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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너무 길어서 좀 걱정됐어. 접속해보면 언제나 온라인이라서."

"낮에는 착실하게 공부하는걸. 이런 건 맺고 끊는 게 중요한 법이야."

"그렇게 오래 접속했으면 돈도 꽤 많이 벌었겠네~?"

"......그렇지도 않다니까. 어질 타입은 솔로 사냥도 힘들어서......"

또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시노는 황급히 끼어들었다.

"뭐, 접속료만 벌 수 있다면 충분하지, ......미안, 나 그만 가봐야겠다."

"아, 그렇구나. 아사다는 식사도 직접 만들어야 하니까. 다음에 또 얻어먹고 싶다."

"어, 으, 응, 그래. 조만간...... 좀 더 실력이 나아지면."

시노는 다시 당황했다.

딱 한 번, 쿄지를 집에 초대해 자작 저녁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었다. 식사 그 자체는 즐거웠으나, 테이블을 끼고 식후의 차를 즐기는 동안 점점 쿄지의 눈빛에 열기가 맺히는 것을 보고 다소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온라인 게임 폐인에 총기 마니아라고 해도 남자는 남자이며, 혼자 자취하는 집에 초대한 것은 다소 경솔했다고 반성했다.

쿄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나누는 대화는 시노가 현실세계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극히 드문 한순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는, 그 기억을 이겨낼 때까지는.

"잘 먹었어. 그리고...... 정말 고마워. 구해줘서. 멋있었어."

일어나면서 시노가 말하자, 쿄지는 표정을 풀며 머리를 긁었다.

"언제든 지켜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기 말이야...... 학교에서 돌아올 때...... 내가 마중 나갈까?"

"아, 아니, 괜찮아. 나도 강해져야 하는걸."

그렇게 대답하고 시노가 웃자, 쿄지는 다시 한 번 눈부신 것을 보듯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랜 기간 찌든 빗물 때문에 드문드문 검게 변색된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갔다.

두 번째 문이 시노가 혼자 사는 아파트였다. 스커트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구식 전자자물쇠에 꽂았다. 조그만 패널로 네 자릿수 암호를 입력하고 열쇠를 돌리자, 찰칵 하는 금속성이 무겁게 울려 펴졌다.

싸늘하고 어두컴컴한 현관에 들어서서 손을 뒤로 돌려 문을 닫는다.

록 레버를 돌려서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는 알람을 들은 후. 시노는 소리 없이 "다녀왔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물론 대답할 사람은 없다.

매트를 깐 현관을 들어서자 가늘고 긴 공간이 3미터 정도 뻗어 있다. 오른쪽이 욕실을 겸한 화장실 문, 왼쪽이 조그만 부엌. 슈퍼마켓에서 사온 채소와 두부를 싱크대 옆의 냉장고에 넣은 후 안쪽의 세 평짜리 방으로 들어간 시노는 살짝 숨을 내쉬었다. 커튼 너머로 비쳐드는 마지막 저녁 햇살을 조명 삼아 벽의 스위치를 더듬어 불을 켰가.

장식이라고는 거의 없는 방이었다. 장판을 깔아놓은 바닥. 무늬 없는 아이보리 색 커튼. 여기에 오른쪽 벽에 붙여 놓은 검은 파이프 침대와 그 안쪽으로 늘어선 같은 색의 공부용 책상, 반대쪽 벽가에 세워진 조그만 옷장과 책장, 전신거울이 주된 세간이었다.

통학용 가방을 바닥에 놓고 하얀 머플러를 풀었다.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머플러와 함께 좁은 옷장 안으로, 검은색에 가까운 세일러복에서 광택 있는 암녹색 스카프를 풀고 왼쪽 옆구리의 지퍼를 내렸을 때, 시노는 손을 멈추고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방과 후에는 이것저것 일이 많았지만, 엔도 일당의 위협에 정면으로 맞섰던 것이 조그만 자신감을 가슴속에 남겨주었다. 발작을 일으킬 뻔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서 있었다.

게다가 이틀 전, GGO에서 이제까지 만난 사람 중 최강의 적은 사투 끝에 격파했던 것도 한층 강한 화력으로 가슴을 달구어주는 것 같았다.

그 베히모스라는 사내는 파티전에서는 무적이라 불린다고 신카와 쿄지가 가르켜주었다. 그 전설도 결코 과장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될 만큼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가진 상대였다. 전투 중에 시노 / 시논은 몇 번이나 패배와 죽음을 각오했으나──마지막에는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어쩌면......

어쩌먼, 지금이라면, 그 기억과 정면으로 맞서, 무릎을 꿇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노는 움직임을 멈춘 채 가만히 책상 서랍을 노려보앗다.

수십 초 후, 오른손에 들고 있던 스카프를 침대 위에 던지고 재빠르게 책상으로 다가갔다.

몇 번 심호흡을 해서, 척추 부근에서 굼실거리는 두려움을 씻어냈다.

세 번째 서랍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치고 천천히 열었다.

안에는 핅용구 같은 것을 분류해서 담아둔 조그만 박스가 나란히 들어 있었다. 손잡이를 서서히 당기자 그 뒤쪽이 조금씩 드러났다. 박스들이 다 나오고, 마침내《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둔중한 검은색으로 빛나는 조그만──장난감.

플라스틱 제 모델건이다. 그러나 구조는 매우 정밀하게, 가느다란 헤어라인 마무리가 된 표면은 금속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심장 박동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를 억누르려 하면서 시노는 오른손을 뻗었다. 조심스럽게 총의 그립을 건드리고, 쥐고, 들어 올린다. 묵직한 손맛. 방 안의 냉기를 빨아들여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다.

이 모델건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권총을 본떠 만든 것이 아니다. 그립은 실용적인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형 트리거 가드 바로 위에 커다란 총구가 튀어나와 있다. *불펍 양식인지 방열구가 뚫린 무뚝뚝한 기관부는 그립 약간 뒤쪽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총의 이름은《프로키온 SL》.건 게일 온라인에 등장하는 광학총이다. 카테고리로 보면 핸드건이지만 전자동 연사도 가능하므로 PvE 전투용 보조무장으로 인기가 높다.

시논도 글록켄 시의 보관고에 한 자루를 넣어두었지만, 현실의 시노가 가진 이것은 직접 구입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시판하는 물건도 아니라고 한다.

두 달 전에 치러진 불릿 오브 블리츠 본선에 진출해 22위에 오른 며칠 후의 일이었다. 시노의 게임 계정 앞으로 GGO의 운영업체인《재스커》에서 영문 메일이 도착했다.

어렵게 내용을 해석해보니, BoB 본선 참가경품으로 게임 내에서 상금이나 아이템을 받을 것이냐, 오프라인에서 프로키온 SL의 모델건을 받을 것이냐 선택하라는 내용인 것 같았다.

장난감이라고는 해도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총을 받을 수 있겠는가 싶어 즉시 게임 내의 상금을 선택하려 했으나, 시노는 문득 생각했다.

GGO를 플레이하는《충격요법》의 효과를 확인하려면 언젠가 현실세계의 총의 모형을 접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모델건을 구입하는 것은 심리적인 허들이 너무나도 높았으며, 쿄지에게 부탁하면 기꺼이 빌려주겠지만 받아든 순간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것도 저어되었다. 온라인 통판이 제일 현실적이지만 온라인 숍에서 총의 이미지를 보는 것조차 속이 불편해져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물론 금전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GGO 운영업체가 무료료 모델건을 보내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감 직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시노는 현실세계에서 참가상을 받기로 했건 것이다.

일주일 후, EMS로 묵직한 소포가 도착했다.

개봉을 결심하는 데 2주가 더 걸렸다.

하지만 그때 일어난 반응은 크게 배신한 것이었다.

시노는 이를 책상 서랍 안쪽 깊이 집어넣고는 기억조차도 머리 한구석에 치워 놓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시노는 다시 프로키온을 손에 들고 있다.

총의 냉기가 오른쪽 손바닥부터 시작해 아래팔을 지나 어깨를 거쳐 몸 안쪽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수지로 만든 모형인데도 생각보다 무거웠다. 시논일 때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돌렸던 핸드건이 시노에게는 사슬로 지면에 고정된 것만 같았다.

손바닥에서 체온이 빠져나감에 따라 총은 오히려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식은땀에 축축하게 젖은 그 미적지근한 감촉 속에서 시노는 누군가 남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의?

그것은...... 그 남자.

이미 고동은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으며, 싸늘한 혈액이 소리를 내며 온몸을 휘몰아쳤다. 방향감각이 흐릿해져갔다. 발밑의 바닥이 기우련서 물컹물컹해졌다.

하지만 시노는 총의 새까만 광택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코앞에 들이대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귀울림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침내 찢어지는 절규로 바뀌었다. 어린 소녀의, 순수한 공포에 물든 외침.

비명을 지르는 것은 누구?

그것은............, 나.

시노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현실세계의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진이나 영상으로조차 아버지라는 인물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타계한 것은 시노가 두 살도 되지 않을 때였다고 한다.

그날 아버지와 어머니. 시노 세 가족은 연말을 외가에서 보내기 위해 자동차로 토호쿠의 어떤 현 경계에 위치한 경사면을 따라 편도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쿄에서 출발하는것이 늦어지는 바람에 시작은 이미 11시를 지났다.

사고의 원인은 현장의 스키드 마크를 통해, 커브를 제대로 돌지 못하고 대항차선에서 튀어나온 트럭으로 결론이 났다.

트럭 운전수는 앞 유리창을 뚫고 노면에 튀어나와 거의 즉사.

오른쪽 측면을 직격당한 소형차는 가드레일을 넘어 산의 경사면으로 떨어지다가 두 그루의 나무에 걸쳐진 채 정지했다.

그 시점에서는 운전하던 아버지는 의식불며의 중상을 입었으나 즉사하지는 않았다. 조수석의 어머니도 다친 곳은 왼쪽 대퇴골의 단순골절뿐이었고, 뒷좌석의 어린이용 카시트에 단단히 밸트로 고정되어 있었던 어린 시노는 거의 멀쩡했다. 하지만 당시의 기억은 한 조각도 없다.

불운이었던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