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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는 제1회, 제2회 BoB에선 전혀 보지 못했다. 대거 돔에 퍼지는 동요 속에서 시논은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키리토가 F블록 결승까지 올라올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상대와 무슨 수로 싸우면 좋을까.

키리토의 시합을 본 이래, 자신의 준결승이 시작된 후로도 시논은 계속 머리 한구석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키리토라는 플레이어 본인에 관해서도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함께 쇼핑을 다닐 때의 호기심으로 넘쳐나는 순수한 웃음.

자신이 남자란 것을 밝힌 후의 사람을 놀리듯 천연덕스러운 태도. 1회전 후 시논의 손에 매달려 떨던 연약함. 그리고──푸른 광검으로 가차 없이 적을 베는 무시무시한 모습.

대체 어느 것이 진짜《키리토》일까.

그리고 왜 자신은 이렇게도 그를 계속 생각하는 것일까.

이유 없는 조바심을 느끼며, 고배율 스코프에 오른쪽 눈을 댄 채 시논이 살짝 입술을 깨문 그 순간──.

1킬로미터 떨어진 십자로를 포착하고 있던 시야의 왼쪽 끝, 깎아지른 절벽 그림자에서 무언가 커다란 그림자가 고속으로 뛰어나왔다.

시논은 반쯤 자동으로 헤카테의 조준을 미세조정했다. 바람은 왼쪽에서 2.5미터. 습도는 5퍼센트. 가늘게 빛나는 조준선의 중심점을 그림자에서 살짝 위로 옮겨 불릿 서클이 처음으로 수축한 순간에 맞춰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굉음.

스코프의 시야 속에서 공기에 아지랑이 같은 터널을 뚫으며 50구경탄이 날아간다. 왼쪽 아래를 향해 완만한 나선곡선을 그리는 그 궤도가 그림자의 윗부분에 명중했다.

".....아자."

중얼거리며 시논은 헤카테의 볼트 핸들을 당겼다. 탄피가 배출되고 다음 탄환이 약실에 들어갔다.

소리 없이 흩어지는 그림자의 정체는 대전 상대인 스팅어가 아니라 직경 1미터 남짓한 그냥 바위덩어리였다.

다음 순간, 바위가 굴러온 곳과 같은 장소에서 더 커다란 실뤳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쳐나왔다.

사륜구동 장비차량《HMMWV》. 통칭 험비. 차량 계열 아이템은 플레이어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스테이지 어딘가에 보너스 요소로 감추어져 있으며, 먼저 얻은 사람이 차지해 올라탈 수 있다. 신품일 텐데도 지금 눈앞에 나타난 차량은 프론트 범퍼가 살짝 우그러들어 있다는 것을 시논은 금방 알아차렸다. 다시 말해 처음에 굴러 나온 바위는 저 차가 의도적으로 들이받아 밀어낸 것이다.

운전석에 앉아 있을 스팅어는 시논의 주무장인 헤카테 Ⅱ가 연사할 수 없는 볼트 액션 라이플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자신도 지나가야만 하는 교차로를 시논이 노리고 있으리라는 것도.

그러므로 우선 험비로 교차로에 바위를 날려 그것을 저격케하고, 다음 탄환의 준비를 갖추는 사이에 교차로를 통과하려는 작전을 세운 것이다.

작전은 좋았다. 사실 시논이 핸들을 당기는 사이에 차량은 이미 교차로 중앙까지 도달했다. 쏜다 해도 앞으로 한 발뿐, 게다가 신중하게 조준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시논은 당황하지 않았다.

스팅어는 시논에게서 스나이퍼 최대의 무기인《불릿 라인 없는 첫 한 발》을 빼앗는 대신 귀중한 정보를 노출하고 말았다. 시논의 시야에는 첫 번째 탄환의 그런 탄도의 곡선이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두 번째 탄환도 완전히 똑같은 궤도로 날아간다. 그것을 이용하면 첫 번째 탄환보다도 훨씬 높은 정밀도로 저격을 마칠 수 있다.

시논은 살짝 총신을 움직여 조용히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 째 굉금.

뿜어져 나간 탄환은 빨려 들어가듯 험비 측면의 조그만 창문에 명중하고 두꺼운 방탄유리를 어이없이 꿰뚫었다.

그 직후 차량은 크게 사행하더니 갓길의 바위를 올라타며 전복되었다. 그 너머의 절벽을 정면으로 들이받고는 보닛에서 검붉은 불꽃을 뿜었다.

"......아예 차에서 내려 뛰었으면 불릿 라인을 보고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중얼거리면서도 세 번째 탄환을 장전했다. 오른쪽 눈은 스코프에서 떼지 않은 채 불타는 험비를 십자조준선으로 계속 포착했다. 몇 초를 기다려도 스팅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운전석에서 즉사했겠지만, 그래도 사격태세를 풀지안항ㅆ다.

시논이 관목 밑에서 기어 나와 일어선 것은 황혼색 하늘에 Congratulation 글자가 새겨진 후였다.

시합 시간 19분 15초. 준결승 돌파.

이로써 예정대로 내일 있을 BoB 분선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시논은 승리의 환성은커녕 웃음 한 번 지으려 하지 않았다. 의식은 이미 이 다음에 시작될 F블록 예선 결승으로 날아가 있었다.

수수께끼의 방문자 키리토가 시논보다도 짧은 시간 내에 준결승을 돌파했으리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대전 상대는 양손에 서브머신건을 장비한 근거리전 타입이다.

제아무리 요란하게 탄환을 흩뿌린다 해도 그 광검사에게 코앞까지 접근을 허용한다면 HP를 깍아내기도 전에 필살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맞고 말 것이다. 왜냐면 크리토는《예측 라인을 예측하는》가공할 반응속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면 전투로 그를 압도하려면 그야말로 M134 미니건이라도 들고 와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논은 두 손에 헤카테를 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다음 전장으로 전송될 순간만을 기다렸다.

면 초 후, 대기 돔으로 귀환하지 않은 채 시논은 결승전 준비 공간으로 날아갔다. 육각형 패널 위에 떠 있는 윈도우에 표시 된 대전 상대의 이름은 예상대로【Kirito】였다.

다음 전송을 거쳐 눈을 떠보니, 한없이 일직선으로 뻗은 고가도로와 그 끝에 지금 막 가라앉으려 하는 핏빛 석양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륙간 고속도로》스테이지이다. 이제까지 나왔던 전장과 마찬가지로 넓이는 가로세로 1킬로미터지만,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는 폭 100미터의 하이웨이에서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 하므로 실제로는 그저 가늘고 긴 단순한 맵이다.

하지만 노상에는 무수한 승용차며 수송차, 추락한 헬리콥터등이 유기되어 있으며, 또한 여기저기 부서진 도로가 비스듬히 튀어나오기도 해 끝에서 끝까지 한눈에 보는 것은 불가능 했다.

시논은 슬쩍 뒤를 돌아보고 자신이 맵 거의 동쪽 끝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말해 대전 상대인 키리토는 서쪽으로 뻗은 고가도로의, 적어도 500미터는 떨어진 어딘가에 출현했을 것이다.

다음엔 주위를 둘러보고, 곧장 뛰었다. 그녀의 목표는 오른쪽 전방에 놓여 있는 대형 2층 관광버스였다. 반쯤 열린 뒷문을 통해 내부로 뛰어들어 2층 자리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중앙 바닥면에 몸을 던지듯 배를 깔고 엎드려, 어께에서 내린 헤카테 Ⅱ의 양각대를 펼친다. 버스 전면애 파노라마 윈도우에 총구를 놓고 설치해 엎드려쏴 자세를 취한 후, 스코프 앞뒤의 플립업 커버를 열었다.

태양은 정면에 있다. 그러므로 실외 어딘가에 숨어 총을 겨눈다 해도 스코프의 렌즈에 반사된 햇빛이 적에게 보일 우려가 있다. 위치가 드러난 스나이퍼만큼 제압하기 쉬운 표적도 없다.

하지만 이 버스 안이라면 미러 코팅이 된 유리창이 스코프의 반사광을 막아줄 것이다. 게다가 높기까지 하므로 노상의 엄폐물 대부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아마 키리토는 엄폐물에서 엄폐물로 빠르게 이동하며 다가올 것이다. 그에게 불릿 라인이 있는 저격이 명중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기회는 그가 이쪽의 위치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쏘는 단 하 발에 달려 있다.

──맞히겠어. 반드시.

강하게 다짐하며 시논은 오른쪽 눈을 스코프에 댔다.

왜 이렇게까지 이기고 싶은지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분명 시논은 자신의 성별을 감추고 접근했던 키리토에게 길을 안내하고 장비 구매에 도움을 주기도했다. 게다가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겨우 그 정도 일이다. 아이템을 손해 입은 것도 아니거니와, 기껏해야 아바타의 속옷 차람을 보였을 뿐이다. 글록켄 노상에서 만난 후 대기 돔에서 헤어질 때까지 수십 분을 통째로 잊어버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논은 이제까지 GGO에서 경험했던 온갖 전투가 퇴색될 정도로 강하게, 키리토에게 이겼으면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그 무시무시한 미니건 유저 베히모스보다도, 오늘 이 세계에 처음 온, 게다가 거너도 아닌 광검사 같은 사도(邪道)를 상대로 왜 이렇게나............

............아니.

아니. 어쩌면 그 이유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그 녀석을, 마음속 한구석으로는《적》이라고 단언하지 못하기 있기 떄문에. 딱딱한 자리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던 그 녀석의 차가운 손을 쥐고 말았을 때,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가슴에 태어난 것 같았기 때문에.

동정? 아니다.

연민? 아니다.

공감......? 절대로 아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를 괴롭히는 어둠을 함께 짊어져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그것을 기대했다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배신당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강함뿐이다. 그렇게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키리토가 품은 사정 따위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저 아바타를 무감정한 탄환으로 날려버리고,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쓰러뜨렸던 무수한 타깃들 속에 묻어버린다. 그리고 잊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은 그것이 전부.

굳게 굳게 그렇게 마음을 정한 후, 시논은 스코프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홍빛 저녁놀을 등진 그 실루엣이 검게 떠오른 순간, 냉철한 스나이퍼의 자제심도 한순간 잊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니......"

미풍에 흔들리는 검은 장방. 야간용 위장 무늬 전투복에 싸인 가녀린 사지. 벨트에 늘어뜨린 광검 자루. 틀림없는 키리토였다.

하지만 그는 달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