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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네게 돈 빌려줄 생각 없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시노는 대답했다.

확고한 거절은 또 다른 적의와 공격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요구에 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도망치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가 엔도 일행이라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약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다. 강해지고 싶다. 그것만을 생각하며 5년을 지냈다. 여기서 꺾인다고 그 노력이 허사가 된다.

"너, 이게......, 사람이 우습게 보여?"

오른쪽 눈가를 꿈틀꿈틀 경련시키며 엔도가 한 걸음 다가왔다. 나머지 두 사람은 재빠르게 시노의 뒤로 돌아와 지근거리에서 에워쌌다.

"──이젠 갈 거야. 거기 비켜."

시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제아무리 화난 척하더라도 엔도 일행에게 실제로 행동을 일으킬 만한 배짱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들도 집에 돌아가면 나름대로 평범하고 착한 아이들인 것이다. 경찰에 끌려가는 것도 이제는 질렸을 테고.

그러나.

엔도는 시노의 약점──어디를 자극하면 쉽게 피가 흘러나오는지, 그 포인트를 잘 알고 있었다.

요란한 색으로 빛나는 입술에 조롱하는 듯한 웃음이 맺혔다.

엔도는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오른손을 들어 시노의 안경 브리지로 가져가더니, 주먹에서 검지와 엄지만을 뻗어, 어린아이들이 권총 흉내를 낼 때의 모양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유치한 캐리처켜.

하지만 겨우 그것만으로도 시노의 온몸에는 냉기가 흘렀다.

두 다리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평형감각이 멀어져 갔다. 골목길의 광경이 색깔을 잃고, 얼굴 바로 앞에 들이댄 엔도의 손가락에서, 번들번들 빛나는 긴 손톱 끝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심박의 가속에 따라 고주파와도 같은 귀울림이 점점 높아지고......

"빵!"

느닷없이 엔도가 외쳤다. 그 순간 시노의 목에서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속에서 떨림이 치밀러 올라 멈출수가 없었다.

"킥킥......, 야, 아사다~."

손가락을 들이댄 채 엔도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오빠가 있지, 모델건을 몇 자루 가지고 있는데, 다음에 학교에서 보여줄까? 너 좋아하잖아? 피스톨."

"..........."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물기가 말라붙은 입 안에서 조그맣게 오그라들고 말았다.

시노는 가늘게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서 느닷없이 진짜 모델건을 봤다간 그 자리에서 졸도해도 이상하지 않다. 상상한 것만으로도 위장이 수축되어 참지 못하고 몸을 꺾었다.

"야, 야, 토하면 않돼, 아사다~."

뒤에서 웃음으로 물둔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였더라? 세계사 시간에 네가 토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잖아."

"뭐, 이 근처에서 최한 아저씨들이 자주 그러긴 하지만."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망치고 싶다. 멀리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상방된 두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쾅쾅 메아리쳤다.

"일단은 지금 가진 돈만 내놓으면 봐줄게. 아사다가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까."

오른손에 들고 있던 가방으로 엔도가 손을 뻗었으나,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생각하면 안 된다. 떠올리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기억의 스크린에 검은 광택이 되살아났다.

묵직하고 번들번들 젖은 쇠의 감촉.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

그 순간 등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요! 경찰 아저씨, 빨리요!"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그 순간 엔도의 손이 가방에서 떨어졌다. 세 사람은 쏜살같이 전방으로 뛰어나가 아케이드의 인파 속으로 잽싸게 모습을 감추었다.

이번에야말로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 시노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열심히 호흡을 가다듬고 발작의 조짐을 밀어내려 했다. 조금씩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소음이며 슈퍼마켓 앞에서 흘러나오는 닭꼬치 냄새가 돌아와, 플래시백할 뻔했던 악몽을 멀리 밀어내주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윽고 등 뒤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아사다?"

마지막으로 한 차례 크레 숨을 내쉬고, 시노는 움츠러든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안경을 고쳐 쓰면서 돌아보자, 마르고 체구가 작은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바지에 나일론 점퍼를 입었으며, 어깨에는 진녹색가방. 검은 야구모자를 눌러쓴 얼굴의 윤곽은 둥그스름해 사복 차림이었으면 중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두 눈 언저리에 깃든 짙은 음영은 어린 인상을 지워주고 있었다.

시노는 소년의 일므을 알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최소한 적은 아닌 존재이며, 이곳이 아닌 또 다른 세계에서는 전우라 해도 좋은 사이였다.

간신히 가슴이 진정된 것을 느끼며 시노는 살짝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괜찮아. 고마워, 신카와. ──그런데, 경찰은?"

그의 뒤를 살폈지만 어스름한 골목길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누가 나타날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신카와 쿄지는 모자 위로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거짓말이었어. 드라마나 만화 같은 데서 흔히 나오잖아.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 잘 먹혀서 다행이야."

"............"

시노는 약간 어이가 없어서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순간에 잘도 그런 연극을 할 수 있었구나. 여긴 무슨 일이야?"

"응, 저기 오락실에 있었어, 뒷문으로 나오다가 보니까......"

쿄지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길에 인접한 빗물 얼룩투성이 콘크리트 벽에 정말로 조그만 은색 문이 보였다.

"그놈들이 아사다를 에워싸고 있더라고, 정말로 경찰에 신고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니야,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다시 시노가 미소를 짓자 쿄지도 잠시 표정을 풀었다가, 금세 걱정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사다, 이런 일이...... 자주 있어?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학교에 보고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래봤자 도움도 않 돼. 괜찮아,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으면 정말로 경찰에 갈 테니까. 게다가 내 걱정보다도 너는...... 괜찮겠어?"

"응......, 난 괜찮아. 그놈들하고는 이제 얼굴로 마주하지 않으니까."

몸집이 작은 소년은 이번엔 약간 자조하듯 웃었다.

신카와 쿄지는 여름방학이 전까지는 시노의 급우였다. '였다'고 하는 이유는 2학기 이후로 학교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문으로 알게 된 정도지만, 쿄지는 그가 소속되어 있던 축구부에서 상급생들에게 매우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체격이 작은 데다 집이 큰 병원을 경영한다는 이유로 절호의 표적이 된 것일까. 금전적으로도, 엔도네 일당처럼 노골적이지는 않다 해도 음식이나 유흥비를 대신 지불하게 하는 형식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의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쿄지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처음 서로 알게 된 것은 지난 6월, 근처의 구립도서관이었다.

시노는 2층의 열람실에서『세계의 총기』라는 타이틀의 커다란 화보집을 들춰보고 있었다.

그 무렵에는 사진이라면 간신히 발작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까지는 진정이 되었다.

그래도《그 총》이 실린 페이지를 10정도 바라보고 있으려니 한계에 달해 황급히 책을 덮으려 했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총 좋아해요?

그 말을 한 사람이 같은 반 학생이었다는 것은 잠시 후에야 깨달았다.

시노는 대뜸 말도 안 된다, 그 반대다, 라고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상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