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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의 로고 마크로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뿌옇던 것이 뇌의 시각 영역과 확실하게 접속됨에 따라 깨끗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로고 밑에 시각 접속 0K 메시지 가 조그맣게 표시 되었다.

그 다음엔 어딘가 멀리서 기묘한 다중음이 다가왔다.

일그러진 사운드 또한 서서히 아름다운 화음으로 피치를 바꾸고, 마지막으로는 장중한 기동 사운드를 울리며 사라졌다.

청각 접속 0K 메시지.

셋업 스테이지는 잇달아 체표면 감각，중력감각으로 건너가고，그에 따라 침대의 감촉과 몸의 무게감이 사라졌다.

그 외에도 각종 감각의 접속 테스트가 하나하나 이루어지면서 0K 마크가 늘어났다.

언젠가 풀 다이브 기술이 진보하면 이 과정도 대폭 단축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헤드기어가 내 뇌의 각 부위를 순차적으로 노크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침내 마지막 0K 메시지가 번쩍이고, 다음 순간 나는 암흑 속을 똑바로 떨어졌다.

이윽고 아래쪽에서 무지갯빛 고리가 다가오더니，그 안을 지나간 내 가상의 다리가 이세계에 사뿐히 착지했다.

ㅡ그래봤자 그곳은 아직 암흑에 휩싸인 계정 정보 등록 스테이지일 뿐이었다.

머리 위에 알브헤임 온라인의 로고가 나타 나고，동시에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로 웰컴 메시지가 울려버졌다.

나는 합성음성의 안내에 따라 계정 및 캐릭터 작성을 시작했다.

가슴 높이에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홀로그램 키보드가 나타나, 가장 먼저 신규 ID와 패스워드 입력을 요구했다.

SAO 시작할 때도 사용했던, 오랜 기간 애용해 손가락이 기억한 문자열을 재빨리 입력했다.

클라이언트를 다운로드하는 타입의 MMORPG라면 여기서 과금 방법 선택이 나타나겠지만, 패키지 구입형인 ALO에는 1개월 무료 플레이 기간이 설정되어 있었다.

이어서 캐릭터 이름 입력. 아무 생각 없이 《Kirito》라고 입력 하려던 나는 한순간 망설였다.

현실세계의 키리가야 카즈토가 아인크라드의 키리토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총무성의 구출팀，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렉토 사장 유우키 쇼조 씨, 그리고 그 스고우라는 자.

이에 물론 에길과，아직까지 눈을 뜨지 못한 아스나一.

아마도 그 정도일 뿐, 스구하나 부모님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SAO 세계에서 일어난 일, 특히 캐릭터 네임에 대해선 일체의 정보가 공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선 플레이어간의 전투가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그 결과 현실세계에서 수 많은 사람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이야기가 무제한으로 유포된다면 무시무시한 소송 사태가 일어날 것은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현재 법적으로는 SAO 사건에서 발생한 살인죄는 모두 행방불명된 카아=바 아키히코 한 사람에게 지워진 상태였다.

또한 플레이어 친족들의 배상 소송은 운영회사인 아가스를 상대로 이루어져, 그 결과 아가스는 해산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거의 카야바 혼자 업계 1위의 제작사로 성장시켰던 아가스를 스스로 박살내고 만 셈이지만，아무튼 앞으로 플레이어들 간에 소송이 일어나는 사태는 피하고 싶다는 것이 정부의 의향인 것 같았다.

스고우 노부유키에게 알려지는 것이 조금 불안하긴 했으나， 그렇게 눈에 띄는 이름도 아니므로 나는 망설임을 억누르고 키리토라는 이름을 입력했다.

성별은 물론 남성을 골랐다.

다음으로 합성 보이스가 캐릭터 작성을 요청했다.

그래봤자 초기 단계에선 종족 선택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용모는 무수한 파라미터를 랜덤으로 조합해 생성하며，취소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 나왔다.

정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게임 내에서 추가 요금을 지불해 다시 작성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뭐, 이 상황에 어떤 얼굴이 되건 딱히 가릴 이유는 없다.

플레이어의 분신인 캐릭터는 흔히 말하는 요정을 모티브로 한 아흡 종족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저마다 다소의 장단점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살라만더(Salamander), 실 프(Sylph), 노움(Gnome) 같은 RPG에서 흔히 봤던 이름을 비롯해, 캐트 시(Cait Sith), 레프러콘(Leprechaun)처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들도 있었다.

나는 진지하게 게임을 공략할 마음은 없으므로 어느 것이든 상관은 없었지만，검은색을 베이스로 한 초기장비가 마음에 들어서 《스프리건(Spriggan)》이란 종족을 선택해 OK 버튼을 터치했다.

모든 초기설정이 끝나고，『행운을 빕니다』라는 인공음성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다시 빛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설명에 따르면 각 종족의 홈타운에서 게임이 시작된다고 한다.

바닥이 감촉이 사라지고，붕 떠오르는 느낌에 이어 낙하 감각이 몰려왔다.

빛 속에서 서서히 이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깊은 어돔에 싸인 조그마한 마을 상공에 출현했다.

두 달 만에 맛보는 풀 다이브형 게임의 감각 자극이 가상의 전신 신경을 일깨워주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가늘고 긴 성으로 점점 다가갔다一.

그때.

느닷없이 모든 영상이 멈춰버렸다.

여기저기서 폴리곤이 깨져나가고, 시야 여기저기에서 번개 같은 노이즈가 내달렸다.

모든 오브잭트의 해상도가 모자이크처럼 감소하더니，세계가 녹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ㅡ뭐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一나는 다시 맹렬한 낙하 상태에 빠졌다.

한없이 넓은 어둠 속을, 끝없이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어떻게 된 거야아아아아아!”

내 비명은 공허하게 허무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중천에 걸린 거대한 달이 깊은 숲을 물 밑바닥처럼 푸르스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알브헤임의 밤은 짧지만, 서광이 오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 같았으면 기분 나쁘게 여겼을 심야의 숲,그러나 도망치고 있는 지금은 이 어둠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리파는 한층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까마득한 높이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천공을 오가는 불길한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억누른 목소리로 곁의 파티 멤버에게 속삭였다.

“날개가 회복되면 즉시 날아오를 테니까 준비해”

“뭐어一……? 난 아직도 현기증이 나는데……”

파트너는 처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도 멀미해? 한심해라……. 그만 좀 익숙해지란 말이야， 레콘.”

“그래봤자 무서운 건 무서운걸……”

리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싶은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큰 나무 줄기에 매달려 있는 레콘이라는 소년 플레이어는 리파와 현실세계에서도 친구 사이로，ALO一알브헤임 온라인도 같은 시기에 시작했다.

다시 말해 리파와 마찬가지로 약 1년의 경력이 있는 셈인데，아직도 비행 멀미를 극복하지 못했다.

공중전투 능력이 힘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ALO에서 한두번의 난전에 앓는 소리를 낸다면 솔직히 못미덥기 짝이 없다.

그렇다곤 하나，리파는 레콘의 그런 면이 싫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내버려둘 수 없는 동생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외견도 그런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