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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머리카락을 흔들며 끄덕이고, 군의 여성 검사는 말을 이었다.

「네. 처음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군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그런 이름은 아니었어요……. 군, 즉 ALF가 지금의 이름이 된 건 옛날 서브리더이자 지금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키바오라는 남자가 실권을 장악한 후부터였습니다. 처음엔 길드 MTD라는 이름이었는데……, 혹시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스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키리토는 즉시 대답했다.

「《MMO 투데이》의 약칭이잖아? SAO 시작 당시 일본 최대의 온라인 게임 종합 정보 사이트였는데, 길드를 결성한 것도 그곳 관리인이지. 분명 이름이……」

「싱커」

그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 유리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결코 지금처럼, 독선적인 조직을 만들려던 게 아니었어요. 그저 정보나 식량이나 자원을 가능한 한 많은 플레이어들끼리 균등하게 나누려 했을 뿐……」

그 무렵 《군》의 이상과 붕괴에 대해서는 아스나도 들어 알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몬스터 사냥을 나가 위협을 최소화하며 안정된 수입을 얻은 후, 이를 균등하게 분배한다는 사상 그 자체에는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MMORPG의 본질은 플레이어들 사이의 리소스 쟁탈이며, 그것은 SAO처럼 비상식적인 극한 상황에 처한 게임에서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SAO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고 해야 하려나.

그런 까닭에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현실적인 규모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으며, 그 점에 있어 군은 지나치게 거대했다. 아이템을 빼돌리는 일이 횡행하고, 숙청과 반발이 잇따랐으며, 리더는 조금씩 지도력을 잃어갔다.

「거기서 대두해온 것이 키바오라는 사내였죠」

유리엘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싱커의 방임주의를 이용해 동조하는 간부 플레이어들과 체제 강화에 나서선 길드의 이름을 아인크라드 해방군이라고 바꾸었어요. 게다가 공식 방침으로 범죄자 사냥과 효율 좋은 필드 독점을 추진했죠. 숫자의 힘으로 장기간 독점을 계속해 길드의 수입은 급증하고, 키바오 일파의 권력은 점점 강력해졌어요. 최근에는 싱커는 거의 장식물이나 마찬가지였고……. 키바오 일파의 플레이어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져선 주거구에서도 《징세》라는 명목으로 공갈에 가까운 행위까지 시작했어요. 어제 여러분이 혼을 내줬던 것들은 그런 녀석들의 선봉이었죠」

유리엘은 잠시 숨을 돌리고는, 사샤가 내준 차를 마시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키바오 파에도 약점은 있었습니다. 그건 재산 축적에만 한눈을 팔아 게임 공략을 소홀히 해왔다는 점이죠. 본말전도라는 목소리가 말단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커지면서……, 그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최근 키바오는 터무니없는 도박에 나섰어요. 부하들 가운데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 십여 명으로 공략 파티를 짜서는 최전선의 보스 공략에 내보낸 거에요」

아스나는 무심결에 키리토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74층 미궁구에서 플로어 보스 《더·글림아이즈》에게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도전했다가, 무참하게 죽은 군 소속 플레이어 코버츠의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아무리 하이레벨이라 해도 원래 우리는 공략조의 분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는 사실은 부정할 여지가 없죠……. 그 결과, 공략은 실패하고 대장은 사망하는 최악의 결과에 이르러 키바오는 그 무모함을 강하게 비난받았어요. 잘만 하면 그를 추방할 수도 있었겠지만……」

유리엘은 높은 콧날에 주름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3일 전, 궁지에 몰린 키바오는, 싱커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강공책에 나섰어요. 출구를 던전 심장부로 설정해놓은 회랑결정을 이용해 반대로 싱커를 몰아낸 거죠. 그때 싱커는, 키바오의 『맨몸으로 만나 이야기하자』는 말을 믿은 탓에 무장도 하지 않아, 도저히 혼자 던전 심장부의 몬스터 무리를 돌파해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어요. 전이결정도 없이……」

「3, 3일이나……!? 그래서, 싱커 씨는……?」

반사적으로 물은 아스나에게 유리엘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의 비》에 올라간 그의 이름이 아직 무사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안전지대에 도착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장소가 상당한 하이레벨 던전의 깊은 곳이라 꼼짝도 할 수 없는지……아시는 대로 던전에는 메세지도 보낼 수 없고, 내부에서 길드 창고에 액세스할 수도 없어서, 전이결정을 보내지도 못해요」

출구를 위험한 곳 한가운데로 설정한 회랑결정을 사용하는 살인은 《포털 PK》라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당연히 싱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목했다고는 해도 설마 같은 길드의 서브리더가 그런 짓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거나.

아스나의 사고를 읽은 듯이, 유리엘은 「사람이 너무 좋았던 거죠……」하고 중얼거리며, 설명을 이었다.

「……길드 리더의 상징인 《약정의 스크롤》을 조작할 수 있는 건 싱커와 키바오뿐이니, 이대로 싱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길드의 인사권이나 회계까지 모두 키바오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싱커가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던 건 그의 부관인 저의 책임이니, 저는 그를 구하러 가야만 해요. 하지만 그가 유폐된 던전은 도저히 제 레벨로는 돌파할 만한 곳이 아니고, 《군》 플레이어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도 없어요」

입술을 질끈 깨문 후 키리토를, 그리고 아스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러던 참에, 엄청 강한 2인조가 시내에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청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키리토 씨-아스나 씨」

유리엘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초면에 염치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부디 저와 함께 싱커를 구출하러 가주실 수 없을까요?」

긴 이야기를 마치고 입을 다문 유리엘의 얼굴을 아스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슬프게도 SAO 내에선 남의 말을 그리 쉽게 믿을 수 없다. 이번 일도 키리토와 아스나를 안전권 밖으로 끌어내 위해를 가하려는 음모일 가능성을 져버릴 수 없었다. 원래 게임에 대한 충분한 지식만 있다면 속이려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어딘가 허점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스나들은 《군》의 내부정세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다.

키리토와 잠깐 시선을 마주하고, 아스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들에게 가능한 일이라면, 힘을 빌려드리고 싶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쪽도 최소한의 조사를 통해 당신의 말을 검증하지 않으면……」

「그건-당연, 하겠죠……」

유리엘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무리한 청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흑철궁 《생명의 비》의 싱커의 이름에, 언제 횡선이 그어질지 생각하면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아서……」

은발 편사의 굳건하던 눈이 젖어드는 것을 보고 아스나의 마음은 흔들렸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그녀를 믿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세계에서 지냈던 2년간의 경험은 감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키리토를 쳐다보니 그 역시 주저하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는 까만 눈은 유리엘을 구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아스나를 걱정하는 마음 사이에서의 흔들림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유이가 문득 컵에서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괜찮아, 엄마. 그 사람, 거짓말하고 있지 않아」

아스나는 깜짝 놀라 유이를 쳐다보았다. 발언의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이제까지 더듬거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여겨질 정도로 유창한 말이었다.

「유……유이, 그런 거, 알 수 있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묻자, 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모르겠지만, 알아……」

그 말을 들은 키리토는 오른손을 뻗어 유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아스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의심해서 후회하기보다는 믿고 후회하자. 가자, 분명 어떻게든 될거야」

「변함없이 태평한 사람이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하고, 아스나도 유이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미안해, 유이. 친구 찾는 건 조금 늦어지겠지만 용서해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말뜻을 이해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유이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끄러운 흑발을 다시 한 번 쓰다듬어준 후 아스나는 유리엘을 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미력하나마, 도와드릴게요. 소중한 사람을 구하겠다는 마음, 우리들도 잘 아니까……」

유리엘은, 하늘색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으며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고마워요……정말로 고맙습니다……」

「그 말은, 싱커 씨를 구출한 다음에 듣도록 하죠」

아스나는 다시 한 번 웃었고, 이제까지 잠자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사샤가 두 손을 짝 마주치며 말했다.

「그렇게 되었다면, 확실히 먹고 가세요! 아직 많이 있으니까, 유리엘 씨도 드세요」

◆ ◆

초겨울의 약한 햇빛이 짙은 색으로 물든 가로수 가지를 투과해 돌바닥에 옅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시작의 마을의 뒷골목은 통행인도 극히 적었으며, 무한하다고 여겨지는 도시의 넓이와 맞물려 싸늘한 인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든든하게 무장한 아스나와 유이를 끌어안은 키리토는, 유리엘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나아가고 있었다.

아스나는 당연히 유이를 사샤에게 맡겨놓고 오려 했으나, 유이가 완강히 함께 가겠다고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것이었다. 물론 주머니에는 전이결정을 챙겨주었다. 여차하면-유리엘에게는 미안하지만-이탈하여 태세를 재정비할 생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안 물어봤다」

키리토가, 앞장서서 걸어가는 유리엘에게 말을 걸었다.

「문제의 던전이라는 건 몇 층에 있는 거야?」

유리엘의 답은 간결했다.

「여기, 에요」

「……?」

아스나는 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