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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성의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자신의 추악한 이기심을 감추지 말고 털어놓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적어도 사치는 어느 정도 압박감에서 해방되었을 것이고, 약간의 안도감도 얻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거짓말로 포장된 한 마디 뿐이었다.

「……넌 죽지 않아」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흑묘단은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강한 길드야. 마진(*margin:경계)도 필요 이상으로 잡고 있어. 그 길드에 있는 한 너는 안전해. 별로, 무리해서 검사로 전향할 필요는 없어」

사치는 고개를 들고 내게 애원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정말로 나는 죽지 않고 넘어가는 거야? 언젠가 현실에 돌아갈 수 있어?」

「아아……넌 죽지 않아. 언젠가 분명, 이 게임이 클리어될 때까지」

설득력 따위 조금도 없는, 얄팍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치는 내 근처로 다가와서, 내 왼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조금 울었다.

◆ ◆

한동안 있다가 케이타 일행에게 메세지를 보낸 후 나와 사치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사치를 방에서 쉬게 한 후 케이타 일행이 돌아오는 것을 1층의 주점에서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말했다. 사치가 방패검사로 전향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 가능하다면 지금 그대로 창술사를 계속하는 편이 좋겠다는 것, 내게 포워드의 부담이 걸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케이타 일행은 나와 사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살짝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물론 그렇다고 본질적인 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부터 사치는 밤이 깊어지면 내 방에 찾아와 잠들게 되었다. 내 곁에서, 너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든 잠이 들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필연적으로 나는 심야의 경험치 벌이에 나갈 수 없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사치와 다른 동료들을 속인다는 죄책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의 기억은 어째서인지 단단하게 뭉친 눈덩이처럼 작게 오그라들어 자세히 떠올릴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나와 사치는 결코 연애를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같은 침대에서 자긴 해도 서로 건드리는 일도,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일도, 서로를 마주보는 일조차도 없었다.

우리는 아마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들개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사치는 나의 말을 듣고 아주 약간 공포를 잊었을 것이며, 나는 그녀에게 의지가 되어주며 더러운 비터라는 찜찜함을 아주 약간 잊을 수 있었다.

그렇다-나는 사치의 고뇌를 엿보면서 처음으로 이 SAO 사건의 본질 일부를 이해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데스게임으로 뒤바뀐 SAO의 공포를 진정한 의미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위 층의, 베타테스트 때 익히 경험한 몬스터들을 기계적으로 쓰러뜨려선 레벨을 올리고, 그 후에는 그 안전권을 천천히 유지한 채 공략조를 자청해왔다. 성기사 히스클리프만큼은 아니지만, 내 HP바가 위험영역으로 떨어지는 일은 생각해보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고생도 하지 않고 긁어모은 방대한 리소스의 그늘에 이처럼 죽음의 공포에 겁먹은 무수한 플레이어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게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마침내 자신의 죄책감을 정당화할 방법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 방법이란 물론 사치를, 그리고 흑묘단 멤버들을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이 쾌감을 얻기 위해 레벨을 속이고 길드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억지로 잊어버리고, 내 행위는 그들을 지켜 일류의 공략 길드로 키워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제멋대로 기억을 조작했다. 매일 밤마다 침대 곁에서 불안하게 몸을 웅크린 사치에게, 너는 죽지 않아, 너는 죽지 않아. 분명 살아남을 수 있어. 하고 주문처럼 읊조렸다. 내가 그렇게 말을 걸면 사치는 이불 속에서 살짝 눈을 올려 뜨고 나를 보면서, 어렴풋이 웃음 후 옅은 잠에 빠져들었다.

◆ ◆

하지만 결국, 사치는 죽었다.

그 지하수로의 밤으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내 눈앞에서 몬스터에게 베여 몸과 영혼을 잃었다.

그날 케이타는 마침내 목표액에 달한 길드 자금 전액을 들고 길드 하우스에 적합한 작은 1층 건물을 내놓은 부동산 중개 플레이어에게 간 참이었다. 나와 사치, 나머지 세 동료들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 길드 멤버 공통 아이템란의 콜 잔액을 바라보고는 웃으며 여관에서 케이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마침내 메이서인 테츠오가 말했다.

「케이타가 돌아오기 전까지 미궁구에서 잠깐 돈을 벌어서, 새로운 집의 가구를 전부 갖춰놓고, 그녀석을 깜짝 놀래켜 주자」

우리 다섯은 그때까지 가본 적이 없었던, 최전선에서 겨우 세 층 아래의 미궁구에 가게 되었다. 물론 나는 예전에 그 던전에서 싸운 적이 있었으므로, 그곳이 경험치 벌이에는 좋지만 트랩이 많은 지역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레벨만 놓고 봤을 때는 안전권이었기 때문에 미궁에서의 사냥은 순조로웠다. 한 시간쯤 지나 목표액을 모두 벌고, 얼른 돌아가 물건을 사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시프 역할을 담당한 멤버가 보물상자를 발견했다.

나는 그때만큼은 방치해둘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유를 물었을 때, 이 층은 트랩의 난이도가 한층 높기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그냥 위험할 것 같다고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알람 트랩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세 개 있던 방의 입구에서 노도처럼 몬스터가 밀려들어왔다. 이건 무리라고 순식간에 판단한 나는, 모두에게 전이결정으로 긴급탈출을 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 방은 결정무효화공간이어서-그 시점에서 나를 포함한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혼란에 빠졌다.

처음으로 죽은 것은 알람을 울렸던 도적이었다. 다음으로 메이서 테츠오가, 남자 창술사가 그 뒤를 이었다.

나는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져 그때까지 제한해 두었던 상위 소드스킬을 마구 펼치며 쇄도하는 몬스터들을 쓰러뜨려 갔다. 하지만 수가 너무나 많아 계속 울리는 보물상자를 파괴할 여유도 없었다.

사치는 몬스터의 파도에 휩쓸려 HP를 모두 잃은 그 순간, 내게 오른손을 뻗으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활짝 뜬 그 눈에 떠올랐던 것은 밤마다 나를 쳐다본 것과 마찬가지로, 애원하는 것처럼 아플 정도로 애절한 신뢰의 빛이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많던 몬스터의 모습도, 그리고 네 명의 동료의 모습도 그 방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내 HP바는 절반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였다.

나는, 아무 생각도 못하고, 혼자 멍하니 여관으로 돌아왔다.

새 길드 하우스의 열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케이타는 내 이야기를-네 명이 어떻게 죽었으며,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모든 이유기를 들은 후 모든 표정을 잃어버린 눈으로 나를 보며, 단 한 마디 이렇게 말했다. 비터인 네가, 우리와 같이 있을 자격 따윈 없었다고.

그는 그 길로 몸을 돌려 마을 밖의 플로어 가장자리로 향하더니, 뒤를 쫓아간 내 눈앞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철책을 뛰어넘어 무한한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케이타가 한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내가, 내 교만으로 인해 달밤의 흑묘단 넷- 아니, 다섯을 죽여버렸다는 것은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얽히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은 계속 안전한 미들 존에 머물며, 무모한 트랩 해제에 손을 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SAO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반사신경도 스테이터스도 아닌 충분한 정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고효율의 파워 레벨링을 해주면서, 정보를 나눠주는 것을 게을리했다. 그것은, 예정된 비극이었다. 지키기로 맹세했던 사치를, 나는 이 손으로 죽였다.

최후의 순간, 그녀가 하려고 했던 말이 어느 정도의 욕설이라 해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애매한 소문에 지나지 않는 소생 아이템을 이렇게 갈구하는 것도, 그저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3

크리스마스까지 남은 4일간, 나는 레벨을 하나 더 올려 70의 대열에 올랐다.

그동안 나는 말 그대로 한숨도 자지 않았다. 그 대가인지 이따금 쇠못을 때려박는 듯한 두통이 엄습했지만, 아마 자려 해봤자 잘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 클라인의 길드 풍림화산은 개미계곡 사냥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길드의 대형 파티에 뒤섞여 줄을 서서, 기계처럼 혼자 끊임없이 개미를 사냥하는 나를 본 플레이어들의 눈빛은 마침내 조소에서 혐오로 바뀌었다. 이따금 뭔가 말을 걸려던 녀석도 있었던 것 같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노리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최대 현안이었던 《배교자 니콜라스》가 출현한다는 전나무 거목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그 문제에 대해서는 난 개미계곡에서 레벨업에 전념하는 짬짬이 거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수많은 정보상에게 사들인 몇몇 나무의 좌표를 모조리 찾아가 확인해봤으나, 그것들은 형태만 크리스마스 트리와 비슷했을 뿐 실제로는 전나무가 아닌 삼나무 계열이었다. 바늘 같은 잎을 가진 삼나무와는 달리, 전나무의 잎은 끝이 둥글며 가늘고 긴 타원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현실세계의 자택 뒤에 삼나무와 전나무가 모두 있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35층의 필드에 있는 랜덤 텔레포트 던전 《방황의 숲》 한구석에서 나는 구불구불한 거목 한 그루를 발견했다. 너무나도 의미가 있어보이는 형태였기 때문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퀘스트의 시작점일 거란 생각에 상세하게 조사해봤으나, 그때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 거목이 바로 전나무였다. 크리스마스-다시 말해 오늘밤, 그 나무 밑에 플래그 Mob 《배교자 니콜라스》가 출현하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됐다.

◆ ◆

레벨이 70으로 상승한 것을 알리는 팡파레를 무감동으로 들으며, 나는 주위의 개미를 쓸어버린 후 파우치에서 전이결정을 꺼내들었다. 순서들 기다리던 플레이어들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숙소가 있는 최전선 49층 주거구로 일단 돌아갔다.

전이문광장에서 시계탑을 올려다보니 0시까지는 앞으로 세 시간이 남았다. 광장에는 이브를 함께 보내려는 수많은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어깨를 끌어안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누비며 나는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 기간 머물던 방에 뛰어들자마자 우선 방에 상비된 수납상자를 열어, 그 위에 나타난 아이템 윈도우에서 있는 대로 회복·해독 크리스탈과 포션 종류를 내 인벤토리로 옮겼다. 이것만도 엄청난 가격이지만, 물론 이걸 전부 쏟아 붓는다 해도 아깝지 않았다.

아껴두었던 레어 한손검도 꺼내들고 내구도를 확인한 후, 개미를 상대하느라 너덜너덜해진 검과 교환했다. 레더코트를 포함한 방어구도 신품으로 바꿨다.

모든 작업을 종료하고, 나는 창을 닫으려 했지만, 문득 손을 멈추고 자신의 아이템란의 위쪽을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Self》, 즉 나 자신의 아이템란을 나타내는 탭과 나란히, 《사치》의 이름이 기록된 탭이 남아 있었다.

이것은 사이가 좋지만 결혼까지는 가지 않은 플레이어들끼리 설정하는 공통 아이템 인벤토리라는 것이다. 무조건 모든 아이템과 돈이 공유되는 결혼과는 달리, 이 탭 안의 아이템만이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되는 시스템이다.

사랑의 말도, 손을 잡는 것조차도 바라지 않았던 사치가 죽기 조금 전에 만들자고 했던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포션 같은 아이템을 전해주기 편해서라고 약간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을-그 목적을 위해 이미 길드 멤버 공통 탭이 있었으므로-했으나, 그래도 나는 승낙하고 사치와 둘만의 공통 탭을 설정했다.

사치가 죽어도 그 창은 남아 있었다. 물론 프렌드 리스트에도 아직 사치의 이름이 있다. 그러나 사치의 이름은 연락 불가를 뜻하는 회색으로 바뀌었으며, 이 공통 아이템란에 남은 몇몇 포션과 크리스탈 종류도 이젠 쓰일 일이 없을 것이다.

반년이 지났어도, 나는 사치의 이름이 붙은 탭을 없애지 못했다. 길드용 탭은 아무렇지도 않게 없앴음애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생 가능성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그랬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그것을 없애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분 가까이 사치의 이름을 들여다본 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윈도우를 닫았다. 0시까지는 앞으로 두 시간.

방을 나와 전이문으로 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사치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그것만을 생각하며.

35층으로 전이해, 게이트에서 나오니 전선과는 달리 광장은 조용했다. 중층 플레이어의 주요 전장과는 살짝 어긋난 곳인 데다 주거구도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초라한 농촌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보이는 플레이어들의 눈을 피해 나는 코트 깃을 세우곤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피라미 몬스터들을 상대할 틈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며 미행자가 없음을 확인하자마자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최근 한 달 동안 무모한 레벨업으로 내 민첩도 파라미터 보정도 꽤 증가해, 눈을 박차는 발은 날개처럼 가벼웠다. 여전히 관자놀이 부근이 욱신거렸지만 그 덕분에 졸음도 접근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겨우 10분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