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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거림과 동시에 시논은 방아쇠를 당겼다.

명계의 여신이 내민 손끝이, 이 세계에서 탄환 한 발당 가장 큰 에너지를 간직한 빛의 창을 뿜어냈다.

그것은 베히모스의 얼굴에서 동체까지 한순간에 거대한 구멍을 뚫었으며, 건물의 잔해가 뒤섞인 지면 깊은 곳까지 파해쳤다.

그 직후 폭발과도 같은 충격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베히모스의 거구는 원통형으로 분해, 확산되었다.

【4】

교문을 나선 순간싸늘하고 매마른 바람이 뺨을 때렸다.

아사다 시노는발을 멈추고 하얀 머플러를 단단히 다시 감았다.

셀 프레임 안경을 쓴 얼굴을 반 이상이나 천으로 감추고 나 서야 다시 걷기 시직한다. 마른 낙옆이 쌓인 인도를 종종걸음 으로 나아가며 숙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고등학교 생활 3년의 총 수업일수 608일 중 156일 이 지났구나.

이제야 겨우 4분의 1.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에게 주어진 고 행의 끔찍한 길이에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을 계 산에 넣는다면 이미 60퍼센트 가까운 나날이 과거로 지나간 셈이다. 언젠가는 끝난다......, 언젠가는, 끝난다. 주문처럼 그렇게 되풀이했다.

하기야 고등학교를 졸업할 날이 온다 해도 무언가 하고 싶은 일, 흑은 되고 싶은 것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의 자신이 반쯤 강재적으로 소속되어 있는 이《고등학생》이라는 집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매일매일 저 수용소 같은 장소를 다니며, 무기력한 선생들의 강의를 들으며, 유아 시질부터 무엇 하나 내적인 변화가 없었 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싶어지는 인간들과 나한히 공부며,운동을 하는 데무슨 의미가 있는지 시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극히 예외적으로 의미가 있어 보이는 수업을 하는 교사도 있으며, 존경할 점이 보이는 학생도 있지만 그들의 존재가 시노에게 필 요불가결한 것도 아니었다.

시노는 현재의 실질적 보호자인 조부모에게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곧장공장 일을 하거나. 혹은 전문학교에서 취직을 위한 훈련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옛날 기질이 있는 할아버지 는 시'논에게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고. 할머니는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아버 지에게 면목이 없다며 울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필사적으로 공부해 도쿄의 제법 이름난 도립 고등학교에 합격한것이 었지만, 들어오고 나서 놀랐다. 고향의 공립 중학교와 본질적 으로는 무엇 하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시노는 중학교 시절과 마찬가지로 매일 교문을 니올 때 마다의식처럼 남은 날짜를 헤아리고 있었다.

시노가 혼자 사는 아파트는 학교와 JR역 중간쯤에 있다. 부 엌이 딸린 세 평 남짓한 작은 방이지만, 상점가 끄뜨머러에 인접한 곳이어서 장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오후 3시 반의 아케이드 거리에는 아직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서점의 진열대를 들여다본 시노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온 것을 발견했지만, 하드커버였으므로 꾹 참고 가게를 나왔다.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한 달 정도 기다리기는 해도 구립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

다음으로 문구점에 들려 지우개와 '방안노트 를 산 후 지갑의 잔액을 확인하고, 저녁 메뉴를고민하며 아케이드 한가운데에 있는 슈피마켓으로 향했다 사실 시노의 저녁은 국 하나, 반찬 하나가 기본이며. 영양과 칼로리와 원가의 균형만 맞추면 맛이나 외양은 뒷전이었다.

당근과 샐러리로 끓인 수프에 두부 햄버그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오락실 앞을 지나쳐 그 옆의 슈퍼마켓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아사다~."

두 건물 틈새의 좁은 골목길에서 시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시노는 천천히 90도 오른쪽을 돌아 보았다.

골목길에는 시노와 같은 교복──다만 스커트의 길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을 입은 여학생 셋이 있었다. 한 사람은 쪼그리고 앉아 휴대단말을 조작하고 었었으며, 나머지 들은 슈퍼마켓 벽에 몸을 기댄 채 싱글싱글 웃으며 시노를보고 었었다.

말없이 가만히 있자, 서 있던 사람 중 하나가 거만하게 턱짓을 했다.

"이리 와."

하지만 시노는 움직이지 않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자 나머지 한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시노의 오른손 손목을 꽉 붙들었다.

"됐으니까 오라고."

그대로, 가차 없이 잡아끈다.

상점가에는 잘 보이지 않는 골목 안쪽까지 끌려온 시노를, 쪼그리고 앉아 있던 여학생이 올려다보았다. 세 사람 중 리더격인 엔도라는 여자였다. 서커먼 아이라인을 그린 째진 눈과 뾰족한 턱이 모종의 육식곤충 같은 인상을 주었다.

굵은 펄 입자가 번들번들 빛나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듯 웃으며 엔도는 말했다.

"미안, 아사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너무 불렀더니 전철비가 없지 뭐야. 내일 갚을 테니까, 요것만 빌려주라."

손가락을 하나 세운다. 백 엔도 천 엔도 아닌 만 엔이라는 뜻이다.

노래를 아무리 불렀다고 해봤자 수업 끝난 지 아직 20분도 지나지 않았고, 전철비라고 해도 셋 모두 정기권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게다가 전철을 타는 데 왜 만 엔이나 드는 것인지. 시노는 마음속으로 잇달아 논리적 모순을 열거했으나 이를 지적해봤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 사람이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번에는 돈이 없다고 말하고 거절했다.

같은 방법이 통할 확률은 낮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시노는 대답했다.

"그런 돈이 어딨어."

그러자 엔도는 잠시 웃음을 거두더니, 다시 씨익 웃었다.

"그럼 찾아와."

"............"

시노는 말없이 아케이드 거리를 향해 걸어가려 했다. 사람의 눈이 있는 은행까지는 따라오지 못하겠지. 이 자리만 벗어나면 누가 고분고분 돌아올 줄 알고──그렇게 생각한 순간, 엔도가 말을 이었다.

"가방은 놓고 가. 지갑도, 카드만 가져가면 되잖아."

시노는 자리에 서서 돌아섰다. 엔도의 입술은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가느다란 두 눈에는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데 흥분한 고양이 같은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 세 사람은 한때는 친구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지방에서 갓 올라온 시노는 당연히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공통된 화제도 없이 매일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것이 엔도와 두 여학생이었다.

함께 점심을 먹자는 제안에, 학교에서 귀가하면서 넷이 패스트푸드점에 들르는 이벤트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시노는 주로 이야기를 듣기만 할 뿐, 조용히 그녀들의 화제의 입을 다물고만 있었으나 그래도 기뻤다. 왜냐면 그녀들은 오랜만에 얻은,《그 사건》을 모르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선 평범한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학급 명부의 주소를 통해 시노가 혼자 자취한다는것을 짐작하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이 지난후의 일이었다.

놀러 가도 되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시노도 금세 승낙했다.

엔도 일행은 아파트를 칭찬하고, 부러워했으며, 어두워질 때까지 과자를 에워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들은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시노의 아파트를 찾아왔다.

마침내 세 사람은 시노의 방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 전철을 타고 놀러 나가게 되었다. 그럴 때면 시노의 방에는 그녀들의 짐이 남았으며, 금세 세 사람의 사복이 조그만 옷장으 차지하기 시작했다.

구두, 가방, 화장품, 엔도 일행의 사유물은 점점 늘어갔다. 5월에 들어섰을 무렵에는, 놀라 나간 세 사람이 술에 취해 돌아와선 그대로 자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마침내 시노는 조심스럽게 말해보았다. 너무 매일 찾아오면 공부를 할 수 없어서 힘들다고.

엔도의 대답은 "친구잖아" 한 마디였다. 다음 날은 스패어 키를 요구했다.

그리고 5월 말의 어느 토요일.

도서관에서 귀가한 시노가 문 앞에 섰을 때, 방 안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엔도 일행의 목소리만은 아니었다.

시노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집에서 들리는 기척을 살피는 행위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답답했다.

분명히, 여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방에, 모르는 남자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노는 공포에 움츠러들었다. 이어서 분노가 솟아났다. 간신히 진실을 깨달았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 휴대단말로 경찰을 불렀다. 달려온 경찰은 양측의 서로 다른 말을 듣고 당황한 것 같았지만, 시노는 한결같이 되풀이했다.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일단 파출소로 가자고 경찰관에게 재촉을 받은 엔도는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시노를 노려보았다. "흥, 그랬단 말이지." 그 한마리를 남기고는 짐을 챙겨 방을 나갔다.

보복은 신속했다.

엔도는 평소의 그녀들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악마같은 조사능력을 발휘해, 시노가 혼자 자취하게 된 이유──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5년 전에 일어난, 이미 온라인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그 사건》을 조사해 전교에 폭로했다. 시노에게 말을 걸려는 학생은 모조리 사라졌으며, 교사들조차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러나 시노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를 원했던 자신의 연약함이 눈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강해지고, 사건이 남긴 상처를 넘어서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 따위 필요 없다. 오히려 적이 있어야 한다. 싸워야 할적──주위의 모든 것이, 적.

질끈 숨을 멈추고, 시노는 똑바로 엔도의 얼굴을 보았다.

가느다란 두 눈에 험악한 빛이 깃들었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웃음을 거두더니, 낮은 목소리로 엔도는 말했다.

"뭐야. 빨랑 가."

"싫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