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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지와 VRMMORPG──《건 게일 온라인》을 만났다.

겨우 호흡과 맥박이 가라앉기 시작해 시노는 살짝 눈을 떴다.

침대에 엎드린 채 왼뺨을 배개에 얹은 시노의 시선 끝에 가늘고 긴 거울이 있었다.

거울 안에서는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은 소녀가 이쪽을 보고 있다. 약간 지나치게 마르고 눈만 큰 것 같았다. 코는 작고 입술로 도톰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양이 부족한 새끼고양이 같은 인상이다.

황야의 저격수 시논과는 체격과 머리 양옆을 묶어 놓은 쇼트커트라는 머리모양만 비슷하고, 그 외에는 무엇 하나 유사점이 없었다. 시논은 말하자면 사나운 살쾡이였다.

극도로 겁을 먹으면서도 GGO에 처음으로 로그인해 영문도 모른 채 전장에 끌려 나갔을 때, 시노는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했다. 현실세계의 일본과는 한참 동떨어진, 너무나도 어세계 같은 풍경 덕인지──그 세계에서는 어떤 총기를 건드려도, 아니, 그것으로 다른 플레이어를 쏘아 쓰려뜨려도 다소의 긴장을 느끼는 정도일 뿐, 그 지긋지긋한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시노는 드디어 그 기억을 넘어설 방법을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GGO를 플레이한 후로는 총기의 사진을 보는 정도라면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쿄지와 GGO 내부의 총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지금의 시노는 반년 전 손에 넣은《헤카테 Ⅱ》라는 이름의 거대하고도 흉악한 라이플을 사랑하기까지 했다. 동갑내기 여학생들이 애완동물이나 인형을 대하듯, 매끄러운 총신을 쓰다듬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으며, 둥그스럼한 개머리판에 뺨을 기대면 온기도 느껴졌다.

이 아이와 함께 가상의 황야에서 싸워 나간다면 언젠가는 상처가 아물고 공포도 사라지리라 그렇게 믿고 무수한 몬스터, 무수한 플레이어를 필살의 총탄으로 날려버렸다.

그러나.

──정말로? 정말로, 그래도 되는 걸까?

마음속으로 되묻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논은 이미 수만 명의 GGO 플레이어들 가운데 상위 30명에 속하는 존재였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자는 그녀 외에 아무도 없다고까지 하는 안티 메터리얼 라이플을 자유로이 다루며, 스코프에 포착한 적에게는 그 누구라 하더라도 확실한 죽음을 안겨줄 수 있다. 얼음 같은 마음을 가진 전사, 과거의 시노가 열망하던 존재 가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현실의 시노는 여전히 모델건 하나 손에 들지 못한다.

정말로...... 정말로, 이러면 되는 걸까?

거울 속 소녀의 눈동자는 안경 너머에서 당황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작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안경의 렌즈는 도수가 없다. 시력교정용이 아니라《방어구》이기 때문이다. 강인한 NXT 폴리머 렌즈는 설령 총탄이 명중하더라도 깨지지 않는다──고 광고지에는 적혀 있었다. 정말인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생활비를 쪼개 만든 안경은 시노에게 작은 안도감을 주었다. 이젠 밖에 나갈 때는 항상 차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말해 시시한 장신구에 외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질끈 눈을 감자 또다시 미약한 질문이 가슴에 솟아났다.

누가......, 구해줘...... 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아무도 구해줄 사람은 없어!!

연약한 목소리를 떨쳐내듯 속으로 외치며 시노는 몸을 일으켰다. 시선 너머, 침대 옆의 작은 테이블 위에 어뮤스피어의 은색 고리가 빛나고 있었다.

아직 부족할 뿐. 문제는 그것뿐이다.

시논보다도 강한 거너(gunner)들이 저 세계에는 아직도 21명 사람의 최강자가 되어 황야에 군림하는 그날이 온다면──!

시노는 시논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이 세계에서도 진정한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남자》와《그 총》은 이제까지 시논이 쓰러뜨렸던 무수한 타깃 속에 묻혀 두 번 다시 기억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시노는 에어컨의 리모컨을 들어 약한 난방을 켜고는 교복 윗도리를 단숨에 벗어던졌다. 스커트도 벗고, 같이 바닥에 내팽개쳤다. 마지막으로 하늘색 안경을 벗어 책상 옆에 살짝 내려 놓았다.

침대에 똑바로 누운 채 어뮤스피어를 들어 머리에 뒤집어 썼다.

손으로 더듬어 전원을 켜고 스탠바이 완료를 알리는 어렴풋한 전자음이 울리자마자 입을 열었다.

"링크 스타트."

중얼거린 목소리는 울다 지친 어린아이처럼 미덥지 못하게 갈라져 있었다.

【5】

브라우저를 기동하는 것과 동시에 시작 URL로 설정된 사이트에 자동 액세스가 이루어져, 몇몇 텝 윈도우가 여러 겹으로 표시되었다.

모두 건 게일 온라인 관련 사이트로, 특히《사총》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곳을 중심적으로 모아 놓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3D 마우스를 조작해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이트를 활성화시켰다. 톱 페이지에는《사총 관련 정보》게시판이 있었으며, 사총이라는 글자만 붉은색으로 표시되었다.

우선 이력을 흝어보고, 오늘 밤에는 아직 관리인이 정보 갱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게시판으로 이동했다. 어젯밤 체크했을 때 이후로 몇몇 글이 올라왔는지, 기사 트리 여기저기에《NEW》마크가 깜빡이고 있었다. 순서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젝시드랑 명란젓이 영 접속을 안 하네요. 벌써 한 달 됐나? 이러다 계정 짤리는 거 아냐? 누구 오프에서 연락하는 사람 없나? 정보 있으면 투하 좀 ㄱㅅ.

──없다니깐. 스쿼드론 멤버들 중에도 오프에서 트고 지내는 사람 없다고 그랬잖아. 솔까 GGO에서 개인정보를 누설하는건 바보 아님?

──사총에게 맞은 날짜랑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 죽은 VRMMORPG 플레이어가 있는지 뉴스 검색해보면 되지 않나?

──님이야말로 검색 쩜. 그 얘기도 옛날부터 계속 나왔거든요? 자취하다 죽으면 알 사람도없고, 경찰에 물어봐도 안 가르쳐 준다고 했거든요? 참고로 안 되는 영어로 재스커에 물어 봐도 유저 개인정보에 관해서는 어쩌구 하는 복붙 메일밖에 안 왔음.

──역시 잭시드랑 명란젓의 은퇴 기념 이벤트 아닐까요? 님들아 이제 그만 나오시죠? 슬슬 재미도 떨어져 가는데.

──결국 누가 몸으로 검증해볼 수밖에 없지 않나? 내일 23시 30분에 글록켄 중앙은행 앞에서 빨간 장미를 가슴에 꽂고 기다릴 테니 사총님이 날 쏴보셈.

──오오 용자 오오. 근데 죽기 전에 본명이랑 주소를 밝혀야 하는 거 아닌가?

──어디 다이브 카페에서 공개 다이브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

《그》는 짜증이 나 혀를 찼다. 마우스의 휠을 돌려 다음 윈도우를 활성화했다. 그러나 어느 게시판이나 정보 사이트를 뒤져봐도《그》가 바라는 종류의 기사나 게시물은 보이지 않았다.

당초의 예정으로는 두 번째 죽음을 내린 순간부터《사총》의 힘은 진짜가 아닐까 하는 소문이 온라인을 휩쓸고, GGO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해 게임을 그만두는 자들이 속출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리석은 온라인 게이머들은 아직까지《사총》이 내리는 진정한 공포를 알지 못한 채 농담처럼 떠들어댈 뿐이었다. GGO의 회원 수도 거의 줄어들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 현실세계에서《젝시드》와《싱거운명란젓》의 죽음이 전혀 보도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계산하지 못했던 요소였다. 아마 도쿄 안에서만 하루에도 상당한 숫자의 변사사건이 있는 만큼, 명백한 범죄성이 엿보이지 않는 케이스는 뉴스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그》는 직접 총격을 가한 두 사람의 심장이 현실세계에서도 확실하게 정지했으며,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사총》이 가진 힘이니까.

그 정보를 정보 사이트의 게시판에 투고할까 하는 유혹은 강렬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보원을 밝히는 것은 아무리《그》라 해도 어려웠으며, 애초에 그런 짓을 한다면《사총》의 전설성이 희미해지고 만다. 《사총》은 그 황야에 군림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절대강자. 운영업체의 힘마저 능가하는 진정한 자신이니까.

──뭐, 됐어.

《그》는 깊이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 곧 세 번째《불릿 오브 블리츠》가 개최된다. 《사총》은 그 본선에서 두 사람, 가능하다면 세 사람의 목숨을 더 끊을 예정이었다. 물론 예선은 그 총의 힘을 쓰지 않고 돌파해야겠지만, 그날을 위해 1일 20시간에 이르는 로그인으로 단련한 스탯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BoB의 주목도는 절대적이다.《MMO 스트림》이 방송하는 실시간 중계방송은 GGO만이 아니라 다른 VRMMORPG 플레이어들도 많이 시청한다. 그 커다란 무대에서 명실공히 최강자로 군림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총에 맞는 사람이 또다시 온라인에서 모습을 감춘다면 이제《사총》의 힘을 의심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만한 주목을 받는다면 역시 현재의 계정은 쓸 수 없게 되겠지만, 상관할 것 없다. 그 총만 있다면 새로운《사총》이 황야에 강림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죽인다. 예정으로는 제물의 수는 일곱 명까지 늘어날 것이다. 그 무렵에는 이미 게임을 접는 플에이어가 속출할 테지. 마침내 건 게일 온라인이라는 타이플 그 자체가 죽음에 이를 거고.

이리하여《사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