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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얇은 진찰복을 거린 소녀가, 침대에서 윗몸을 일으킨 채, 이쪽으로 등을 돌려 어두운 창을 보고 있었다. 매끄럽고 긴 머리카락에, 흩날리는 눈송이가 엷은 빛을 전해주고 있었다. 가느다란 두 손은 몸 앞쪽에 놓여 있었으며, 그 안에 진청색으로 빛나는 계란 모양의 무언가가 안겨 있었다.

너브 기어. 언제나 소녀를 구속해 왔던 면류관이 그 역활을 다한 채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아스나."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소녀의 몸이 크게 떨러더니ㅡ꽃향기로 가득 찬 공기를 일렁이며, 돌아보았다.

길고도 긴 잡에서 갓 깨어나, 아직 꿈을 꾸는 듯한 빛을 머금고 있는 개암색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을 몇 번이나 꿈꾸었던가. 몇 번이나 기도했던가.

색이 엷은, 매끄러운 입술에 살며시 미소가 어렸다.

"키리토."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 그 세계에서 매일 귓가에 맴돌았던 목소리와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공기를 진동시키며 내 감각기관을 떨게 하고 의식 깊은 곳까지 닿는 그 목소리는 몇 배나, 몇 배나 아름다웠다.

아스나의 왼손이 너브 기어에서 떨어져 내게 뻗어 왔다. 그 것만으로도 상다항 힘을 써야 하는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눈 조각상을 건드리듯 살며시, 살며시 그 손을 감았다.

애처로울 정도로 가늘다. 하지만 따뜻하다. 온갖 상처를 치유해주듯, 맞닿은 손에서 온기가 배어들었다.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빠져, 침대 가장자리에 몸을 기댔다.

아스나는 오른손도 뻗어 조심스럽게 다친 내 뺨을 만지더니, 물어보듯 고개를 갸웃했다.

"응...... 마지막, 진짜 마지막 싸움이. 바로 조금 전에 끝났어. 다 끝난 거야......"

그 말과 동시에, 내 두 눈에서 결국 눈물이 넘쳐났다.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아스나의 손가락을 타고, 창바껭서 비쳐드는 빛을 받아 빛났다.

"......미안, 아직 소리가 잘 안 들려, 하지만......알 것 같아. 키리토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스나는 달래듯 내 뺨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그 목소리가 닿을 때마다 영혼이 떨렸다.

"다 끝난 거구나...... 이제 겨우...... 이제 겨우...... 널, 만났어."

아스나의 뺨에도 은색으로 빛나는 눈물이 흘러내려 떨어졌다. 젖은 눈동자로, 모든 의식을 전하려는 듯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우키 아스나라고 해요. ㅡ다녀왔어, 키리토."

나도, 오열을 참으며, 대답했다.

"키리가야 카즈토라고 합니다. ......어서 와, 아스나."

어느 쪽이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얼굴이 다가가고, 입술이 맞당았다. 가볍게, 다시 한 번 강하게.

팔은 가녀린 몸에 감고 꽉 끌어않았다.

영혼은 여행을 한다. 세계에서 세계로, 이번 생에서 다음 생으로.

그리고 누군가를 원한다. 강하게, 서로를 부른다.

옛날,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성에서 감사를 꿈꾸던 소년과, 요리가 특기였던 소녀가 만다,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이제 없지만, 그 마음은 긴긴 여행을 거쳐 마침내 다시 만났다.

나는 흐느끼는 아스나의 등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눈물로 떨리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한층 기세를 더하며 흩날리는 눈 너머로, 나란히 선 두 실루엣이 보인 것 같았다.

등에 두 자루의 검을 짊어진 검은 코트 차림의 소년.

허리에 은빛 세검을 매단, 하얀 바탕에 붉은 기사복 차림의 소녀.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는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9】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과제 파일 25와 26을 전송할 테니 다음 주까지 업로드하세요."

종소리를 본뜬 차임이 오전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고, 선생님이 대형 패널 모니터의 전원을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넓은 교실에 이완된 공기가 흘렀다.

나는 단말에 꽂은 구식 마우스를 조작해 다운로드된 과제 파일을 열어 잠깐 흝어 보았다. 보람이 철철 넘쳐날 것 같은 길고 긴 문제지의 한숨을 쉰 후, 마우스를 뽑고 단말을 닫아 한꺼번에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이놈의 차임은 아인크라드 제1플로어 시작 도시의 성당 종소리와 너무 똑같다. 그걸 알고도 이 음색으로 설정해 놓은 것이라면, 이 학교를 설계한 사람은 상당한 블랙유머 센스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래도 날나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아무도 그런 데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실을 나가 카페테리아로 걸어간다.

가방의 지퍼를 당겨 어깨에 걸치고 일어나려 했을 때, 옆자리의 친한 남학생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 카즈. 식당 갈 꺼면 자리 좀 맡아줘."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클래스메이트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무리무리. 오늘은 카즈가《공주님》을 뵈러 가는 날이잖아."

"아, 그렇구나. 젠장, 좋겠다."

"음, 뭐 그렇게 됐어. 미안해."

녀석들의 여느 때와 같은 푸념이 시작되기 전에 이탈하기 위해. 나는 손을 혼들고 재빨리 교실을 빠져나갔다.

연녹색 패널이 붙은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비상구를 통해 안뜰로 나가, 겨우 점심시간의 소란에서 멀어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들반들한 벽돌이 깔린 작은 길이 산록으로 우거진 나무들 사이를 지나 뻗어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교사를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낸 무뚝뚝한 의견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통페합 덕에 빈 교사를 재활용한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캠퍼스였다.

녹색 터널을 빠져나가듯 몇 분 정도 걸어가자 원형의 작은 정원이 나타났다. 화단이 풍부하게 배치된 가장자리에는 원목 밴치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 한 여학생이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짙은 녹색을 기조로 한 블레이저 교복 뒤로 긴 갈색 머리가 반듯하게 흐르고 있다. 피부색은 투명할 정도로 하얖지만, 요즘 들어서는 뺨에 장미 같은 붉은 기운이

돌아오고 있었다.

검은 롱 삭스를 신은 가느다란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쭉 뻗은 채 구두 끝으로 토닥토닥 벽돌을 두드리며 열심히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워, 나는 정원 입구에 멍하니 선 채 나무줄기에 손을 대고 말없이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소녀는 문득 이쪽을 돌아보더니, 나를 발견한 순간 화악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새치롬한 표정으로 눈을 감더니 고개를 홱 돌린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밴치에 다가가 말했다.

"오래 기다렸지, 아스나."

아스나는 나를 흘끔 올려다보더니 입술을 비죽거렸다.

"차암, 왜 키리토는 만날 숨어서 몰래 엿보는 거람."

"미안미안, 으음~, 어쩌면 나, 스토커 소질이 있을지도?"

"에엑......"

이마를 찡그리며 몸을 빼는 아스나의 곁에 털썩 주저않아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아아...... 지쳤다아...... 배 고프다아......"

"어째 꼭 아저씨 같아, 키리토."

"실제로 요즘 한 달 동안 다섯 살은 먹은 기분인걸...... 게다가ㅡ."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아스나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키리토가 아니라 카즈토. 여기선 캐릭터 네임을 꺼내는 건 매너 위반이잖아ㅏ."

"아, 그랬지. 나도 모르게...... 가만, 그럼 난 어떡하고! 다 들통 날 거 아냐!"

"본명을 캐릭터 네임으로 하니까 그렇지. ......뭐, 나도 어깨 다 들통 난 것 같지만......"

이 특수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사건에 휘말려든 옛 SAO 플레이어들이다. 적극적인 살인 경력이 있는 본격 오렌지 플레이어들은 카운슬링이 필요하다고 해서 1년 이상의 치료와 경과 관찰의 의무가 부여되었지만, 나를 포함해서 방어를 위해 다른 플레이어에게 손을 댔던 사람은 적지 않았으며, 도둑질이나 공갈과 같은 범죄행위는 기록에 남지 않기 때문에 체크할 방법도 없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아인크라드의 캐릭터 네임을 꺼내는 것은 기피되고 있지만, 어차피 얼굴리 SAO 시절과 거의 똑같이 않은가. 아스나는 입학하자마자 들킨 모양이고, 나도 일부 옛 상층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옛날 별명을 포함해 상당한 부분이 드러나고 만 상태였다.

애초에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도저히 무리가 있다. 그 세계에서 체험했던 일들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며, 그 기억에 대해서는 각자가 알아서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무릎 위에서 조그만 등나무 바구니를 끌어안고 있는 아스나의 왼손을 가만히 쥐고 두 손으로 감쌌다. 아직도 많이 가늘지만, 눈을 갓 뜬 직후에 비하며 제법 살집이 잡혔다.

입학 시기를 맞추기 위해 자활치료를 상당히 가혹하게 받았다고 들었다. 목발 없이 걷게 된 것도 극히 최근으로, 지금도 뛰는 것을 포함한 운동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눈을 뜬 후로도 나는 빈번하게 병원을 방문했지만, 이를 악물로 눈물을 글썽이며 보행훈련을 받는 아스나의 모습에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프믈 느꼈다. 그 무렵을 떠올린 나는 어느샌가 아스나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살며시, 몇 번이고 쓰다듬고 있었다.

"......키리토."

그 목소리에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