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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거절하겠습니다."

"너무한 걸. 곧바로 차버리기야?"

계속 수작을 걸어봤지만 린다의 반응은 완고했다.

겉으로는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명백하게 켈리를 경계하고 있다.

"그렇게 일, 일 할 거면 마누라면 먼저 돌려보내지. 그럼 당신 일도 끝이야. 그 머리카락도 답답하게 묶고 있을 필요가 없지. 검은 드레스를 입혀보고 싶은 걸.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미스터 쿠어, 저는 임무로 함께 행동하게 된 분과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말고. 어디서 식사라도 하지 않겠어? 물론 그 뒤 코스도 최상급으로 준비해주지. 그렇게 빼지 마.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중위의 얼굴에 혐오와 분노가 퍼졌다.

"거절하겠습니다. 이 일에 대해 부인께 말씀드려도 좋습니까?"

"하고 싶으면 해. 저 여자도 바람은 신경 안 쓰겠다더군. 정말 고마운 얘기잖아? 난 내 멋대로 자유를 즐길 수 있다는 거야."

그레이엄 중위의 검은 눈에는 불꽃과 얼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더러운 것에게 던지듯이 냉랭한 말투였다.

"그렇다면 저말고 쿠어 재벌의 이름에 금방 눈이 멀 바보 같은 여자들과 원하는 대로 자유를 만끽해 주십시오. 당신 돈도 아닌데 우습기는 합니다만.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내뱉고서 몸을 돌려 나간다. 그 등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켈리는 순식간에 중위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힘은 잘 알고 있으므로 가능한 한 부드럽게 중위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건드리지 말아요!"

반사적으로 밀쳐내려고 했지만 켈리에게 붙잡힌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화내는 거지, 그레이엄 중위?"

갑자기 변한 켈리의 말투에 중위는 깜짝 놀랐다.

손목을 놔주고 거칠게 헐떡이는 중위를 내려다보면서 켈리는 천천히 말했다.

"왜 당신들은 날 노려보는 거지? 그걸 묻고 싶었어."

"노, 노려보다니요?"

"모른다고는 못하겠지. 바늘방석 같았다구. 하루 종일 당신들 시선에서 무언의 압력까지 받으면서 버티고 있었으니까, 조금쯤 심술 부려도 벌은 안 받을 것 같은데?"

장난스럽게 웃는 켈리의 얼굴을 중위는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뺨이 가볍게 상기된 것은 당황해서이리라.

서둘러 자세를 바로 하면서 대답했다.

"실례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조심하겠다는 거지? 그런 말이 아니라, 난 이유를 듣고 싶은 거야."

프리스 일행이 켈리에게 차가웠던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이 남자는 자신들의 소중한 주인에게 어울리는 인간인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인간인가. 신용할 수 있는 인간인가.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태도가 딱딱해진 것이겠지.

하지만 호위를 맡은 것뿐인 그레이엄 중위 일행에게서까지 심사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쪽은 적의까지 품고 있는 것이다.

중위는 불편한 듯이 안절부절 못하다가, 주저하며 켈리를 바라보고 결심한 듯이 고개를 들어 뭔가 말을 하려고 했다.

그때 중위의 부하가 당황하며 뛰어 들어왔다. 급박한 분위기였다.

8장

같은 시각, 거실에서 휴대용 단말을 조작하고 있던 프리스가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스민, 이상해요. 이 호텔에 아무도 묵고 있지 않아요."

"뭐라고?"

차를 끓여오던 헬렌이 놀라며 물었다.

프리스는 오늘의 숙박자 명부를 표시하고서 그 하나하나를 조회하고 있었다.

"적어도 민간인은 아무도 없어. 모두 연방 관계자인 걸."

그 자리에 있던 그레이스도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모임이라도 있는 거 아냐? 퇴역군인 동창회라든가."

"아니, 거의 대부분이 사무관계 인물이야. 그러니까 이상한 거지. 게다가 여긴 센트럴 시티 호텔이라구? 공화우주 전역에서 매일같이 사자나 정부요인이 찾아올 텐데,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

"확실히 그건 그래."

페퍼도 이상하다는 듯이 분홍색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재스민은 소파에 앉은 채 침묵하고 있다. 여자들은 그런 재스민을 둘러싸듯이 각각 서 있었다.

그때 당황한 표정으로 그레이엄 중위가 달려왔다.

"미즈 쿠어, 드릴 말씀이."

"무슨 일이지?"

"지금 부하 중 한 명이 신경 쓰이는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12군의 특수부대가 출동했다고 합니다."

"목적지는?"

"이곳입니다."

이 말에는 일동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페퍼민트가 중위에게 거의 덤벼드는 듯한 기세로 물었다.

"잠깐만요. 여기라니, 시티? 아니면 이 호텔?"

"그건 모르겠습니다. 극비임무니까요."

중위의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뒤를 따라온 켈리가 물었다.

"당신들 7군이지? 어째서 12군의 상황을 아는 거지?"

각 군대는 독립되어 있다. 한때 육해공군이 그랬던 것처럼, 같은 군대라고 해도 완전히 다른 조직인 것이다.

중위는 부하들 중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자의 애인이 12군에 있습니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정보를 외부에 흘리는 것은 엄금. 재수 없으면 군법회의감이다.

"하지만 어째서 특수부대가 시티에?"

"그래요. 훈련이라고 해도, 굳이 시티까지는 올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헬렌과 그레이스가 말하는 옆에서 그레이엄 중위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프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켈리는 그 모습을 흘깃 바라보면서, 아무래도 이 두 사람만은 사정을 알고 있는 거라고 판단했다. 또 한 사람, 재스민 역시.

기묘한 침묵이 넓은 거실을 채웠지만, 이번에는 중위의 팔에 매달려 있던 통신기가 소리를 냈다.

중위의 부하들은 비상구와 계단을 경계하고 있으니, 그 중 어느 쪽인가에서 온 연락일 터였다.

중위는 무뚝뚝하게 응답했다.

"그레이엄이다. 무슨 일이지?"

"린다. 나야."

통신기에서 흘러나온 것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중위는 당황하면서 통신기를 향해 낮게 속삭였다.

"안 돼. 임무 중인데."

"미안, 미안. 확인해두고 싶어서 말야. 이번 데이트, 분명히 4일이었지?"

임무 중에 애인한테서 사적인 통신이 들어온 셈이지만, 중위의 안색이 변했다. 도저히 애인과 나누는 대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약속 시간은 8시. 잊지 말아요."

"어이, 착각하지 마잖아...... 실제로 이렇게 무사히 도약했으니."

"그러니까 이상한 거잖아."

진저가 딱 잘라 단언했다.

헬렌, 그레이스, 페퍼민트, 바이올렛 등의 여성 스탭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약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정상적으로는.

지금쯤 양쪽 역에서 모두 소동이 났을 게 분명하다.

페퍼민트는 분홍과 흰색이 뒤섞인 포슬포슬한 머리를 흔들며 다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 지금까지 저렇게 비상식적인 인간은 재스민 하나뿐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그 뒤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

무거워진 공기 속에서 이자드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면서 일어났다.

"과연 주인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가씨와 합류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을 겁니다. 그 사이에 가볍게 식사라도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죠."

진저가 제일 먼저 대답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전원이 그 의견에 찬성이었다.

한편 선교에서 내려온 켈리 역시 허기를 느끼고 급사용 자동기계를 불러서 식사를 가져오게 했다.

요리장이 좀 전의 피난 중에 하선해버렸기 때문에 간단한 식사밖에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배만 채울 수 있다면 뭐든지 상관없었다.

기계가 가져온 것은 육즙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두툼한 스테이크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희희낙락하며 스테이크를 썰어서 입에 넣고 있으려니, 또다시 통신화면을 멋대로 점거한 다이애나가 말을 걸어왔다.

"수고했어, 켈리."

"아, 별것 아냐. 최근 열 몇 시간 동안은 노동기준법에 위배될 정도로 계속 일하고 다녔으니 조금만 쉬게 해주겠어?"

"아니, 아직 자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왜? 뒤는 저 백곰 씨가 알아서 할 것 아냐. 내가 나설 필요는 더 없을 텐데."

"그건 모르는 거야."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어조였다.

그만큼 오랫동안 사귄 사이이므로, 다이애나가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는 기색은 눈치 챌 수 있다.

마지막 남은 스테이크 조각을 꿀꺽 삼킨 다음 켈리는 실내의 통신화면을 향해 앉아 말없이 얘기를 재촉했다.

"퀸 비의 설계도를 찾다가 선내의 도면까지 같이 검색해봤거든. 그랬더니, 퀸 비의 조종석과 똑같이 생긴 장치가 있었어."

"조종연습 장치야?"

"단순한 연습 장치가 아니야. 완전히 똑같은 물건인 걸. 잘만하면 연결할 수 있을 거야."

켈리는 낙담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다이애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켈리에게 무엇을 시키려는지 이해한 것이다.

"확실히 저건 내 마누라지만, 반하지도 않은 여자 때문에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어쩔 수 없지. 당신도 조금은 재스민을 좋아하는 거 아냐?"

"넌 어떤데?"

다이애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미소지었다.

"그렇네. 좋아해. 재스민은 나보고 예쁘다고 해줬는 걸."

켈리는 소리 없이 웃다가 스테이크에 딸려 나온 적포도주 병을 들고 그대로 목을 축였다.

"그거 엄청난 배짱이군. 너, 예쁘다는 소리가 그렇게 기뻤어?"

"그야 못났다는 소리보다 낫지 않아? 그쪽 방면 전문서적을 조사해봤더니, 임신이라는 건 상당히 여자 몸에 부담을 주나봐. 나한테는 몸도 없고 자궁도 없으니까 그다지 실감은 안 나지만."

"네게 자궁이 있었으면 정말 귀여운 우주선이 태어났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상대도 없는 걸. 난 그보다도 당신 아이를 보고 싶은데."

켈리는 다시 적포도주를 마시고서 비아냥에 가까운 웃음을 지었다.

"그 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뱃사람은 안 될 거야. 쿠어 재벌의 차기 총수가 되겠지. 재미있는 농담이야."

"그래도 당신 아이잖아?"

"본의는 아니지만 찔리는 짓도 꽤 했고, 최근 그 여자 근처에 다른 남자라고는 한 명도 없었던 걸 보면 자연히 얘기가 그렇게 되지."

자조의 웃음이었다. 그런 주제에 호박색 눈망울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이 남자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에는 나오는 말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너도 내 결정에 반대하는 거야?"

조금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질문이었지만 다이애나는 멋진 결단력을 발휘해 즉시 대답했다.

"당신이 지금 상황에 정말로 만족 못하고 있다면, 여지껏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데."

"오해하기 쉬운 말인데. 저 백곰 씨나 젊은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절대로 만족 같은 건 안 해."

"하지만 불만인 것도 아니잖아."

"말도 안 돼. 불만 투성이라고."

일부러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하자 화면 속의 다이애나도 웃으며 한 손으로 턱을 짚었다. 푸른 눈망울을 빛내면서 심술궂게 말한다.

"딴 소리 해봤자 소용없어. 난 당신하고 십년이 넘게 같이 있었으니까. 당신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명령에 얌전히 따르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 이 결혼이 정말 싫었다면 그때 재스민을 쏘아 죽여서라도 도망쳤을 거야.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지. 재스민의 의뢰가 막무가내이기는 했어도 어느 정도 예의는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조금쯤 어울려볼 마음이 든 것 아냐?"

켈리는 입 끝을 올리며 웃었다.

"고마워. 역시 오랜 파트너인 걸."

"고맙단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는 아냐. 단순한 사실인 걸."

켈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이애나도 한동안 침묵하다가 뭔가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저기, 켈리. 이건 내 생각인데, 당신에게 아버지 역할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는 말..., 그건 역시 당신 입장을 신경 써준 게 아닐까? 보통 남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책임지라는 소리 듣기 싫어하잖아?"

"너, 그런 지식은 또 어