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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누군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신경에 거슬리는 기계류도 없다.

혹시 싶어 좌우상하의 방도 살펴봤지만 양옆은 빈 방이고 아래쪽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가족, 윗쪽 방에서는 두 개의 열원이 침대 위에서 격렬하게 엉켜 있었다. 뭘 하고 있는지는 명백했다.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돌려 왼쪽 육안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여기까지 천천히 걸어왔지만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도 15분.

이런 정체불명의 제안은 무시하는 편이 낫다. 그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안전하고 확실한 길만 골라서 다니는 건 재미가 없어서 성질에 맞지 않는다. 자신도 곤란한 버릇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가끔은 일부러 위험한 카드를 뽑아보고 싶어지곤 한다.

오전 1시 10분 전, 502호의 문이 열렸다.

들어선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당당한 체구와 평균 이상의 신장으로 미루어 보면 그 여자 본인이 틀림없다.

그 사람은 곧바로 내선전화를 들고 두세 마디 말을 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심심한 듯이 소파에 앉으며 다리를 꼰다.

5분도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왜건을 밀고 종업원용 엘리베이터로 올라와 502호실로 들어갔다.

녹색으로 빛나는 사람 모양의 그림자는 안주처럼 보이는 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술잔 두 개를 준비한다. 그리고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통을 꺼낸 뒤, 손놀림으로 볼 때 절대로 싸구려는 아닐 것 같은 술을 올려놓고 공손하게 인사한 뒤 방에서 나갔다.

방에 남겨진 사람은 얼음에는 손도 안 대고 아무렇게나 술병을 기울였다.

여기까지 확인한 켈리는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면 현관으로 당당하게 들어가 프런트를 통과해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502호실의 벨을 울린 것은 약속 시간 3분 전이었다.

거의 즉시 문이 열리고 그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신장 196센티미터의 켈리에게는 여태껏 여자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아래를 내려다보았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시선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똑바로 앞을 보고 서 잇는데도 거의 정면에 상대의 얼굴이 있다는 상황은 참으로 신선한 느낌이었다.

저도 모르게 웃으면서 물었다.

"여자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여자는 한 손으로 문을 잡고 있다가 씨익 웃었다.

"191. 아니면 나이야?"

"아니. 대답이 빨라서 좋군."

도저히 쓴웃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다른 여자가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난폭하고 건방진 태도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경쾌하게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정말로 이상한 여자였다.

밝은 곳에서 보니 여자의 머리는 불타는 듯한 붉은 색이었다. 꼬불대는 곱슬머리에 여기저기 금색이 섞여 있어 더욱 그렇게 보인다.

큰 눈은 회색 아니면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