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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른손 검지가 어렴풋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시논은 눈살을 찡그렸다.

엄지로 비벼 그 감촉을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 안쪽을 따끔따끔 자극하는 감각은 좀처럼 사라지려 하질 않았다.

원인은 알고 있다.

키리토다. 그 무례하고 오만불손하고 뻔뻔한 신참에게 오른손을 힘껏 불들렸기 떄문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머릿속 절반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시논은 지금 어뮤스피어를 써서 가상세계에 풀 다이브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제아무리 손을 세게 붙들린다 해도 현실의 육체에서 혈류가 막히거나 신경이 압박을 받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발생한 모둔 육체적 감각은 기계가 전자신호에 실어 뇌에 직접 흘려보내는 가상신호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실제로 시논의 오른손에는 흑발의 광검사에게 붙잡혔을 때의 압력과 온기가 뚜렸히 남아 있었다. 그 후로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지났는데도.

감각을 지우는 것을 포기하고, 시논은 양각대에 얹어 놓은 안티 매터리얼 스나이퍼 라이플에 다시 오른손을 가져갔다.

스프링을 가볍게 설정해 놓은 방아쇠에 살짝 검지를 걸쳤다.

무수한 전투를 함께 해 온 애총(愛銃) 《헤카테 Ⅱ》의 그립은 마치 몸의 연장인 것처럼 손에 찰싹 달라붙었지만, 그래도 미약한 근질거림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시논은 지금 약간 높은 절벽 가장자리에 돋아난 양상한 관목 밑에 배를 깔고 엎드려 저격 기회를 노리고 있다.

스테이지는《황야의 교차로》. 건조한 고지대 한가운데에 두개의 직선 도로가 교차하는 지형이다. 대선 상태의 이름은《스팅어》. BoB 예선 F블록 5회전, 다시 말해 준결승 제1시합이 시작된 지 약 12분이 지났다.

이 시합에서 이기면 다음 결승 결과에 관계없이 내일 일요일 밤에 치러질 BoB 본선 배틀 로열 대회의 진출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기고 올라인 만큼 적인 스팅어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이름이 그렇다고 해서 휴대용 대공 미사일《스팅어》를 장비 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알기로 주무장은 분명《FN SCAR》카빈 라이플. 그러나 이것도 충분히 위험한 무기이다. 고성능 ACOR 스코프를 장착해 집탄률에 매우 높은 플러스 보정을 얻고 있다.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까지 접근한다면 저격수인 시논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으리라.

다행이 이 맵은 전체가 도로로 4분할되어, 한 블록에서 다른 블록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앙의 교차로를 지나야만 하는 지형이다. 두 플레이어의 출현 위치는 최소 500미터 떨어져 있어야 하므로, 처음부터 같은 블록에 배치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스팅어는 시논을 SCAR의 사정거리에 포착하기 위해서는, 저격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앙 교차로를 돌파해야만 한다. 반대로 시논은 스팅어가 교차로를 돌파하려는 순간, 어떻게든 저격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스팅어는 최대한 강행돌파 타이밍을 늦춰 시논의 집중력을 소모시키는 작전으로 나오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예상할 수 있지만, 그 허점을 찔러 일찌감치 출현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시논은 결국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렇게 스코픙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현재 A에서 O까지 있는 예선 토너먼트 15블록의 절반 이상은 이미 결승전이 끝났으며, 이것과 동시에 진행되는 시합은 열 시합 정도밖에 없다. 그러므로 대기 돔이나 1층 홀, 시내의 주점에서는 이 모든 시합이 편집 없이 생중계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시논 대 스팅어 전을 보고 있는 관객들은 매우 지루하지 않을까. 시합 개시 후로 아직 총탄을 한 발도 쏘지 않았으니까.

하기야 동시에 치러지고 있을 F블록 준결승전 제2시합은 이 지루함을 상쇄시켜 주고도 남을 만큼 요란한 전개를 보이고 있을 테지만.

왜냐하면 그쪽은 서브머신건 두 자루를 사용하는 근거리 전투의 전문가와, 이를 압도하는 초근거리 전투 무기──광검의 전투이기 때문에.

집중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시논의 생각은 그 미스터리어스한 흑발의 소녀, 아니, 소년에게 쏠리고 있었다.

1회전을 10분 정도 만에 끝내고 대기 돔으로 귀환한 시논을 처음 맞이한 것은 슈피겔──신카와 쿄지의 축하였다. 시논은 키리토의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설마 자신보다도 빨리 이기고 돌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헤에, 제법인데. 그런 말을 건네줄 생각으로 시트로 다가갔으나──시논은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시합이 시잣되기 전에는 그렇게나 뻔뻔하던 키리토가 벤치위에서 무릎을 꽉 끌어안은 채 앉아서는, 푹 숙인 머리와 가녀린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이긴 주제에, 총을 상대로 하는 전투가 그렇게나 무서웠던 걸까.

그렇게 생각한 시논은 무의식중에 오른손을 뻗어 야간용 위장 무늬의 재킷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 순간 키리토는 흠짓 온몸을 움츠리더니, '쭈뼛쭈뼛'이라고밖에 형언할 수 없는 동작으로 머리를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F(여성)형이라고 생각할 만큼 가련함과 날카로움을 겸비한 아바타의 얼굴은──마치 지옥의 가장자리를 보고 온 듯한 깊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무슨 얼굴이 그래."

시논이 저도 모르게 묻자, 키리노는 몇 차례 눈을 깜빡인 후 뺨에 뻣뻣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느 키리토에게, 시논은 1회전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물었다. 하지만 소년은 긴 흑발 밑으로 표정을 감추며 한숨을 토해낼 뿐, 이젠 아무 대답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 이상 얽힐 필요도 없는 상대였다.

키리토는 아바타의 성별에 대한 시논의 오해를 아마도 일부러 풀지 않은 채 거리를 안내받고 쇼핑 가이드를 시키고, 마지막에는 같은 대기실까지 어슬렁어슬렁 따라 들어왔다.

물론 여자라고 착각한 채 네임 카드를 요구하지 않았던 시논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러므로 시논의 분노는 절반 이상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동급생들에게 마음껏 이용당한 이래로 이제는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겠, 친구 따위 필요 없다고 결심했을 텐데도. GGO에서는 보기 드문 여자 플레이어에게 길 안내를 부탁받은 끝에 그 결의를 너무나도 쉽게 잊고 말았다.

즐거웠다. 마켓에서 이것저것 쇼핑을 했을 때, 3륜 버기 뒤에 타고 있을 때, 시논은 자신이 GGO 안에서 매우 오랜만에 웃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렇다──시논은 사실 키리토가 남자라는 데 분노한 것이 아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너무나도 무방비해지도 말았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키리토가 1회전을 이기고 왔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했다.

결승전에서 그 가련한 아바타를 헤카테의 총탄으로 꿰뚫어, 그와 만나기 전보다도 더더욱 강해지리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키리토는 마치 딴사람인 것처럼 겁을 먹고 있었다.

시논은 무의식중에 날카롭게 억누른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겨우 1회전에서 그 모양이라니, 결승은 꿈도 못 꾸겠네. 정신 좀 차려. 난 네게 빛을 받아내야 하니까."

그리고 주먹을 쥐고 다시 한 번 키리토의 어깨를 쿡 쥐어박았다.

그 손이 느닷없이 새하얀 두 손에 감싸였다. 키리토는 그대로 손을 끌어당기더니 가슴에 꽉 끌어안았다.

"뭐, 뭐야...... 무슨 짓이야!"

반사적으로 외치며 손을 빼려 했으나, 그 가녀린 아바타 어디에 그런 스트랭스 수치가 있을까 싶을 만큼 강한 힘으로 키리토는 시논의 손을 꽉 끌어안았다.

두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며, 손등에 닿는 호흡 또한 차가웠다.

그 시점에서 시논의 시야에는 매너 위반 행위 신고를 재촉하는 아이콘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왼손으로 이를 건드리거나 '콜' 이라고 말하면 그 순간 키리토의 아바타는 글록켄 감옥 에어리어로 전송되어 한동안 나올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시논은 움직이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손을 쥔 채 온몸을 가늘게 떠는 아바타에게 시논은 강렬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여자아이를 어디선가 본 적이있다.

그렇게 생각한 후 금세,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격수 시논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아사다 시노, 피와 초연냄새에 찌든 기억에 겁을 먹고 침대에서 몸을 웅크린 채 구해달라고, 구해달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시노의 모습 그 자채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시논은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에서 힘을 빼고 있었다.

"............왜 그래............?"

속삭이듯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시논은 느겼다.

시논의 손에 매달린 흑발의 아바타──아니, 그 안에 깃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플레이어는 시노와 같은 종류의 어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직전, 키리토의 몸은 엷은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그의 다음 대전 상대가 정해져 예선 2회전 필드로 전송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 도저히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시논은 그렇게 판단하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

패한 사람은 지하의 대기 돔이 아닌 지상의 총독부 홀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키리토가 진다면 오늘은──혹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할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딱히 상관없다. 처음부터 친구도 뭣도 아닌, 그저 오가는 길에 총독부까지 동행했던 상대일 뿐이다. 오늘을 끝으로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며 시논은 허공에 남은 오른손을 살짝 가슴에 끌어당겼다.

──그런데도.

키리토는 시논의 예상을 크게 배반한 채 2회전, 3회전, 그리고 4회전까지도 광검과 핸드건만으로 이기고 올라온 것이다.

자신의 시합 대기 시간 중 시논은 단 한 번, 키리토의 시합을 모니터로 관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싸움은 오싹하다고밖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돌격전법이었다. 어설트 라이플을 속사하는 어질리티 타입 플레이어를 상대로 조그만 핸드건──시논이 추천해준 파이브세븐으로 응사하며 정면으로 돌지한다. 아바타의 말단 부분에 명중하는 적탄은 무시하고 치명탄만을 광검으로 방어하는 엄청난 기술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밀착거리까지 접근해서는 라이플과 함께 적을 베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싸우는 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