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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놈의 발을 보았다. 다 해진 망토 끝자락에서 아주 조금이지만, 지저분한 부츠 끄트머리가 엿보였다.

고스트가 아니라 플레이어다.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나는 꾹 참았던 숨을 살짝 내뱉었다.

자세히 보니 붉은 눈도 도깨비불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뒤덮은 검은 고글의 렌즈가 빛나는 것뿐이었다. 초심자 같은 반응을 보이고 만 자신과, 매너를 무시하듯 코앞에서 느닷없이 말을 건 상대 양쪽에게 약간 짜증을 내며 나는 무뚝뚝하게 되물었다.

"진짜냐니...... 무슨 소리야? 넌 누군데?"

하지만 회색 망토의 플레이어는 이름도 대지 않은 채, 간격을 벌린 내게 슬금슬금 다시 한 번 접근했다. 이번엔 나도 물러나지 않고 겨우 20센티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무기질적인 시선을 받아냈ㄷ자.

모종의 보이스 이펙터를 사용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울림 섞인 불쾌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띄엄띄엄 울려 퍼졌다.

"시합을, 봤다. 검을, 쓰더군."

"어...... 그래. 딱히 규칙 위반은 아니잖아?"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내심의 동요를 어뮤스피어가 곧이곧대로 재현하는 바람에 약간 갈라져 있었다. 그것은 간파한 듯 회색 망토는 다시 몇 센티미터 얼굴을 들이댔다.

다음 목소리는 그 거리에서도 집중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속삭임이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너는, 진짜, 냐."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나는 벼락 같은 한 차례의 직감에 얻어맞아 그 자리에서 몸을 굳히고 말았다.

──나는 이놈을 안다!!

틀림없다. 분명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러나, 어디서. GGO에 로그인한 후로 내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출현 포인트 곁에 있던 아바타 바이어 사내, 쇼핑이며 대회 참가 가이드를 해준 시논,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슈피겔 셋 뿐이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만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ALO일까? 알브헤임에서, 각자 다른 아바타를 통해 나는 이놈과 만난 적이 있었을까? 필사적으로 기억 속의 주소록을 뒤지고, 말투와 기척이 일치하는 지인은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이렇게 눈앞에 서 있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냉기를 뿜어내는 놈과 마주쳤던 기억은 없었다.

어디지? 난 어디서 이놈과......

그때 누더기 망토가 흔들리더니 안에서 가느다란 팔이 튀어나왔다. 나는 다시 펄쩍 물러날 뻔했지만 망토와 마찬가지로 누더기 같은 글러브에 감싸인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손은 허공에서 내게 보이는 각도로 윈도우를 불러내더니 생기가 없는 움직임으로 조작했다. 표시된 것은 여섯 블록으로 나뉜 토너먼트 표였다. 현재 진행 중인 제3회 BoB 예선의 대전표인 모양이다.

철사같은 손가락이 F블록을 두드렸다. 그곳만이 윈도우 안에서 크게 확대되었다. 다시 싱글클릭. 다시 한복판이 줌인 되었다.

내 시선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한 점에 빨려 들어갔다.

이름둘이 나란히 붙어있다.

왼쪽에는【한자(우에마루)】, 그 오른쪽에는【Kirito】. 오른쪽의 이름에서는 엷게 빛나는 라인이 위로 뻗어 있다. 아까 시합에서 내가 우에마루를 꺾고 2회전에 진출했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것이다.

손가락이 슬쩍 움직이며 Kirito라는 이름의 위를 흝었다. 그리고 다시 질문.

"이, 캐릭터명. 그, 기술. ......너, 진짜, 냐."

그 순간 찾아온 세 번째의, 그리고 최대의 충격.

무릎이 떨려 하마터면 휘청거릴 뻔했지만 나는 간신히 참았다.

이 회색 망토의 플레이어는──알고 있는 것이다!!

《키리토》라는 이름의 출신을. 그리고 내가 우에마루를 쓰러뜨릴 때 사용한 소드 스킬. 그 두 가지를 이놈은 알고 있다.

다시 말해...... , 다시 말해, 내가 이 플레이어와 만난 것은 GGO도 ALO도 아니다.

SAO.《소드 아트 온라인》. 그 데스 게임의 무대가 되었던 부유성 아인크라드 어디선가 나는 이놈과 만났다.

누더기 망토 안에 숨은 아바타는...... 아니, 아바타와 접속한 어뮤스피어를 장착한 플레이어는 나와 똑같이《SAO 생환자》인 것이다.

어느샌가 심장 고동이 빠르게 울리고 있었다. 어두운 돔 내부가 아니었더라면, 내 아바타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들켰을지도 모른다.

침착해라. 침착해야 한다. 그것만 뇌리에서 되풀이했다.

SAO 생환자와 조우했다고 딱히 혼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아인크라드 붕괴 직전에는 엑스트라 스킬《이도류》의 기사도 공개되고, 혈맹기사단장 히스클리프와 공개 듀얼까지 벌인 덕분에 내 이름은 제법 광범위하게 퍼졌다. 게다가 조금 전 우에마루에게 사용했던《보팔 스트라이크》는 보편적인한손 직검 카테고리의 소드 스킬이다. 아인크라드에서 고레벨에 도달한 플레이어라면 조금 전의 시합 영상과 토너먼트 표의 플레이어 이름을 통해 내가 SAO 공략파의《키리토》가 아닐까 유추하는 것은 가능하다. 나도 이 대회장에서 당시의 지인으로 보이는 플레이어를 발견했더라면 똑같이 말을 걸고 회포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없어야 하는데.

그런데도 왜 나는 이렇게나............

────순간, 내 눈은 토너먼트 표를 지우고 망토 안으로 돌아가려던 가느다란 손목의 한 점에 빨려 들어갔다.

다 해진 붕대를 감아 놓은 듯한 글러브의 아래팔 부분, 손목보다도 조금 위에 매우 좁은 틈이 있었다. 그 안쪽으로 창백한 피부가 언뜻 보였다.

그리고 그 피부에는 가로세로 5센티미터 정도 되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캐리커쳐 된 서양풍 관, 뚜껑에는 싱글싱글 우웃는 기분 나쁜 얼굴. 뚜껑은 살짝 열려 있었으며, 안쪽의 어둠 속에서는 하얀 백골의 팔이 뻗어 나와 쳐다보는 자를 손짓한다.

과거, 이곳이 아닌 세계에서 독이 든 물을 써서 나를 마비시키고 죽이려 했던 사내의 팔에도 이것과 똑같은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웃는 관》의 엠블럼.

그 사실을 인식한 시점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바닥에 쓰러지거나, 혹은 뇌파 이상으로 강제 로그아웃되는 상황을 견뎌낸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 자리에 선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나를 붉은렌즈로 응시하고, 누더기 망토의 플레이어는 속삭였다.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나."

나는 천천히, 신중하게 아바타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르겠는데, 진짜라니, 무슨 뜻이지?"

"...................."

회색 망토는 소리 없이 스윽 한 걸음 물러났다. 붉은 안광이 눈을 깜빡이듯 점멸했다.

매우 길게 느껴지는 몇 초 후, 더더욱 무기질적으로 변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됐다. 하지만, 이름을, 속인, 가짜인가............ 혹은, 진짜, 라면."

뒤로 돌아서며, 마지막 한 마디.

─────언젠가, 죽이겠다.

그 말을 나는 도저히 게임 내의 역활 연기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누더기 망토는 마치 진짜 유령인 것처럼 소리도 없이 멀어져 가고──갑자기 사라졌다.

주위에는 이미 몇 초 전에 플레이어가 존재했다는 흔적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비틀거리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는, 곁의 박스 시트에 쓰러지듯 주저않았다. 가느다란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꽉 감긴 눈꺼풀 안쪽에는 0.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똑똑히 보았던 조그만 문신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웃는 관. 아인크라드에서 그 문양을 사용하던 집단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레드 길드《래핑 코핀》.

2년에 걸친 SAO의 공략 기간 동안, 곤중해진 나머지 다른 플레이어에게서 금품이나 아이템을 갈취하는 오렌지(범죄자)플레이어들은 비교적 초기부터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의 수법은 여럿이서 소수를 포위하고 일방적으로 트레이드를 강요하거나, 기껏해야 마비독을 쓰는 범주에 그쳤다.

실제로 상대를 공격해 HP 바를 없앤다면 그 플레이어는 현실세계에서도 진짜로 죽고 마니, 그런 행위에 가담할 각오가 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1만 명의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대부분 온라인 게임 폐인이었으며, 현실세계의 범죄와는 무관하게 살아왔던 사람들뿐이었으니까.

바로 이《HP 소멸만은 시키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진 것은 단 한 명의 이질적인플레이어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PoH(푸우)》. 유머러스한 느낌이 드는 캐릭터 네임이지만 의외로──혹은 그렇게 때문에 놈에게는 모종의 강렬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PoH가 이국적인 미모를 가졌으며, 또한 최소 3개 국어를 구사하는 멀티링귀얼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일본인과 서양인의 혼혈이리라. 일본어에다 유창한 영어와 스페인어의 슬랭을 섞은, 마치 프로 DJ의 랩 같은 놈의 말투는 주위에 모여든 플레이어들의 가치관을 쉽게 물들여 바꿔 놓고 말았다. 온라인 게이머에서, 보다 쿨하고 터프하고 리얼한 무법자 집단으로.

그리고 두 번째 카리스마성은, 오로지 PoH의 강함이었다.

놈의 대거 솜씨는 천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