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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냉철하게, 사치가 죽어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약 10초, 그것이 플레이어의 HP가 0이 되고 아바타가 박살난 후, 너브기어가 마이크로웨이브를 발생시켜 플레이어의 뇌를 파괴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상상하고 말았다. 사치의 몸이 사라지고, 그로부터 겨우 10초 후, 그녀의 너브기어가 주인을 불태워 죽이는 순간을. 사치는 괴로워했을까? 10초의 유예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에 대한 수도 없는 저주……?

「으아아……아아아아아……!」

내 입에서 짐승 같은 외침이 새어나왔다.

윈도우 위에 떠오른 환혼의 성정석을 움켜쥐고, 나는 그것을 있는 힘껏 눈 위에 내동댕이쳤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절규하며 부츠로 몇 번이고 짓밟았다. 그러나 보석은 무심하게 빛을 발할 뿐, 깨지거나 금이 갈 기색조차 없었다. 온몸의 힘을 쥐어짜내 포효하며, 나는 지면에 두 손을 찔러넣고는 손가락으로 눈을 파헤치고, 마침내는 그 위를 굴러다니며 울부짖었다.

무의미했다.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사치가 겁에 질려 괴로워하던 끝에 죽었다는 것, 내가 크리스마스 보스에게 도전했던 것, 아니 이 세계가 태어나고 그곳에 1만 명의 인간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것만이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나는 완전히 깨달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을까. 아무리 외치고 울부짖어도 눈물은 흘러나올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내 아바타에는 그런 기능 따위 없었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천천히 일어나 눈에 쳐박힌 성정석을 주워들고 원래 에리어로 돌아가는 워프 포인트로 향했다.

숲속에 남겨져 있던 것은 클라인과 풍림화산 멤버들뿐이었다. 성룡연합의 모습은 없었다. 클라인네 멤버들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은 것을 기계적으로 확인하며, 나는 지면에 주저앉은 카타나사에게 다가갔다.

클라인 한 사람만이 내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아마도 성룡연합 리더와 일대일 듀얼로 담판을 지은 모양이었으나, 내 가슴속에는 그 어떤 감회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가서는 나를 올려다본 카타나 사용자는 잠시 안도한 것처럼 표정을 누그러뜨렸으나, 내 얼굴에서 어떤 표정을 읽어냈는지 금세 입가를 굳혔다.

「……키리토……」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이는 클라인의 무릎 위에 나는 성정석을 던졌다.

「그게 소생 아이템이다. 과거에 죽은 녀석에겐 쓸 수 없었어. 다음에 네녀석 눈앞에서 죽은 녀석에게 써줘」

그 말만을 남기고 출구로 향하려는 내 코트를 클라인이 붙잡았다.

「키리토……키리토여……」

수염이 덥수룩한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나는 의외의 것을 보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키리토……넌……넌 살아남아라……만약 너 이외의 전원이 죽어도, 너만은 최후까지 살아남아……」

울며 몇 번이나 살아남으라고 되풀이하는 클라인의 손에서 나는 이만 코트 자락을 빼냈다.

「그럼」

그 말만을 남기고, 나는 방황의 숲을 나서기 위해 발을 옮겼다.

◆ ◆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49층 여관의 내 방에 돌아와 있었다.

시각은 오전 3시를 넘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나는 생각했다. 최근 한 달간 나를 살려두고 있었던 소생 아이템은, 실존하긴 했으나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나는 경험치에 굶주린 어리석은 놈이라 조롱받고, 최후에는 귀중한 우정마저도 잃고 말았다.

한동안 생각했으나, 나는 아침이 되면 이 플로어의 보스와 싸우러 가기로 결심했다. 만약 그놈에게 이기면 그 다음엔 발을 멈추지 않고 50층의 보스와 싸운다. 그 다음은 51층의 보스와 싸운다.

어리석은 광대에게 어울리는 말로는 이제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한번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침을 기다렸다.

창문에서 밀려들어오는 달빛이 조금씩 위치를 바꿔가고, 마침내 엷어지더니 회색 서광이 이를 대신했다. 몇 시간 동안 잠을 안 잤는지 이젠 계산도 되지 않았으나, 최악의 밤 다음에 온 최후의 아침치고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벽의 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의자에서 일어나려던 그 순간, 귀에 익은 알람소리가 내 귀에 울렸다.

방을 돌아봤지만 음원으로 여겨지는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겨우겨우 시야 한구석에 메인 윈도우를 열 것을 재촉하는 보라색 마커가 반짝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손가락을 휘둘렀다.

빛나고 있던 것은 아이템 윈도우 속의, 사치와 사용하던 공통 탭이었다. 그곳에 무언가 시한 기동형 아이템이 수납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얼마 안 되는 일람을 스크롤해 발견한 것은, 타이머 기동형 메세지 녹음 크리스탈이었다.

나는 이를 꺼내들고 윈도우를 닫은 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깜빡이는 크리스탈을 클릭하자, 그리운 사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키리토.

네가 이걸 듣고 있을 때,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만약 살아있다면, 크리스마스 전 날에 이 크리스탈을 꺼내서, 자신의 입으로 말할 생각이기 때문이야.

엣또……. 최후로, 어째서 이런 메세지를 녹음했는지, 설명할게.

나는, 아마, 별로 오래 살아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물론, 키리토를 포함한 흑묘단의 힘이 부족하다거나,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야. 키리토는 굉장히 강하고, 다른 모두도 점점 강해지고 있는걸.

있지,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최근,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다른 길드의 친구가 죽어버렸어. 나와 같이 겁이 많아서, 완전 안전한 곳에서만 사냥하던 아이였는데, 그래도 운 나쁘게 혼자 있을 때 몬스터에게 습격을 당해 죽었대. 그래서 나도 많이 생각해서, 깨달았어. 이 세계에서 계속 살아남으려면, 아무리 주위의 동료들이 강해도 본인에게 살려는 의지가, 절대로 살아남겠다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최초에 필드에 나갔던 때부터 계속 무서웠어. 시작의 마을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어. 흑묘단의 모드와는 현실에서 계속 친했고, 함께 있는 게 즐겁지만, 그래도 사냥하러 나가는 건 싫었어. 그런 기분으로 싸운다면, 역시 언젠가 죽겠지.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야. 나 본인의 탓이지.

키리토는, 그 밤부터 계속, 매일, 매일,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줬지. 절대 죽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만약 내가 죽으면, 키리토는 분명 굉장히 자신을 책망할 거야.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니까, 이걸 기록하기로 했어. 키리토의 탓이 아니라고. 나쁜 건, 나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니까. 타이머를 다음 크리스마스로 한 건, 적어도 그때까지는 노력해서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내와 함께, 눈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으니까.

있잖아……, 나, 사실은, 키리토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 키리토의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네가 열고 있던 윈도우, 뒤에서 엿봤어.

키리토가, 진짜 레벨을 감추고 우리들과 함께 싸워주는 이유는, 열심히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어. 그래도, 언젠가 직접 얘기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모두에게는 조용히 하기로 했어. ……나, 네가 굉장히 강하다고 알아서, 기뻤어. 그걸 알고서부터, 네 옆에서, 무서워하지 않고 자는 게 가능했어. 거기다, 만약, 나와 함께 있는 게, 너에게 있어서도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도 굉장히 기뻤어. 그렇다면, 나같은 겁쟁이가, 억지로 위쪽 층에 올라온 의미도 있다는 게 되겠네.

에……그게 말이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만약 내가 죽어도, 키리토는 열심히 살아줘, 라는 거야. 살아서, 이 세계의 최후를 지켜보고, 이 세계가 태어난 의미, 나처럼 약한 사람들이 이곳에 온 의미, 그리고 너와 내가 만난 의미를 찾아줬으면 해. 그게 내 소원이야.

엣또……꽤나 시간이 남아버렸네. 이거, 굉장히 많이 녹음한다. 엣또, 그럼, 모처럼 크리스마스니까, 노래를 부를게. 나, 노래는 제법 해. 《루돌프 사슴 코》라는 노래로 할게. 사실은 좀더, 윈터·원더랜드라던가, 화이트·크리스마스라던가 멋있는 걸 부르고 싶지만, 가사가 기억나는 게 그것뿐이야.

어째서 《루돌프 사슴 코》만이 기억 나냐 하면, 얼마 전 밤, 키리토가 이런 말을 해서 그래. 어떤 사람도 분명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나같은 사람도 이곳에 있는 의미가 있다고 말이지. 그걸 들었을 때 나, 굉장히 기뻐서, 그래서 이 노래가 생각났어. 나는 사슴이고 넌 산타 할아버지 같다, 하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빠 같다고 생각했어. 우리 아빠, 내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갔거든. 그래서 아빠란 이런 느낌일까, 하고 네 옆에서 자며 매일 생각했어. 음, 그럼, 부를게.

빨간 코의 순록 씨는

언제나 모두의 웃음거리

그래도 그 해의 크리스마스 날

산타 아저씨는 말했습니다

어두운 밤길은 반짝반짝하는 네 코가 도움이 될 거야

언제나 울던 순록 씨는 오늘밤에야말로 기뻐했습니다

……내게 있어, 너는, 어두운 길 저편에서 언제나 나를 비춰주는 별 같은 존재였어. 그럼 안녕, 키리토. 너를 만나서, 함께 있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

안녕.

소아온 3권 -타이핑:서유이-

짙푸른 광점 세 개가 맘히늘에 맺힌 작은 별처럼 나란히 늘어서 있다.

키리가야 스구하는 오른손을 뻗어 그 빛을 건드려보았다.

풀 다이브형 VR 머신 <너브 기어)의 가동 상태를 나타내는 LED 인디케이터. 헤드기어 앞에 붙어 있는 그것들은 왼쪽부터 대뇌 접속 모니터，네트워크 접속，주전원을 나타낸다. 왼쪽 끝의 광점이 붉은색으로 바뀌면一그때는 기어 사용자의 뇌가 파괴된 것을 뜻한다.

너브 기어의 주인은 베이지색으로 통일된 병실 한가운데의 넓은 젤 베드 위에서 깨어나지 않는 잠을 자고 있다. 아니，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의 영혼은 지금도 아득한 이세계에서 밤낮으로 싸우고 있으니까. 자신과, 포로가 된 수천 플레이어들의 해방을 걸고.

“오빠......“

스구하는 잠든 오빠 카즈토를 살짝 불렀다.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 나, 이번에 고등학생이 된단 말이야……. 얼른 안 돌아오면 점점 멀어질 텐데……

LED에서 손가락을 치우고, 이번에는 오빠의 뺨을 쓰다듬어 본다. 기나긴 혼수상태로 여윈 탓에 깎아낸 듯 얇아진 그 선 은，원래부터 중성적이었던 카즈토의 옆얼굴에 한층 소녀 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농담 삼아 {우리 잠자는 공주님》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마른 것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가슴 아플 정도로 바짝 말라, 어렸을 때부터 검도로 단련했던 스구하와 비교하면 이젠 체중도 훨씬 적을 것이다. 이대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요즘은 그런 공포에 사로잡히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가능한 병실에서 울지 않으려 했다. 1년 전， *총무성의 (SAO 사건 대책팀〉사람에게 들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검은 테 안경 위로 긴 앞머리를 드리운 그 공무원은 어딘가 경외심이 배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의 게임 내 {레벨》이 전체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것이라고ㅡ, 항상 위험한 최전선에서 싸우는，극소수 공략파의 일원이라고.

분명 지금도 오빠는 죽음과 직면한 상황에서 싸우고 있을 것 이다. 그러니 스구하가 여기서 울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손을 잡아주고 응원하리라 생각했다.

“힘내……힘내，오빠.”

여느 때처럼 카즈토의 앙상한 오른손을 자신의 두손으로 감싸며 열심히 빌고 있으려니，문득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 다.

“어머，스구하도 왔구나 ”

황급히 돌아보았다.

“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