보이더라도,
그 시간들이 남긴 흔적들은
훗날 또 다른 선택과 만남,
그리고 새로운 계절들 속에서
어느새 삶의 일부로 이어진다.
결국 삶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얻어가는 과정만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들이 남긴 의미를 안고
다음 계절로 걸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2026.6.9 ☘️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눈 앞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처음 만나는 것들 앞에서 망설이기도 하겠지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그 시간들은 결국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바람은 계속 불어올 것이고,
하늘은 언제나 넓게 열려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 헤매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
오늘도 가야 할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갈 것이다. ☁️🌿
언젠가,
그 길 끝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던 시간을
조용히 웃으며 떠올릴 수 있기를. ☁️✨
우리는 보통 관찰을 중립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저 바라보고 기록하는 일, 있는 그대로를 확인하는 과정.
하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관측 행위가 달라진다.
전자 하나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빛이나 다른 입자를 이용해 전자와 상호작용해야 한다. 문제는 바로 그 순간 발생한다. 전자를 더 정확히 보려고 할수록 광자와의 더 강한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그 결과 전자의 상태는 원래보다 크게 교란된다.
양자역학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측정하면 운동량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반대로 운동량을 정밀하게 알수록 위치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진다. 이것이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다.
그래서 양자역학에는 흥미로운 방법이 등장한다. 바로 약한 측정(Weak Measurement)이다.
한 번에 정확한 답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전자를 아주 살짝만 건드린다. 그러면 얻는 정보는 흐릿하다. 개별 측정만 보면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같은 실험을 수없이 반복하면 작은 정보들이 쌓여 전체적인 모습을 점점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 대상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이해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빨리 알고 싶어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래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도 한 번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서둘러 이해하려고 하면 상대는 자연스럽게 설명하려 하기보다 의식하게 되고, 조심하게 되고, 스스로를 정리해서 보여주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상대를 의식한 모습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약한 측정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한 번에 모든 답을 얻으려 하기보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작은 순간들을 오래 바라보는 것. 그렇게 쌓인 수많은 순간들이 결국 한 사람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준다.
양자역학이 알려준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만이 아니다.
어떤 대상은 강하게 들여다볼수록 더 크게 변하고, 어떤 대상은 천천히 바라볼 때 비로소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또한 그렇지 않을까.
약한 측정이 수많은 반복 끝에 대상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듯, 사람의 마음 또한 한 번의 대화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순간들 속에서 비로소 이해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번의 질문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오랜 시간 속에서만 보이는 마음들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확한 답을 빨리 얻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 만큼 조용한 관심을 오래 이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2026.6.6
대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 게시판 한쪽에 붙어 있던 작은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해돋이 공부방 선생님 모집 공고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한 번 연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 수녀님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공부방은 부산 영도 청학동 산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지역으로, 형편이 어려운 가정과 홀로 계신 어르신들, 그리고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었다.
해돋이 공부방은 단순히 공부를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었다.
한 부모 가정, 조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가정, 생활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사람을 배우고,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이었다. 공부보다 먼저 아이들의 하루를 살피고, 정서를 돌보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이 더 중요했던 곳이었다.
나 역시 그곳에서 단순히 공부를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매주 버스를 두 번, 세 번 갈아타며 공부방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적지 않은 거리였지만 당시에는 그 시간이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한 주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졸업 후에는 바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지난해 문득 궁금해졌다.
'그 공부방은 지금도 있을까?'
'그곳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궁금증 하나로 차를 몰고 다시 공부방을 찾았다.
예전처럼 버스를 갈아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돌아 다시 찾아가는 길이었다.
좁은 골목과 익숙한 풍경을 따라 올라가자 해돋이 공부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곳이 가진 의미만큼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 가지 약속을 스스로에게 했다.
올해 겨울에는 꼭 다시 오자.
그리고 크리스마스 다음 날, 다시 공부방을 찾았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전에 오고 싶었지만 연말 일정이 너무 바빠 결국 하루 늦게 찾아가게 되었다. 대신 오래전 받은 마음에 대한 작은 감사의 의미로 기부금 100만 원을 전달했다.
사실 금액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20여 년 전 학생이었던 내가 다시 그곳을 찾아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인연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수녀님께서는 올해 7월에 옛 교사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는 참 신기한 인연들이 있다.
어떤 만남은 짧게 스쳐 지나가고, 어떤 만남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다시 찾아가 보면, 그 시절의 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모든 인연이 멀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해돋이 공부방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찾아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던 곳.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배움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소중한 장소이다.
2026.6.5
이번 주는 보고서와 발표평가 준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교육부 재정지원사업 연차보고서 작성이 한창인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발표평가 일정까지 겹치면서 하루 대부분을 자료 검토와 정리에 할애했다.
연차보고서는 단순히 결과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다.
사업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정신없이 지나갔던 시간들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다시 하나씩 펼쳐진다. 계획했던 내용은 얼마나 추진되었는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아쉬운 부분은 무엇이었는지를 차례로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된다.
발표자료 준비도 마찬가지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한 내용임에도 다시 열어보게 되고, 수정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글자 하나, 문장 순서 하나까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오전에는 대구에서 산자부 발표평가를 마쳤다.
발표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지만, 막상 발표가 시작되자 준비해 온 내용들을 차분히 설명하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일 예정된 연차보고서 최종 업로드다.
아마 오늘도 새벽까지 마지막 점검을 몇 차례 더 이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도 길게 이어졌던 일정들이 하나씩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내일 보고서까지 올리고 나면,
잠시 다른 속도로 하루를 보내며 마음의 자리에 머물러 보려 한다.
2026.6.4
나노재료를 연구하고 있지만,
재료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결국 모든 것은 물리로 수렴하게 된다는 사실을 자주 느낀다.
탄소 구조에 따라 왜 전기전도성이 달라지는지,
빛과 재료가 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겉으로는 화학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보다 근원적인 층 위에서는 물리가 그 현상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물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특히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같은 현대물리.
양자역학은 세계가 우리의 직관처럼 단순하고 결정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입자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처럼 존재하고,
관측이라는 행위조차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미시 세계로 내려갈수록 세상은 상식보다 확률과 가능성의 언어에 가까워진다.
상대성이론 또한 인상적이다.
우리는 시간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흐르는 절대적 기준처럼 느끼지만,
실제 시간은 속도와 중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흐른다.
즉, 시간조차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러한 현대물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 자체가 놀라울 만큼 정교한 균형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개념이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다.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행성이 별과 지나치게 가까워서도, 지나치게 멀어서도 안 된다.
액체 상태의 물이 유지될 수 있는, 말 그대로 ‘절묘한 거리’가 필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골디락스가 공간에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주 먼 미래에는 은하 간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져,
미래의 문명은 우리 은하 외부의 존재를 관측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에게 우주는 오직 하나의 은하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너무 초기의 우주에는 아직 별과 행성 자체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기에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이라는 시간 자체가
우주를 관측할 수 있도록 허락된 하나의 ‘시간적 골디락스 존’인 것이다.
사람 역시 어딘가 비슷하다.
너무 이른 시기에 만나면 서로를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할 수 있고,
너무 늦게 만나면 이미 각자의 시간이 너무 멀리 흘러가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게 되었는가만큼,
서로가 어떤 시간 위에서 마주하게 되었는가 역시 중요한 것 같다.
2026.6.2
6월의 시작 ☘️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
불과 얼마 전 새해의 다짐들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한 해의 절반에 가까운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
5월 역시 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기쁜 일들도 있었고, 마음을 오래 붙잡는 일도 있었다.
6월에는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다잡고,
해야 할 책임과 목표를 끝까지 붙들며,
쉽게 포기하지 않은 채 한 걸음 더 나아가려한다
좋아하는 것은 계속 좋아하면서..
지금의 고민과 무게들 또한 피하지 않은 채 담담히
그리고 더 깊고 넓은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
26.5월의 끝자락에서
마음에도 모양이 있다면
아마 단단한 형태는 아닐 것이다.
어떤 마음은
물결처럼 천천히 형태를 바꾸며 머물고,
어떤 마음은
희미해진 줄 알았는데도 문득 다시 선명해진다.
또 어떤 마음은
말로 꺼내는 순간 너무 또렷해져서,
차라리 조용히 접어두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마음은 가끔
혼자 조용히 흔적들을 붙잡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마음들은
끝난 뒤에야 천천히 자신의 모양을 드러낸다.
기다림을 지나며 조금 길어지기도 하고,
시간을 지나며 조금 무뎌지기도 한다.
그리고 쉽게 설명되지 않는 마음일수록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인지도 모른다.
2026.5.29
우리는 자주 말한다.
‘다음에 한잔하자.’
‘언제 밥 한번 먹자.’
‘다음에 시간 맞춰보자.’
그 말들은 대부분 진심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다음’은 생각보다 잘 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뀌고,
사람의 위치도, 마음의 온도도 달라진다.
그래서 관계는 거창한 사건보다
‘다음에 보자’가 반복되며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다음에’인지도 모른다.
운동도, 공부도, 꿈도 비슷하다.
‘오늘만 쉬고 내일부터.’
‘이번 한 번만.’
그 순간은 편하지만, 사람은 그런 한 번들로 변한다.
한 번 미루고,
또 한 번 타협하다 보면
결국 그 선택이 습관이 되고
삶의 방향이 된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가능하면 미루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보고 싶은 사람은 지금 보고,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 전하고,
시작해야 하는 일은 지금 시작하는 것.
다음에는 상황이 변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다음은 잘 오지 않는다.
어쩌면 인생은
‘언젠가’를 기대하다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붙잡은 순간들로 남는 건지도 모른다.
2026.5.28
“그와 나의 시간은 그 농도가 너무나도 달랐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대사.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무게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단순한 노력보다도,
같은 시간을 얼마나 깊게 살아내고 있는가에 더 가까운 말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하루를 흘려보내고,
누군가는 같은 하루 안에서도
수많은 감정과 고민, 기억들을 남긴다.
그래서 어떤 시간은
몇 달이 지나도 희미하고,
어떤 순간은
짧았는데도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정말 열심히 살아낸 시기의 시간은
늘 밀도가 짙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몰입했던 순간들,
지치면서도 계속 앞으로 걸어가던 시간들.
그래서 학생들과 면담을 할 때에도
가끔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단순히 바쁘게 살기보다,
자신만의 시간의 농도를 다르게 만들어보라고.
익숙한 하루를 무심히 반복하기보다
무언가에 깊게 몰입해보고,
스스로 치열했던 순간들을 남겨보라고.
그리고 사람도 비슷한 것 같다.
오래 함께했다고 해서
반드시 진하게 남는 건 아니고,
짧게 스쳐 지나갔어도
시간의 농도를 바꿔버리는 사람이 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함께했던 시간의 길이와 상관없이
마음속 한 장면에 오래 머문다.
결국 사람 사이의 시간의 농도라는 것도
얼마나 오래였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 안에
얼마나 깊게 서로 스며들었는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2026.5.25
카메라는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게 해준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단순히 무엇을 담을까만 결정하기보다
어디를 밝게 남길지,
어디를 흐리게 둘지,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어느 부분을 배경으로 흘려보낼지를 함께 결정하게 된다.
조리개를 열어 배경을 흐리면
사람의 눈은 자연스럽게 선명한 피사체로 향하고,
광각은 공간의 분위기를 먼저 보여주며,
망원은 복잡한 배경을 지우며 감정을 압축한다.
그래서 빛의 방향 하나만 바뀌어도
사람은 사진 속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읽게 된다.
결국 사진은
이 장면에서 나는 이것을 바라봤다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사진은
정보가 많은 사진이라기보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머무는 사진인 것 같다.
재미있는 건
사람의 기억도 어쩌면 비슷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군가와의 시간을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특정 표정, 특정 말투, 특정 분위기 같은 것만
유난히 선명하게 남는다.
마치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듯,
마음도 결국
스스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장면 위에
조용히 포커스를 남겨두는 것 같다.
2026.5.24
시티팝은 분명 1980년대 음악인데,
그 시대 사람들이 상상했던 미래 도시의 공기가 느껴진다.
반짝이는 네온사인,
늦은 밤의 고속도로,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불빛들,
그리고 세련되지만 어딘가 공허한 분위기.
재미있는 건
시티팝은 밝고 경쾌한 리듬 속에도
묘한 쓸쓸함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신나는 음악인데,
듣다 보면
늦여름 밤공기나
다 지나간 장면들이 함께 떠오른다.
그래서 기분 좋은 날에도 잘 어울리고,
괜히 마음이 잔잔한 날에도 자연스럽게 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시티팝을 듣는 순간
도시의 밤 풍경 자체가 달라 보인다.
야간드라이브를 하며 들으면
평범한 거리도 영화 장면처럼 느껴지고,
차창 밖 불빛이나 골목의 공기마저
조금 더 감성적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음악이 끝난 뒤에도,
마음 한쪽에는 한동안
네온빛 같은 여운이 조용히 남아 있다.
2026.5.24
보통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완벽한 진공 상태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그 진공조차 완전히 고요하지 않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입자와 반입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에너지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보이지 않는 작은 진동들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양자요동 현상이다
즉, 양자역학에서의 진공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과 에너지의 흔적들이
끝없이 출렁이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결국 아주 작은 세계에서는
우리가 ‘완전히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공간조차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겉보기에는 고요하고 변함없어 보이는 순간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주 작은 변화와 힘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26.5.23
양자역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세상을 ‘확률’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면
미래 결과도 결정될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을 던질 때
속도와 방향, 공기 저항 같은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안다면
어디에 떨어질지도 계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고전물리학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해왔다.
하지만 아주 작은 세계에서는
이 직관이 완전히 달라진다.
전자 하나의 위치를 측정하려고 하면
그 전자는 특정 지점에 존재한다기보다,
여러 가능성의 형태로 퍼져 존재한다.
그리고 관측하는 순간
그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의 결과만 나타난다.
즉 양자역학은 ‘무엇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확률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에 가깝다.
흥미로운 건
이 확률이 단순히 인간이 정보를 부족하게 알고 있어서 생기는 불확실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정보를 완벽히 알지 못해서 확률이 등장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아주 근본적인 수준에서 세상이 확률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며
이 해석에 강한 의문을 가졌다.
그럼에도 수많은 실험들은
양자역학의 확률적 예측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들도 완전히 정해진 직선이라기보다,
수많은 가능성들이 겹쳐진 상태 속에서
작은 선택들과 우연들이 모여
조금씩 하나의 현실로 결정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2026.5.22
공학이라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 해결의 학문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도 그렇다.
배터리를 오래 쓰게 만들고 싶다면
배터리를 크게 넣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무거워지고 두꺼워진다.
반대로 얇고 가볍게 만들면
배터리 용량과 발열 문제가 따라온다.
카메라 성능을 높이면 공간이 부족해지고,
성능을 높이면 발열이 커지고,
발열을 잡기 위해 냉각 구조를 넣으면
또 무게와 비용이 늘어난다.
결국 공학은
무언가 하나를 극단적으로 좋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조건들 사이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균형 잡힌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작은 기기 하나에도
수많은 계산과 설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고민들이 숨어 있다.
사람의 마음도 조금 비슷한 것 같다.
서로의 속도와 온도,
지켜야 하는 마음들까지 함께 생각하게 되면
단순히 마음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순간들도 생긴다.
그래도 그런 과정들 속에서
서로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방향을 천천히 찾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서로의 마음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오래 머물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 같다.
2026.5.22
닿을 수만 있다면,
조금 느려도 괜찮고
멀리 돌아가도 괜찮다.
보이지 않는 하루의 순간들로
조용히 마음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그 끝에서
세잎클로버 꽃말처럼
작은 행복으로
문득 닿아 있을지도 모르니. 🍀
2026.5.20
바쁜 하루 속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것 같다.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계속 무언가를 해내다 보면
마음까지 천천히 들여다볼 여유는 잘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를 돌고 돌아
익숙한 퇴근길에 들어서면,
비로소 하루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그렇게 바삐 흘러간 오늘 하루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오늘 하루의 속도와는 관계없이
온종일 조용히 맴돌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2026.5.19
연구를 하다 보면
어려운 주제와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멈추지도,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않은 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며
천천히 답을 찾아가게 된다.
어렵다는 건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금 더 천천히 다가가야 하는 순간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를 계산하기보다,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계산하기보다,
한 번쯤은 끝까지 가보고 싶은 방향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다 보면,
결국은 다다르게 되더라.
그래서인지,
쉽지 않은 방향 앞에서도
그 방향으로 조금 더 천천히 가보게 된다.
2026.5.18
실험이 실패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재료공학이라는 분야는
늘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구조,
새로운 컨셉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시간의 반복에 가깝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왜 그런지 다시 들여다보고,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꿔보고,
새로운 생각들을 하나씩 더해가며
다시 좁혀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실패 자체보다 더 두려운 건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다.
살면서 몇 번 그런 시간들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결국은
아주 작은 실마리 하나가 다시 움직이게 했다.
돌이켜보면 사람의 마음도 어쩌면 비슷한 것 같다.
헤매는 시간이 있어도,
아무 방향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도,
결국 다시 나아가게 만드는 건
거창한 답이 아니라
문득 마음에 들어온 작은 이유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2026.5.17
어릴 적 역사서를 참 좋아했다.
위인전이나 전쟁사, 한 시대를 뒤흔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꼭 특별한 재능보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어떤 ‘큰 마음’을 가진 사람들 같았다.
그 시절의 나는 막연하지만 아주 커다란 꿈을 꾸곤 했다.
누군가는 허황되다고 말할 만큼 큰 꿈들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라면서 현실을 배운다.
이상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책 속의 영웅들처럼 살기엔 현실이 꽤 바쁘고 치열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꿈은 조금씩 현실의 언어로 바뀌어 갔다.
해야 할 일들이 생겼고,
지켜야 할 자리들이 생겼고,
책임이 늘어날수록 꿈은 점점 구체적이 되었지만
어쩌면 동시에 조금씩 작아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을 지나
어느 정도는 바라던 방향을 향해 걸어오게 되었다.
돌아보면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꿈꾸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는
아주 오래전 잊고 지냈던 그 꿈이 남아 있다.
'조금 더 멀리 가보고 싶다.'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한동안 현실 속에서만 움직이며 살다 보면
꿈이라는 것도 점점 현재에 맞춰 조용해지는데,
이상하게 어떤 순간들은
오래전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던 무언가를 다시 흔들어 놓는다.
어쩌면 큰 꿈이라는 건
거창한 성공이나 결과보다도,
다시 그런 마음을 품게 되는 순간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생에는
그 순간을 다시 만들어 주는 인연이 있다.
2026.5.16
목포를 걸으며 가장 오래 멈춰 섰던 곳 중 하나.
영화 1987의 장면으로 남아있는 연희네 슈퍼.
그날의 햇빛도, 오래된 간판도,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골목의 분위기도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었고,
그 순간을 이렇게 남겨두었었다.
그리고 몇일 뒤,
사진소통 계정에서 익숙한 사진 하나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같은 처마 아래,
비슷한 높이의 시선과 비슷한 거리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남겼을 장면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진은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아마 어떤 풍경들은
사진보다 먼저 마음의 방향이 닮아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2026.5.15
어쩌면 인연의 소중함은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가보다,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스쳐 지나긴다.
짧은 인사로 끝나는 인연도 있고,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마음 깊이 남지 않는 인연도 있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한 사람의 말과 태도만으로도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를 특별히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의 방향과 타인을 대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자신의 기준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속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있는지,
나의 말과 행동은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지 조용히 생각하게 된다.
좋은 사람은 늘 큰 소리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사소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 하나, 진심이 담긴 시선 같은 것들로
오래도록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그런 울림은 영원히 마음속에 머물게 된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래도록 좋은 마음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 하나를 얻은 기분과 같다.🌈☁️
2026.5.14
2025.4.23
Sony A7CR
85mm F1.4 GM2
광주 전일빌딩
민주화의 성지 광주
2025.4.22
이한열, 박종철 열사
남영동 대공분실
2025.4.11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25.4.4
다시 찾은 파란 하늘
긴 겨울이 지나 다시 찾은 봄
2025.4.4
Palantir의 핵심
데이터에는 고유한 의미가 없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터 생태계 사용자에 의해 데이터에 의미가 부여된다
즉, 문제 해결이라는 목적에 따라(사용자에 의해) 데이터에 의미가 부여된다
2025.1.5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 - ‘mac내부 회로를 예술작품처럼 보이게 하고 PCB에 서명하라’
팀쿡 - ‘애플이 진정 바라는 것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애플을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며 사람들의 삶을 매우 풍요롭게 만드는 것’
이를 너무도 잘 보여주는 영상
2024.12.26
15년이 지난 현재시점에서 보는 인터뷰
젊은 친구들이 보았으면 하는 인터뷰
2024.12.25
2015년 일론, 젠슨황 대화
자율주행에 관한 이야기
9년이 지난 지금의 테슬라와 엔비디아 상황을 보며 9년 전 인터뷰를 보는 재미
(올해 초 테슬라는 엔비디아 H100 10만개 구매, 일론은 구매한 10만개를 테슬라가 아닌 X와 xAI로 돌려 그록에 주력 중)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가 궁금
2016년 일론, 샘 알트만 인터뷰
에너지, 인공지능, 유전공학..
챗 gpt의 아버지로써가 아닌 투자가로써의 샘 알트만의 생각
국가의 권력은
D-Day
2024.12.14 1p.m.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영화 1987 중 한 장면
보도지침에 저항
요즘들어 더 와닿는 영상
2024.12.14
1000명의 합주 챌린지
그들 모두가 뮤지션이라 할 수 있음
아름다운 영상, 아름다운 하모니
볼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한번쯤은 추억 깊이 남는 도전을 해보자
2024.11.29
가장 즐겨보는 채널 중 하나
기술에 대해 좀 더 깊게 들여다 보는 시선
새로운 관점으로 기술을 이해하게 해주는 채널
또한 너무나 깔끔한 PPT
그리고 발표의 정석을 보여주는 진행자
발표는 이렇게 해야함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채널
2024.11.29
농구만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함께한 애니
강백호가 아닌 포인트 가드 송태섭의 시점. 송태섭의 서사
포인트 가드가 코트 반대편에서 상대의 압박을 뚫고 우리 팀의 공격 코트까지 볼을 운반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는..
송태섭은 자신보다 훨씬 큰 이명헌의 신체적인 압박을 경기 내내 달고 다니며, 볼을 가장 많이 만지고 패스를 통해 팀원들의 플레이를 살리는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함
지도교수의 역할도 포인트 가드가 아닐런지?
2024.11.29
인터스텔라 명장면 모음
한스 짐머의 OST (중학교 시절 영화 the rock을 통해 처음 접한 음악감독)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중력에 의해 시간이 느려지는 일반상대성이론
블랙홀의 최초 시각화
5차원 테서렉트 시각화
2024.11.29
엘러건트 유니버스 - 2002년 실습 하선 후 접한 자연과학 책. 고등학교 문과 출신인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책.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원자구조가 거짓이었음을 알게 해준 책. 양자역학을 처음 알게 해준 책. 연구자의 길로 인도해준 책. 생애 최고로 꼽는 책.
코스모스오디세이 - 2018년 오랜만에 발견한 너무 괜찮은 자연과학 책. 16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모르는 거 투성이임을 다시한번 알게 해준 책.
2024.11.29
2009년 경 앨 고어 전 부통령의 불편한 진실 TED 강의때 쓰인 PPT자료
정확히 말하면 PPT가 아닌 Mac의 Keynote 앱으로 만든 자료
하나의 슬라이드 내에서 자연스럽게 그래프가 그려지는 효과를 보고 Keynote 앱에 큰 관심을 갖게 됨
2010 유학시작 때 큰 모험을 함
그 모험은 바로..PC를 윈도우가 아닌 맥북에어로 바꾼 것..
(작업용 운영체제를 바꾼다는 건 대단한 모험임.. 더욱이 박사 시작 때..)
내가 맥을 사용하게 된 계기
2024.11.26
스컹크웍스팀이 개발한 기체 중 하나
학부생 시절 티타늄 소재에 대해 알게 해준 기체
지상 26km 높이를 마하 3(약 3704km/h) 이상의 속도로 순항 - 지대공 미사일 도달 X, 전투기 추격 X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는 점 : 초고속 비행으로 기체가 과열이 되다보니 육상에서는 기체 이음매 부분이 헐렁하게 설계 (과열로 팡창시 이음부가 딱 들어 맞게 설계)
https://youtu.be/HWGmBaxLNlw?si=wLAIa8dJngc5sHRX
2024.11.26
록히드 마틴 내의 개발부서
관료주의에 얽매이지 않게 자율성을 부여 받아 고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선행 연구를 진행하는 부서
좌측 상단 : 1998년에 출판된 책, 2002년 번역본으로 처음 접해봄. 엔지니어가 무엇인지, 공학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줌
가운데 상단 : 2022년에 재판된 책
우측 상단 : 스컹크 웍스팀 이념
https://www.lgbr.co.kr/uploadFiles/ko/pdf/man/LGBI1250-24_20130520092644.pdf
2024.11.26
박사과정 때 힐링을 해주었던 채널
팀을 기획한 기획자님도, 아티스트들도 너무 멋진 friendz 멤버들
맥이 이렇게 쓰이는구나를 알게 한 채널
2024.11.25
물리학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떠나, 왜라는 질문의 무게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영상
2024.11.24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115개 챕터, 1300페이지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 링크에서 무료로 제공됨
2024.11.24
약 10년전 스토리..
홍익대학교에서 디지털미디어디자인을 전공
평소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아이콘을 즐겨 만들었고 자신의 디자인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얻기 위하여 해외 디자인 사이트 '비핸스(Behance)'에 공개
다양한 교통편과 세계의 명소들을 심플한 아이콘으로 디자인한 여행 관련 아이콘은 공개 후 수많은 댓글이 달리며 큰 관심을 받음. 그 중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전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 총장 '존 마에다(John Maeda)'가 그의 아이콘 디자인을 트위터 상에서 리트윗하며 소개글을 올려 더욱 주목 받음
이러한 관심과 호응으로 이슈화 되던 때에, 김윤재 씨의 사이트에 기재된 이메일 주소로 애플 본사로 부터 연락이 옴. 몇 번의 이메일 교환 후 애플은 그에게 인터뷰 요청과 함께 왕복 비행기표를 보냄.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그는 애플, 에어비앤비를 비롯해 우연히 연결된 옐프(Yelp)와도 인터뷰를 가졌고 취직 제의를 받은 애플과 옐프 중에서 애플을 최종 선택
김윤재씨는 유학, 어학연수 경험이 없었다하며, 대기업 인턴을 했지만 정규 채용에는 실패했다 함. 그러나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이어갔고, 이를 알아본 애플은 그를 채용
지금은 아이콘 또는 인포그래픽이 일상화되어 모두에게 익숙해져 있지만, 10년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표현방법은 매우 혁신적 표현임. 또한 SNS를 통해(지금은 Linkedin이라는 플랫폼이 있지만) 스카우트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로 남음
2024.11.24
점과 선, 텍스트로만 표현한 영상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표현한 영상
애플이 만든 수 많은 영상 중,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영상
모션그래픽 기법
2024.11.24
유타 대학교의 Matthew Might교수가 표현한 PH.D 정의
이 그림을 본지도 벌써 12년이 넘은 듯..
해가 갈수록 공감된다.
202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