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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스트, 유능한 음악가예요."

"착각하지 말아, 진저. 천재 음악가다."

당당하게 말한 남자는 상당히 키가 컸다. 재스민 앞에 서도 약간 작을 정도일 뿐이니 190센티미터 정도가 아닐까.

고풍스러운 연미복에 딱 벌어진 어깨, 날렵한 허리, 팔다리도 길어 우아하고 당당한 체격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덤으로 이 자칭 천재 음악가는 얼굴의 반을 덮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무도회도 아닌데.

처음엔 얼굴에 흉터가 있는 걸까 싶었지만, 성형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조금 생각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재스민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상대의 눈을 읽어보려 했지만, 가면의 눈 부분에도 색유리가 들어가 있어서 표정을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은 입 뿐.

가늘고 양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 매끈한 입술에 미소를 지으며, 가면의 남자는 재스민에게 인사했다.

"이런 추악한 가면을 쓰고 인사드리는 걸 용서해주십시오. 이건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무슨 뜻이지요?"

"이 가면은 여성들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쓴 물건입니다. 물론 당신도 예외는 아니지요. 제가 맨 얼굴을 드러내면 당신은 한눈에 제게 매료되어 절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테니까요."

재스민은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렸지만, 예술가를 자칭하는 인간들 중에는 상당히 이상한 부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굳이 반론은 하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렇게 멋진 얼굴이라면 꼭 뵙고 싶은데요.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게 있어서 남편 이상의 남자는 이 공화우주 어디를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부디 가정의 평화가 지켜지기를."

느끼한 대사와 함께, 남자는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덮은 가면을 벗었다.

주위의 여성들이 숨을 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가면 아래에서 나타난 얼굴은 정말 아름다웠다. 꼭 본인의 착각만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재스민도 그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는 서른 살에 조금 못 미칠 정도. 감미롭고 우수 어린 얼굴이었다. 동시에 차갑고 화려한 느낌도 있다. 색소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하얀 피부 때문에 남성적인 미모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인상이었다.

가늘고 긴 눈에서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녹색 눈동자가 매혹적으로 빛난다. 이 시선을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얼굴을 붉히게 된다는 거겠지.

온몸에 감도는 퇴폐적인 분위기를 지성이 억누르며, 우수 어린 미소와는 반대로 뜨거운 정열ㅡ아마도 마이너스로 작용할 에너지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예를 들어 범죄자로 분류하자면 자신의 미학을 중시하는 천재형 악당.

재스민은 주위의 여성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그렇게 판단했다.

"과연. 남자 분께는 실례되는 말씀일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눈이 호강했습니다. 이런 가면으로 가려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네요."

"당신이야말로 실로 여왕의 풍채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 말과 함께 재스민의 손을 살짝 쥐고 손등에 키스를 한다. 이런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인간이었다.

천재 음악가가 사라진 뒤, 켈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한 채 재스민은 목소리를 낮춰 진저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사람이야, 저거?"

"보는 대로야. 얼굴하고 재능만은 아쉬울 게 없는 애인."

"정말 천재야?"

"그거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곡은 멋지게 써."

진저가 켈리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저 사람, 당신이 꽤 신경 쓰이나 봐요."

"쳐다도 안 봤는데?"

남편 대신 재스민이 대답하자, 진저는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은 못생긴 남자는 경멸하고 잘생긴 남자는 무시하니까. 저렇게까지 무시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말을 바꾸자면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닐까나."

재스민은 주위 사람들은 모를 정도로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한편 켈리는 재스민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이런 데에서 옛날에 알던 녀석을 만나게 될 줄이야."

재스민은 저도 모르게 눈을 치떴다.

그때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흔히 말하는 사랑과 감동의 대서사시였다.

원작은 20년 전에 발표되어 현재까지도 유명한 베스트셀러.

변경우주를 무대로 하는데다 스케일이 너무 커서 영화화는 불가능하다는 평을 받던 작품이라고 한다.

흔히 들리는 말이지만 이번 영화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총력을 기울였다.

이야기는 신분이 달라 결코 맺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여자는 술탄의 총희, 남자는 일개 유목민. 내란이 한창이 시대이다.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버린 두 사람은 수많은 장애와 박해를 극복하고 동란을 헤치며 1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겨우 맺어진다.

하지만 어차피 금지된 사랑, 두 사람은 권력과 모략에 의해 다시 헤어지고 남자는 필사적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으려 노력하지만 결국 힘이 미치지 못해 끝내 사막에 쓰러져 한스러운 최후를 맞는다.

남자의 죽음을 알게 된 여자는 남자를 가슴에 묻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스토리.

내용 자체가 어떤가는 별도로 치고, 연인을 그리며 사막에서 쓰러진 남자의 최후나 그 죽음에 괴로워하면서도 비장한 각오와 함께 생을 결의하는 히로인의 모습은 보는 사람을 충분하 감동시켰다. 무엇보다도 화면에 비친 진저는 실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시사회가 끝난 뒤 또다시 파티가 열렸다.

흥분한 초대객들은 저마다 진저의 연기와 감독의 비범한 재능을 칭찬했다.

이렇게 되면 기자들이 나설 차례이다. 주요 인사들에 들러붙어서 영화의 감상을 물어보고 다닌다. 물론 쿠어 부부도 그 대상이었다.

켈리나 재스민도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이 시점까지도 찰싹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기자 쪽이 할말이 없었는지, 이런 말을 던졌다.

"두 분은 꼭 이번 영화의 주인공 같군요."

"그건 곤란하네요."

재스민은 생긋 웃고 남편의 팔을 꼭 껴안은 뒤 그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말했다.

"저 영화처럼 이 사람이 죽어버리면 전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폭탄 같은 발언에 기자들이 와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먹.이.를 던져줄 건 없을 텐데. 조금 원망스럽게 생각한 켈리는 재스민의 허리에 두른 손가락을 살짝 굽혀서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러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재스민의 뒤꿈치가 켈리의 발등을 가격했다.

이 시사회장의 모습은 론드론 성계 전체에 생중계된다.

스테이션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 센트럴에도 잠깐의 시차를 두고 이 영상이 전송될 테지. 물론 생방송이 불가능한 다른 성계에도 나중에 기록영상이 일제히 날아간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남들은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게 상대의 옆구리를 꼬집고 발등을 밟으면서 얼굴에는 활짝 미소를 짓고 서로를 응시했다.

유리우스에는 진저의 저택이 있다.

자기 집에서 묵고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